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2026 CEO 인베스터 데이'를 열고 2030년까지의 중장기 전략을 공개했다. 2030년 413만대 판매, 매출 170조원, 영업이익률 10%. 숫자만 보면 대담하다 못해 낙관적이라는 인상마저 든다. 하지만 이 숫자들이 나온 맥락을 하나씩 뜯어보면, 기아가 지금 어떤 판단 아래 이 청사진을 그렸는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번 인베스터 데이를 통해 발표된 내용을 통해, 기아의 방향성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살펴본다.
이번 전략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하이브리드의 비중이 생각보다 크다는 점이다. 2030년까지 HEV 13개 차종, 판매 목표 110만대. 전기차 목표인 100만대와 사실상 어깨를 나란히 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동화로의 급격한 전환이 대세처럼 여겨지던 분위기였는데, 기아는 이번 발표를 통해 그 흐름에서 한 발 물러선 셈이다.
이것을 후퇴로 볼 것인가, 현실 직시로 볼 것인가. 후자 쪽이 맞다고 본다. 유럽의 EV 수요 성장세는 예측보다 더디고, 미국에서는 HEV 수요가 2030년 시장의 40%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아는 EV 전환 속도가 지역마다 다르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간극을 하이브리드로 채우겠다는 것이다. 텔루라이드 HEV, 셀토스 HEV, K4 HEV를 순차 투입하고, 북미 픽업 시장에는 바디 온 프레임 기반의 HEV·EREV까지 내놓겠다고 했다.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다만 이 전략이 빛을 발하려면 전제 조건이 있다. 하이브리드 차종을 빠르게 늘리는 것 자체는 쉽지 않다. 토요타가 오랜 시간 쌓아온 HEV 생산 효율을 단기간에 따라잡는 건 또 다른 과제다.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연비와 출력을 4% 이상 끌어올렸다고 했지만, 그것이 시장에서 얼마나 체감 가능한 경쟁력으로 연결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2030년 전기차 100만대, 시장점유율 3.8%. 야심 찬 숫자다. 그런데 지금 기아의 EV 판매 실적과 이 목표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2026년 목표가 40만대인데, 4년 만에 그것을 두 배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기아가 내세우는 카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EV2로 시작하는 보급형 라인업 확대, 다른 하나는 차세대 EV 플랫폼이다. 배터리 용량을 최대 40% 늘리고, 5세대 배터리를 도입해 에너지 밀도를 15%까지 끌어올린다는 구상은 분명 매력적이다. 여기에 레벨2++ 자율주행까지 통합 적용한다면 제품 경쟁력 자체는 확보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시장이 기아의 계획대로 움직여줄 것이냐는 데 있다. EV 수요의 성장 속도, 충전 인프라의 보급 속도, 각국 보조금 정책의 향방 등 기아 혼자서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너무 많다. 특히 미국 시장은 현 정책 기조만 봐도 EV 인센티브의 향방이 불투명하다. 유럽은 EV 목표 비중을 66%로 잡았는데, 이는 시장 전망치보다 23%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강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크다.
PBV는 기아가 가장 공을 들이는 미래 사업이다. PV5를 시작으로 PV7, PV9까지 순차 출시해 2030년 23만대를 판다는 계획인데, 여기에 로봇 배송까지 연계한 라스트마일 딜리버리 솔루션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다. 구상 자체는 흥미롭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PBV 시장은 아직 형성 단계다. 지난해 첫 선을 보인 PV5가 연말까지 약 8,500대 팔렸다는 숫자는, 시장의 반응이 뜨겁다기보다는 조심스럽게 시작됐다는 인상에 가깝다. 올해 목표가 5만 4,000대인데, 이것만 해도 쉽지 않은 도전이다.
PBV가 진짜 사업이 되려면 플릿 고객들이 실제로 지갑을 열어야 한다. B2B 솔루션, 플릿 관리 시스템, 원 빌링 체계 등 기아가 내세우는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실제 운영 현장에서 얼마나 매끄럽게 돌아가는지가 관건이다. 하드웨어만 잘 만들어서는 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2027년 말 SDV 개발 완료, 2029년 초 레벨2++ 도심 자율주행 개시. 기아가 밝힌 자율주행 로드맵이다. 엔비디아와의 파트너십, 데이터 선순환 체계 구축까지 언급했다. 방향은 옳다. 자율주행의 경쟁 패러다임이 개별 기술에서 데이터의 규모로 이동하고 있다는 진단도 정확하다.
다만 레벨2++이라는 표현에서 잠깐 멈추게 된다. 업계에서 이 표현은 완전자율주행과 운전자 보조 사이 어딘가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데,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어디까지를 도심 자율주행으로 볼 것인가, 어느 조건에서 작동하는가. 이 부분이 구체화되지 않으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술 발표와 실제 경험 사이의 괴리를 느끼게 된다.
로보틱스는 더 먼 이야기다. 아틀라스를 2028년 HMGMA, 2029년 조지아 공장에 투입한다는 계획은 제조 현장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실질적인 수익으로 연결되기까지는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단계에서 로보틱스를 핵심 미래 사업으로 제시하는 것은 투자자들을 향한 비전 선언에 가깝다.
기아의 이번 전략을 정리하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를 양 축으로 친환경 브랜드로 자리잡고, PBV와 자율주행·로보틱스를 통해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진화하겠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허술한 구석은 없다. 오히려 지나치게 완성도 높은 그림이라 현실의 마찰을 어디서 만날지가 더 궁금해진다.
관세, 환율, 각국의 규제 변화, 중국 EV 브랜드의 급부상. 기아가 2조 4,000억원의 이익 감소 요인으로 미리 인식하고 있는 이 변수들은 숫자로 관리될 수 있는 리스크와 그렇지 않은 리스크가 섞여 있다. 49조원의 투자계획 역시, 그것이 적재적소에 흘러들어가는지가 성패를 가른다.
송호성 사장은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겠다"고 했다. 기아의 목표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청사진의 세련됨보다 실행의 속도와 밀도가 더 중요해 보인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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