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의 키워드로 돌아보는 배드랜즈
01 Bad
알버타주 남부에 위치한 배드랜즈(Badlands)는 이름처럼 ‘나쁜 땅’이다. 캘거리에서 차로 단 1시간 30분. 광활한 프레리(Prairie, 대초원)가 끝나는 지점부터 배드랜즈다. ‘나쁜 땅’이라는 이름은 프랑스의 탐험가들이 이 지형을 가리켜 ‘지나가기 힘든 땅’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 것이다. 과거에는 계곡과 협곡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탓에 말과 마차가 이동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02 Weather
사실 배드랜즈의 척박한 풍경이 원래의 모습은 아니다. 7,500만 년 전, 배드랜즈는 아열대 기후를 띄는 낙원이었다. 무화과나무와 목련 숲이 우거진 해안 평원을 공룡들이 누볐고, 동쪽으로는 따뜻한 내해(內海)가 펼쳐져 있었다. 완벽한 열대우림은 아니지만, 기후가 워낙 따뜻하고 숲이 우거져 대형 공룡들이 살기 좋은 조건이었다고 한다. 하늘을 가득 메운 익룡도 장관이었겠다. 현재 배드랜즈에는 나무라고 볼 만한 것이 거의 없는데, 바다의 후퇴와 지각 변동, 수천만 년에 걸친 침식이 지금의 경이로운 협곡 지형을 만든 것이다.
03 Dinosaur
배드랜즈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후기 백악기 공룡 화석 산지 중 한 곳이다. 지금까지 발굴된 공룡 골격만 300여 점이 넘으며, 세계 30개 이상의 주요 박물관에 전시하는 공룡 화석의 상당수가 배드랜즈 출신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매년 수천 점의 새로운 표본이 침식을 통해 지표면으로 드러나고 있다. 전 세계 고생물학자들이 매해 이곳을 찾는 이유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룡인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의 화석도 이 지역에서 다수 발견됐으며, 친척뻘인 알베르토사우루스의 화석도 구경할 수 있다. 참고로 알베르토사우루스의 이름은 ‘알버타주’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04 Time
배드랜즈에서의 시간은 보이지 않는 개념이 아니다. 절벽의 색과 층을 통해 눈으로 직접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층이 곧 시계인 셈이다. 암벽에 새겨진 줄무늬 하나하나가 수백만 년의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사암, 혈암, 석탄층이 만들어 내는 다채로운 색상은, 지금껏 지구가 직접 써 내려간 연대기나 다름없다. 인간의 역사가 수천 년이라면, 배드랜즈의 시간은 수천만 년 단위로
흐른다.
05 Hoodoos
배드랜즈의 상징. 후두스는 지금으로부터 약 7,000만 년 전 형성된 백악기 퇴적층이 바람과 물에 의해 수백만 년에 걸쳐 깎여 만들어진 버섯 모양의 암석 기둥이다. 높이 5~7m. 꼭대기의 단단한 사암 ‘모자(캡스톤)’가 무른 기둥을 보호하며 형태를 유지하는데, 이 모자가 떨어지는 순간 그대로 소멸한다.
06 Gumbo
배드랜즈에서 비를 만났다면, 최대한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추천한다. 겉으로 바싹 말라 보이는 배드랜즈의 흙 밑에는 미끄러운 점토층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 점토층은 6,500만 년 전 화산재가 변성된 벤토나이트 점토로, 이것을 ‘검보(Gumbo)’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검보가 비에 젖게 되면 원래 부피의 최대 8배까지 팽창한다.
07 Milky Way
배드랜즈의 밤은 낮보다 더욱 비현실적이다. 인공조명이 거의 없는 협곡 위로 은하수가 쏟아지고, 검은 실루엣의 후두스 뒤로 오로라가 춤춘다. 거대한 천문관이나 다름없다. 맑은 날에는 육안으로도 은하수의 별무리를 선명하게 볼 수 있으며, 운이 좋다면 북쪽 하늘을 물들이는 오로라까지 만나 볼 수 있다. 7,500만 년 전 공룡들이 거닐던 땅 위에서 우주의 시간을 올려다보는 경험은 배드랜즈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Drumheller & Royal Tyrrell Museum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곳,
드럼헬러 & 로얄 티렐 박물관
캘거리에서 북동쪽으로 약 140km, 차로 단 1시간 30분. 개인적으로 캘거리 일정 중 하루쯤은 반드시 배드랜즈에 투자하는 것을 추천한다. 도심을 벗어나 고속도로에 오르면 어느 순간 풍경이 바뀌어 가는 지점이 등장한다. 캐나다 대평원의 끝없는 밀밭이 희미해지며, 땅의 기운이 변화하는 그 지점. 레드 디어 강(Red Deer River)이 수백만 년에 걸쳐 깎아 낸 협곡, 배드랜즈에 닿은 것이다. 여전히 알버타주 안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캘거리와는 전혀 다른 행성에 발을 디딘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드럼헬러는 그 협곡의 가운데에 자리한 소도시다. 인구 8,000명 남짓의 작은 마을이 캐나다 공룡 연구의 중심이 된 것은, 이 땅에 묻혀 있는 지구의 역사 덕분이다. 드럼헬러 계곡 일대는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공룡 화석 산지 중 한 곳이다. 그래서 이곳을 두고 ‘세계 공룡의 수도’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마을 입구에서 관광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높이 26m의 거대 티라노사우르스 렉스 조형물이다. 사실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입 안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공룡 전망대다. 다만 2025년 드럼헬러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2029년 임대 계약 종료 후 철거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참고로 ‘드럼헬러’라는 지명은 공룡이나 배드랜즈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1880년대 이 지역에 정착한 사업가이자 목장주였던 사무엘 드럼헬러(Samuel Drumheller)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는 알버타 초기 개척 시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만약 드럼헬러에서 단 한 곳만을 방문해야 한다면, 주저 없이 ‘로얄 티렐 박물관’을 꼽겠다. 세계적인 공룡 화석 연구기관이자 세계 최고 수준의 고생물 박물관이 배드랜즈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은,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1985년에 개관한 로얄 티렐 박물관은 현재 16만 점 이상의 고생물 표본을 소장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중 대다수가 배드랜즈에서 발굴된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박물관의 이름은 1884년 이 일대에서 약 7,000만 년 전 공룡의 두개골을 발견한 지질학자, 조셉 티렐(Joseph Tyrrell)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참고로 그가 찾아낸 두개골은 훗날 ‘알버타에서 발견된 도마뱀’이라는 뜻인, 알베르토사우루스(Albertosaurus)라고 명명되었다. 여기서 사우르스(Sauros)는 고대 그리스어로 도마뱀을 뜻한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고생물학자들은 공룡을 도마뱀보다 새에 더 가까운 존재로 분류한다. 공룡 알의 일부가 현대 조류와 비슷하고, 깃털이 달린 공룡 화석도 다수 발견되었으며, 결론적으로 공룡과 새의 골격 구조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박물관 내부로 들어서면 전시의 밀도에 압도된다. 특히 각 화석으로 완성해 놓은 40여 구의 완벽한 공룡 골격은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황홀하게 느껴질 정도다. 전시 동선 내 수장고를 통해 실제 연구자들이 발굴한 화석을 처리하는 과정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볼 수 있다. 박물관 외부로는 배드랜즈 트레일이 연결되어 있다. 이곳을 걸어 언덕을 오르면 전시실에서 본 지층과 똑같은 암석을 바로 발밑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박물관 관람 팁을 공유하자면, 전시실 사이사이에 서 있는 스태프들에게 질문을 마음껏 던져 보자. 그들의 주머니에는 진짜 공룡 이빨 화석이 들어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명함일 것이다.
Bernie & The Boys
드럼헬러의 명물, 버니 & 더 보이즈
눈에 띄는 간판도, 요란한 조명도 없다. 그럼에도 버니 & 더 보이즈는 가장 드럼헬러다운 레스토랑이다. 이곳의 시그니처는 단연 ‘매머드 버거(Mammoth Burger)’. 100% 알버타산 소고기 680g(24oz)으로 만든 거대한 패티를 자랑한다. 햄버거라기보다 하나의 이벤트에 가깝다. 성인 4명이 달려들어도 쉽게 끝내기 어려운 크기. 무려 75가지가 넘는 수제 밀크셰이크 메뉴판 역시 이곳의 명물.
Horseshoe Canyon
말굽 모양의 협곡, 홀슈 캐년
홀슈 캐년은 배드랜즈에 형성된 수많은 협곡 중에서도 그 규모와 색감이 단연 압도적이다. 말굽(Horseshoe) 모양으로 휘어진 협곡의 최대 깊이는 100m, 길이는 각 방향으로 최대 5km에 달한다. 드럼헬러에서 차를 타고 서쪽으로 15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어 접근성도 좋다.
차에서 내려 협곡의 가장자리에 서는 순간, 발밑으로 펼쳐지는 장면에 말문이 막힌다. 드라마에서는 이곳을 배경으로 차무희와 주호진의 로맨스 장면을 촬영했다. 히로와 함께한 로맨스 트립을 촬영한 장소도 홀슈 캐년이다. 협곡의 벽면에는 지층의 색이 띠처럼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흰색은 사암(모래), 짙은 갈색은 이암(진흙), 검은색은 석탄층, 붉은색은 산화철이다. 참고로 이곳은 강물로 깎인 그랜드 캐니언 같은 협곡이 아니라, 침식으로 형성된 지형이다. 지금으로부터 7,000만 년 전, 이 지역은 공룡이 살던 해안 평야와 습지였고, 강이 해안으로 운반한 진흙, 모래, 화산재가 계속 쌓여 두꺼운 퇴적층을 이루었다. 이후 빙하기를 거치며 이곳에 거대한 빙하가 형성되었고, 빙하기 이후 녹아내린 빙하수가 지표를 따라 흐르며 연약한 퇴적암층을 깎아 내며 형성된 것이다. 단단한 층은 남고, 약한 층은 빠르게 침식돼 오늘날의 복잡한 계곡과 첨탑 지형이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상 이 지형은 비와 바람에 의해 여전히 조금씩 그 모습을 바꾸고 있다.
홀슈 캐년 위 전망대에서 한눈에 내려다보는 것도 좋지만, 시간이 된다면 협곡 아래로 내려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완만한 트레일을 따라 산책에 나서면 조금 더 가까이 지층의 결을 바라볼 수 있다. 비가 온 직후나 땅이 젖어 있을 때는 암석이 극도로 미끄러워지므로 주의가 단단히 필요하다.
Willow Creek Hoodoos
배드랜즈의 상징, 윌로우 크릭 후두스
배드랜즈에서 가장 기묘한 풍경을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후두스다. 후두스(Hoodoos)는 단단한 암석 덩어리가 모자처럼 얹힌 채 버섯 형태로 솟아오른 기암괴석을 뜻한다. 빗물과 바람이 기둥 아래쪽의 부드러운 사암을 먼저 깎아 내면서 만들어진다.
드럼헬러 외곽에 위치한 ‘윌로우 크릭’ 일대에 모여 있는 후두스들은 높이가 5~7m에 달한다. 참고로 ‘윌로우 크릭’은 버드나무가 자라는 개울을 의미하는데, 이 일대 옆을 흐르는 작은 하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후두스의 머리 부분, 그러니까 기둥 위에 얹혀 있는 부분을 ‘캡스톤(Capstone)’이라고 부르는데, 이 캡스톤은 약 40% 정도로 방해석(Calcite, 탄산염 광물)이 함유되어 있어 사암으로 이루어진 기둥보다 훨씬 더 단단하다.
현재 이 기둥들은 연간 최대 1cm씩 침식되고 있다. 지질 구조물 중 비교적 빠른 속도로 침식되어 가고 있어, 사실상 후두스는 지구 역사의 아주 찰나에만 존재하는 지형이라 봐도 무방하다. 과거 이곳의 원주민인 크리족(Cree)과 블랙풋족(Blackfoot)은 후두스에 인간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단다. 밤이 되면 돌로 굳어진 이들이 살아 움직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실제로 특정 각도에서 바라보면 사람의 형상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다. 탐방로는 무료이며, 후두 트레일을 따라 걸으며 감상할 수 있다.
글·사진 강화송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