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말과 21세기 초, 중국이 지금과 같이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다만 미래 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패권은 시장을 따라 이동한다는 말로 세상의 변화를 예측했고 그의 말대로 되어가고 있다. 그는 기술은 시장을 이기지 못한다고 했다. 시장이 곧 기술이라는 말과 같다. 그렇다면 중국보다 인구가 더 많은, 다시 말해 더 큰 시장인 인도는 어떨까. 복잡한 인도 내의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인도에 대한 분석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최근 자동차산업의 발전이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알려진 팩트를 중심으로 인도 자동차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일본 업체들과 고급화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현대차그룹, 그리고 인도의 타타와 마힌드라 등의 상황을 간략히 정리해 본다.
글/채영석(글로벌오토뉴스 국장)
지금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자동차 시장으로 부상한 인도가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권력 지도를 재편하는 핵심 전략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인도자동차제조사협회(SIAM)에 따르면 2025 회계연도 인도의 신차 판매는 전년 대비 9% 증가한 572만 대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이미 판매 규모 면에서 독일과 일본 시장을 앞지른 수치다. 인구 증가와 중산층의 부상에 힘입어 향후 시장 규모는 더욱 팽창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데이터는 2030년까지 644만대로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역설적으로 극심한 빈부의 격차로 중대형차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상위 1%가 국가 전체 자신의 40%를, 상위 10%가 58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인도의 억만장자의 수는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이자 가장 불평등한 나라라는 두 얼굴을 가진 인도의 자동차 시장을 정리해 본다.
현재 인도 시장은 스즈키 등 일본 기업들이 압도적으로 점유하고 있다. 일본계 자동차의 점유율은 약 48%, 현대차그룹은 19% 전후다. 인도와 중국 간의 국경 분쟁 등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해 BYD 등 중국 제조사들이 보안 문제로 공장 설립을 거부당하는 사이, 스즈키와 토요타, 현대차그룹 등이 대대적인 시설 확충에 나서고 있다. 점유율 40%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스즈키는 현재 연간 260만 대인 생산 능력을 2030 회계연도까지 400만 대 규모로 확대할 방침이며, 토요타 역시 마하라슈트라주에 신규 공장을 건설하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인도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것은 거대한 내수 시장뿐만 아니라 중동과 아프리카 시장으로 향하는 전략적 수출 거점으로서의 가치 때문이다. 스즈키와 토요타의 생산 기지가 집중된 구자라트와 마하라슈트라주는 서해안 요충지로 낮은 인건비를 활용한 수출에 최적화된 입지를 갖추고 있다.
토요타는 최근 19억 달러럴 투자해 2030년까지 인도 내 생산용량을 100만대로 늘리기로 했다. 그렇게 되면 인도는 일본의 310만대, 중국의 220만대, 미국 150만대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생산 공장이 된다. 혼다는 인도에서 생산한 전기차를 일본으로 역수출하는 전략을 세웠으며, 닛산은 7인승 소형차 등 현지 맞춤형 라인업을 통해 시장 점유율 확대를 꾀하고 있다.
강화되는 환경 규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도 중요하다. 인도 정부는 2027년부터 새로운 기업 평균 연비 규제(CAFE)를 시행할 예정인데, 이는 하이브리드 기술에서 우위를 점한 토요타와 스즈키에 비즈니스 기회를 넓혀줄 것으로 보인다. 인도 정부가 전체 판매량의 30%를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여전히 미비한 충전 인프라로 인해 현실적으로는 하이브리드 차량이 전동화의 실질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인도 진출 30년 만에 누계 판매 1,100만 대를 돌파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수익성이 높은 SUV 모델 중심의 현지 최적화 전략이 적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차의 인도판 국민차로 불리는 크레타와 기아의 셀토스 등 SUV 라인업은 현지 판매 비중의 약 70%를 차지하며 시장 점유율 2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현대차그룹은 인도를 단순한 판매 거점을 넘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전초기지로 육성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지난해 인도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한 현대차 인도 법인은 이를 통해 확보한 막대한 자금을 현지 생산 설비 확충에 집중 투입하고 있다.
특히 GM으로부터 인수한 탈레가온 공장의 현대화 작업을 통해 생산 능력을 대폭 끌어올려, 2028년까지 기아를 포함해 연간 150만 대 이상의 통합 생산 체제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생산된 차량은 인도 내수 시장은 물론 중동과 아프리카 등 신흥 시장으로 수출되는 핵심 물량이 될 전망이다.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동화 전환 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총 5종 이상의 전기차 모델을 인도 시장에 순차적으로 투입할 계획이다. 2025년부터는 현지 공장에서 직접 생산한 전기 SUV를 선보이며 본격적인 전동화 대중화 시대를 열 예정이다. 아울러 타밀나두주에 배터리팩 조립 공장을 신설하고 인도 전역의 주요 거점에 고속 충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하드웨어 생산부터 인프라 조성까지 아우르는 포괄적인 전기차 생태계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이 같은 행보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진 중국 시장의 대안으로서 인도의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일본 스즈키가 소형차를 무기로 독점해온 인도 시장에서 현대차와 기아가 고부가가치 SUV와 첨단 전기차 기술을 앞세워 시장의 판도를 프리미엄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
인도 정부의 제조 장려 정책인 메이든 인 인디아와 맞물려 현대차그룹의 현지화 노력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지 기술 연구소를 통한 인도 전용 모델 개발과 부품 현지화율 제고는 관세 장벽을 극복하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급변하는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권력 이동 속에서 인도를 제2의 본진으로 삼은 현대차그룹이 향후 일본 기업들과의 주도권 경쟁에서 어떤 성과를 거둘지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타타 그룹과 마힌드라 등 인도 현지 브랜드들의 성장세는 기존 강자들에게 위협 요소다. 이들은 중산층의 SUV 선호 현상을 빠르게 파악해 신모델을 대거 출시하며 스즈키 등 외산 브랜드의 점유율을 잠식하고 있다.
타타자동차와 마힌드라 등 인도 로컬 브랜드들도 무서운 기세로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인도 중산층의 가치 소비 성향과 SUV 선호 현상이 맞물리면서 두 회사의 합산 점유율은 30% 선을 돌파했다. 이는 소형차 위주의 마루티 스즈키 점유율을 잠식하는 동시에, 현대차와 기아가 주도해온 SUV 시장을 정조준하며 시장의 판도를 자국 기업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타타자동차는 현재 인도 승용차 시장에서 약 14~15%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현대차와 치열한 2위 다툼을 벌이고 있다. 타타는 안전과 전동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과거 저가형 이미지에서 벗어나 주요 모델이 글로벌 충돌 테스트에서 최고 등급을 획득하며 신뢰도를 끌어 올리고 있다. 특히 배터리 전기차 시장에서는 70% 이상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하며 독주 체제를 굳혔다. 정부의 적극적인 보조금 혜택과 맞물린 타타의 공격적인 전기차 라인업 확대는 외산 브랜드들이 아직 주춤한 틈을 타 미래 시장 주도권을 선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힌드라 & 마힌드라는 정통 SUV 강자로서의 면모를 발휘하며 약 11~12%의 점유율로 4위에 랭크되어 있다. 일부 모델들은 대기 기간이 1년에 달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마힌드라는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려는 인도 중산층의 욕구에 대응해 고급 편의 사양과 강인한 디자인을 강조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최근에는 폭스바겐과의 협력을 통해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도입하는 등 전동화 전환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들 로컬 브랜드의 약진은 탄탄한 내수 기반의 애국 마케팅과 더불어 인도 정부의 메이드 인 인디아 정책의 최대 수혜를 입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인도 정부가 수입 부품에 대한 관세를 높이고 현지 생산 비중이 높은 기업에 인센티브를 집중하면서, 부품 국산화율이 높은 타타와 마힌드라는 가격 경쟁력 면에서 외산차보다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또한 인도 특유의 험한 도로 환경에 최적화된 서스펜션 세팅과 정비 용이성은 현지 소비자들에게 강력한 소구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타타와 마힌드라의 성장이 더 이상 저가 공세만에만 머물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디자인과 IT 기술력에서도 현대차나 토요타와 대등한 수준에 올라섰으며, 특히 전기차 분야에서는 오히려 외산차를 앞서 나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본과 한국 브랜드가 점유율 수성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가운데, 자국 시장의 특수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로컬 브랜드들의 반격이 거세지면서 인도 자동차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고 있다.
인도는 불투명한 법 제도 운영과 인프라 부족이 여전히 큰 리스크다. 수입차에 최대 10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는 보호무역주의 정책 속에서 현지화 성공 여부가 미래 경쟁력을 가를 결정적 변수가 될 전망이다.
중국에 이어 인도도 같은 정도로 성장할지는 아직은 단언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시장이 곧 기술이라는 것을 인도에서도 입증해 낼지가 관건이다. 산업 구조가 서비스업 중심이라는 점이 약점이다. 그럼에도 중국시장에서의 입지 약화 상쇄를 위해 자동차회사들이 인도시장에의 투자를 늘리고 있다. 다만 현지 로컬 브랜드의 SUV 공세와 급변하는 규제 환경 속에서 단순한 생산 거점 확보를 넘어 인도 소비자들의 변화하는 취향을 얼마나 정교하게 공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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