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의 제조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한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인접 국가로의 확장을 목적으로 한 전략적 선택이다. 미국과 유럽의 높은 관세 장벽을 피해 진입 문턱이 낮은 한국을 우회 기지로 삼으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고 수준 높은 안목을 가진 소비자들이 포진한 '글로벌 테스트베드'다. 여기서 거두는 성과는 곧 글로벌 시장에서의 품질 검증과 직결된다. 중국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 반응에 사활을 거는 배경이다. 그 공세의 최전선에 지리가 선보이는 프리미엄 브랜드, 지커(Zeekr)가 서 있다.
지커는 2021년 지리 홀딩 그룹이 런칭한 프리미엄 전동화 브랜드다. 이들의 정체성은 중국보다 유럽에 더 밀접하게 닿아 있다. 디자인 거점을 스웨덴 예테보리에 두었으며, 차량의 뼈대가 되는 SEA 플랫폼 역시 볼보, 폴스타와 공유한다.
벤틀리와 폭스바겐 그룹을 거친 수석 디자이너 슈테판 실라프(Stefan Sielaff)의 참여는 결정적이다. 지커가 내세우는 '유러피언 프리미엄'이라는 수식어가 마케팅 용어 이상의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2025년 상반기까지 전 세계 40개국에서 58만 대 이상을 인도하며 거둔 가파른 성장세는 이 전략의 실효성을 증명한다.
지커는 본격적인 국내 출시에 앞서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지커 브랜드 갤러리'를 열어 국내 소비자들의 선입견에 대해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차를 판매하는 공간인 동시에 지커가 지향하는 '럭셔리 테크놀로지'를 시각적으로 경험하게 하여 중국차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려는 의도다.
갤러리에 전시된 모델들은 지커의 기술적 완성도와 국내 시장에서 소비자의 반응을 미리 보기 위한 차량들로 채워졌다.
● 001 FR: 1,300마력에 달하는 고성능 기술력을 상징하는 하이퍼 슈팅브레이크다.
● 009 (그랜드 컬렉터스 에디션): 24K 순금 엠블럼과 43인치 대형 스크린을 갖춘 럭셔리 MPV의 정점을 지향한다.
● 믹스(Mix): 좌우로 열리는 더블 슬라이딩 도어와 270도 회전 시트 등 혁신적인 공간 활용이 돋보인다.
● 9X: 브랜드 최초의 슈퍼 하이브리드 기술이 탑재된 플래그십 SUV로 대형 체구와 압도적인 편의 사양을 갖췄다.
국내 시장에 첫 출시되는 모델은 중형 전기 SUV 지커 7X다. 한국 시장을 위해 2025년 10월 공개된 2026년형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즉시 투입하기로 했다. 한국을 글로벌 요충지로 삼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7X는 전장 4,825mm의 당당한 체구와 616리터의 트렁크 공간을 확보했다. AWD 모델 기준 최대 출력 795마력, 제로백 2.98초라는 슈퍼카급 퍼포먼스를 갖췄다. 900V 초고전압 플랫폼 기반의 10분 초급속 충전, 전 좌석 자동문, 냉온장고 등은 경쟁 모델인 제네시스 GV70이나 벤츠 EQE SUV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예상 가격대가 5,000만 원 후반에서 6,000만 원 초반으로 거론되는 점은 시장 파급력을 더욱 키울 요인이다.
직영 체계 대신 에이치모터스, 아이언모터스, KCC오토, 고진모터스 등 국내 유수의 럭셔리 딜러사들과 손을 잡았다. AS망의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챙겨 신생 브랜드에 대한 불안감을 조기에 해소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자율주행 사양 역시 국내 환경에 맞춰 라이다(LiDAR) 대신 레이더와 카메라 기반의 레벨 2 기능을 기본화하는 현실적인 노선을 택했다.
물론, 과제는 남아 있다. 볼보·폴스타와 결을 같이 한다 해도 '지커'라는 이름 자체의 생소함은 여전하다. 중국계 브랜드가 공통으로 직면한 데이터 보안 문제와 보조금 정책 변화 등도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브랜드 갤러리를 통해 지커는 준비된 브랜드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출시 전 소비자 궁금증에 직접 답하는 '지커보고있다' 시리즈와 같은 소통 노력은 고무적이다. 결국 브랜드 신뢰는 수치가 아닌 실제 오너가 경험하는 서비스의 온도와 부품 수급의 안정성에서 완성될 것이다. 7X가 남길 첫인상이 이후 도입될 009나 9X의 행보를 결정하게 된다. 기대와 관망이 교차하는 가운데, 지커의 한국 레이스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글, 영상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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