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PC 시장이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과 부품 비용 상승의 영향으로 9개 분기 만에 역성장했다. 출하량은 감소했지만 제조사들이 가격을 인상하면서 매출은 오히려 증가하는 등 판매량과 시장 매출 사이의 괴리도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가 발표한 잠정 집계에 따르면 2026년 2분기 전 세계 전통 PC 출하량은 6820만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7170만대보다 4.9% 감소했다. 세계 PC 출하량이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한 것은 9개 분기 연속 성장 이후 처음이다.
IDC는 지속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을 PC 시장이 하락세로 돌아선 핵심 원인으로 꼽았다. PC 제조사들이 확보할 수 있는 재고를 최대한 앞당겨 조달했지만 메모리 수급 불안이 이어졌고, 스토리지 등 다른 부품의 공급 문제와 지정학적 불확실성도 시장에 부담을 줬다는 분석이다.
출하량 감소에도 매출은 증가
PC 출하량이 줄어든 것과 달리 시장 매출은 상승하고 있다. 부품 비용 증가에 대응한 제조사들의 가격 인상 속도가 수요 감소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지테시 우브라니 IDC 소비자 기기 부문 리서치 디렉터는 “이번 시장에서 주목할 부분은 판매 대수와 매출 사이의 괴리”라며 “출하량은 감소하고 있지만 제조사들이 수요 감소 속도보다 빠르게 가격을 올리면서 매출은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IDC는 메모리 공급난이 2028년 초까지 완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거시경제 환경까지 악화하고 있어 제조사들이 다시 대규모 선행 재고 확보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2026년 하반기 PC 시장의 성장률이 크게 둔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가격 상승 압력도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IDC에 따르면 PC 제조사들은 2027년 추가 가격 인상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으며, 유통업계에서는 높아진 가격대의 제품 재고가 누적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애플만 두 자릿수 성장…레노버 점유율 1위
업체별로는 레노버가 2026년 2분기 1660만대를 출하하며 24.4%의 점유율로 1위를 유지했다. 출하량은 전년 동기보다 2.1% 감소했지만 시장 전체의 감소 폭보다 선방하면서 점유율은 23.7%에서 24.4%로 0.7%포인트 상승했다.
HP는 1300만대를 출하해 19.1%의 점유율로 2위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출하량 1430만대와 비교하면 9.0% 감소했으며, 점유율도 19.9%에서 19.1%로 낮아졌다.
델 테크놀로지스는 전년 동기 대비 5.0% 감소한 930만대를 출하했다. 시장점유율은 13.6%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같았다.
상위 5개 업체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기업은 애플이다. 애플의 출하량은 지난해 2분기 610만대에서 올해 2분기 670만대로 10.1% 증가했다. 점유율도 8.5%에서 9.9%로 1.4%포인트 확대됐다.
에이수스는 500만대를 출하해 7.4%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0.2% 증가해 사실상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지만 점유율은 7.0%에서 7.4%로 상승했다. 상위 5개 업체를 제외한 나머지 제조사의 출하량은 1750만대로 10.5% 감소했으며, 합산 점유율도 27.3%에서 25.7%로 축소됐다.
공급망 경쟁력 따라 업체 간 격차 확대
IDC는 메모리 공급 부족이 장기화할수록 PC 시장의 업체 집중 현상이 심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스마트폰과 서버 등 인접 사업을 함께 운영하는 대형 제조사는 구매 규모와 장기간 구축한 공급업체 관계를 활용해 메모리를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반면 구매력이 낮은 중소 제조사는 부품 확보와 원가 관리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장 필리프 부샤르 IDC 소비자 기기 부문 부사장은 “시장 상황이 계속 악화하면서 공급망 관리 역량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며 “구매력과 장기간 이어온 공급업체 관계를 갖춘 대형 제조사들이 소규모 경쟁사의 점유율을 가져가기에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애플의 점유율 상승에는 최신 제품인 ‘맥북 네오’ 출시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IDC는 애플도 시장 전반의 흐름에 맞춰 가격을 인상했지만, 경쟁사 역시 같은 비용 상승 압력을 받고 있어 시장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평가했다.
메모리 가격 상승은 PC 교체 수요에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클라우드 컴퓨팅 비용이 높아지면서 기기 자체에서 AI 연산을 처리하는 온디바이스 AI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지만, 메모리 공급난에 따른 지속적인 가격 상승이 전반적인 PC 교체 주기를 늦출 가능성도 있다.
이번 집계에서 전통 PC는 데스크톱과 노트북, 워크스테이션을 의미하며 태블릿과 x86 서버는 포함되지 않았다. 출하량은 유통 채널이나 최종 사용자에게 공급된 제품을 기준으로 집계됐으며, OEM 제품은 실제 판매에 사용된 회사 또는 브랜드 실적에 반영됐다.
이준문 기자/jun@newsta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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