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츠칼튼 오사카에서 찾은 일본의 클래식.
오사카의 클래식 호텔
오사카는 소란스럽다. 도톤보리 근처에서는 어깨를 부딪히지 않고는 걸을 수가 없고, 구로몬 시장이나 난바역 주변으로는 걷는다기보다 인파에 떠내려가는 식이다. 비교적 조용했던 ‘우메다(Umeda)’ 역시 최근 들어 북적이고 있다. 우메다는 오사카역과 오피스 타워가 밀집한 동네인데, 관광지라기보다 생활 구역에 가까웠다. 다만 최근 반세기 넘게 방치되어 온 옛 화물역 부지에 ‘그랜드 그린 오사카(Grand Green Osaka)’가 들어서며, 이젠 우메다마저도 여행객으로 붐벼 가는 실정이다. 우메다에 새롭게 들어선 우메키타 공원(Umekita Park)을 중심으로 2027년까지, 총 4만5,000m2 규모의 거대 녹지 공간과 상업시설이 추가로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소란스러워질 일만 남은 것이다. 그 소란의 정중앙에서, 여전히 고요의 가치를 지키고 있는 호텔 한 곳을 찾았다. 리츠칼튼 오사카.
리츠칼튼 오사카는 1997년에 개관한 일본 최초의 리츠칼튼 호텔이다. 니시우메다 지구의 중앙에 자리한 이곳의 외형은 영락없는 일본의 호텔이지만, 시설 그 어느 구석에서도 일본의 문화를 내세우지 않는다. 리츠칼튼 오사카는 18세기 영국, 조지안(Georgian) 양식의 저택을 콘셉트로 설계했다. 조지안 양식은 화려함보다 균형과 비례를 중시한다. 좌우 대칭의 구조, 높은 천장, 크리스털 샹들리에, 고전적인 몰딩. 누군가를 압도하기보다, 품위 있는 일상을 위한 공간을 지향한다. 로비는 대저택의 응접실처럼 꾸몄고, 복도는 갤러리로 삼았다. 단순한 호텔 투숙객이 아니라 저택에 초대받은 귀빈이 되는 경험. 이것이 리츠칼튼 오사카가 설계한 투숙의 방향이다. 호텔의 입구, 검은색 모자를 푹 눌러쓴 도어맨의 환대가 이 모든 이야기의 방점이다.
리츠칼튼 오사카는 50개의 스위트룸, 2개의 재패니즈 스위트, 2개의 리츠칼튼 스위트를 포함해 총 291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다. 평균 객실 면적이 51m2라, 일본치고는 비교적 넉넉한 크기를 자랑한다. 이 호텔은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버블경제가 한창이던 시절에 계획된 곳이다. 다만 1990년에 들어 버블이 붕괴되고,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에 접어든 뒤인 1997년에서야 개관했다. 당시의 경제 상황과 맞물려 호텔 운영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리츠칼튼 오사카는 일본 럭셔리 호텔 시장의 기준을 새롭게 세우며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개관 이후 국제회의와 외교 행사, 기업 접견의 장소로 자주 채택되면서 ‘오사카의 응접실’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참고로 리츠칼튼 오사카는 현재 오사카 유일의 포브스 트래블 가이드 5성 호텔이기도 하다.
호텔은 유럽에서 직접 공수한 450여 점 이상의 미술품과 앤티크 가구가 가득 채워져 있다. 로비 바닥에 깔린 러그는 페르시아산이고, 그 위로 달린 샹들리에는 체코산 크리스털이다. 대리석 바닥 역시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제품이고, 벽면 가득 놓여 있는 앤티크 캐비닛 안에는 세라믹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로비 한편으로 대리석 벽난로가 놓여 있어 따뜻하고도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호텔 구석마다 놓여 있는 의자 역시 유럽에서 건너온 빈티지 제품들이다. 이외에도 ‘헨리 존 이엔드 킹(Henry John Yeened King), 찰스 헌트(Charles Hunt), 윌리엄 애슈퍼드(William Ashford)’ 등 영국 작가와 벨기에 출신인 ‘프랑수아 베르하이덴(Francois Veryeden)’을 비롯한 18~19세기 유럽 작가들의 작품이 벽면 가득 걸려 있다. 그중 가장 고가의 작품은 1층 체크인 데스크 뒤편에 걸려 있는 헤르만 코흐(Hermann Koch)의 ‘The Surprise Guest(뜻밖의 방문객)’라고 한다. 헤르만 코흐는 19세기 독일 출신 화가다.
이 모든 예술작품과 어우러지는 호텔리어의 헌신적인 태도 역시 인상 깊다. 객실로 오르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그녀는 문이 닫힐 때까지 고개를 숙여 주었으며, 비가 오기 시작하면 슬며시 나타나 우산을 건네기도 했다. 일본의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 드러내지 않는 환대)’가 리츠칼튼의 서비스 철학과 만나 완성된 환대다. 서구적인 하드웨어와 지극히 일본다운 소프트웨어를 적절히 조화시킨 덕에, 리츠칼튼 오사카는 늦은 밤까지 현지인들로 가득 붐빈다.
지금 여행객으로 넘쳐나는 우메다 곳곳에는 신상 호텔들이 쏟아지고 있다. 높은 빌딩에 들어선 새로운 호텔들이 자본의 압도감을 내세우는 현재, 리츠칼튼 오사카는 시간을 반대로 거슬러 올라 그 시절 일본이 추구했던 고혹함을 유지하는 중이다. 아마도 이 지점에, 로컬들의 꾸준한 사랑이 녹아든 듯하다. 리츠칼튼 오사카는 세계 어느 도시의 리츠칼튼과 비교해도 그 결이 다르다. 우메다가 점차 소란스러워진다 한들, 이곳만큼은 여전할 것 같다는 어떤 강한 확신이 드는 곳. 클래식 호텔은 오래된 곳이 아니라, 끝내 변하지 않는 곳이다.
Hanagatami
꽃바구니, 하나가타미
리츠칼튼 오사카는 총 6곳의 레스토랑 & 바를 품고 있다. 그중 ‘하나가타미(花筐)’에서는 오사카의 풍부한 식문화에 기반해 5가지 종류의 일식을 각기 선보이는 레스토랑이다. 스시(초밥), 덴푸라(튀김), 테판야키(철판구이), 스미비야키(숯불구이), 가이세키(연회 요리). 모든 공간은 각 파트별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 사실상 각기 다른 업장이라 봐도 무방하다. 하나가타미를 직역하면 ‘꽃바구니’란 의미를 지니는데, 이는 요리 한 접시에 계절과 일본의 정서를 담아내겠다는 선언과도 같은 이름이다. 레스토랑 정중앙에는 일본식 정원이 마련되어 있다.
La Baie
프랑스 해변, 라 베
‘라 베’는 더 리츠칼튼 오사카의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프랑스어로 ‘만’을 의미하는 이름처럼 주로 해산물 요리를 선보이며, 전통 프렌치 기법을 바탕으로 독창적이고 아름답게 완성된 디시를 선보인다. <미쉐린 가이드 교토·오사카 2026>에서 1스타를 획득했으며, 이는 통산 15번째이자 9년 연속 선정이다. 프랑스에서 엄선한 식재료뿐 아니라, 일본 각지의 제철 식재료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이곳만의 독창적인 미식을 경험할 수 있다. 라 베 내부에는 ‘리델룸’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프리미엄 와인잔 브랜드인 리델(Riedel)의 이름을 내건 프라이빗 다이닝룸인데, 일본 내에서 리델이 정식으로 이름을 붙인 유일한 공간이다.
Editor’s Pick
Tower Knives Osaka
신세카이에서 찾은 일본의 맛
일본이 추구하는 미식은 언제나 덜어 내는 쪽이다. 맛을 덧입히기보다,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을 극대화하는 방향. 이런 음식에서는 조리 도구가 재료의 운명을 가른다. 특히 칼이 그렇다. 재료를 어떻게 자르느냐에 따라 단면의 결이 달라지고, 그 결이 맛을 머금는 방식까지 좌우한다. 그런 의미에서 칼은 일본 요리에서 소금과 다를 바 없는, 중요한 존재다.
일본 칼의 정수를 만나기에 좋은 동네가 오사카 남부의 신세카이(新世界)다. 이 동네는 이름 그대로 ‘새로운 세계’를 내세우며 1912년 문을 열었는데 개발 당시 북쪽은 뉴욕을, 남쪽은 파리를 본떠 설계했다. 신세카이의 랜드마크인 츠텐카쿠는 놀랍게도 에펠탑에서 영감을 받아 세운 전망대다. 하지만 100년이 넘게 흐른 지금 이 거리를 채우는 건 첨단이 아니라 고소한 쿠시카츠(串カツ, 오사카식 꼬치 튀김) 냄새와 호객꾼들의 목소리뿐이다. 오사카에서 가장 서민적인 먹자골목으로 남은 이 동네 한복판에, 일본 요리 문화의 뿌리를 엿볼 수 있는 칼 전문점 한 곳이 자리한다. ‘타워 나이브즈 오사카(Tower Knives Osaka)’다.
매장으로 들어서면 진열대 가득 수백 자루의 칼이 놓여 있다. 이곳에서 다루는 칼 대부분은 사카이(堺)에서 만들어진다. 사카이는 오사카 남부에 있는 도시인데, 일본 3대 식칼 산지로 꼽히며 프로 요리사용 식칼 시장에서는 일본 국내 점유율이 90%가 넘어갈 정도로 압도적인 칼 산지다. 사카이의 칼 제작 역사는 6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세기 도검공을 조상으로 하는 식칼 대장장이 집단이 지금의 사카이로 이주한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재미있는 점은 칼 생산이 확대된 계기가 16세기 포르투갈에서 일본으로 철포와 담배가 전해지면서, 담배칼을 제조하면서부터라는 점이다. 담배잎을 자르기 위해 한쪽 면만 갈아 세우는 외날 구조의 칼을 만들었고, 그것이 오늘날 사카이 칼의 정체성이 됐다.
일본 칼은 크게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 ‘데바(出刃包丁)’는 두툼하고 무거운 칼등을 지녀 주로 생선을 손질하는 데 쓰인다. 야나기바(柳刃包丁)는 길고 날렵해서 사시미를 한 번의 움직임으로 매끄럽게 저며 낸다. 우스바(薄刃包丁)는 무나 오이를 얇게 돌려 깎거나 실처럼 가늘게 채 써는 작업에 쓰이는 채소 전용 칼이다. 번외로 ‘산토쿠(三包丁)’는 좁은 주방에서 이 3가지의 역할을 겸할 수 있게 만든 가정용 칼이다.
좋은 칼을 고르는 것만큼 칼을 제대로 가는 것도 중요하다. 무뎌진 칼날은 오히려 날 끝이 매끈하다. 제대로 갈아 낸 칼끝은 상어 이빨처럼 촘촘한 톱니가 생긴다. 그 톱니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하지만, 갈아 세운다는 행위 자체가 결국 날 끝을 균일하게 다듬는 게 아니라 일정한 요철을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칼은 내리찍듯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밀어내듯 썰어야 한다. 채소의 단면이 눌리고 찢기면 그 틈으로 재료 본연의 즙과 맛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화려한 플레이팅도, 복잡한 소스도 필요 없다. 재료 그 자체로 완성되는 일본의 맛. 그 시작에는 언제나 잘 벼려진 칼 한 자루가 있다.
글·사진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