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와 유럽연합이 멕시코시티에서 정상회의를 열고 농산물과 식품을 포함한 사실상 전 품목의 관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안에 서명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예측 불가능한 고율 관세 폭탄과 보호무역주의 기조에 맞서 양측이 대미 의존도를 대폭 낮추고 통상 축을 다변화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양측 정상들은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협정의 의의를 적극 강조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이번 협정이 세계의 모범이 될 수 있으며 무역 확대를 통해 양 지역에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역시 관세 철폐가 제약, 농업, 기술 개발, 전기차 분야에서 거대한 기회를 열어줄 것이라며 이를 진정한 지정학적 선언이라고 규정했다.
지난 2000년 발효된 기존 무역 협정은 공산품과 자동차, 기계류 중심의 관세 철폐에 머물렀으나, 지난 25년간 양측의 상품 교역액은 900억 유로 규모로 성장했다. 모든 회원국의 비준을 거쳐 발효될 이번 신현대화 글로벌 협정 및 임시 무역 협정은 그동안 민감 품목으로 분류돼 보호받던 농산물과 축산물, 식품 분야까지 개방 범위를 대폭 넓혔다. 이에 따라 EU산 치즈와 돼지고기에 부과되던 최대 45%의 관세와 가금류 제품에 적용되던 최대 100%의 관세가 협정 발효 후 7~10년 이내에 전면 폐지된다.
멕시코 역시 EU 시장으로의 수출 가속화를 기대하고 있다. 멕시코산 육류, 베리류, 아보카도에 대한 관세가 즉각 철폐되며 테킬라와 메스칼 등 멕시코 전통 증류주의 원산지를 증명하는 지리적 표시(GI)에 대한 법적 보호가 한층 강화된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조치로 역풍을 맞았던 멕시코 현지 제조업체와 원산지 생산자들에게 가시적인 돌파구가 될 전망이다.
현재 멕시코는 자동차 수출의 약 80%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어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의 재검토 및 갱신 협상 결과에 따라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한 구조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을 전방위로 받고 있는 EU 역시 에너지 분야 등에서 미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진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대체하기 위해 도입한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비중은 2021년 30% 미만에서 2025년 60% 안팎까지 치솟았으며 향후 지속적인 상승이 예견돼 다변화가 시급한 실정이다.
미국 무역대표부가 USMCA를 현 상태 그대로 갱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함에 따라 오는 27일부터 시작될 멕시코와 미국의 양자 협상은 난관이 예상된다.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관세 철폐를 강하게 압박해 온 멕시코 정부도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하고 기조를 수정했다.
멕시코 경제부 장관은 관세율을 제로로 만드는 최선의 선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피력하며 협상 이후에도 일부 관세가 유지될 가능성을 시인했다. 한편 이번 멕시코와 EU의 협정문에는 관세 인하 외에도 통관 절차 간소화, 독립적인 투자재판소 설립, 조직범죄 대응을 위한 치안 협력 방침 등이 대거 포함돼 글로벌 다자주의와 국제법 존중 기조를 명확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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