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그룹은 최근 연례 주주총회에서 2030년까지의 새로운 경영 전략을 공개했다(폭스바겐그룹)
[오토헤럴드 김훈기 기자] 자동차 산업은 오랫동안 성장 산업으로 분류되어 왔다. 글로벌 경제가 성장하면 자동차 판매도 함께 늘었고, 신흥 시장이 확대될 때마다 완성차 업체들은 새로운 기회를 발견했다. 하지만 최근 폭스바겐그룹이 내놓은 미래 전략은 이런 공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폭스바겐그룹은 최근 연례 주주총회에서 2030년까지의 새로운 경영 전략을 공개했다. 표면적으로는 경쟁력 강화와 수익성 개선을 위한 계획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앞으로 자동차 시장은 과거처럼 성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다.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그룹 CEO는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와 무역 장벽 강화, 경쟁 심화에 대응하기 위해 그룹 구조 전반을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폭스바겐은 이를 위해 복잡성 축소, 기술 집중, 생산능력 조정, 지역별 책임 강화, 투자 포트폴리오 재정비, 운영 효율성 향상, 성과 중심 문화 정착, 의사결정 구조 단순화 등 8개 핵심 과제를 제시했다.
폭스바겐그룹은 미래 성장보다 비용 절감과 체질 개선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폭스바겐)
흥미로운 점은 이번 전략이 단순한 전동화 계획이나 신차 로드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폭스바겐그룹은 미래 성장보다 비용 절감과 체질 개선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실제로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연간 60억 유로(약 10조 5000억 원) 이상의 비용 절감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미 폭스바겐과 아우디, 포르쉐, 소프트웨어 자회사 카리아드(CARIAD)를 중심으로 총 5만 명 규모의 인력 감축이 진행 중이며, 이 가운데 3만 5000명은 폭스바겐 본사 소속 인력이다. 현재까지 2만 8000명 이상의 퇴직 합의가 이뤄진 상태다.
독일 공장의 생산 비용도 빠르게 줄이고 있다. 폭스바겐은 지난해에만 독일 생산시설 운영 비용을 평균 20% 이상 절감했다고 밝혔다. 자동차 제조사가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서는 이유는 단순히 실적 부진 때문이 아니다. 시장 환경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증거다.
유럽 자동차 시장은 성숙 단계에 접어든 지 오래다. 미국 역시 과거와 같은 고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중국 시장은 여전히 세계 최대 규모를 유지하고 있지만 경쟁 강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BYD를 비롯한 현지 업체들이 가격과 기술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면서 글로벌 브랜드들의 수익성은 압박받고 있다.
결국 폭스바겐그룹은 자동차 산업이 '성장 경쟁'에서 '생존 경쟁'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폭스바겐그룹은 자동차 산업이 '성장 경쟁'에서 '생존 경쟁'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폭스바겐)
이런 맥락에서 이번 전략의 가장 중요한 표현은 폭스바겐이 언급한 '제로 성장 시장(Zero-Growth Markets)'이다. 회사는 앞으로 판매량 증가를 전제로 사업을 운영하는 대신 현재 수준의 판매 규모가 유지되는 상황에서도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물론 폭스바겐그룹은 미래 투자를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는 32% 증가했고 유럽에서는 66% 성장하며 시장 점유율 27%로 전기차 시장 1위를 차지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ID. 폴로, ID. 크로스, 쿠프라 라발, 스코다 에픽 등 보급형 전기차 프로젝트도 예정대로 진행 중이다. 배터리 사업 역시 확대되면ㅅ 자회사 파워코(PowerCo)를 통해 독일과 스페인, 캐나다에 배터리 생산 거점을 구축하고 차세대 배터리 개발도 병행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샤오펑과 협력해 전기·전자 아키텍처 개발을 진행 중이며, 미국에서는 리비안과 차세대 소프트웨어 플랫폼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결국 폭스바겐이 보여주는 변화의 본질은 전기차 확대가 아니다. 시장이 더 이상 무한 성장하지 않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구조 재편이다. 한때 자동차 업체들은 판매량 확대를 통해 수익성을 높여왔으나 앞으로는 비용 구조와 생산 효율성, 기술 경쟁력이 기업 가치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폭스바겐이 내놓은 2030 전략은 단순한 경영 계획이 아니라 자동차 산업이 성장의 시대를 지나 생존과 효율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이제 시작에 불과해 보인다.
김훈기 기자/hoon149@gmail.com
ⓒ 오토헤럴드(http://www.autoherald.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