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가 2026 부산모터쇼에서 브랜드의 새로운 10년을 이끌 ‘럭셔리 고성능’ 비전을 선보였다. ‘2026 부산모빌리티쇼’ 프레스 컨퍼런스에 나선 제네시스는 ‘마그마 GT 콘셉트’와 ‘GMR-001 하이퍼카 디자인 모델’을 아시아 최초로 공개하며, 브랜드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확실히 증명해 보였다.
루크 동커볼케 현대차그룹 사장(CCO·CDO)은 “지난 10년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내구 레이싱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다”며, 제네시스의 미래가 럭셔리와 고성능의 균형을 향해 나아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번 전시에서 제네시스는 모터스포츠라는 가장 가혹한 무대에서 쌓은 극한의 기술력이 어떻게 도로 위의 양산차로 이어지는지, 그 거대한 서사를 관객들과 공유했다.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두 번이나 우승한 경력이자 현재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 소속인 안드레 로테러 선수의 말은, 프랑스 사르트 서킷에서 펼쳐진 사투가 왜 필요했는지를 설명해 준다.
레이싱 세계에는 오래된 격언이 있다. “그린 플래그가 내려오면, 허풍은 끝난다(When the green flag drops, the bullshit stops).” 화려한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도, 경이로운 판매 실적 발표도, 원대한 브랜드 비전 선언도 트랙 위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직 냉혹한 결과와 머신의 신뢰성만이 지배하는 곳. 2026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은 처음 그 사실과 대면했다.
제네시스가 WEC(세계 내구 챔피언십) 참전을 공식 선언한 것은 고작 1년 반 전이다. 모터스포츠의 장구한 역사에서 1년 반은 눈 깜짝할 시간에 불과하다. 포르쉐, 페라리, 토요타가 수십 년간 쌓아온 르망의 노하우에 대적하기에 그 시간은 터무니없이 짧았다. 그렇기에 팀 내부와 전문가들 모두 이번 르망을 우승이 아닌, ‘버텨내고 배우는 무대’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르트 서킷은 자비는 없었다. 예선 6위라는 고무적인 성적으로 출발한 17호차(피포 데라니, 마티스 조베르, 앙드레 로터러)는 분전 끝에 레이스 16시간 만에 서스펜션 결함으로 리타이어했다. 현장에서는 디자이너인 루크 동커볼케 사장이 이 결과에 큰 충격을 받아 예정된 미디어 인터뷰를 취소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일화는 제네시스가 신생 팀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높은 기대치와 책임감을 품고 이 무대에 올랐는지를 보여준다.
반면 9번 그리드에서 출발한 19호차(폴 루 샤탱, 마티외 자미네, 다니 훈카데야)의 여정은 달랐다. 레이스 내내 기계적 결함과 사투를 벌인 이들은 12위로 달리던 중 시스템을 완전히 재시동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출력 저하를 겪기도 했다. 경험이 부족한 팀이라면 그대로 무너질 수도 있는 치명적인 순간이었다. 그러나 19호차는 끝내 버텨냈다. 24시간의 사투 끝에 마그마 오렌지색 차체가 마침내 결승선의 체커기를 받았다. 우승을 차지한 토요타 레이싱 TR010 하이브리드에 9랩 뒤처진 최종 13위.
완주 자체가 최종 목적지가 될 순 없지만, 완주가 위대한 출발점이 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모든 르망 우승 신화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스포팅 디렉터 가브리엘레 타르퀴니 역시 더 넓은 안목으로 이번 성과를 평가했다. 그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데뷔 세 번째 레이스인 스파에서 포인트를 따고 르망을 완주하는 그림은 꿈에서조차 그리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GMR-001이 프랑스 르 카스텔레에서 처음으로 트랙을 달린 것이 불과 작년이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차량이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24시간 레이스를 버텨낸 것이다.
신차가 첫 르망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는 것은 흔한 역사적 패턴이다. 지난 2023년 페라리는 499P를 데뷔시켰을 당시, 한 대가 하이브리드 시스템 결함으로 고전하는 와중에 다른 한 대가 우승을 차지하는 극적인 드라마를 썼다. 같은 해 포르쉐 역시 963으로 센서 결함과 충돌 사고로 얼룩진 쓰라린 데뷔전을 치렀다. 이들이 현재 WEC의 최강자로 군림할 수 있는 것은, 당시의 아픈 실전 기록들이 뼈가 되고 살이 되었기 때문이다.
제네시스 마그마의 행보도 이와 유사하다. 이몰라 개막전에서 15위와 17위를 거쳐, 스파 6시간 레이스에서는 캐딜락, 토요타, 알파인, 페라리 등 쟁쟁한 워크스 팀들을 제치고 8위로 포인트 피니시를 달성하며 13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번 르망에서의 13위 완주까지 이어졌다. 신생 제조사가 데뷔 후 세 번째 레이스 만에 이 정도의 경쟁력을 증명한 사례는 최근 하이퍼카 시대에서 극히 드물다.
GMR-001이 선택한 LMDh 규정은 경주차를 완전히 새로 제작해야 하는 LMH 규정에 비해 기술적 복잡성과 비용을 낮춘 실리적인 선택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타협'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스파와 르망에서 보여준 성과는 이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영리한 전략이었음을 보여준다.
레이스 시작 전날인 금요일, 서킷이 내려다보이는 제네시스의 3층 규모 호스피탤리티 유닛에는 100명이 넘는 글로벌 미디어가 집결했다. 연단에 오른 현대자동차 사장 겸 CEO 호세 무뇨스는 현장에서 제네시스의 비즈니스 성과를 발표했다.
제네시스는 2026년 1분기 기준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50,000대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현대차그룹은 같은 기간 310억 달러의 글로벌 매출을 달성했다. 특히 북미와 유럽에서의 연간 누적 판매 성장률은 역대 최고 수준인 8.5%를 기록했다. G70, GV70, GV80 등 주요 모델들이 판매 기록을 경신함과 동시에 주가 역시 200% 이상 상승하며 강력한 모멘텀을 증명했다.
이 수치들을 굳이 르망이라는 무대에서 발표한 이유는 철저한 전략적 포지셔닝이다. 제네시스는 현재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등 유럽 신규 시장 진출의 한복판에 서 있다. 르망이라는 무대에서 브랜드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것은 그 어떤 물량 공세 광고보다 강력하기 때문이다.
한편, 팀 대표 시릴 아비테불은 북미 IMSA 위더텍 스포츠카 챔피언십 참전 계획을 기존 2027년에서 2028년 이후로 연기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결정은 오는 9월 오스틴 WEC 라운드 전후로 내려질 예정이다. 우선 WEC라는 무대에서 확실한 지배력을 갖추겠다는 신중하고 내실 있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19호차가 사투 끝에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관중석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마그마 오렌지' 그라데이션이 새겨진 차체는 수십 년간 유럽과 미국 브랜드가 지배해온 피트레인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뿜어냈다. 팬 빌리지의 GMR 머천다이즈 스토어 앞에는 시그니처 블랙·오렌지 굿즈를 구매하려는 인파가 주말 내내 장사진을 이뤘다.
모터스포츠에서 얻은 이 뜨거운 팬덤이 실제 도로 위의 양산차 판매로 이어지기까지는 분명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모든 마케팅의 시작은 ‘인지’다. 그동안 유럽 시장에서 “제네시스가 어떤 브랜드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면, 이제는 “아, 르망에서 달리는 그 주황색 하이퍼카 팀?”이라는 대답을 이끌어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전환점이다.
부산모터쇼를 통해서도 공개된 ‘마그마 GT 콘셉트’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고객 레이싱으로의 확장성이 높은 GT3 무대로의 진입은 향후 GV60 마그마와 같은 고성능 양산차 라인업의 강력한 브랜드 자산이 될 것이다. 기자단을 헬기로 수송할 만큼 아낌없이 투입된 현대차그룹의 자본력은 단기적인 손익 계산이 아닌, 브랜드의 미래 권력을 쥐기 위한 거시적 투자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포르쉐, 페라리, 토요타가 장악한 르망의 피트레인에 대한민국 브랜드가 워크스(팩토리) 팀으로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풍경이었다. 제네시스는 그 불가능해 보였던 풍경을 현실로 바꾸어 놓았다. 탄탄한 자금력과 비즈니스 성공을 등에 업고서 말이다.
그린 플래그가 내려오고 허풍이 끝난 자리, 제네시스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완주한 차량 한 대와 리타이어한 차량 한 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기계적 신뢰성과 기술적 과제들은 있지만, 이들은 낙담하는 대신 내년 레이스를 향한 ‘364일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르망의 오랜 역사가 증명하듯, 위대한 서사는 언제나 이처럼 쓰라린 첫 번째 페이지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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