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그룹이 새로운 브랜드를 품에 안았다. 지난 2026년 7월 21일, 서울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에서 아시아 최초의 알피나 커뮤니티 행사인 'BMW ALPINA 서울 시그니처 모먼트'가 열렸다. 행사에 참석한 올리버 필레히너 BMW 알피나 브랜드 총괄 부사장은 "BMW 그룹이 새 브랜드를 들인 것은 롤스로이스 이후 약 25년 만"이라는 말로 문을 열었다.
이들의 출발점은 제품 계층의 빈자리, 즉 '간극'에 있다. 현재 BMW의 제품군은 7시리즈와 X7에서 정점을 찍지만, 그 위로 롤스로이스에 닿기까지의 간극은 꽤 넓다. 이 구간은 이미 벤틀리와 메르세데스-마이바흐, 레인지로버가 나눠 점유하고 있다. BMW 알피나는 바로 이 틈새를 메우기 위해 투입된 브랜드다. 그룹 내부에서는 이 계층을 '럭셔리 레이어'라 부르며, 사실상 마이바흐를 정조준한 전략적 배치라 할 수 있다.
알피나는 1965년 바이에른의 소도시 부흐로에에서 창업자 부르카르트 보벤지펜의 손에 의해 탄생했다. 가문의 원래 사업은 타자기 제조였지만, 그는 자동차에 매료됐다. 첫 결과물은 BMW 1500의 엔진 튜닝 키트였다. 이후 BMW가 더 강력한 1800 모델을 내놓자 기존 1500 고객들이 알피나의 키트를 찾기 시작했고, 사업은 순식간에 확장됐다.이후 BMW의 튜너로 성장한 알피나는 지난해 약 2,600대를 판매하며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가격이 20만 유로를 호가하는 모델도 있을 만큼, 규모는 작지만 압도적인 희소성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BMW 그룹은 2022년 3월 알피나와 상표권 인수 계약을 맺었다. 지분 인수가 아닌 상표권만의 확보였으며, 해당 권리는 2026년 1월 1일 자로 BMW에 완전히 이전됐다. 같은 시점에 브랜드명은 'BMW ALPINA'로 공식 변경되었고, 새로운 워드마크와 엠블럼도 함께 공개됐다. 생산 방식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과거 알피나가 BMW 공장에서 생산된 차체를 부흐로에로 가져와 수작업으로 매만졌다면, 앞으로는 모든 공정이 BMW 생산 라인에서 완결된다.
BMW는 알피나를 네 가지 핵심 요소로 정의했다. 60년의 역사를 뜻하는 '뿌리 깊음', 장거리 주행에서 발현되는 '고요한 평온함', 정밀한 제작이 빚어내는 '섬세한 완성도', 그리고 '절제된 자신감'이다.
이 네 가지 요소는 '품격을 높이는 여정'이라는 브랜드 약속으로 귀결되며, 실무 차원에서는 '스포츠가 아닌 속도'라는 명확한 지향점으로 정리된다. 이는 BMW M과의 확실한 선 긋기다. M이 트랙 위에서의 랩타임을 추구한다면, 알피나는 본질적인 그랜드 투어링을 추구한다. 아우토반에서 시속 300km로 달리면서도 하루 종일 피로하지 않고 안락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행 모드 구성이 이러한 성격을 보여준다. 일반 BMW의 스포츠와 스포츠 플러스 자리에 알피나는 '스피드' 모드를 배치하며, 기본 모드 역시 컴포트가 아닌 '컴포트 플러스'에서 출발한다. 파워트레인은 전용 4.4ℓ V8 트윈파워 터보 가솔린 엔진이 탑재되며, 전동화 모델 역시 준비 중이다.
디테일 계승 방식도 매우 구체적이다. 1974년부터 이어져 온 측면 데코 라인은 더욱 가늘어졌고, 스티커를 붙이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클리어 코트 아래에 직접 도장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손으로 쓸어내려도 단차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20스포크 휠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다듬어져 전용 디자인으로 남으며, 실내에는 최고급 라발리나 가죽이 아낌없이 쓰인다. 과거 실내를 뒤덮었던 상징적인 녹색과 파란색은 이제 우아한 브리지 스티치 포인트로만 남겨졌다. 개인화의 폭도 한층 넓어져 외장은 100가지 이상의 스페셜 컬러를, 실내는 가죽 20색과 스티치 26색을 선택할 수 있으며, 최상위 맞춤 단계인 마누팍투어 옵션도 제공된다.
새로운 브랜드의 지향점은 콘셉트카를 통해 먼저 베일을 벗었다. 지난 5월 15일, 이탈리아 코모호 인근에서 열린 콩코르소 델레간차 빌라 데스테 현장에서다.
'Vision BMW Alpina'는 전장 5.2m급의 2도어 4인승 GT 쿠페다. 디자인의 뼈대는 E24 6시리즈를 기반으로 단 153대만 제작되었던 1978년형 알피나 B7 터보 쿠페에서 가져왔다. 전면부에는 날카로운 샤크 노즈가 적용되었으며, 키드니 그릴은 조형 안에 통합되어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내연기관과 전기차를 시각적으로 굳이 구분하지 않겠다는 의도적 접근이다.
실내는 상단의 어두운 퍼포먼스 영역과 하단의 밝은 럭셔리 영역으로 뚜렷하게 나뉜다. 센터 콘솔에는 요트 산업의 자석 고정 방식을 차용한 전용 크리스털 글라스가 자리하며, BMW의 첨단 파노라믹 iDrive도 함께 적용되었다. 이 디자인은 아드리안 반 호이동크 총괄의 지휘 아래 막시밀리언 미쏘니 부사장이 이끌었으며, 외신에 따르면 롤스로이스 코치빌드 출신의 알렉스 이네스도 2024년 합류해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차량은 양산 계획이 없는, 철저히 브랜드의 청사진을 보여주기 위한 모델이다.
BMW가 이토록 과감한 투자를 단행한 근거는 시장의 규모에 있다. 대형 레인지로버는 SV 모델을 포함해 지난해 약 6만 5,000대가 팔렸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는 1만 5,000대 이상, 페라리는 약 1만 4,000대를 기록했다. 필레히너 부사장은 페라리를 예로 들며, "판매량은 BMW의 0.5% 수준에 불과하지만 기업가치는 훨씬 높게 평가받는다"고 강조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지난해 실적도 같은 맥락을 보여준다. 톱엔드 부문이 전체 판매의 15%를 차지하며 전년(14%) 대비 비중이 커졌다. 지난해 판매된 S클래스 세 대 중 한 대가 마이바흐였고, 중국 시장에서는 두 대 중 한 대꼴이었다.
하지만 이 시장이 마냥 우상향하는 것만은 아니다. 벤츠 톱엔드 부문의 지난해 실제 판매량은 5% 감소했다. S클래스의 판매 감소분을 G클래스가 메워낸 결과다. 국내 상황은 이보다 더 극명하게 엇갈린다. 올 상반기 벤틀리는 227대를 판매해 전년 동기 대비 95.7%라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반면 마이바흐는 502대로 4.4%, 롤스로이스는 86대로 13.1%, 페라리는 115대로 37.5% 감소했다.
결론적으로 최상위 럭셔리 시장은 '무조건 성장하는' 안일한 곳이 아니다. 제품의 주기와 브랜드의 서사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곳으로 수요가 예민하게 이동한다. BMW 알피나가 뛰어드는 무대의 성격이 바로 이렇다.
새롭게 출범하는 BMW 알피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우선 긍정적인 대목은 알피나가 내세운 '절제된 럭셔리(Quiet Luxury)'의 방향성이다. 과시적인 로고나 라벨을 지양하고 본질에 집중하는 접근은 현 시대 최상위 소비층이 갈망하는 가치와 정확히 맞물린다. 콘셉트카에서 선보인 샤크 노즈와 네 개의 타원형 배기구처럼 고유의 상징적 디테일을 세련되게 재해석한 디자인 역시, 알피나라는 브랜드가 가진 심미적 잠재력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실제 시장에 연착륙하기까지 넘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첫째는 절제미의 경계다. 콘셉트카에서 노출된 거대한 키드니 그릴처럼, 자칫 '아는 사람만 알아보는' 알피나 특유의 은밀한 절제미가 BMW의 양산형 디자인 언어에 묻혀 과시적으로 변질될 위험도 있다. 둘째는 양산차와의 거리감이다. 초기 출시 모델들의 개발이 콘셉트카 공개 이전에 이미 완료된 만큼, 콘셉트카가 제시한 참신한 디자인 언어가 실제 도로 위에 얼마나 실효성 있게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셋째는 생산 방식 변화에 따른 희소성의 퇴색이다. 부흐로에 공장의 소량 수작업 생태계가 뮌헨의 대규모 양산 라인으로 편입되면서, 알피나만의 독보적인 희소성이 흐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울러 브랜드의 무게중심이 최상위로 이동하면서 B3, B4처럼 탄탄한 팬덤을 형성하던 중형 라인업의 입지가 좁아진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가장 뼈아픈 지점은 정통성의 분열이다. 창업 가문이 원래의 터전인 부흐로에에 남아 '보벤지펜'이라는 이름으로 800마력급 05 GT를 내놓으며 가문의 유산을 직접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상표권을 얻은 BMW와 역사적 혼을 간직한 부흐로에 사이에서, BMW 알피나가 진정한 알피나의 후속으로서 고유한 정통성을 시장에 설득해낼 수 있을지가 향후 브랜드의 성패를 가를 핵심 관건이다.
국내 출시가 점쳐지는 모델은 크게 두 가지다. 2027년 말에 등장할 '알피나 7'과 2028년 초에 선보일 '알피나 X7'이다.
알피나 7의 토대는 지난 4월 22일 공개되어 7월부터 생산에 돌입한 7시리즈 부분변경 모델(G70 LCI)이다. 알피나 버전에는 'G72'라는 별도 코드명이 부여될 예정이다. 방탄 모델인 G73처럼 독립된 차량으로 대우받는다는 의미다. 파워트레인은 직렬 6기통과 V8 탑재가 유력하며, 특히 V8의 경우 M 사업부의 4.4ℓ S68 트윈터보 엔진이 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행 7시리즈 라인업에서 V8이 제외되어 있다는 점이 이 관측에 힘을 싣는다. 다만 i7 기반의 순수 전기 모델은 초기 라인업에서 배제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휠베이스는 굳이 늘리지 않을 공산이 크다. 현행 7시리즈의 축간거리가 이미 3,215mm로 세그먼트 최고 수준이기에, 마이바흐 S클래스의 롱 휠베이스 전략과는 다른 행보를 택할 것으로 보인다.
알피나 X7은 차세대 X7(코드명 G67)을 전제로 한다. 2027년 미국 스파턴버그 공장에서 차세대 X7 생산이 시작되면, 알피나 버전이 그 뒤를 잇게 된다. 명확한 타깃은 마이바흐 GLS다. 출력은 현행 XB7(S68 4.4ℓ V8, 631마력)을 기준으로 삼아 600마력대 초중반에 형성될 가능성이 높으며,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기본 탑재될 전망이다.
디자인은 콘셉트카의 언어를 통째로 옮기기보다는 핵심 요소 단위로 이식될 것으로 보인다. 스플리터의 알피나 워드마크, 섬세한 도장 데코 라인, 20스포크 휠, 4개의 타원형 배기구가 외관을 완성하고, 실내는 라발리나 가죽과 크리스털 장식, 파노라믹 iDrive가 중심을 잡게 된다. 한편 부흐로에 시대의 마지막 모델이라는 상징성을 지닌 현행 XB7 마누팍투어는 120대 한정으로 북미 시장에만 독점 배정되며 유종의 미를 거둘 예정이다.
BMW 알피나는 올해 말까지는 새로운 브랜드를 대중에게 알리는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하고, 2027년 초부터 오프라인 플랫폼을 통해 고객과의 접점을 본격적으로 넓힌다.
2027년 하반기에는 전국 7곳에 BMW 알피나 전시 공간을 개장한다. 별도의 독립 전시장을 신축하는 대신, 기존 BMW 전시장 내에 하이엔드 라운지 형태의 전용 존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전시 공간이 정비된 직후인 2027년 말 알피나 7을 시작으로, 2028년 초 알피나 X7 등 신모델을 순차적으로 투입한다는 그림이다.
한국 시장의 흥행 조건은 꽤 낙관적이다. 올 상반기 7시리즈의 국내 판매량은 3,077대로, 전기차 EQS를 포함한 벤츠 S클래스보다 1,236대나 앞섰다. 전체 시장 규모의 변화도 긍정적인 지표다. 국내 프리미엄 대형 모델 판매는 2014년 약 1만 2,000대에서 2025년 약 3만 4,000대로 2.8배가량 팽창했다. 더욱 주목할 점은 같은 기간 초고가 럭셔리 브랜드의 판매가 452대에서 2,605대로 무려 5.8배나 폭증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극강의 희소성'을 갈망하는 수요가 훨씬 가파르게 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한국 시장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브랜드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게 될 지 확인하는 무대가 될 것이다. 아시아 최초의 커뮤니티 행사가 서울에서 열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첫 양산차가 당도할 2027년 말까지, 브랜드는 약 1년 반의 공백기를 오직 '이야기'와 '기대감'만으로 버텨내야 한다. 알피나에게 앞으로의 시간은 숙성되는 기간인 동시에, 브랜드의 서사를 완벽하게 직조할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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