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바뀌었다. 그러나 기득권은 놓고 싶지 않다. 하지만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궁금하다.
최근 유럽 프리미엄 및 럭셔리 브랜드의 최상위 순수 전기차 모델 두 개가 공개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디자인이 구설수에 올랐다. 바로 메르세데스 최강의 순수 전기차인 AMG GT 4도어 쿠페, 그리고 페라리 최초의 순수 전기차인 루체 이야기다.
물론 두 모델 모두 성능과 테크놀로지에 관한 한 브랜드 이름에 걸맞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최강 - 하이테크 모델이다. AMG GT 4도어 쿠페는 F1 테크놀로지가 투입된 초경량 고성능 액시얼 플럭스 전기 모터가 만드는 1169마력의 최고 출력, 직접 냉각식 배터리 팩과 600kW 초급속 충전 등 갖추었고, 페라리 루체 역시 1050마력 쿼드 모터 구성과 122kWh 배터리 팩을 기본으로 무려 60개 이상의 신기술 특허가 적용되었다.
전동 구동계가 비록 최상위 스펙이기는 하지만 유럽차들은 이미 중국이나 우리 나라와 같은 후발 주자들에게 기선을 빼앗긴 것은 기지의 사실. 따라서 유럽 럭셔리 시장의 메르세데스 AMG와 페라리는 자신들의 강점인 바디와 새시 기술, 즉 조종 성능에 상당히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이것은 자신의 강점을 경쟁의 규칙으로 만들려는 옳은 전략 방향이다. 액티브 서스펜션과 트라이 혹은 쿼드 모터를 이용한 토크 벡터링, 4륜 조향 시스템 등 능동 조종 기능이 풀 패키지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차체 강성과 무게 중심을 위한 차체 구조가 그렇다.
기술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메르세데스 AMG GT 4도어 쿠페가 ‘드디어 낮은 전기차’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이 모델은 내연 기관을 사용하는 AMG GT 4도어보다 오히려 3.2cm가 낮다. 셀-투-새시 구성과 운전석과 뒷좌석 바닥에 배터리 셀을 배치하지 않는 방법도 시트 포지션을 낮추는 방법이었지만 공간을 덜 차지하는 액시얼 플럭스 모터가 전동 구동계의 부피를 줄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낮은 차체 높이를 실현했다는 것은 고성능 전기차와 전기 세단의 미래에 매우 중요한 진일보다.
이에 비하여 페라리 루체는 60여개의 신기술 특허가 투입되었다고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 적용된 부분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F80에서 구현된 48V 액티브 서스펜션과 페라리 고유의 드리프트 제어 기능 등을 전기차에서도 구현한다는 것이 페라리의 영혼을 전기차 시대에 재해석해서 구현한다는 것으로 보여진다. 쉬프트 패들을 왼쪽은 회생 제동량 조절, 오른쪽은 토크량 조절로 사용하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제시했지만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과의 조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아직 궁금한 부분이 남아 있다.
자, 좋은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두 모델의 가장 큰 문제는 디자인이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말이 있지만 위의 두 모델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형태는 심리를 표현한다’고 말하고 싶다.
최근 메르세데스 벤츠 디자인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것은 ‘자존감 부족의 발현’이었다. 본네트 위의 세 꼭지 별 하나만으로 당당했던 메르세데스 벤츠가 수백개의 세 꼭지 별을 차 안팎에 박아넣어야 할 정도로 자존감이 무너졌는가 하는 한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AMG GT 4도어 쿠페는 더욱 실망스럽다. 고성능 모델이지만 동시에 4도어 세단 시장을 담당하는 모델의 외관이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고성능의 강렬함도 있어야 하겠지만 고급 세단의 중후함도 함께 갖추어야 하는 시장인데 좀처럼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존재감을 느낄 수가 없다. 안타깝다.
페라리 루체의 경우는 ‘달라져야 한다’라는 것에 너무 치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성능과 기술을 제외한 차량의 컨셉에 집중한다면 솔직히 ‘굳이 루체를 선택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페라리의 DNA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2월에 인테리어 디자인 요소들이 공개되었을 때 ‘레고인가?’라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완전히 공개된 디자인에서도 페라리의 강렬함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페라리의 디자인은 스포츠 모델이든 GT 모델이든, 그리고 어떤 색상으로 마감되었든 ‘프랜싱 호스’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강렬함이 녹아 있는데, 루체에게서는 따뜻함과 여유로움 등 패밀리 카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먼저 다가온다. 루체와 컨셉이 가장 가까운 프로산게도 코치 도어 하나만 비슷할 뿐 실내외 디자인에서 역동성이 느껴진다. 그러나 루체는 전후대칭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의 차체의 실루엣에서도, 역동적 곡선은 배제된 채 사각형과 수평선, 원 등 안정적 균형감으로 디자인 요소를 가득 채운 인테리어 디자인에서도 페라리의 역동성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분위기라면 B 필라를 삭제해서 실내 공간감을 극대화하는 것이 더 좋았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그리고 페라리 루체는 메르세데스 AMG GT 4도어 쿠페보다 부족한 점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전기차의 숙명인 높은 차체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비록 페라리 최초의 크로스오버 모델인 프로산게보다는 4.5cm가량 낮지만 1544mm는 오늘 함께 거론한 AMG GT 4도어 쿠페보다는 무려 13.4cm나 높다. 비록 5미터가 넘는 차체 길이 덕분에 길이와 높이의 비율에서 약간 상쇄되는 면이 있지만 전혀 스포티하다고 느낄 수 있는 프로포션은 아니다.
자, 첫 질문으로 되돌아가 보자. 지금까지 자동차 시장을 이끌어왔던 레거시 브랜드들, 특히 독일 프리미엄 3사와 페라리 – 포르쉐 등 유럽 자동차의 이미지를 이끌었던 브랜드들은 지금까지의 시장 지배력, 즉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을 것이다. 앞선 출발점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유리한 구도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동화 중심의 미래 모빌리티 시대의 주도권을 선점하는 데에는 이미 실패했다. PHEV와 BEV의 출발이 늦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친환경 테마의 선점에는 성공했었지만, 취약한 전동화 부품 공급망과 러우 전쟁에 의한 에너지 위기 때문에 기회를 잃어버린 것.
게다가 대중 전기차 시장은 중국차들의 본격적 유럽 공략이 이미 현실이 되었고, 중국 내수 시장에서 강세였던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중국 토착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는 중국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이번 베이징 모터쇼는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유럽 자동차 산업에게 남은 유일한 미래차 시장은 자신들이 강점을 갖고 있는 프리미엄 이상의 시장 뿐이다. 그 가운데 중점 시장은 서유럽, 그리고 유럽 고급차 시장 점유율이 그래도 살아있는 우리나라 수입차 시장 정도.
그런데 마음이 급하다는 것이 느껴진다는 점이 문제다.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아직도 가진 우위가 많은데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기술적으로는 고전적 영역인 조종 성능과 감성 품질, 그리고 브랜드 파워에서도 여전히 강점을 갖고 있다. 이번 두 하이엔드 고성능 전기차 모델을 바라볼 때 조종 성능과 차체 구성 등에는 여전히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디자인은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다운 감성 품질과 아이덴티티를 갖지 못했다. 자신들의 강점을 강화하는 대신 미래 시장에 대응하기 위하여 달라져야 한다는 데에만 집착한 듯한 조급함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기존의 강점을 활용할 수 있는 시간도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게임에서 이기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내가 잘하는 것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룰 세팅’이다.
그런데 이번 두 모델은 그 점에서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글 / 나윤석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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