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의 가을은 여유로 물든다. 한반도 육지에서 단풍이 가장 늦게까지 머물고, 9월부터 11월까지 온화한 날이 이어진다. 산과 바다, 땅과 숲을 천천히 누비고, 축제를 즐기기에 충분한 계절이다.
01 Sea
명량대첩의 현장을 찾아서
울돌목은 명량대첩의 역사와 풍경을 함께 만날 수 있는 곳이다. 1597년(선조 30년) 음력 9월 16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이곳에서 단 13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수군에게 패배를 안겨 주었다. 거센 물살이 흐르는 울돌목에는 그날의 역사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참고로 울돌목은 ‘명량해협’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해남과 진도 사이에 자리한 이곳은 가장 좁은 폭이 300m에 불과하다. 물길이 좁은 목을 통과할 때 요란한 소리를 내고 울어 울돌목이라 불렸다. 밀물 때는 바닷물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조류가 거세지고 소용돌이가 인다. 이순신 장군은 이길 자리를 골랐던 셈이다.
‘우수영관광지’에서는 그 울돌목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먼저 ‘명량대첩 해전사 기념전시관’부터 들르길 권한다. 해전의 흐름을 시간순으로 따라가 보면, 밖으로 나왔을 때 눈앞의 물살이 다르게 보인다. 울돌목을 더 가까이서 마주하고 싶다면 ‘울돌목 스카이워크’로 향하면 된다. 투명한 유리 바닥 아래로 감겨 도는 물살이 그대로 내려다보인다. 멀리서 그날의 전투를 그려 보며 조망하고 싶다면 ‘명량해상케이블카’를 타고 진도 쪽으로 건너가는 방법도 좋다.
매년 9~10월 사이에는 해남 울돌목과 진도 녹진관광지 일원에서 명량대첩축제가 개최된다. 올해는 9월 11일부터 13일까지 열린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수영강강술래도 이 바다 앞에서 펼쳐진다. 우수영강강술래는 해남 우수영 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강강술래를 뜻하는데, 임진왜란 당시부터 이어져 온 민속놀이다.
Course
우수영관광지 → 명량대첩 해전사 기념전시관 → 울돌목 스카이워크 → 명량해상케이블카
Event 명량대첩축제
기간: 9월 11일~13일
장소: 해남 우수영관광지·진도 녹진관광지 일원
02 Land
빈손으로 향하는 땅끝 캠핑
가을철 해남으로 떠나는 캠핑은 빈손이어도 좋다. 바다를 정면으로 마주 보는 화원반도 서쪽 끝, ‘오시아노관광단지’에는 6만여 평방미터의 잔디광장과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대규모 캠핑장이 자리한다. 이곳에서 10월 9일부터 11일까지 2026 전남광주 캠핑관광 박람회가 개최된다. 국내외 캠핑 기업 80여 곳이 최신 캠핑카와 장비를 펼쳐 놓는데, 전시장을 빙자한 축제의 장이다. 장비를 체험해 보고 현장에서 바로 구매해 쓸 수도 있다. 축제 기간 동안 오시아노 캠핑장에는 저마다의 스타일로 무장한 캠핑 여행객 900팀, 약 5,000명이 사흘 내내 이 잔디밭에 머문다. 캠핑장 근처에 로컬푸드 직매장을 운영하고 있어서, 식재료를 바리바리 싸 오는 대신 현지에서 신선한 농수산물을 바로 구입해 사용하면 된다.
해남을 한 바퀴 돌아보며 캠핑을 즐기고 싶다면 ‘해남으로 가는 캠핑카 시티투어’를 이용하면 된다. 원하는 곳으로, 원하는 때에 갈 수 있다. KTX 목포역에서 캠핑카를 빌려 해남 곳곳을 다니다 지정 야영장에서 자면 된다. 차량을 빌릴 때 침낭과 베개를 기본으로 제공받을 수 있고, 비용을 추가하면 캠핑 용품도 빌릴 수 있다. 잠자리는 오시아노 오토캠핑리조트를 비롯한 3개 야영장의 전용 사이트를 이용하면 된다. 1박 2일마다 유료 관광지 1곳을 무료로 입장하는 혜택도 주어진다. 다만 해남으로 가는 캠핑카 시티투어는 해남을 벗어나면 페널티가 붙으니, 오직 해남에서만 즐겨야 한다. 여행부터 캠핑과 차박까지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Course
목포역(해남으로 가는 캠핑카 시티투어 차고지) →
오시아노관광단지 잔디광장 → 오시아노 오토캠핑리조트 → 목포역(해남으로 가는 캠핑카 시티투어 차고지)
Event 2026 전남광주 캠핑관광 박람회
기간: 10월 9~11일
장소: 오시아노관광단지 일원
행사: 캠핑 물품 전시 및 판매, 오시아노 뮤직 페스타 등
03 Mountain
단풍으로 물드는 해남, 그리고 미남
해남의 단풍 명소를 이야기할 때 두륜산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산을 오르는 건 싫고 새처럼 날아올라 경치를 누리고 싶다면 답은 ‘두륜산 케이블카’다. 약 1.6km 선로를 편도 8분간 오르면 고계봉 정상 가까이에 닿는다. 여기서 소사나무 군락지를 곁에 두고 8~10분만 데크를 오르면 정상 전망대다. 360도 파노라마로 다도해 풍광을 감상하는 건 기본이고, 화창한 날에는 제주 한라산까지 보인다. 가을 풍경은 더 특별하다.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밭과 울창한 단풍 숲이 절경이다.
단풍을 조금 더 가까이서 만끽하고 싶다면, 대흥사와 두륜산생태힐링파크만큼은 놓치지 말자. 가장 긴 봄을 느낄 수 있다고 하여, ‘장춘(長春)’이라 불리는 숲길을 걸어 들어가면 산사가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다.
‘대흥사’는 7~9세기에 창건된 7개 사찰을 묶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가운데 하나이자, 한국 사찰 중 승탑이 가장 많은 곳이다. 대웅보전 뒤로 보이는 두륜산 정상부의 바위들은 부처가 누워 있는 모습을 닮았다.
‘두륜산생태힐링파크’는 두륜산을 배경으로 지난해 7월 문을 연 테마파크다. 두륜산 케이블카 맞은편에 356m 길이의 카트 체험장과 70m 길이의 사계절 썰매장을 갖췄다. 굽이치는 코스를 달리는 내내 두륜산이 여행자를 감싼다.
단풍이 물드는 가을 두륜산에는 미남도 몰려온다.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두륜산 도립공원 일원에서 해남미남축제가 개최된다. 아, 아쉽지만 그 미남(美男)은 아니고 남쪽의 맛, 미남(味南)이다. 해남의 14개 읍면이 자신 있는 농수산물을 들고 나와 그 맛을 자랑한다. 이 자리에서 해남을 대표하는 여덟 가지 맛 ‘해남 8미’를 선포하며 해남의 다채로운 맛을 알린다.
Course
두륜산 케이블카 → 고계봉 정상 전망대 → 대흥사 → 두륜산생태힐링파크
Event 2026 해남미남축제
기간: 10월 30일~11월 1일
장소: 두륜산 도립공원 일원
행사: 퍼레이드, 대동음식퍼포먼스, 주제관, 추억의 구이터 등
해남 8미
해남식 닭코스 요리, 대흥사 보리쌈밥, 해남김쌈 삼치회, 해남황칠 요리, 땅끝한우 요리, 해남밥상, 여름 갯장어, 고구마 디저트
04 Trail
1,000년이 고스란히 담긴 길
가을 정취를 가장 여유롭게 만끽하는 방법은 산책이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람을 반기는 길이 해남에 있다. 정상부가 온통 바위라서 남쪽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 그 산허리를 두른 ‘달마고도’다. 이 길은 중장비 하나 없이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 낸 길이다. 지게를 진 채 오르내리며 낫과 곡괭이로 일궜다. 17.74km에 이르는 이 둘레길은 자연경관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데크조차 두지 않았다. 흙길과 돌길로 이루어졌으며, 머리 위로는 하늘과 달마산의 암봉이, 발아래로는 다도해가 드넓게 펼쳐진다.
달마고도는 단순히 산허리만 따라 걷는 길이 아니다. 한반도 끝자락에서 1,300년을 지켜 온 고찰 미황사의 옛 12개 암자를 잇는, 선인들이 걷던 순례길을 되살린 길이다. 코스 이름도 남다르다. 총 4코스는 차례로 출가길(2.71km), 수행길(4.37km), 고행길(5.63km), 해탈길(5.03km)로 불린다. 출가부터 해탈까지, 단 6시간이면 충분하다.
시간이 없다면 짧은 코스로 둘러봐도 좋다. 달마고도의 시작점이자 주인공인 ‘미황사’로 가면 된다. 달마산의 암봉을 병풍처럼 두르고 고즈넉한 풍경을 선사하는 절이다. 일주문을 지나 108계단을 오르면 달마고도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이 1코스, 오른쪽이 4코스다. 1코스 출가길은 가장 평탄해 여유롭게 다도해와 달마산을 조망할 수 있다. 산지 습지와 너덜바위 지대, 떡갈나무 숲을 지나면 큰바람재에 이른다.
4코스에서 반드시 봐야 할 곳은 도솔암이다. 암봉 사이로 슬며시 존재를 드러내는 작은 암자이자, 미황사의 옛 12개 암자 중 유일하게 복원된 곳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도 멋있지만, 직접 가서 마주하는 풍경이야말로 장관이다. 해남과 진도 앞바다로 서서히 잠겨 가는 해넘이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
Course
미황사 → 108계단 → 달마고도 → 도솔암
05 Food
해남을 대표하는 디저트, 고구마빵
강원도에 감자빵이 있다면 해남에는 고구마빵이 있다. 해남은 예부터 맛있는 고구마가 풍성했다. 남쪽 땅끝이라 겨울에도 온난하고, 토질도 고구마 재배에 적합했다. 고구마빵은 해남읍에 자리한 피낭시에 제과점 이현미 대표가 개발해 팔고 있는 빵이다. 황토고구마와 자색고구마를 주재료로 삼아 반죽을 만들어 구워 낸다. 밀가루 대신 쌀을 써서 쫄깃한 식감이 특징이다. 안에는 고구마 100%로 만든 앙금을 가득 채우는데, 해풍 맞고 자란 해남 고구마만 쓴다. 해남 고구마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셈이다.
모양 또한 진짜 고구마에 가깝다. 보랏빛 빛깔과 껍질의 질감을 그대로 구현했다. 개발 당시에는 빵을 구울 때마다 터져서, 지금의 고구마 모양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한다. 그 덕에 해남을 찾는 여행자는 극사실주의 작품에 가까운 빵을 진짜 고구마 먹듯 즐길 수 있다.
해남 8미, 보리쌈밥
해남 8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밥이 있다. 대흥사 초입, 두륜산에서 나는 산채로 차려내는 ‘보리쌈밥’이다. 원래는 산채비빔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대흥사 초입의 한 식당이 나물과 보리밥, 제육볶음과 쌈 채소를 제각기 다른 그릇에 담아 내기 시작했다. “싫어하는 나물이 있으니 빼 달라”는 손님의 요청에 그릇을 나눈 것이 보리쌈밥의 시작이다. 손님을 정성스레 대하는 마음이 밥상의 형태를 바꾼 셈이다. 주방이 아니라 손님의 손에서 완성되는 요리다. 보리밥 위에 좋아하는 나물만 골라 담고, 남은 자리는 쌈으로 채우면 된다. 수라상보다도 푸짐하다는 건 과장이 아니다. 기본 찬만 열 가지가 넘게 깔린다.
글 남현솔 기자 사진 트래비 제작지원 해남군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