포르쉐 AG는 2025년 전 세계에서 전년 대비 10% 감소한 27만 9,449대를 판매하며, 2009년 이후 최대 폭의 판매 하락을 기록했다. 중국 시장의 급격한 침체와 718 라인업 단종에 따른 공급 공백, 가격 인상에 따른 수요 위축이 주된 원인이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포르쉐코리아는 오히려 전년 대비 약 30% 증가한 1만 746대를 기록하며 설립 이후 두 번째 1만 대 판매를 달성했다. 글로벌 역풍 속에서 한국 시장이 역주행을 이어간 배경과, 포르쉐가 한국을 전동화 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주목하는 이유를 짚어봤다.
포르쉐 AG의 2025년 연간 실적은 표면상 뚜렷한 후퇴처럼 보인다. 27만 9,449대의 글로벌 인도량은 전년(31만 718대) 대비 10% 줄어든 수치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가시지 않았던 2009년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영업이익은 더 충격적이다. 포기한 전기차 로드맵에 따른 47억 유로 규모의 자산 상각이 반영되면서 2025년 영업이익은 2024년의 53억 유로에서 단 9,000만 유로로 98% 폭락했다.
그러나 수치 뒤에는 전혀 다른 흐름이 숨어 있다. 전동화 모델의 비중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5년 전체 인도량 중 전동화 모델(순수 전기 +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은 34.4%를 차지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7.4%포인트 오른 수치다. 순수 전기차 비중만 따져도 22.2%로, 포르쉐 AG가 자체적으로 설정한 2025년 목표치(20~22%)의 상단에 부합한다. 유럽에서는 이미 전동화 모델이 전체 인도량의 57.9%를 넘어 내연기관을 앞질렀다.
모델별로는 희비가 갈렸다. 마칸이 8만 4,328대로 최다 판매 모델 자리를 지켰으며, 이 중 순수 전기 모델이 절반을 넘는 4만 5,367대를 기록했다. 911은 51,583대로 또 하나의 판매 기록을 썼다. 반면 타이칸은 1만 6,339대에 그치며 2021년 최고치(4만 1,296대) 대비 60% 이상 줄어들었다. 2009년 이후 최대 규모의 CEO 교체(1월 1일부로 마이클 라이터스 취임)와 맞물려, 포르쉐는 현재 가장 근본적인 전략 재편의 시험대 위에 서 있다.
핵심은 '볼륨보다 가치(Value over Volume)' 기조의 유지다. 판매 대수가 줄더라도 고마진 모델과 개인화 서비스에 집중해 수익성을 지키겠다는 전략이다. 마칸 일렉트릭이 내연기관 마칸을 제친 것, 911이 역대 최다를 경신한 것, 그리고 익스클루시브 매뉴팩처와 존더분쉬 프로그램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것은 이 전략이 통하고 있다는 신호다.
2026 포르쉐코리아 신년 기자간담회의 가장 주목할 발표 중 하나는 한국의 글로벌 위상 변화였다. 포르쉐 AG 해외 신흥 시장 총괄 크리스티아네 초른 부사장은 직접 방한해 '한국은 2025년 기준 포르쉐 전 세계 5대 시장으로 성장했다'고 밝혔다. 포르쉐 해외 신흥 시장은 한국을 포함한 8개 국가로 구성되는데, 이 권역 내 한국 비중이 2018년 14%에서 2025년 19%로 확대되었다는 점은 성장세가 구조적임을 보여준다.
2025년 포르쉐코리아는 1만 746대를 인도하며 전년 대비 약 30%의 성장을 이뤘다. 이는 글로벌 포르쉐 판매가 10% 줄어드는 상황에서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판매 구조도 주목할 만하다. 내연기관 38%,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28%, 순수 전기차 34%로, 전동화 모델 합산 비중이 62%(6,630대)에 달했다. 글로벌 평균 전동화 비율(34.4%)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모델 순위도 인상적이다. 2025년 글로벌 기준 한국은 타이칸 판매 2위, 파나메라 3위, 카이엔 4위를 기록했다. 특히 타이칸과 마칸 일렉트릭이 수요를 이끌며 순수 전기차 판매량 기준으로는 전 세계 6위에 올랐다. 글로벌 타이칸 판매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2위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한국 소비자가 포르쉐 브랜드의 전동화 모델에 얼마나 강한 친화력을 보이는지를 방증한다.
포르쉐코리아는 2026년을 '전동화 리더십 강화의 원년'으로 규정했다. 이번 간담회의 주제인 'Electrification, Driven by Value over Volume'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닌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수반한다.
제품 면에서는 상반기에 신형 911 터보 S와 마칸 GTS를 선보이고, 하반기에는 파나메라 레드 익스클루시브, 카이엔 일렉트릭을 연이어 출시할 계획이다. 특히 올해부터 한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순수 전기 모델에는 한국 제조사의 배터리 셀이 탑재된다는 점도 공식 확인됐다. 이는 공급망 측면에서 한국 시장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현지화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인프라 확장도 본격화된다. 3월 포르쉐 센터 제주를 시작으로 기존 일산 센터를 브랜드 체험 공간 '데스티네이션 포르쉐'로 전환하고, 양재•인천•영등포 등 핵심 지역의 서비스 센터도 확장한다. 영등포 서비스 센터는 서울 서부권 최대 규모로 개발될 예정이다. 포르쉐코리아는 2030년까지 전국 서비스 네트워크를 현재의 두 배 수준으로 늘린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고객 접점 다양화도 추진된다. 영어로만 운영되던 PTS(Paint to Sample) 개인화 서비스 웹사이트가 한국어로 전환되고, 삼성카드와 협력해 포르쉐 오너 전용 제휴카드도 출시된다. 10월에는 국내 팬들을 위한 대규모 커뮤니티 행사 '포르쉐 바이브 서울'도 예정되어 있다.
글로벌 포르쉐 판매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한국 시장이 역성장을 이어가는 배경에는 몇 가지 구조적 요인이 있다.
첫째, 중국 시장의 공백이다. 포르쉐의 최대 단일 국가 시장이었던 중국은 2025년 26% 급감하며 4만 1,938대 인도에 그쳤다. 현지 전기차 제조사들과의 경쟁 심화, 럭셔리 소비 위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 공백을 메우는 시장으로 한국이 부상하고 있다.
둘째, 한국 소비자의 '프리미엄 전동화' 수용도가 높다는 점이다. 국내 수입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에서 타이칸은 브랜드 위상을 확인시키는 모델로 기능했고, 마칸 일렉트릭 출시 이후 순수 전기차 비중이 급격히 올라갔다. 3분기 누적 기준 포르쉐코리아의 순수 전기차 판매는 전년 대비 무려 318% 성장했다. 이는 타이칸 수요 자체가 빠르게 줄어든 글로벌 흐름과 정반대다.
셋째, '개인화'와 '브랜드 경험'에 대한 한국 소비자의 높은 가치 부여다. 포르쉐의 존더분쉬와 익스클루시브 매뉴팩처 프로그램에 대한 국내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포르쉐의 고마진 전략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한국 시장은 '볼륨보다 가치' 전략이 가장 잘 구현되는 시장 중 하나인 셈이다.
물론 변수도 있다. 환율 변동과 관세 이슈는 수입차 가격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내 전기차 시장 성장 속도가 둔화될 경우 고가 전기차의 수요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다. 그러나 포르쉐코리아의 브랜드 충성도와 한국 시장의 전동화 수용 속도를 감안하면, 단기적 변동 요인보다 구조적 성장 동력이 더 강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기자간담회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카이엔 일렉트릭'의 국내 최초 공개였다. 지난해 11월 두바이 월드 프리미어로부터 불과 4개월 만의 한국 데뷔다. 카이엔은 국내에서 가장 사랑받는 포르쉐 모델 중 하나인 만큼, 이 모델의 전기 버전 조기 투입은 포르쉐코리아가 한국을 전동화 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보고 있다는 신호다.
카이엔 일렉트릭은 2002년 초대 카이엔이 'SUV에도 스포츠카의 DNA를'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이후, 다시 한번 시장의 기준을 바꾸려는 포르쉐의 야심작이다. 전 세계 누적 150만 대 이상이 판매된 포르쉐 최다 판매 모델의 전기화는 브랜드 전동화 전략 전체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성능 수치는 압도적이다. 포뮬러 E에서 파생된 회생 제동 기술을 기반으로 구축된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은 런치 컨트롤 사용 시 최고출력 1,156마력(PS), 최대 토크 153.0kgf•m을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단 2.5초, 최고속도는 260km/h다. 800V 아키텍처 기반 고전압 배터리와 최대 400kW 초급속 충전을 지원해 실용성과 성능을 동시에 확보했다. 최대 3.5톤의 견인 능력과 강화된 오프로드 성능까지 갖춰, 스포츠카 성능과 SUV 다재다능함을 동시에 충족한다.
실내는 포르쉐 역사상 가장 넓은 디지털 경험을 제공하는 '플로우 디스플레이(Flow Display)'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14.25인치 디지털 계기판과 14.9인치 조수석 디스플레이를 포함한 곡선형 OLED 화면이 미래 지향적인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트림은 기본형부터 카이엔 S 일렉트릭,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까지 순차 출시될 예정이며, 13개 외관 컬러, 9개 휠 디자인, 12개 인테리어 조합 등 사실상 무한에 가까운 개인화 옵션이 제공된다. 카이엔은 앞으로도 순수 전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내연기관 세 가지 파워트레인을 병행 운용할 계획이다.
카이엔 일렉트릭은 테슬라 모델 X, 메르세데스-벤츠 EQE SUV, BMW iX 등과 국내 프리미엄 전기 SUV 세그먼트에서 맞붙게 된다. '성능의 타협 없는 전동화'라는 포르쉐의 철학이 이 시장에서 얼마나 유효한지를 입증하는 실험이기도 하다.
카이엔 일렉트릭과 함께 이날 국내 최초로 공개된 '파나메라 레드 익스클루시브'는 성격이 전혀 다른 모델이다. 전동화를 향한 포르쉐의 미래를 보여주는 카이엔 일렉트릭과 달리, 파나메라 레드 익스클루시브는 브랜드의 레이싱 헤리티지와 개인화 철학을 정제해낸 한정판이다.
포르쉐 익스클루시브 매뉴팩처를 통해 한국 고객 선호도 높은 사양을 큐레이션한 이 모델은, 전 세계 파나메라 주요 시장 중 오직 한국 고객만을 위해 100대 한정으로 제작되었다. 포르쉐 퍼포먼스의 상징인 '가드 레드(Guards Red)'와 '보르도 레드(Bordeaux Red)'의 조화가 핵심 정체성이다. 스포츠 디자인 패키지, 21인치 스포츠 디자인 휠, 익스클루시브 디자인 테일라이트가 적용되며, 도어 하단과 후면의 가드 레드 컬러 'Panamera' 레터링이 희소성을 완성한다.
이 모델의 출시는 포르쉐코리아가 한국 시장을 단순한 판매 시장이 아닌, 브랜드 개인화 전략의 테스트베드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고객의 독특한 취향과 높은 개인화 수요가 포르쉐 본사 차원에서도 공식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포르쉐는 지금 글로벌 전략의 재편을 모색하는 가운데, 한국 시장에서 전동화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중국이 침체하고 유럽 시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한국은 고성능 전동화 모델에 대한 수요가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몇 안 되는 시장 중 하나다. 전 세계 타이칸 판매 2위, 전기차 판매 글로벌 6위라는 숫자는 그 자체로 강력한 증거다.
포르쉐코리아가 2030년까지 서비스 네트워크를 두 배로 확장하고, 한국산 배터리 셀을 전기 모델 전체에 탑재하며, 100대 한정 한국 전용 모델을 기획하는 일련의 행보는 단기 판매 확대를 넘어, 한국을 전동화 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구축하겠다는 장기적 의지의 표현이다.
글로벌 역풍 속에서 한국이 역주행하는 지금, 포르쉐코리아의 행보는 전동화 시대에 프리미엄 브랜드가 어떻게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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