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햇빛이었다.
그 빛에 홀린 이야기다.
날씨가 다한 여행
나는 니스에 머무르는 일주일 내내 니스의 날씨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와, 날씨 진짜 좋다. 오늘 날씨 진짜 좋은데? 날씨 미쳤다. 밥은 테라스에서 먹자, 날씨 좋잖아. 오늘은 날씨가 다했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하루에도 몇 번이고 툭툭, 날씨에 대해 감탄을 내뱉었다. 구름이 없으면 없는 대로 맑고 깨끗한 하늘이 좋고, 몽실몽실한 구름이 있으면 그 또한 있는 대로 좋다고 떠들었다. 한 번쯤은 꼭 이곳에서 살아 보고 싶다는 작은 욕심도, 그게 아니면 언젠가 한 번쯤 다시 찾고 싶다는 소망도, 공원에서 페탕크(Pétanque)*를 즐기는 중년들은 어쩐지 마음에도 여유가 넘쳐 보인다는 추측도, 사진첩에 가득한 바다 사진도, 모두 날씨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나는 니스에서 내내 ‘날씨뽕’에 취해 있었던 게 분명했다.
니스에 내리쬐는 햇빛은 확실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그냥 느낌만은 아니었다. 니스의 햇빛은 과학적으로도 달랐다. 니스의 지중해성 기후는 연간 300일 이상의 맑은 날을 만들어 내고, 건조하고 투명한 공기는 햇빛을 산란시키지 않고 그대로 통과시킨다. 거기에 지중해라는 거대한 거울이 더해진다. 위에서 내리쬐는 빛과 바다에서 반사하는 빛이 왕성한 시너지를 냈다. 게다가 니스의 바다는 위도상 태양을 하루 종일 정면으로 받는데, 고도가 높은 태양 빛이 해수면을 아주 날카롭고 강렬하게 때리고, 이 빛이 수면에 반사되어 더 자극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니스의 바다 위에 부서지는 윤슬이 유독 다른 바다의 것보다 눈부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토록 반짝이는 니스의 빛을 사랑한 예술가들도 니스를 떠날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생을 마감할 때까지 니스에서 시간을 보낸 앙리 마티스의 고백은 그가 니스의 빛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증거다. “내가 매일 아침 이 빛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내 행운을 믿을 수 없었다.” 니스의 온화한 날씨는 그를 이처럼 화사하고 은은하게 감쌌고, 우아한 화풍으로 이끌었다. 마티스뿐만이 아니었다. 니스를 포함한 코트다쥐르의 풍경과 빛에 매료된 피카소, 샤갈, 르누아르, 장 콕토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 정착해 생의 일부를 불태웠다. 저마다의 이유로 이곳에 왔지만, 떠나지 못했던 이유는 결국 그놈의 날씨 때문이었다.
니스는 오래전부터 유럽 부호들의 겨울 아지트이기도 했다. 18세기부터 영국 귀족들이 지중해의 온화한 기후를 찾아 이곳으로 내려왔는데, 오늘날에도 다르지 않다. 프랑스 재력가라면 이곳에 세컨드 하우스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에 나는 몹시 수긍했다. 건조하고 쾌적한 여름, 겨울에도 옷을 훌러덩 벗고 해변에 누울 수 있는 빛이 있는 곳이라면, 빚을 내더라도 가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까. 올여름 꽤 긴 장마가 올 거라는 청천벽력 같은 예보를 접한 서울에서 나는, 시무룩해진 마음에 요즘 종종 니스를 꺼내어 보는 걸로 마음을 달래 본다. 니스의 바다를, 하늘을, 골목길을, 사람들을. 돌아보니 정말 날씨가 다한 여행이었다.
*페탕크는 프랑스에서 쇠구슬로 즐기는 전통 놀이다. 특히 남프랑스에서 연중 내내
남녀노소가 즐기는 스포츠이자 일상 문화로 통한다.
어느 멋진 날의 산책
니스를 가장 니스답게 여행하는 방법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산책에 나서는 것이다. ‘영국인들의 산책로’라는 의미를 가진 프롬나드 데 장글레(Promenade des Anglais)에서 시간에 쫓기지 않는 척, 최대한 우아하게, 마치 귀족처럼. 이름값 하는 이름을 가진 이 산책로는 18세기 니스의 온화한 겨울을 찾아 내려온 영국 귀족들이 19세기까지 100년에 걸쳐 만든 길이다. 당시 어부들의 작업장이었던 해안가는 생선 냄새와 어망이 뒤엉켜 있었고, 이는 귀족들의 산책에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 귀족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만든 산책로는 현재 니스의 구시가지 인근에서 시작해 니스 코트다쥐르 공항까지 약 7km에 걸쳐 조성돼 있다.
3월 말인데도 한낮의 기온이 25도를 넘나들었다. 혹독한 겨울이 없는 겨울, 니스에서 겨울을 난 귀족들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해변 곳곳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옷은 훌러덩 벗고 벌러덩 누워 햇빛을 쬐는 사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 거침없이 바다에 풍덩 뛰어드는 사람. 테라스를 갖춘 카페에 앉아 시원하게 칠링된 프로방스 로제 와인을 홀짝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사이로 바다에는 간간이 요트가 지나다녔다. 니스는 오랫동안 사보이 공국에 속해 있다가 1860년에야 프랑스 영토가 됐다. 이탈리아와 인접했던 역사 탓에 건축도, 음식도, 생활 방식에도 이탈리아가 은근히 배어 있다. 니스 앞바다에서 와인 대신 얼음을 채운 잔에 이탈리아 식전주 아페롤(Aperol) 스프리츠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는 이유다.
니스는 2021년 ‘리비에라의 겨울 휴양 도시(Nice, Winter Resort Town of the Riviera)’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여가와 건강을 위해 바다를 찾는 현대적 관광 개념이 세계 최초로 정착된 역사적 가치를 세계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영국 귀족들이 닦아 놓은 산책로를 걷는 21세기의 평범한 서민은 자꾸만 여유를 잊고 호들갑을 떨었다. 눈앞에 펼쳐진 니스의 바다를 어떻게 그냥 잠자코 보기만 할 수 있겠는가. 니스의 바다는 시간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매번 미세하게 달랐다. 어떻게 해도 카메라에 다 담기지 않는 모습을 자꾸 담으려 애썼다. 비슷해 보이는 바다 사진 수백장이 저장됐다.
산책로 뒤로 이어지는 구시가지는 탁 트인 바다와는 또 다른 세계다. 오커색(황토빛에 가까운 따뜻한 주황)으로 물든 건물들이 다닥다닥 이어지며 형성된 좁은 골목이 하늘을 반쯤 가린다. 그렇다고 또 답답한 느낌은 아니다. 빛에 따라 음지와 양지가 교차하는 골목을 걷는 것은 그 자체로 묘한 리듬감이 있다.
마세나 광장(Place Masséna)으로 들어서면 분위기가 또 달라진다. 반듯한 건물들이 붉은빛으로 물들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이번에는 18세기 폼페이 유적이 발굴되면서 유럽 전역에서 유행한 폼페이안 레드(Pompeian Red) 컬러다. 건물 1층마다 이어진 아케이드 구조는 토리노나 밀라노에서 본 어느 광장과 비슷한 것이 이곳에서도 이탈리아의 흔적이 보인다.
마세나 광장의 역사는 19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이 자리엔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이 흘렀다. 그 강을 덮고, 광장과 정원을 얹어 귀족들의 사교 중심지를 만들었다.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대표적인 공공 공간이 됐다. 마세나 광장은 매년 2월이 가장 분주하다. 세계 3대 카니발 중 하나로 꼽히는 니스 카니발의 무대가 되기 때문이다. 화려하게 장식된 대형 마차 위에서 모델들이 관객들을 향해 수천 송이의 꽃을 던지고, 밤에는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된 조형물의 퍼레이드가 2주에 걸쳐 이어진다. 원래 니스 카니발은 사순절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즐기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시작됐지만, 지금은 사실상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하는 축제의 성격이 강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한겨울에도 평균 10~15도를 유지한다는 니스의 겨울을, 그렇게나 기쁜 마음으로 하루라도 빨리 보내고 싶을까? 서울에서 겨울을 보내고 온 여행자는 니스의 겨울이 부러워 미칠 지경이었는데 말이다.
좋은 재료로 채우는 한 끼
니스에 간다고 하니 지인 하나가 단번에 쿠르 살레야(Cours Saleya) 시장부터 가 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가 갔다. 니스의 햇빛은 다양한 식재료를 풍부하게 만들었고, 니스의 바다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해산물과 생선을 공급했다. 풍성하고 싱싱한 식재료는 시장을 키웠다. 그리고 시장은 신선한 재료를 잘 살리는 스타일의 식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니스 사람들에게 한 끼는 그저 때우는 것이 아니라 좋은 식재료를 골라 잘 차려 먹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래서 니스에서 먹은 음식 중 뭐가 제일 맛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신기하게도 올리브 오일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프로방스 지역은 올리브 나무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거의 모든 음식에 올리브 오일의 터치가 있다. 양파를 베이스로 한 니스식 피자 피살라디에르(Pissaladière), 채소에 고기소를 채워 오븐에 구운 요리 파르시 니수아(Farcis Niçois), 그리고 병아리콩 반죽을 얇게 구운 소카(Socca), 니스에서 가장 흔하게 먹는 루제(Rouget) 생선구이 등 니스를 대표하는 전통 음식에는 올리브 오일이 빠지지 않았다. 올리브가 주인공인 메뉴들도 있다. 올리브와 케이퍼, 앤초비 등을 잘게 다진 타프나드(Tapenade)를 빵에 발라 먹기도, 각종 허브와 올리브오일에 절인 올리브를 김치처럼 먹기도 한다. 그리고 니스 사람들의 올리브 사랑은 식탁 위에서도 이어진다. 신선한 올리브 오일을 마치 소스처럼 넉넉하게 뿌려 먹는다. 너무 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뿌려 먹어야 비로소 니스식 식문화에 입문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이 발달한 곳엔 와인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니스는 와인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마시는 곳으로 발전한 도시다. 영국 귀족들이 겨울마다 내려오면서 자연스럽게 사교와 만찬, 와인 소비의 중심지가 됐다. 빅토리아 여왕을 비롯한 영국 왕족들이 머물며 와인을 즐기는 문화 자체를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이다. 결정적인 시점은 철도가 개통된 이후부터다. 1864년 파리에서 리옹을 거쳐 마르세유, 니스까지 이어지는 철도가 개통되자 보르도, 부르고뉴, 샹파뉴의 최고급 와인들이 귀족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니스로 쏟아져 들어왔다. 여기에 흥미로운 사실이 추가된다. 니스는 바다와 산이 가까이 공존하는 도시다. 바다의 영향으로 기온은 온화하고, 산지의 서늘한 공기가 내려오며 일부 지역의 지하는 자연적으로 6~10도를 유지하는 냉각 구조가 형성된다. 귀족들은 이런 공간들을 와인 저장고로 활용했고, 전쟁 시기엔 귀한 와인과 귀중품을 숨기는 장소로도 쓰였다. 그야말로 니스를 프랑스 와인의 쇼룸으로 활용한 셈이다.
지금 니스에서 가장 사랑받는 와인은 시원하게 칠링한 프로방스 로제 와인이다. 여름엔 덥고 겨울에도 따뜻한 곳에서 진하고 묵직한 레드 와인에는 어쩐지 손이 잘 가지 않아서다. 로제 와인은 레드 와인보다 가볍고 화이트 와인보다는 탄탄하다. 산뜻한 채소 요리부터 신선한 해산물과 생선요리, 가벼운 고기나 치즈까지 웬만한 음식에 모두 휘뚜루마뚜루 받쳐 주니, 로제 와인이 사랑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대체로 새벽 배송에 의지하고, 가끔 대형마트에 가더라도 밀키트나 냉동식품 중심의 장보기에 익숙한 나는, 니스에서 ‘때우는 한 끼’가 아닌 ‘제대로 차려 먹는 한 끼’를 자주 다짐했다. 아무리 사는 게 바쁘더라도 가끔은 신선한 식재료를 고르는 재미를 느끼고, 소중하게 여기기로. 그리고 정성껏 준비해 천천히 음미하는 식사를, 때우지 않고 즐겨 보자고 말이다.
남편 없이 마시는 와인 맛
1860년. 그해에는 니스가 프랑스에 편입됐고, 카브 비앙키(Cave Bianchi)가 니스에 문을 열었다. 구시가지 좁은 골목길 아래, 카브 비앙키에는 와인만큼이나 오래된 이야기가 쌓여 있다.
한때 이 자리는 밀라노 출신의 비스콘티 형제가 운영하던 살롱이기도 했다. 상당한 부를 가진 집안의 젊은 형제가 와인 셀러를 주력 사업으로 선택한 것은, 아마도 보는 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두꺼운 돌벽은 외부의 온도를 완전히 차단했고, 좁은 골목 사이로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알프스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공기가 만나는 자리였다. 그 아래로 약 6도를 유지하는 지하수가 흘렀다. 인공 냉장 시스템이 없던 시절, 와인을 저장하기 위해 찾아낸 천연 셀러였던 것이다. 형제 중 한 명은 인물이 훤했고, 사교적이었으며, 여성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고, 그래서 이 살롱을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곳으로 운영했다. 당시 이곳에서는 여성들이 혼자 방문해 커피나 와인을 마시고 책을 읽는 것이 가능했다는데, 그게 뭐 어떻다고? 라고 생각할 것 같아 19세기 중반은 여성이 남편 없이 혼자 카페나 와인 공간을 드나드는 것이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는 시대상을 짧게 덧붙인다. 그러니 당시로서 꽤 전위적인 발상이었던 셈이다. 남편 없이 마시는 와인 맛을 일찌감치 안 여인들의 마음을 알아차린, 비스콘티 형제의 사심이 담긴 운영 방식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오랜 이야기가 쌓인 카브 비앙키는 일반 와인숍과는 다른 결로 운영한다. 프라이빗한 와인 디너, 테이스팅, 음식 페어링 행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공간이다. 프로방스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각각 7개와 2개의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갔을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어둑한 지하 공간에서 옛이야기를 안주 삼아 듣고 있자니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오래된 가구와 식기, 작은 소품에 묻은 사연까지 새삼 궁금해졌다.
니스의 여유로운 오후
니스에선 어느 공원을 가도 따사로운 오후의 햇빛 아래, 쇠구슬을 가지고 노는,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표정은 사뭇 진지했고, 때론 경건해 보이기까지 했다. 두 발을 모아 올곧은 자세로 서서 한 손에는 야구공만 한(또는 그보다 조금 더 큰) 쇠구슬을 쥐고 표적을 응시하는 사람들. 어느 정도의 힘을 써야 할지 느낌이 오는 순간, 팔을 사선 하늘 위로 곧게 뻗어 공을 던진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프랑스 전통 놀이 페탕크(Pétanque)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페탕크는 프랑스 전통 놀이지만, 페탕크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남프랑스 사람들의 자부심이 꽤 크다. 프랑스 중북부 도시에서는 휴가철이나 가족들이 모이는 날 가끔 즐기는 ‘놀이’에 가깝다면, 니스를 포함한 남프랑스에서는 연중 내내 일상에서 즐기는 스포츠 문화이기 때문이다. 표적이 될 목표 공(코쇼네, cochonnet)을 던져 놓고, 쇠구슬(부울, boule)을 굴리거나 던져 목표 공에 가장 가까이 붙이는 팀이 이기는 방식이다. 구슬은 총 6개로 2인팀이면 1인당 3개, 3인팀이면 1인당 2개의 공을 사용한다. 목표 공과의 거리는 6~10m 사이. 쇠구슬을 단순히 가까이 붙이는 것만이 전략이 될 순 없다. 상대 팀의 공을 직접 맞혀 제거하는 슈팅이 승부를 가르는 핵심 전략이 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컬링과 비슷한 구조다.
경기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10분 안에 끝날 수도 있고, 3시간, 또는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 이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페탕크는 한때 올림픽 종목 후보로 거론되다 탈락했다는 ‘웃픈’ 이야기도 전해진다. 경기 시간을 예측할 수 없으니 방송 편성이 어렵고, 광고 타이밍을 잡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페탕크는 천천히, 누구나 즐기는 스포츠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와도 되고, 중간중간 음료를 마실 수도 있다. 분명 승부를 겨루는 경기가 맞긴 하지만, 함께 즐기는 사람들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가 있다. 어느 공원 벤치에 잠시 앉아 나른한 평일 오후, 페탕크를 즐기는 어르신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생각해 보면 니스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하고 여유로웠다. 그리고 어쩌면 니스 사람들에게 풍기는 여유는 쾌적한 날씨도 날씨이거니와, 여유롭게 페탕크를 즐기는 일상 문화에서 나온 게 아니었을까, 하고 짜맞추기식 논리를 펼쳐 봤다.
글·사진 손고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