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칸의 시대가 저물었다. 람보르기니를 상징하던 V10 자연흡기 엔진의 날카로운 비명도 이제는 과거의 기록으로 남게 됐다. 우라칸을 선택했던 이들은 수치상의 제원보다 고회전 영역에서 뿜어져 나오는 엔진의 질감과 소리에 매료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람보르기니 역시 이러한 팬덤의 기대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배기 규제라는 현실적인 장벽 앞에서 그들이 내놓은 카드는 4.0L V8 트윈터보 엔진과 세 개의 전기모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다. 합산 최고출력 920마력이라는 압도적인 수치의 테메라리오를 에버랜드 스피드웨이 서킷에서 체험했다.
코르사 모드를 선택하고 피트 레인을 벗어나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았다. 가장 먼저 체감되는 변화는 즉각적인 반응성이다. 터보 엔진 특유의 지연 현상을 상쇄하는 것은 변속기에 결합된 전기모터의 역할이 크다. 엔진이 채 힘을 쓰기 전 전기모터가 빈틈을 메우며 차체를 밀어낸다. 5,000rpm 부근까지는 다소 정제된 느낌을 주지만, 회전계 바늘이 7,000rpm을 통과하는 순간 테메라리오의 본색이 드러낸다. 흡기음이 굵어지며 레드존을 향해 거침없이 치닫는 기세는 이 차가 터보 엔진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V10의 사운드는 사라졌지만, 고회전 영역에서 뿜어내는 새로운 생동감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테메라리오의 제표상 수치 중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무게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탑재로 인해 동급 경쟁 모델들보다 200kg 이상 무겁고, 상위 모델인 레부엘토와 비교해도 차이가 크지 않다. 그러나 서킷의 코너를 파고드는 순간 이러한 우려는 상당 부분 해소된다. 전륜에 배치된 두 개의 모터가 독립적으로 구동력을 배분하는 토크 벡터링 기술 덕분이다. 굳이 과격한 하중 이동을 시도하지 않아도 차 앞머리는 날카롭게 궤적을 그리며 코너 안쪽을 파고든다. 특히 스포츠 모드에서는 후륜 구동 특유의 움직임을 허용하며 다루기 쉬운 오버스티어를 유도하는 여유도 갖췄다. 드리프트 모드 역시 차체 제어를 안정적으로 보조하며 운전자의 자신감을 북돋운다.
주행 중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스티어링 휠의 무게감이다. 조향 감각이 지나치게 가볍게 설정되어 있어 고속 구간이나 한계 주행 상황에서 노면 정보를 손끝으로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차에 대한 신뢰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조금 더 묵직하고 직관적인 피드백이 필요해 보인다. 반면 8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는 흠잡을 곳 없는 완성도를 자랑한다. 변속 타이밍은 정교하며 이전 세대에서 간혹 나타나던 거친 충격이나 동력 손실도 느껴지지 않는다. 일부 구간에서 전달되는 충격이 다소 투박하게 다가올 때도 있지만, 전체적인 변속 로직과 응답성은 이 차의 성능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의 짧은 조우만으로 테메라리오의 모든 면모를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일상적인 도로 환경에서의 승차감이나 장거리 주행 시의 특성은 향후 시승을 통해 심도 있게 다룰 예정이다. 그럼에도 이번 서킷 주행에서 확인한 것은 람보르기니가 테메라리오를 통해 진정한 드라이버즈 카를 구현하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V10 엔진의 상징성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겠지만, 고회전 엔진의 성격과 하이브리드 기술을 조화시킨 그들의 대답은 충분히 설득력을 갖췄다. 기술적 진보가 감성적 갈증을 어떻게 채워나갈 수 있는지, 테메라리오는 그 가능성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글, 영상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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