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1990년대 콘솔 게임을 즐긴 이용자라면 영어나 일본어로 된 게임은 익숙한 존재였으리라 봅니다. 국내 개발사가 만든 콘솔 게임이 많지 않았고 해외 게임의 정식 한국어화도 드물었던 만큼, 공략집을 참고하거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게임을 즐기는 일이 흔했습니다. 그나마 PC 게임 시장은 사정이 조금 나았지만 영어가 중심이라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한국이 게임 강국이 되고 시장도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주요 게임사가 한국어 자막과 음성을 제공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신작을 한국어로 즐기는 것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과거에 즐겼던 콘솔 게임을 모두 한국어로 즐기는 것은 쉽지 않았고, 소규모 해외 개발사의 PC 게임은 여전히 한국어로 만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몇 년 사이 대규모언어모델(LLM)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코딩이 발전하면서 언어 장벽도 빠르게 낮아지고 있습니다. 출시 후 며칠 만에 이용자 제작 한국어 패치가 등장하고, 전문 지식이 없던 이용자가 추억 속 게임의 한국어화에 직접 뛰어드는 사례가 나오고 있는 모습입니다.
■ 활발해진 추억의 콘솔 게임 한국어화
먼저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곳은 고전 콘솔 게임입니다. 한국어 패치 정보를 제공하는 ‘레트로DB’에 따르면 8월 10일 기준 배포 중인 레트로 게임 한국어 패치는 1,223건이며, 지원 기종은 34종에 달합니다. 구버전을 제외하고 최근 2주 동안 새로 배포되거나 갱신된 패치도 무려 220건으로 집계됐습니다.
특히 레트로 게임기라 부를 수 있는 PSP, PS1, PS2, PS3를 비롯해 패미컴, 슈퍼패미컴, 닌텐도DS, 게임보이 어드밴스, 메가드라이브, 세가 새턴, PC엔진 등 다양한 기종의 게임들을 위한 한국어 패치가 제작돼 등장하고 있죠.
물론 과거 콘솔 게임 한국어화는 번역 실력만으로 도전하기 어려운 작업입니다. 게임의 롬이나 디스크 이미지에서 텍스트를 찾아내고 제한된 저장 공간에 한글 폰트를 넣어야 하는 꽤나 고도의 작업이 필요했죠.
여기에 문자 인코딩과 포인터 구조를 분석하고, 번역문이 정상적으로 출력되도록 게임 프로그램을 수정하는 전문 지식도 필요했습니다. 또 단순 번역을 끝내고도 글자가 깨지거나 대사가 다른 위치에 표시되는 문제를 일일이 찾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AI가 등장한 이후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게임 파일 구조와 어셈블리 코드를 분석하고 텍스트 추출과 재삽입 도구를 만드는 일까지 AI가 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류 원인 추적 등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레트로 게임의 한국어 패치를 제공하는 AI 에이전트 스킬마저 등장했죠.
이러한 과정은 AI를 활용해 1인 제작자가 진행하기도 합니다.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모습입니다.
■ 제작사가 만든 AI 한국어 PC 게임 패치도 증가
PC 게임 시장에서도 활발한 한국어 패치 작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국어 패치 정보를 모으는 사이트인 ‘한패’에는 이용자 제작 패치 2,655건과 공식 한국어화 정보 473건이 등록돼 있습니다. 특히 스팀 창작마당과 깃허브,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AI 번역 패치가 지속해서 등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PC 게임은 CSV·JSON 같은 언어 파일이나 유니티·언리얼 엔진의 에셋에서 텍스트를 추출한 뒤 AI로 번역하고 다시 삽입하는 방식이 주로 사용됩니다. 특히 등장인물과 세계관, 기존 용어를 AI에 제공하면 캐릭터별 말투와 존댓말, 아이템·스킬 명칭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도 가능할 정도로 인공지능 번역이 발전했죠.
실제로 게임 출시 후 며칠만 지나면 AI로 제작된 한국어 패치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개발사 자체가 AI를 한국어화에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주얼 노벨 작품인 ‘리리카 폰 루스트베일’은 2026년 3월 Claude를 활용한 전체 한국어화를 공개했습니다. 개발진은 학원장과 주인공 등 캐릭터별 말투를 설정하고 번역의 정확성과 일관성을 검토했다고 밝히기도 했죠.
■ 한국어 패치, 판매에도 영향
한국어 지원은 판매 성과와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밸브의 알덴 크롤은 2017년 인디게임 행사 ‘인디고 2017’에서 게임이 한국어를 지원할 경우 미지원 때보다 현지화 수익이 140% 높게 나타날 수 있다고 알렸습니다.
오래된 조사이고 작품마다 성과가 다르지만 한국어 지원이 구매 전환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현재 스팀도 공식 개발자 문서를 통해 현지화된 게임이 노출에서 유리하며, 영어와 차이가 큰 아시아권 언어일수록 기대 수익이 높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직접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더라도 한국어 패치가 판매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죠.
물론 AI가 만능은 아닙니다. 앞뒤 맥락을 잘못 이해하거나 등장인물의 말투와 성별을 혼동하는 등의 문제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죠. AI가 초벌 번역을 맡더라도 실제 플레이를 통한 검수와 지속적인 수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여기에 저작권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번역은 저작권법상 2차적저작물에 해당하므로 원칙적으로 원저작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얼마든지 분쟁이 발생할 수 있죠. 주의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