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웨이가 아닌 방콕 한복판, 모델이 아니라 호텔 하나가 패션계에 데뷔했다. 2012년 문을 연 '소 방콕(SO/ Bangkok)'이다. '소(SO/)'는 아코르(Accor)의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호텔 브랜드로, 처음부터 패션에서 영감을 길어 올린 것으로 이름났다.
한 명의 예술가가 키를 잡고 호텔 하나를 통째로 작품으로 빚어낸다. 소 방콕이 손을 잡은 이는 파리의 오트쿠튀르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라크루아(Christian Lacroix)'다. 드높은 빌딩 숲과 울창한 룸피니 공원(Lumphini Park)이라는 녹지 사이, 그 자체로 돋보이는 패션 호텔이 우뚝 솟았다.
방콕 빌딩들 사이 소 방콕의 숨은 볼거리
소 방콕은 30층 높이로 룸피니 공원 바로 앞에 서 있다. 들어서자마자 놀라는 건 맞닥뜨린 로비가 메인 로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1층에서 만나는 건 스트리트 로비다. 택시를 부르고 짐을 받는 용도로 사용되며 소 방콕의 첫인상을 책임지는 공간이다. 메인 로비는 9층에 있다. 체크인과 체크아웃도 여기서 이뤄진다. 층고가 높아 통창 너머로 곧게 뻗은 도시 풍경과 울창한 룸피니 공원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온다.
하늘과 빌딩과 초록, 세 가지 색이 겹쳐진 이 풍경은 수영장인 인피니티풀과 객실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인피니티풀은 투숙객이라면 추가 요금 없이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쓸 수 있다. 바람이 잔잔한 맑은 날, 수면에 방콕 시내의 스카이라인이 통째로 비치면, 수영이라기보다 비행에 가까운 기분이 든다.
객실은 로비보다 더 위층에 몰려 있어, 9층에서 본 전망은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걸 곧 알게 된다. 소 방콕이 가진 가장 드넓은 시야가 궁금하다면 최상층 루프톱 바로 올라가면 된다.
"높은 층을 가진 호텔이면 전망은 다 비슷한 것 아닌가." 그렇게 반문한다면, 이제 객실을 이야기할 차례라는 뜻이다.
소 방콕이 내세우는 콘셉트는 '디자인 호텔'이다. 오행(五行·금속, 나무, 흙, 물, 불)에서 영감을 받아 층마다 테마가 다르고, 그렇게 나뉜 다섯 갈래에 237개의 객실과 스위트룸이 담겼다. 규모는 38평방미터부터 138평방미터까지. 최첨단 시설 아래 누구에게나 익숙한 다섯 원소가 디자인 언어로 드러나니, 친근한 분위기를 더한다. 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5인과 파리의 라크루아가 함께 완성한 결과다.
라크루아의 손길이 가장 짙게 밴 곳은 이그제큐티브 라운지 '클럽 시그니처(Club Signature)'다. 공간 전체가 한 벌의 옷처럼 꾸며져 있고, 놓인 예술 작품 중 일부는 실제로 구매할 수 있다. 소 클럽 룸(SO/ Club Room)이나 스위트룸을 예약하면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조식은 물론 종일 다과가 제공되고, 시간대에 따라 애프터눈 티와 이브닝 칵테일까지 이어지니 하루를 통째로 호텔에서 보낼 작정이라면 탁월한 선택지다.
여기서 또 눈길을 사로잡는 건 직원들의 옷이다. 대개 호텔 유니폼이란 공간에 스며드는 소리 없는 정갈함인데, 소 방콕은 정반대다. 컬러풀한 패턴의 실크로 지은 상의와 하의, 허리띠를 제각각 믹스매치했다. 프랑스와 태국의 스타일을 겹쳐 놓은 디자인이라고. 직원 한 명에게 여러 벌이 지급돼, 출근할 때마다 다른 옷을 골라 입을 수 있다. 오래 머물러도 매일 다른 얼굴의 환영 인사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공원과 랜드마크 사이 자리잡은 위치
소 방콕은 방콕을 여행하려는 이에게 꽤 매력적인 위치에 있다. MRT 룸피니(MRT Lumphini)역은 도보 3~5분, BTS 스카이트레인(BTS Skytrain)역은 도보 15분 거리다. 수완나품 국제공항(Suvarnabhumi International Airport)과 돈므앙 국제공항(Don Mueang International Airport)에서는 택시로 35~45분이 소요된다.
굳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좋다. 호캉스를 즐기거나 주변만 둘러봐도 하루가 알차다. 일단 룸피니 공원이 코앞이다. 사실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품기엔 너무 큰 공간이다. 과거 태국 왕실의 소유지였던 이곳은 다양한 식물과 동물, 그리고 널찍한 호수를 품고 있다. 동시에 모든 사람을 품는 곳이기도 하다.
장애인 편의시설과 놀이터, 노인 클럽, 집 없는 아이를 위한 보호소, 도서관, 청소년 센터가 공원 안에 함께 있다. 여기서 꼭 해야 할 일은 두 가지. 물왕도마뱀 감상과 로컬들 틈에 섞여 즐기는 러닝이다. 물왕도마뱀은 인적 드문 물가에 많다. 1박2일을 헤맨 끝에 MRT 실롬(Si Lom)역 근처 물가에서 겨우 마주쳤다.
도보 10분 안쪽으로 호텔 양옆에는 각각 두싯 센트럴 파크(Dusit Central Park)와 원 방콕(One Bangkok)이 있다. 두싯 센트럴 파크는 옛 두싯 타니(Dusit Thani) 호텔 자리에 새로 들어선 방락(Bang Rak) 지구의 랜드마크다. 호텔과 아파트, 사무실 세 동으로 이뤄진 복합단지인데, 여행자가 가장 즐기는 건 쇼핑과 무료 산책로, 그리고 옥상 공원이다.
룸피니 공원 바로 앞 호텔에 묵지 않아도 방콕의 스카이라인을 무료로 눈에 담을 수 있다. 원 방콕은 2024년 말 문을 연 신상 대형 복합단지다. 쇼핑몰과 주거시설, 사무실, 녹지, 커뮤니티 시설이 한데 모였고 공연과 문화 행사도 수시로 열린다. 9월27일에는 동남아시아 최초로 산리오(Sanrio) 캐릭터와 함께 달리는 하프 마라톤이 큰 행사로 한창 준비 중이다.
투숙에 재미를 더하는 미식 경험
화려한 인테리어만큼이나 다이닝 경험도 다채롭다. 먼저 7층의 ‘레드 오븐(Red Oven)’은 이름 그대로 강렬한 빨간색 인테리어가 첫인상에 남는 공간이다. 이름의 출처는 주방에 놓인 붉은 몰테니(Molteni) 오븐이라고. 태국 음식부터 이탈리아 요리, 해산물과 초밥까지 세계 각국의 메뉴를 조식부터 저녁까지 종일 즐길 수 있다.
9개 코너로 나뉜 구성은 흡사 길거리 시장에 들어선 듯하다. 라이브 쿠킹 스테이션에서는 원하는 방식의 달걀 요리를 주문할 수 있고, 생과일을 눈앞에서 갈아 주는 스무디도 청할 수 있다. 창밖으로는 사톤 로드와 룸피니 공원이 펼쳐진다. 시그니처 클럽 라운지 이용객은 조식을 이곳에서도 해결할 수 있다.
조금 더 고요한 쪽을 원한다면 ‘아이리스 & 와일드 아이리스(IRIS & WILD IRIS)’를 추천한다. 실내와 루프톱을 모두 갖췄고, 매일 오후 5시부터 자정까지 문을 열어 석양부터 야경까지 통째로 붙잡기 좋다. 파스타와 스테이크, 피자 같은 메뉴에 더해 소 방콕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시그니처 칵테일과 목테일도 준비돼 있다.
글·사진 남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