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동차 업계는 디자인 파격과 그에 따른 팬들의 반발로 몸살을 앓았다. 페라리 루체(Luce)의 디자인 논란, 메르세데스-AMG GT 4도어 쿠페의 헤리티지 우려, 그리고 재규어 타입 00(Type 00)의 정체성 상실에 이르기까지, 아이코닉한 브랜드들이 고유의 디자인 헤리티지를 훼손할 때마다 충성 고객들은 이를 '브랜드의 배신'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시장 분위기 속에서 BMW 그룹이 2022년 알피나(Alpina)을 인수한 지 4년 만에 선보인 '비전 BMW 알피나(Vision BMW Alpina)' 콘셉트는 오랜 비머(Bimmer) 팬들에게 안도감과 깊은 인상을 동시에 선사했다. 이탈리아 코모 호수에서 열린 '빌라 데스테 콘코르소 델레간차(Villa d’Este Concorso d’Eleganza)'에서 베일을 벗은 이 원오프 모델은 샤크 노즈, 키드니 그릴, 호프마이스터 킨크(Hofmeister kink), 그리고 롱노즈 숏데크의 역동적인 비율 등 롤스로이스만큼이나 엄격한 BMW의 전통적 시그니처를 과장 없이 담백하고 정제된 디자인으로 구현해냈다.
올리버 필레히너(Oliver Viellechner) BMW 알피나 CEO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전 세계 초고액 자산가(UHNWI)가 매년 9%씩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들의 소비 성향이 과거의 과시형 럭셔리에서 벗어나 더 은밀하고 절제된 경험 중심 소비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BMW 그룹 내에서 알피나의 위치는 확고하다. 대당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초고가 친환경 하이퍼카들과 달리, 10만 달러 이상의 BMW 7시리즈와 37만 달러부터 시작하는 롤스로이스 고스트(Ghost) 사이에는 뚜렷한 공백이 존재한다. 알피나은 이 틈새에서 벤틀리, 메르세데스-마이바흐와 직접 경쟁할 수 있는 독자적인 프리미엄 영역을 구축하게 된다. 아드리안 반 호이동크(Adrian van Hooydonk) BMW 그룹 디자인 총괄은 미니와 롤스로이스를 인수했던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알피나 고객들과의 수많은 만남을 통해 브랜드의 역사적 요소를 정밀하게 다듬어왔다고 설명했다.
알피나는 철저하게 '자동차 애호가와 고속 주행을 즐기지만, 트랙용 레이스카처럼 과격한 외관을 원치 않는 신사'들을 타깃으로 삼는다. 서킷의 한계를 쥐어짜는 감각이 BMW M의 영역이라면, 알피나은 철저히 최고 수준의 안락함과 품위, 그리고 자신감에 뿌리를 둔다.
이를 대변하는 핵심 키워드가 바로 '스피드, 노 스포츠(Speed, not sport)'다. 시속 300km(186mph)라는 최고속도 상징성은 유지하되, 장거리를 가장 빠르고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는 GT(그랜드 투어러) 성향의 서스펜션과 전용 파워트레인 셋업을 엔지니어들이 조율하고 있다. 맥시밀리언 미소니(Maximilian Missoni) 디자인 부사장은 "알피나만의 독특한 거동과 캐릭터를 기대해도 좋다"며 완전히 차별화된 주행 질감을 예고했다.
이번 비전 콘셉트는 비록 단종을 앞둔 8시리즈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되었고 보닛 아래에 트윈 터보 V8 엔진을 품고 있지만, 실제 알피나의 미래가 내연기관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미소니 부사장은 소비자가 기존 BMW의 풍부한 파워트레인 포트폴리오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 덧붙였다.
알피나의 첫 양산형 모델은 오는 2027년, 라인업의 최상단인 7시리즈 플래그십 세단을 기반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반 호이동크 총괄은 양산형 모델의 외관 변화는 콘셉트카보다 훨씬 절제되고 미묘한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대신 실내 인테리어의 컬러, 가죽 소재, 가공 방식 등 개인화 비스포크 옵션의 범위를 무제한에 가깝게 넓혀 초부유층의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을 계획이다. 시장에 물량을 쏟아내지 않는 철저한 소량 생산 기조 역시 알피나의 독점적 가치를 유지하는 핵심 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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