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을 쥔 국내 업계가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는 해외 경쟁사에 크게 뒤처지며 격차가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 장홍창 기술정책실 책임의 산업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차량용 반도체 중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타 수요처 대비 아직 낮은 수준이나 전장화와 ADAS 보급 확산, 자율주행 및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도입이 본격화되면서 그 중요성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차량용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25년 73.9억 달러에서 2030년 125.0억 달러로 성장해 로직 반도체 다음으로 높은 연평균 11.1%의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과거 인포테인먼트 중심이던 탑재 용량은 자율주행 레벨4 기반 로보택시 도입 등으로 일반 차량의 20~30배 수준인 200GB 이상으로 급증하고 있으며, 차량 평균 메모리 탑재량은 2024년 90GB에서 2030년 4TB까지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AI 서버 집중으로 인한 공급난과 마이크론의 독주 체제
최근 인공지능(AI)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메모리 업계가 수익성이 높은 AI 데이터센터용 제품을 우선 공급함에 따라 차량용 메모리의 가격 상승과 공급 부족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차량용 DRAM은 재고 소진 시 공급부족 발생 가능성이 예고됐으며, 분기별 가격 전망치 역시 DRAM과 낸드플래시 모두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며 자동차 산업이 칩플레이션 위험에 노출된 상태다.
국내 기업은 전체 DRAM 시장의 65.8%, 낸드플래시의 51.3%를 점유하며 세계 시장을 이끌고 있지만, 차량용 메모리 부문 점유율은 19.8%에 불과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반면 미국 마이크론은 차량용 메모리 시장의 과반인 51.7%를 독점하며 국내 업계와의 격차를 벌렸다. 마이크론은 1990년대 초 자동차 시장에 조기 진입해 장기 공급 프로그램을 구축했으며, 미국의 칩스법(Chips Act) 등 정부 보조금과 세액공제 혜택을 바탕으로 선제적 투자를 단행해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확보했다.

글로벌 SoC 기업 연계 및 미래 하강기 대비 체질 개선 요구
마이크론의 독주 비결은 기술 인증 선점과 글로벌 생태계 협력에 있다. 마이크론은 차량용 반도체 신뢰성 국제 인증(AEC-Q100) 및 기능 안전 최고 등급(ISO26262 ASIL-D)을 국내 기업보다 수년 앞서 획득했다. 특히 차량용 SoC 시장의 약 30%를 점유한 최대 공급 기업 퀄컴을 비롯해 엔비디아의 드라이브 AGX 등에 자사 제품을 기본 사양으로 통합시키는 락인(Lock-In) 효과를 거두었다. 아울러 BMW, 컨티넨탈 등 완성차 및 부품사와의 초기 설계 단계 협력도 성장의 발판이 됐다.
전문가들은 메모리 기업의 교섭력이 높은 현재의 시점을 활용해 국내 업계가 차량용 시장 진입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차량용 메모리는 가전이나 모바일 대비 단가가 높고 장기 공급 계약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향후 메모리 산업의 하강기(다운사이클) 도래 시 실적을 지탱할 안정적인 수익원이 될 수 있다. 고성능 중심의 범용 개발 방식에서 탈피해 차량용·산업용에 특화된 고신뢰성 기술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글로벌 SoC 기업 및 최근 자체 반도체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는 중국 전기차 OEM 등과의 장기적인 생태계 협력 체계 구축이 시급한 시점이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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