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시즌이 시작할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저 차, 얼마예요?" 그리드 위에 늘어선 22대의 머신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다. 레이스가 끝나면 어디로 가는 걸까, 팀이 팔기는 하는 걸까, 산다면 얼마나 줘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살 수는 있다. 다만 우리가 아는 '자동차 구매'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F1 머신을 구매하고 싶은 분들을 위한 F1 머신 중고차 구매 가이드(?)를 정리해 소개한다.
현재 시즌을 달리는 F1 머신에는 가격표가 없다. 팔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팀 예산 상한제 덕분에 어림잡아 볼 수는 있다. 2026 시즌 기준 팀당 예산 상한은 2억 1,500만 달러. 여기서 드라이버 연봉, 마케팅, 시설 운영비를 걷어내고 차 한 대에 들어가는 비용만 따져보면 1,500만 유로, 우리 돈으로 약 240억 원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감이 잘 오지 않는다면 부품 단위로 쪼개보자. 드라이버가 두 손으로 쥐는 스티어링 휠 하나가 5만 유로, 약 8천 6백만 원이다. 단순히 방향을 트는 도구가 아니라 수십 개의 버튼과 다이얼, 디스플레이로 가득 찬 이동식 콕핏 컨트롤러이기 때문이다. 프론트·리어 윙 세트는 20만 유로, 약 3억 4천만 원. 파워유닛과 트랜스미션은 시즌 허용 수량 기준으로 1,200만 유로, 약 193억 원이다. 이 모든 것이 탄소섬유로 빚어지고, 오토클레이브에서 구워지고, 수천 시간의 시뮬레이션과 풍동 테스트를 거친다. 그래서 240억 원이다.
엔진 소리가 필요 없다면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가 가능하다. f1authentics.com 같은 공인 플랫폼에서는 구형 쇼카나 전시용 헤리티지 모델을 11만 5천 유로, 약 200억 원 선에서 구할 수 있다. 물론 엔진도, 변속기도 없다. 스티어링 휠은 있다. 친구들을 불러 직접 밀어달라고 부탁하면 주행도 가능하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소파 장식품이 생기는 셈이다.
레이스 히스토리가 있는 머신을 원한다면, 예산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다.
2013년 헝가리 그랑프리에서 루이스 해밀턴이 메르세데스 첫 우승을 일궈낸 W04가 경매에서 약 280억 원에 팔렸다. 미하엘 슈마허가 2001년 모나코와 헝가리 GP를 연속으로 제패한 페라리 F2001은 약 258억 원에 낙찰됐다. 아이르톤 세나의 차라면? 5백억 원 이하론 대화가 시작되지도 않는다.
그 모든 기록을 압도하는 건 따로 있다. 1955년 부에노스아이레스 홈 그랑프리에서 판지오가 우승했고, 같은 해 스털링 모스가 몬차에서 몰았던 메르세데스 W196R 스트롬리니엔바겐. 2025년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RM 소더비 경매에서 5,115만 5천 유로, 약 767억 원에 팔렸다. F1 경매 사상 최고가다.
조금 더 '현실적인' 사례도 있다. 장 알레시는 페라리로부터 선물받은 F92A를 30년간 거실에 세워뒀다가 291만 유로, 약 50억 원에 매각했다. 2랩을 돌고 트럭에 실어 집으로 가져온 뒤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차였다. 가만히 두기만 해도 오르는 자산이 있다면, F1 머신이 그중 하나다.
탈 수 있는 걸 원하되, 합법적인 번호판도 달고 싶다면 레드불 어드밴스드 테크놀로지의 RB17이 있다. 코스워스 V8 트윈터보 하이브리드, 1,200마력. F1 역대 최강의 머신으로 꼽히는 RB19의 그라운드 이펙트 기술을 그대로 가져왔고, 시속 240km에서 1,700kg의 다운포스를 만들어낸다. 에이드리언 뉴이가 설계하고 레드불 밀턴 키인스 캠퍼스에서 직접 손으로 만든다. 가격은 700만 유로, 약 121억 원 이상.
이쯤 되면 F1 머신을 사는 것보다 이게 더 나은 선택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달릴 수 있고, 번호판도 있고, 에이드리언 뉴이의 이름도 붙어 있으니.
머신을 살 형편이 못 된다면 먼저 시뮬레이터부터 들여놓는 방법도 있다. f1authentics.com에서는 오라클 레드불 레이싱과 VCARB의 공식 F1 시뮬레이터를 구입할 수 있다. 멤엔토 익스클루시브가 제조한 정품으로, 가격은 10만 3,179유로, 한화로 약 1억 8천만 원이다. 실제 F1 팀이 드라이버 훈련에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사양은 아니지만, 거실 한켠에 들여놓기엔 이걸로도 충분히 설명이 필요한 물건이다.
F1 머신의 경매가는 해마다 오른다. 생산 대수가 극도로 제한되는 데다, 시즌이 끝나면 곧바로 구형이 된다. 희소성과 역사성이 동시에 쌓이는 구조다. 넷플릭스의 '본능의 질주' 방영 이후 전 세계적으로 팬층이 급격히 늘었고, 그 새로운 팬들 중 일부는 컬렉터가 됐다. 수요는 늘었고 공급은 여전히 극소수다.
F1 머신은 그 어떤 슈퍼카보다도 작은 수량으로, 더 극한의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팔리지 않기에 더 갖고 싶어지고, 달리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 가치를 발한다. 오늘도 경매장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수백억 원의 패들을 들어 올린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어쩌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지 모른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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