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우리 대한민국의 인공지능(AI) 도입률이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현재 약 6%인 한국의 AI 도입률은 10년 뒤 50%까지 상승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48%, 영국 47%보다도 높은 수치다. 이 전망대로라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AI를 일상과 산업 현장에 받아들이는 나라가 된다.
그러나 이 숫자를 무조건 반길 수만은 없다. AI 도입률 세계 1위가 국민 행복 세계 1위를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AI가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더 적은 비용으로 생산하게 하더라도 그 성과가 소수 기업과 자본 소유자에게 집중된다면, 국민 다수에게 돌아오는 것은 풍요가 아니라 실업과 불안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AI가 만들어 낼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갈림길에 서 있다.
AI가 가져올 유토피아적 미래
먼저 낙관적인 미래를 상상해 보자.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높은 디지털 인프라와 교육 수준, 빠른 기술 수용성을 갖춘 나라다. 정부와 기업이 AI를 제대로 활용한다면 저출산·고령화로 떨어지고 있는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
특히 우리 한국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부가가치 비중은 28.7%에 이른다.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금융·정보통신·전문서비스업보다 제조업의 영향력이 크다. 그동안 생성형 AI는 주로 보고서 작성, 번역, 상담, 소프트웨어 개발 등 사무직 업무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앞으로 로봇이 보고 듣고 판단하며 실제 공간에서 움직이는 ‘피지컬 AI’가 발전하면 제조 현장도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위험한 용접이나 도장 작업, 무거운 부품 운반, 고온·고압 환경에서의 검사처럼 사람이 하기 어렵거나 위험한 업무를 로봇이 맡을 수 있다. 숙련공의 작업 방식을 AI가 학습하면 퇴직과 함께 사라질 위기에 놓인 기술도 보존할 수 있다. 생산 설비의 이상을 미리 감지해 사고와 불량을 줄이고, 에너지 사용량을 최적화해 탄소 배출과 제조 비용을 낮출 수도 있다.
농촌과 산촌에서도 AI는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고령 농민을 대신해 자율주행 농기계가 밭을 갈고, 드론과 센서가 병충해와 토양 상태를 살핀다. 의료 인력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AI 진단 보조와 원격의료 기술이 건강 격차를 줄일 수 있다. 혼자 사는 노인에게는 돌봄 로봇과 AI 건강관리 서비스가 위급 상황을 감지하고 일상생활을 지원할 수 있다.
교육도 크게 바뀐다. 모든 학생이 자신의 수준과 학습 속도에 맞춘 AI 개인교사를 이용한다면, 부모의 소득과 거주 지역에 따른 교육 격차를 줄일 가능성이 생긴다. 장애인과 외국인, 디지털 취약계층도 음성·번역·시각보조 기술을 통해 사회 참여의 기회를 넓힐 수 있다.
AI가 반복적이고 위험한 일을 맡고 인간이 돌봄, 창작, 관계 형성, 공동체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면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꿈꿔 온 풍요로운 사회에 가까워진다. 생산성 향상으로 노동시간은 줄어들고, 기본적인 생활은 안정되며,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노동을 넘어 의미 있는 일을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이 AI가 열어 줄 수 있는 유토피아다.
생산성은 오르는데 고용은 줄어드는 역설
그러나 현재 나타나는 징후는 낙관만을 허용하지 않는다. 기사에 따르면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 취업자 수는 2025년 4분기부터 3분기 연속 감소했다. 올해 2분기에는 전년 동기보다 8만8천 명 줄었다. 제조업 취업자도 8개 분기 연속 감소했고, 올해 2분기에는 9만7천 명이 줄었다.
물론 이 감소를 모두 AI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경기 둔화와 산업구조 변화, 기업 투자 위축, 인구 변화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AI가 기존의 고용 감소를 더욱 빠르게 만들 가능성은 분명하다.
기업은 AI를 도입할 때 가장 먼저 비용 절감 효과를 계산한다. 열 사람이 하던 일을 AI와 세 사람이 할 수 있다면 기업으로서는 인력을 줄일 유인이 생긴다. 특히 경력자의 업무를 보조하는 AI가 발전할수록 신입사원이 담당하던 자료 조사, 문서 정리, 기초 분석, 번역, 고객 응대와 같은 업무부터 자동화된다.
여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신입사원의 단순 업무는 비효율적인 비용만이 아니라 숙련자로 성장하기 위한 학습 과정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전략을 세우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전문가는 없다. 자료를 정리하고 선배의 업무를 보조하며 시행착오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판단력과 책임감을 배운다.
그런데 기업이 “경력자 한 명과 AI면 충분하다”며 신입 채용을 줄이면 청년들은 노동시장에 들어갈 첫 번째 사다리를 잃는다. 기업은 경력자만 원하지만, 어느 기업도 신입을 키우지 않는다면 미래의 경력자는 어디에서 생기겠는가. AI가 단순 업무를 없애는 동시에 숙련자가 탄생하는 통로까지 막아 버리는 ‘경력 형성의 역설’이 발생한다.
우리 한국형 AI 디스토피아의 모습
가장 우려되는 디스토피아는 일자리가 완전히 사라지는 사회보다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의 간격이 극단적으로 벌어지는 사회다.
소수의 AI 개발자와 플랫폼 기업, 자본 소유자는 막대한 부를 얻는다. 반면 다수의 노동자는 AI의 지시를 받아 단편적인 업무를 수행하거나 플랫폼의 평가 알고리즘에 종속된다. 정규직은 줄고 초단기 계약, 건별 노동, 데이터 가공과 로봇 보조 같은 불안정한 일자리가 늘어난다.
제조 현장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이 생산량을 크게 늘리지만,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와 지역 주민에게 그 이익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생산성 증가는 공동체의 쇠퇴와 함께 진행된다. 공장은 더 똑똑해지지만 공장 주변의 상점과 학교, 마을은 사람이 빠져나가 황폐해지는 모순이 생긴다.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격차도 커진다. 단순히 AI 사용법을 아는 정도의 차이가 아니다. 좋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AI의 답을 검증하며 업무 과정을 재설계할 수 있는 사람은 생산성을 몇 배로 높인다. 반면 AI가 내놓은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판단력을 잃고 저임금 업무로 밀려날 수 있다.
감시사회가 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기업과 정부가 생산성과 안전을 이유로 노동자의 움직임, 표정, 대화, 작업 속도와 건강 상태까지 실시간으로 수집한다면 AI는 인간을 돕는 도구가 아니라 통제하는 기술이 된다. 채용과 승진, 대출과 보험, 복지 대상 선정까지 알고리즘이 결정하면서도 판단 기준은 공개되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은 기계가 내린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사회 전체가 인간의 가치를 생산성으로만 평가하는 것이다. AI보다 보고서를 늦게 쓰고 로봇보다 물건을 적게 나른다는 이유로 인간을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한다면, 우리는 기술적으로는 발전하지만 인간적으로는 퇴보한 사회에 도달한다.
핵심은 AI 도입률이 아니라 이익의 분배다
AI 시대의 본질적인 질문은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얼마나 없앨 것인가?”에만 있지 않다. 더 중요한 질문은 “AI로 만들어진 부와 여유를 누가 소유할 것인가?”다.
생산성이 높아져도 노동시간은 그대로이고 임금은 줄어든다면 노동자에게 AI는 축복이 아니다. 반대로 생산성 증가분을 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재교육, 사회안전망 강화로 나눈다면 AI는 삶의 질을 높이는 기술이 된다. 같은 기술도 제도와 분배 방식에 따라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만든다.
정부가 발표할 첨단기술 전문인력 20만 명 양성 계획도 단순한 숫자 경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모든 청년을 AI 개발자로 만들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AI와 경쟁하는 사람이 아니라 각자의 분야에서 AI를 활용하면서도 인간의 맥락과 책임을 더할 수 있는 사람이다.
간호사는 AI의 진단 결과를 환자의 삶과 연결해야 하고, 교사는 AI가 제공한 학습 자료를 학생의 성장과 관계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 기술자는 로봇의 판단을 검증하고, 공무원은 알고리즘이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지 살펴야 한다. 인문학과 윤리, 소통과 협업, 비판적 사고는 기술 시대에 사라질 능력이 아니라 더욱 중요해질 역량이다.
동시에 청년이 실제 업무를 경험할 수 있도록 ‘AI 시대형 도제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기업의 신입 채용과 현장훈련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공공기관과 지역기업이 청년에게 프로젝트형 일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AI가 초급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청년이 그 과정을 관찰하고 검증하며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게 업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직업을 잃은 뒤에야 교육하는 방식도 늦다. 노동자가 재직 중 새로운 기술을 배우도록 유급 학습휴가와 직무전환 계좌를 확대해야 한다. 산업 전환으로 큰 이익을 얻는 기업은 재교육과 고용안정 비용을 사회와 함께 부담해야 한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미래
우리나라의 AI 도입률 50%라는 전망은 미래를 확정한 예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부터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경고이자 기회다.
AI 도입 속도만 높이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자동화된 나라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을 위한 원칙이 없다면 동시에 청년이 첫 일자리를 구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 중장년이 가장 빨리 밀려나는 나라, 기술을 소유한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나라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AI로 얻은 생산성을 노동시간 단축과 소득 안정, 산업 안전과 지역 균형, 교육 기회 확대에 사용한다면 우리는 저출산·고령화의 위기를 극복하고 더 인간다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기술은 스스로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만들지 않는다. 어떤 목표로 개발하고, 누구를 위해 사용하며, 그 성과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물어야 할 질문은 “얼마나 빨리 AI를 도입할 것인가?”가 아니다.
“AI가 만들어 낸 풍요가 누구의 삶을 행복하게 할 것인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세계 1위의 AI 도입률은 자랑이 아니라 경고가 된다.
그러나 사람을 중심에 두고 교육·고용·복지·산업정책을 함께 혁신한다면, AI는 인간의 자리를 빼앗는 경쟁자가 아니라 모두의 삶을 더 안전하고 자유롭게 만드는 공동의 자산이 될 수 있다. 선택의 시간은 10년 후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다.
이미지 출처: AI 생성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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