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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세계에서 태어나는 자동차, 현대차 남양연구소 AMS동을 가다

글로벌오토뉴스
2026.07.03. 15: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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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혹은 우리가 다음에 구매하게 될 자동차는 사실 거대한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처음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강철을 자르고 용접하는 불꽃이 사방으로 튀기 훨씬 전,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의 세계 속에서 먼저 형태를 갖춘다. 현대자동차그룹 남양기술연구소 AMS(Advanced Mobility Solution)동은 바로 그 유령 같은 탄생이 실재로 변모하는 공간이다.

2026년 6월 완공된 이곳에는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디지털 측정 센터(DMC), 적층 제조 솔루션 센터(AMSC), 노바 랩(NOVA Lab)까지 총 네 개의 첨단 시설이 한데 모여 있다. 최근 자동차를 두고 ‘기계라기보다 바퀴 달린 스마트폰에 가깝다’는 말을 쉽게 들어왔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시스템이 버벅거리면 전원을 껐다 켜면 그만이지만, 시속 100km로 질주하는 자동차가 0.1초라도 버벅거리면 그것은 곧 승객의 생명과 직결된다. 이 거대한 컴퓨터가 실제 도로로 나서기 전, 과연 어떤 방식으로 완벽함을 검증받는지 AMS동의 네 가지 핵심 시설을 차례로 돌아봤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차 한 종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시작차’로 불리는 프로토타입을 수십 대에서 수백 대씩 제작해야 했다. 영하 40도의 혹한기에 차를 방치해 두거나, 콘크리트 벽에 사정없이 들이받는 가혹한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물리적인 시험에는 명확한 한계가 따랐다.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현대차그룹이 선택한 해법은 개발 과정 전체를 가상 공간으로 고스란히 옮기는 것이었다.

문제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차를 어떻게 직접 운전하며 시험하느냐’는 점이다. 그 답은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에 있다. 시뮬레이터 운전석에 앉으면 270도 화각의 거대한 곡면 스크린이 시야를 압도한다. 그 안에 구현된 콕핏(운전석 공간)은 육자유도(6DOF), 즉 전후·좌우·상하 이동은 물론 롤(Roll)·피치(Pitch)·요(Yaw) 회전까지 여섯 방향으로 구동되는 모션 시스템 위에 얹혀 있다. 급브레이크를 밟을 때 차량 앞머리가 쏠리는 피치 현상, 코너를 급격하게 돌 때 옆으로 쏠리는 롤 현상, 빙판길에서 팽이처럼 미끄러지는 요 현상까지 유압과 전기 모터의 정밀한 조합으로 생생하게 재현해 낸다. 콕핏 자체는 미세한 움직임에도 기민하게 반응하도록 가벼운 카본 소재로 제작되었지만, 스티어링 휠과 시트만큼은 실제 양산차 부품을 그대로 사용했다. 가상과 현실을 절묘하게 버무려 놓은 구조다.



물론 스크린이 아무리 크고 의자가 물리 법칙대로 움직인다 한들, ‘결국 값비싼 VR 레이싱 게임과 무엇이 다르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실제 도로에는 아스팔트 고유의 질감도 있고 빗길의 미끄러움도 존재하는데, 과연 가상 공간에서 이러한 변수까지 제대로 시험할 수 있을까. 해답은 화면 속에 구현된 디테일에 있다. 남양연구소의 실주행 시험장이나 독일 뉘르부르크링 서킷을 특수 장비로 1mm 단위까지 정밀하게 스캔해 구축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다. 덕분에 노면에서 타이어를 타고 올라오는 최대 40Hz의 미세한 잔진동까지 운전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게임기처럼 단순히 몸을 흔들어 주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 도로의 물리적 진동을 그대로 구현한 셈이다.

여기서 또 다른 기술적 난제가 고개를 든다. 1mm 단위로 스캔한 수십km 길이의 서킷 데이터를 한꺼번에 불러오면 시스템에 어떤 과부하가 걸릴까. 고사양 오픈월드 게임조차 맵이 조금만 넓어지면 그래픽카드가 비명을 지르는데, 시속 200km로 내달리는 도중 화면이 0.1초라도 멈춘다면 가상의 벽에 그대로 충돌하고 말 것이다. 이는 전 세계 자동차 제조사들이 공통으로 겪어온 한계였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지형 서버(Terrain Server)’ 방식을 도입했다.



원리는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서비스와 유사하다. 영화 전체가 다운로드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현재 재생되는 장면의 주변 데이터만 실시간으로 받아오듯, 지형 서버 역시 가상의 차량이 달리고 있는 바로 그 위치와 1초 뒤에 지나갈 주변 데이터만을 끊임없이 주고받는다. 마치 무대 위 배우의 동선을 따라다니는 핀 조명처럼, 차량의 움직임에 맞춰 무거운 데이터를 지연 없이 스트리밍하는 방식이다. 이 모든 데이터 처리 과정은 짧게는 0.5초, 늦어도 1초 안에 완료된다.

이 덕분에 엔지니어는 지연 현상을 전혀 느끼지 않으면서, 버튼 클릭 한 번으로 마른 노면을 순식간에 폭우가 쏟아지는 노면으로 바꾸고 마찰계수를 실시간으로 조작하며 최적의 세팅을 찾아낼 수 있다. 존재하지 않는 차로, 존재하지 않는 빗길의 뉘르부르크링 서킷을 마음껏 질주하는 셈이다.



정필영 주행성능컨셉개발팀 책임연구원은 소프트웨어 환경을 구축하는 과정이 가장 까다로웠다고 회상했다. 차량동역학 해석 도구를 시뮬레이터 환경에 맞게 완전히 재구성하고, 모션 플랫폼이 어떠한 지연도 없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도록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았다는 설명이다. 이 시뮬레이터는 고성능 브랜드 N과 마그마(Magma)의 레이스카 개발 및 드라이버 훈련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올해에만 12개 차종, 10개 시스템 단위의 평가가 예정되어 있다.



가상 공간에서 완벽한 주행감을 완성했다고 해도, 현실 세계의 물리적 법칙은 그리 만만치 않다. 강철이나 플라스틱 같은 가공 소재들은 온도와 환경에 따라 저마다의 방식으로 수축하고 변형되기 때문이다. 이 고집스러운 실제 재료들을 디지털의 완벽한 계산값에 맞춰 정렬하는 작업이 바로 디지털 측정 센터(Digital Measuring Center, 이하 DMC)에서 이루어진다.

자동차 한 대에는 보통 수만 개의 부품이 집약된다. 만약 부품 단 하나에서 겨우 0.1mm의 오차가 발생하더라도, 조립 단계를 거치며 누적되다 보면 나중에는 10mm에 이르는 거대한 단차(벌어진 틈)로 되돌아오게 된다. 이러한 단차는 보기 싫은 미관상의 문제 뿐만 아니라, 운전자와 승객이 차량에 탑승했을 때 느끼는 소음·진동·불쾌감, 즉 NVH(Noise Vibration Harshness) 성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고속 주행 시 창문 틈으로 새어 드는 풍절음이나 누수 현상, 차량 내부의 삐걱거리는 잡소리가 모두 이 미세한 오차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새 차를 인도받아 문을 닫는 순간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다. 통통거리는 얄팍한 깡통 소리가 아니라 묵직하고 고급스럽게 ‘철컥’하고 닫히는 그 소리와, 차체 패널 사이의 자로 잰 듯 균일한 틈새는 바로 이 집착에 가까운 정밀함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오늘날의 측정 방식은 과거 작업자가 직접 자를 대고 재던 방식과 차원이 다르다. CMM(Coordinate Measuring Machine)이라 불리는 3차원 정밀 측정 장비의 로봇 팔이 차량 한 대당 약 1,000개에 달하는 지점을 직접 접촉하며 정밀한 좌표값을 읽어낸다. 또한, ‘후변형 검증실’에서는 초당 500장을 촬영하는 초고속 카메라를 활용해 문이 쾅 하고 닫히는 찰나, 강철 패널이 미세하게 출렁이며 변형되는 모습까지 포착한다. 정지 상태의 치수만 재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자동차는 늘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DMC의 진정한 저력은 데이터 센터에서 발휘된다. 차량이 조립되는 모든 단계, 즉 차체의 뼈대를 구성하는 순간부터 문짝과 램프가 장착될 때까지 측정된 모든 3D 데이터가 중앙 서버에 자동차 한 대 단위의 ‘이력서’처럼 차곡차곡 기록된다. 만약 최종 완성차 검수 과정에서 조수석 문짝이 1mm 벌어져 있는 것이 발견되더라도, 과거처럼 생산 라인을 통째로 세우고 처음부터 원인을 찾을 필요가 없다.



DATA-FIT과 DATA-AUDIT로 명명된 고유 체계를 통해 서버에 저장된 조립 이력을 역추적하면 그만이다. ‘3단계 용접 공정까지는 정상이었으나, 4단계 힌지 조립 과정에서 로봇의 정렬이 0.5mm 엇나갔다’는 식의 원인이 즉각적으로 도출된다. 사후에 차를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감사(Audit)하여 제조 공정 자체를 완벽하게 지어내리는 셈이다.

하재민 파이롯트품질검증팀 파트장은 이를 ‘자를 대고 길이를 재는 상황’에 빗대어 설명했다. 10cm짜리 막대를 재더라도 자의 눈금 시작점을 매번 다르게 맞추면 결과가 들쭉날쭉해지듯, 생산과 측정, 그리고 품질 검증 부서가 모두 완전히 동일한 기준점을 공유해야만 균일한 완성도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통합 기준점 체계가 바로 RPS(Reference Point System)다. 현재 DMC의 모든 검증 활동은 Fit&Finish(외관 품질), NVH, Sealing(수밀), Function&Assemble(기능 및 조립성)이라는 4대 핵심 항목 아래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설계가 아무리 완벽해도 그 모양대로 부품을 찍어내려면 ‘금형’이라는 거대한 쇳덩이를 새로 깎아 만들어야 한다. 이 금형 제작 작업에만 통상 몇 달의 아까운 시간이 소요된다. 이러한 개발 과정의 병목 현상을 해결하는 곳이 바로 적층 제조 솔루션 센터(Additive Manufacturing Solution Center, 이하 AMSC)다. 쉽게 이해하자면 거대한 산업용 3D 프린터 기지라고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쇠를 깎아내거나 쇳물을 틀에 붓는 대신,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재료를 한 층 한 층 쌓아 올려 형상을 만들어낸다. 거대한 금형을 제작할 필요 없이, 오직 설계 데이터만 있으면 단 며칠 만에 실제 부품을 뚝딱 만들어낼 수 있다. 실제로 현대차는 역사적인 ‘포니 쿠페 복원 프로젝트’ 당시 원본 부품이 유실되어 남아 있지 않자, 교체하고 남은 미세한 파편들을 스캔한 뒤 이곳에서 그대로 쌓아 올려 차량을 완벽하게 되살려냈다.



물론 이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플라스틱 실을 녹여 만드는 취미용 3D 프린터와는 차원이 다르다. 자동차의 심장인 엔진과 뼈대를 직접 만들어내야 하는 만큼, 금속을 정교하게 다루는 세 가지 핵심 첨단 공법이 동원된다.

첫 번째는 DED-WAAM(Wire Arc Additive Manufacturing) 공법이다. 용접 시 발생하는 강력한 열을 이용해 티타늄처럼 단단한 금속 와이어를 실시간으로 녹여가며 정밀하게 쌓아 올리는 방식이다. 케이크 위에 짤주머니로 생크림을 짤 때, 손끝의 움직임을 따라 크림이 입체적으로 쌓여 아름다운 장미꽃이 되는 모습을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WAAM 방식은 그 쇳물을 생크림처럼 정밀하게 짜내어 3차원 금속 덩어리를 그려나가는 셈이다.



두 번째는 분말 소결(Powder Bed Fusion, PBF) 방식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금속 가루를 바닥에 얇게 깐 뒤, 레이저나 적외선으로 정교하게 그림을 그리듯 열을 가해 원하는 부분만 순식간에 굳혀나가는 공법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액상 소재를 굳히는 VPP(Vat Photopolymerization) 방식이다. 고운 모래가 깔린 해변에서 원하는 모양에만 특수 접착제를 뿌려 고정시킨 뒤, 파묻힌 덩어리를 꺼내어 입으로 ‘후’ 하고 불면 굳지 않은 모래는 모두 날아가고 정교한 모래성만 남는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이 방식은 부품이 가루 속에 파묻힌 채 지지되기 때문에, 형태가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별도의 지지대(Support)를 설치할 필요가 없다. 지지대가 없으니 재료의 낭비가 극적으로 줄어들고, 표면 역시 놀라울 정도로 매끄럽게 마감된다.

그러나 ‘금형 없이 빠르게 부품을 만든다’는 효율성만으로는 이 기술의 진정한 가치를 다 설명할 수 없다. 적층 제조 기술이 가져온 진짜 혁명은 바로 ‘형태의 자유로움’에 있다. 즉, 전통적인 주조나 절삭 방식으로는 그 어떤 시간과 비용을 들여도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기상천외한 형상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모터스포츠에 출전하는 레이싱카 부품이 대표적인 사례다. 극한의 속도를 내기 위해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부품을 만들려면, 금속 덩어리의 내부 속을 텅 비우면서도 그 안에 거미줄 같은 격자 구조(Lattice)를 심어야 한다. 또한 고열을 식히기 위해 부품 내부에 인체의 핏줄처럼 복잡하게 뒤엉킨 냉각수 통로를 새겨 넣어야 할 때도 있다. 쇳물을 부어 만드는 전통 방식으로는 겉모양만 구현할 수 있을 뿐, 단단한 금속 한가운데에 핏줄처럼 미세하게 굽이치는 빈 공간을 채워 넣을 방법이 없다. 드릴로 구멍을 뚫는다 해도 일직선 구멍을 내는 것이 한계다.

오직 바닥부터 0.1mm씩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3D 프린팅 기술만이 이처럼 닫힌 내부 공간 속에 복잡한 구조를 완벽하게 설계할 수 있다. 실제로 현대모터스포츠 법인(HMSG)은 경주용 차량의 안티 롤 바 블레이드, 댐퍼 브래킷, 브레이크 덕트 레일 등에 이 기술을 적극 적용하여 혁신적인 경량화를 달성했다.

적층제조솔루션팀의 김승배·온한우 책임매니저는 글로벌 제조사들에 비해 인프라 구축 시점 자체는 다소 늦었지만, 현대차그룹만의 독보적인 그룹사 협력 구조를 활용해 다양한 산업 영역에 응용함으로써 기술 내재화 속도를 무서운 가속도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예전에는 도장 공정용 실러 노즐을 전량 외주 제작에 의존해왔으나, 이제는 내부에서 직접 맞춤형으로 설계 및 제작하여 실제 양산 라인에 시범 적용 중인 고무적인 사례도 함께 소개했다.



가상 주행을 통한 성능 조율을 마쳤고, 치수의 오차를 통제했으며, 3D 프린터로 고난도의 뼈대까지 모두 준비되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자동차는 ‘굴러다니는 거대한 컴퓨터’이기도 하다. 만약 자동차 본체에 껍데기(차체 패널)를 씌워 완전히 밀봉해 버린다면, 그 내부에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전자 두뇌와 주행 신경망은 대체 어떻게 시험해야 할까. 그 최종 단계의 해답을 제시하는 곳이 바로 노바 랩(NOVA Lab, Next-generation Open Validation & Automation Laboratory)이다.

노바 랩에 처음 발을 들여놓으면 다소 생소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럴듯한 차량은 보이지 않고, 커다란 실험대 위에 수많은 전선 다발과 소형 제어기 박스들만 어지럽게 널려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를 ‘와이어카(Wire-car)’라고 부른다. 차체 껍데기는 전혀 없이, 차량에 들어가는 각종 제어기와 커넥터 300~500개만을 전선으로 연결해 놓은 상태다. 말 그대로 뼈대 없이 고스란히 노출된 ‘순수한 신경망 덩어리’인 셈이다. 대형 차종을 기준으로 와이어링 커넥터 수만 수백 개에 달하며, 이는 대단히 숙련된 전문 인력을 투입하더라도 구축하는 데만 꼬박 일주일이 걸리는 정밀한 작업이다.

‘굳이 이렇게 안 하고 다 조립된 완성차에 노트북만 연결해서 시험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차량 전체를 소프트웨어가 제어하는 SDV(Software Defined Vehicle) 시대에는 그런 사후 검증 방식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과거의 자동차는 브레이크용 컴퓨터와 에어컨용 컴퓨터가 각각 독립되어 따로 작동하는 구조였다. 반면 최신 자동차는 ‘존(Zonal) 제어 시스템’이라는 강력한 중앙 컴퓨터가 차량 전체를 일사불란하게 지휘한다. 내부 통신망 역시 얇은 구리선 수준을 넘어 초당 대량의 데이터를 순식간에 쏘아 보내는 고속 이더넷(Ethernet) 체계로 전환되었고, 전원 장치 또한 기존 12V에서 48V 시스템으로 대폭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전조등이 켜지지 않으면 단순히 램프 전선이 끊어졌는지만 점검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복잡한 네트워크 망 안에서 데이터 패킷이 서로 충돌해 시스템 에러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따져야 한다. 즉, 스패너와 드라이버로 고칠 수 있는 물리적 영역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충돌’의 영역으로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만약 이 미세한 신경망 문제를 알아채지 못하고 차체를 먼저 씌워 매립해 버린다면, 나중에 오류를 발견했을 때 차량의 고급 내장재를 전부 뜯어내고 배선을 처음부터 다시 깔아야 하는 대재앙 직전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차체를 씌우기 전, 탁자 위 뚫린 공간에서 수천 번에 이르는 가혹한 시뮬레이션을 돌려 소프트웨어 오류를 미리 잡아내 치료하는 것이다.



실제 취재 도중 대단히 인상적인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연구원이 책상 위에 놓인 와이어카의 외기 온도 센서 전압을 인위적으로 살짝 조작하자, 껍데기도 없는 신경망 덩어리가 순식간에 스스로 착각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현재 바깥 기온이 무려 ‘영하 30도’의 혹한이라고 오인한 와이어카는 계기판의 온도를 뚝뚝 떨어뜨리더니, 이내 빙판길 미끄러짐 위험 경고등을 스스로 점등시켰다. 차량을 실제로 혹한 지역에 보내지 않고도, 쾌적한 연구실 안에서 한여름에 겨울철 극한 테스트를 마쳐버리는 셈이다.

노바 랩의 진화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물리적인 구동 부하 장치와 레이더 타겟 시뮬레이터(RTS)를 이 신경망에 연결하면, 가상의 와이어카는 자신이 지금 시속 100km로 고속도로를 맹렬히 질주하고 있다고 완벽하게 착각한다. 몸체는 책상 위에 얌전히 누워 있으되, 뇌만큼은 가상현실 속 도로를 질주하고 있는 격이다. 이러한 선제적 방식을 통해, 신차 한 종당 평균 150건에서 200건에 달하는 치명적인 소프트웨어 오류들을 실제 생산 공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미리 찾아내 완벽히 수정한다.

김상연 파이롯트전장제어개발팀 파트장은 노바 랩이 특정 부서의 전유물이 아니라, 현대차그룹 계열사는 물론 협력사들까지 사전 예약을 통해 자유롭게 공유하는 ‘개방형 테스트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인 OTA(Over-the-Air)의 품질 검증을 위해서도 이 와이어카 플랫폼을 전폭 지원하고 있으며, 향후 운전자가 탑승하지 않는 ‘로보택시(Robotaxi)’ 시대를 대비한 시스템 이중화(Redundancy) 구조 및 사이버 보안 체계의 유효성 검증 역시 바로 이곳 노바 랩의 핵심 임무라고 덧붙였다.



완벽하게 모사된 가상 도로를 지연 없이 질주하는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실제 조립 데이터를 역추적해 오차를 지워나가는 디지털 측정 센터(DMC), 복잡한 내부 형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적층 제조 솔루션 센터(AMSC), 그리고 몸통 없이 오직 신경망의 힘만으로 도로를 달리는 노바 랩까지. 전혀 달라 보이는 이 네 가지 공간은 미래의 자동차가 치열하고 가혹한 디지털 검증 과정을 완벽히 끝마친 뒤에야 비로소 현실 세계로 ‘출력’되는 고도의 결실이라는 점을 깨닫게 한다.

향후 우리가 새로운 자동차의 운전대를 잡고 부드러운 주행 질감에 감탄하거나, 정교하게 작동하는 자율주행 기능에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면 한 번쯤 기억해볼 만하다. 이 자동차가 실제 아스팔트 도로 위에 마찰을 일으키며 나서기 훨씬 전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 세계 속에서 이미 수천 번 태어나고 죽으며 오류를 스스로 지워내고 진화해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자동차 한 대를 가상 공간에서 이토록 정교하게 시뮬레이션하고 통제할 수 있다면, 이 혁신적인 기술이 머지않은 미래에 ‘스마트시티(Smart City)’와 같은 인류의 더 거대한 삶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일 것이다. 실제 현실 세계에 벽돌 한 장을 채 놓기도 전에, 도시 전체의 유기적인 교통 흐름과 복잡한 전력망의 효율성을 가상 세계에서 먼저 완벽하게 완성해 놓는 날이 우리 곁에 그리 멀지 않았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 ​
<저작권자(c) 글로벌오토뉴스(www.global-auto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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