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는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변하는 해안선을 가진 곳이다. 바다 쪽으로 뻗은 고층 빌딩 숲, 관광과 비즈니스가 뒤섞인 거리. 이곳 해운대에서 롤스로이스 모터카가 지난 5월 26일 부산 쇼룸을 새롭게 단장해 문을 열었다.
새롭게 단장한 부산 쇼룸은 건물 2층에 자리한다. 넓은 통창을 통해 자연광이 가득 쏟아지는 공간은 기존보다 157.79㎡ 넓어진 총 517.79㎡ 규모를 자랑한다. 출입구 정문은 롤스로이스의 상징인 판테온 그릴에서 영감을 받았고, 그 상단에 놓인 ‘환희의 여신상(Spirit of Ecstasy)’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전시장 안쪽, 다채로운 외장 색상 팔레트와 가죽·우드·자수용 실이 정교하게 진열된 공간이 바로 '아틀리에(Atelier)'다. 고객이 직접 소재를 만지고 색을 고르며 자신만의 자동차를 그려보는 핵심 공간이다. 그 옆에 마련된 '스피크이지 바'의 창밖으로는 해운대의 푸른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번 부산 쇼룸 리뉴얼을 통해 국내 모든 롤스로이스 전시장에는 브랜드의 최신 비주얼 아이덴티티 도입이 완료됐다.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자, 다음 챕터를 향한 도약이기도 하다.
한국은 롤스로이스가 지난 2019년 세계 최초의 부티크 형태 쇼룸을 서울 청담동에 선보인 나라다. 또한 2022년 연간 234대를 판매하며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한 시장이기도 하다. 당시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고스트가 가장 많이 팔린 시장이었고, 플래그십인 팬텀 판매량 역시 최상위권을 기록했다. 토스텐 뮐러-오트보쉬 전 롤스로이스 CEO는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이 아태 지역에서 가장 큰 시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이에 부응하듯 롤스로이스는 지난 2025년 초, 아태 지역 최초의 '프라이빗 오피스'를 서울 잠실 시그니엘 호텔 내에 오픈했다. 석촌호수가 내려다보이는 한옥 모티프의 독창적인 공간이다.
최근의 성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4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025 아태 지역 딜러 어워드’에서 롤스로이스모터카 서울은 '베스트 360 고스트 딜러' 부문을 수상했다. 비스포크(Bespoke) 운영 역량, 고객 접점 관리, 브랜드 경험 전반을 종합적으로 평가받은 결과다.
수치와 수상 이력만 놓고 보면 한국은 롤스로이스에게 이미 전략적 핵심 기지다. 그러나 2026년 현재, 국내 월별 판매 지표는 다소 상반된 흐름을 보인다. 현재 월 판매량은 10~15대 수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법인차 연두색 번호판 제도 시행에 따른 수요 재편이 여전히 진행 중이며, 글로벌 럭셔리카 시장 전반의 경기 조정 국면도 맞물려 있다.
이 시점에서 롤스로이스가 한국 시장에서 직면한 과제는 양적 성장 대신 '경험의 깊이'라는 질적 성장을 통해 시장 기반을 다져야 한다는 점이다. 비스포크 문화가 온전히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쇼룸이 고객의 감각을 자극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해운대 아틀리에와 청담 프라이빗 오피스가 바로 그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번 부산 쇼룸 리뉴얼 역시 동일한 전략적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시승은 해운대 일대에서 시작됐다. 모델은 고스트 익스텐디드(Ghost Extended). 전장 5,720mm, 휠베이스 3,295mm에 달하는 거구다. 표준 모델보다 170mm 늘어난 휠베이스가 뒷좌석 공간에 선사하는 여유는 수치적 차이를 넘어 대단히 물리적이고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변속기를 D 레인지에 두고 천천히 미끄러져 나가는 순간부터 도로의 거친 정보들은 차단된다. 전방 카메라로 노면을 미리 스캔해 서스펜션 감쇄력을 선제적으로 조절하는 ‘플레이너 서스펜션 시스템(Planar Suspension System)’ 덕분이다. 울퉁불퉁한 해운대 이면도로의 요철과 이음새는 어느샌가 흔적도 없이 지나쳐 있다. '느끼지 못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창밖의 도시 풍경은 빠르게 흐르는데, 차 안은 고요하게 정지해 있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다.
보닛 아래 자리한 6.75L V12 트윈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563마력, 최대토크 900Nm의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특히 1,600rpm이라는 극저회전 영역부터 최대토크를 뿜어낸다. 가속은 운전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매끄럽게 전개된다. 차가 치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질량이 등 뒤에서 부드럽게 밀어내는 형상이다.
실내 공간의 변화는 더욱 극적이다. 대나무 추출 레이온 원단으로 제작된 ‘듀얼리티 트윌(Duality Twill)’, 자연스러운 질감을 살린 오픈 포어 마감의 우드 패널, 그리고 1,400W 출력의 18-스피커 오디오 시스템이 귀와 손끝을 사로잡는다. 특히 익스텐디드의 뒷좌석은 완전히 독립된 여정을 보장한다. 늘어난 170mm의 레그룸과 두 개의 스트리밍 기기를 독립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뒷좌석 전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마련되어 있다. 이 차는 오너 드라이브와 쇼퍼 드리븐의 경계, 즉 팬텀의 격식과 드라이버의 역동성 사이를 가장 정교하게 메우는 모델이다.
이어 스펙터(Spectre)에 올랐다. 롤스로이스의 순수 전기 쿠페다. '전기차'와 '롤스로이스'라는 두 단어에 아무런 거부감도 느낄 수 없었던 지난 출시 당시의 시승이 떠오른다. 롤스로이스의 공동 창업자 찰스 롤스는 1900년 일찍이 "전기 자동차는 완벽하게 조용하고 깨끗하다. 냄새도, 진동도 없다"며 전동화의 미래를 예견했다. 또 다른 창립자인 헨리 로이스 역시 발전기와 전기 모터를 직접 제작했던 전기공학자였다. 스펙터는 그들의 선구안이 한 세기를 지나 비로소 양산차로 구현된 결과물이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엔진음이 사라진 자리에 한층 더 농밀해진 정숙성이 들어앉는다. 과거 V12 엔진의 미세한 진동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롤스로이스 역사상 가장 낮은 공기저항계수인 0.25Cd를 달성한 덕분에, 고속 주행 시 발생하는 풍절음마저 아주 먼 곳의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다. 최고출력 577마력,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4.7초 만에 도달하는 성능은 3톤에 육박하는 차체를 가볍게 이끈다. 고스트의 V12 엔진과 마찬가지로 가속의 과정은 지극히 점진적이고 우아하다. 소음이 없기에 속도감은 더욱 현실을 초월한다.
스펙터 구매 고객의 글로벌 평균 연령은 35세로, 기존 롤스로이스 오너 평균보다 7세가량 젊다. 브랜드를 처음 접하는 젊은 세대가 내연기관이 아닌 전기차를 통해 롤스로이스의 세계관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고스트와 스펙터를 같은 날 번갈아 시승하며 두 모델이 공유하는 본질적인 가치를 재확인했다. 바로 ‘고요함(Silence)’이다. V12 내연기관은 기계적 진동을 극단적으로 억누름으로써 고요함을 쟁취했고, 전기 모터는 진동의 원천을 제거함으로써 이에 도달했다. 결과적 지향점은 같으나 이를 달성하는 방법론이 다르다. 롤스로이스가 현재 내연기관과 전동화라는 두 가지 파워트레인을 동시에 운영하는 것은, 전동화 시대로의 전환 속도에 쫓기지 않고 브랜드의 완성도를 최우선으로 두겠다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롤스로이스는 2030년대 초까지 전 라인업의 완전 전동화를 공식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영국 굿우드 본사에는 3억 파운드(약 5천억 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가 진행 중이며, 확장 중인 제조 시설 역시 전기차 생산 체제에 최적화된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스펙터의 뒤를 이을 두 번째 순수 전기 모델 개발도 이미 예고된 상태다.
이 거대한 전환기 속에서 한국 시장이 수행해야 할 역할은 비스포크 문화의 정착을 속에 정교한 브랜드 접근법을 필요로 한다. 고객이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자신의 취향을 투영해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크리에이터’가 되는 경험. 해운대 아틀리에의 가죽 샘플들과 청담 프라이빗 오피스의 심층 상담이 그 여정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고유한 브랜드 문화의 정착으로 이어질 때, 한국은 비로소 롤스로이스의 대체 불가능한 전략 시장으로 확고히 자리 잡을 것이다.
해운대 쇼룸의 스피크이지 바 창밖으로 저물어가는 바다가 보였다. 롤스로이스는 목적지에 빠르게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을 어떻게 감각하고 경험하느냐에 대한 자동차다. 전통과 혁신, V12 엔진과 배터리, 부산과 서울.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단어들이 지금 이 럭셔리 브랜드 안에서 융합되고 있다. 가장 조용하고,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글, 영상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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