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행보조시스템(ADAS) 규제를 놓고 각국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유럽 각국도 속속 레벨 2++ 수준의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시장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그런데 정작 가장 큰 위험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에코노미스트 엔터프라이즈가 브렘보의 후원을 받아 세계 10대 자동차 생산국 교통 전문가 1,000여 명을 설문한 조사결과에서 답변의 30%는 '운전 지원 시스템을 오해하고 잘못 사용하는 인간'을 도로 안전의 최대 위협으로 꼽았다. 시스템의 결함이 아니라 사람의 착각이 진짜 위험이라는 뜻이다. 응답자의 67%는 제조사의 과장 마케팅이 그 착각을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조사를 이끈 프라티마 싱 연구 총괄은 진짜 위험이 사람과 기계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달 19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인근에서 벌어진 사고는 이 문제의 축소판이다. 테슬라 모델3 한 대가 시속 117㎞로 주택가를 질주했다. 이 차량은 벽돌집을 들이받았고, 집 안에 있던 70대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운전자는 처음엔 '감독형 완전자율주행(FSD)'을 쓰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사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는 배달 업무 중이었다. 페달 조작으로 안전 시스템을 무력화한 채 과속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사고 전 FSD가 "충분히 공격적이지 않다"는 불만을 구글에서 여러 차례 검색한 것으로 조사됐다. 기술의 한계를 탓하기 전에 기술을 억지로 밀어붙인 태도부터 돌아봐야 한다.
지난 2월 미국 플로리다 남부 연방법원은 2019년 오토파일럿 관련 사망사고 판결을 확정했다. 테슬라가 배상해야 할 금액은 2억4,300만 달러, 우리 돈 약 3,500억 원이다. 당시 운전자는 떨어뜨린 휴대전화를 찾느라 전방 주시를 소홀히 했다. 배심원단은 그럼에도 테슬라에 33%의 책임을 인정했다. 시스템이 도로 경계와 장애물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회사가 그 한계를 운전자에게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앞서 캘리포니아 법원은 '오토파일럿'이라는 이름 자체가 소비자를 오도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테슬라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이 브랜드명을 접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오토파일럿·FSD 관련 사고 1,000여 건을 조사해 29명의 사망자를 확인했다. 이 중 14건은 명백한 시스템 오남용으로 결론 났다.
국내 상황도 남 얘기가 아니다. 일부 테슬라 차주들은 스티어링 휠에 무게추 형태의 '헬퍼'를 부착해 왔다. 이 장치는 운전자가 핸들을 잡지 않아도 잡고 있는 것처럼 차량을 속인다. 손을 완전히 놓은 채 서울 여의도에서 잠실까지 주행하는 영상이 유튜브에 버젓이 올라오기도 했다. 가격은 단돈 5만~15만 원. 값싼 부품 하나가 전방 주시 의무라는 안전장치를 무너뜨린 셈이다. 도로교통법은 안전운전에 지장을 주는 장치 부착을 금지한다. 하지만 국회에서조차 "단속 근거도 지침도 없다"는 지적이 반복됐다. 미국은 이미 2018년 유사 장치의 판매를 금지했다. 한국은 아직 그 걸음조차 떼지 못했다.
모든 사례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독일은 2021년 세계 최초로 레벨3 자율주행을 법제화했다. 시스템 작동 중 발생한 사고는 제조사가 책임지도록 명문화했다. 메르세데스-벤츠 드라이브파일럿이 그 첫 사례다. 이 시스템은 작동 가능한 속도와 도로 조건을 엄격히 제한한다. 조건을 벗어나면 시스템은 스스로 작동을 멈추고 운전자에게 제어권을 돌려준다.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그 경계를 분명히 그어 놓은 방식이다. 주행보조시스템 적용의 철칙 중 하나인 "한계선을 명확히 그어야 한다"는 원칙이 실제 양산차에 구현된 사례다.
돌이켜보면 문제의 뿌리는 이름에 있었다. '완전자율주행'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기술은 정작 SAE 기준 레벨2 운전자 보조 시스템에 불과하다. 이름이 기능보다 앞서 소비자의 기대를 부풀렸다. 과장된 마케팅의 대가는 결국 사람의 목숨이었다. 텍사스의 주택도, 플로리다의 22세 여성도 그 대가를 치른 피해자들이다.
기술은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기술을 과장한 마케팅과 그 과장을 그대로 믿은 안일함이다. 제조사는 시스템의 한계를 숨기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편법 장치 유통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운전자 역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 손을 뗀 그 순간, 정말 시스템이 나를 지켜줄 준비가 되어 있는지.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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