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6일, MIT가 ‘AI 활용 교육·연구 특별위원회’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총장이 직접 캠퍼스 구성원에게 서한을 보냈다(MIT 총장 서한, 2026.8.26). “AI는 MIT는 물론 고등교육 전체의 분수령”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서한은, 학생과 교수, 직원이 5개월간 참여해 만든 보고서를 함께 공유하면서 스스로를 ‘행동을 촉구하는 문서(Call to Action)’로 규정했다(Report of MIT’s Ad Hoc Committee on AI Use in Teaching, Learning, and Research Training, 2026.8). 연구 결과가 아니라, 지금 당장 바꾸라는 선언이 담긴 보고서는 “패치와 덕테이프의 시간이 아니다.”라는 표현을 했다. “패치(patch)”는 소프트웨어 버그를 임시로 고치는 수정 코드, “덕테이프(duct tape)”는 뭐든 일단 붙여서 때우는 은색 테이프다. 둘 다 “근본적으로 고치는 게 아니라 급한 대로 땜질하는 것”을 뜻한다. AI가 교육에 가져온 변화는 기존 시스템을 조금 손보는 것으로 해결할 수준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한다는 뜻이다.
같은 주, 카이스트 배충식 신임 총장은 내년 1학기부터 인문사회·기초과학 수업에서 AI 사용을 전면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공학 과목에서는 적극 활용하되, 사고의 기초를 다지는 영역에서만큼은 AI를 의도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두 대학이 같은 문제를 정반대 방식으로 풀고 있는데, 흥미로운 건 둘이 진단하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유사한 지점을 보이고 있다.
◇ 캠퍼스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들
MIT 보고서가 그리는 캠퍼스의 현재는 꽤 충격적이다. 오피스아워 참석이 줄었고, 온라인 토론 참여가 감소했고, 기숙사와 도서관의 스터디그룹이 눈에 띄게 줄었다. 학생들이 동료나 조교에게 묻는 대신 AI에게 물어보기 시작하면서, 함께 공부하는 문화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MIT 학부 과정의 거의 모든 서면 과제를 AI가 해결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고, 그 결과 과제와 시험의 신뢰도가 무너지고 있다.
특히 보고서에서는 ‘인지적 항복(Cognitive Surrender).’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는 어려운 문제를 만나는 순간 스스로 고민하는 대신 AI에 사고 자체를 넘겨버리는 현상으로, 정답을 얻었지만 실제 학습은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보고서는 “AI가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와 자신감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짚으면서, 이것이 단순한 부정행위 문제가 아니라 학습 기회 자체의 상실이라고 강조했다.
◇ 교육의 가장 중요한 산물은 학생 자신이다
MIT 보고서가 제시하는 여러 원칙 중 가장 주목할 것은 교육의 ‘산물’에 대한 재정의다. 보고서는 이렇게 말한다. 학생이 대학에서 가져가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학점도 졸업장도 아니라 ‘학생 자신’이라고.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시험을 치르는 그 모든 과정의 진짜 목적은,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학생 자신이 변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 낯선 문제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태도, 복잡한 상황에서 자기만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 이런 것들이 교육이 남겨야 할 진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 과정을 ‘생산적 고투(productive struggle)’라는 표현으로 설명한다. 수학 문제를 풀다가 막혀서 30분을 끙끙거리는 시간, 에세이 초안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는 시간, 스터디그룹에서 의견이 부딪히며 자기 논리의 허점을 발견하는 시간. 이 시간들이 불편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사고의 근육이 만들어진다. MIT는 이것을 “비효율은 버그가 아니라 피처(feature)다”라고 표현했다. 느리고 힘든 과정이 고장 난 게 아니라, 그게 교육이 설계된 방식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AI가 이 고투를 통째로 건너뛰게 해준다는 데 있다. 30분 끙끙거릴 문제를 AI가 30초 만에 풀어주고, 썼다 지웠다 반복할 에세이를 AI가 한 번에 써주고, 의견이 부딪힐 필요 없이 AI가 깔끔한 정답을 내놓는다. 결과물은 손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 결과물에 이르는 과정에서 일어났어야 할 성장은 일어나지 않는다. 정답은 얻었지만, 정답에 이르는 과정에서 만들어져야 할 ‘학생 자신’은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다.
보고서는 이 원칙에서 출발해, AI를 사람을 대신하는 ‘자동화(Automation)’가 아니라 사고력과 창의성을 키우는 ‘증강(Augmentation)’ 도구로 쓰라고 권고한다. MIT 경제학자 아세모글루, 오터, 존슨은 ‘pro-worker AI’ 논문을 인용하면서, AI가 사람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역량을 확장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교육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구체적인 권고도 따랐다. 과제와 리포트 중심의 평가를 버리고 구술시험, 프로젝트, 토론, 포트폴리오 평가로 전환하라고. AI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과제 대신, 학생이 직접 생각하고 말해야 하는 평가를 설계하라는 것이다. AI 탐지 프로그램에도 기대지 말라고 했다. 오탐이 잦고 학생도 우회법을 금방 익히니 결국 사제 간 불신만 키운다는 판단이다. 교수에게도 요구했다. 자신의 AI 사용을 학생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교수가 AI로 강의하면서 학생에게 금지하면, 학생은 이중잣대로 느낀다”는 것이다.
카이스트가 인문사회와 기초과학에서 AI를 배제하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배충식 총장은 “AI에 끌려가지 않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교수와 함께 쓰고, 생각하고, 적어내고, 발표하는 수업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인데,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 대학이 오히려 기술을 차단하는 영역을 만드는 것이 다소 아이러니 해 보이지만 이 결정 뒤에 무거운 고민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사실 우리도 항복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도 불편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인지적 항복이 정말 아이들만의 문제인가. 나도 요즘 AI 없이 이메일 한 통 쓰기가 귀찮아졌다. 기획안을 잡을 때 백지에서 시작하는 대신 AI에게 초안을 뽑아달라고 하고, 회의록도 AI 요약을 당연하게 쓰고, 모르는 게 생기면 검색 대신 ChatGPT를 연다. 그리고 그 편함에 익숙해지면서 둔해지고 있는 것들도 분명히 생기고 있다. 예전에는 머릿속에서 문장을 굴려보고 고쳐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 과정을 건너뛰는 날이 잦다. 이게 항복이 아니면 뭔가.
아이에게 “스스로 생각해”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언제 마지막으로 AI 없이 끝까지 생각해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MIT가 경고한 인지적 항복은 캠퍼스 안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상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아이의 항복을 걱정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이쪽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내 머리로 얼마나 생각했는가.
이미지 출처: AI 생성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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