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남시현 기자]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창업자들은 상당한 실력자다. 하지만 겸손한 것이 미덕인 문화라 그런지 꿈을 크게 얘기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반면 미국 창업자들을 만나면 본인이 세상을 다 바꾼다든지, 10조 원대 회사를 만들겠다느니 허황된 얘기를 많이들 한다. 으레 거부감이 들 수 있지만 창업자의 꿈보다 실제 회사가 더 커지는 경우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창업가의 잠재력은 역량보다 꿈의 크기에서 온다고 믿는다”
김철우 더벤처스 대표에게 현직 투자자의 입장에서 우리나라 스타트업 대표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김철우 대표는 2014년 당시 중고거래 스타트업 ‘셀잇’을 창업했고 그때 더벤처스로부터 시드투자를 받으며 인연을 맺었다. 이후 셀잇은 카카오로 편입되며 대기업 자회사 임원 생활도 해봤고, 2018년 셀잇과 퀵켓이 합병하며 번개장터 최고제품책임자(CPO)로 명성을 날렸다. 이후 2020년 호창성 당시 더벤처스 대표의 제안으로 더벤처스에 합류하게 됐고, 2021년부터 지금까지 더벤처스를 이끌어온 지가 5년 차다.
창업자라면 한 번쯤 꿈꾸는 화려한 엑시트를 경험한 창업자에서 지금은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과 투자자로 변신한 김철우 더벤처스 대표의 이야기다. 더벤처스는 2014년 ‘창업자들을 돕는 창업자들’을 모토로 설립된 초기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로 창업 기업을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AC)이자 직접 투자와 펀드 운용을 담당하는 벤처캐피털(VC)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고 있다. 최근 2차 모두의 창업으로 범국민적인 창업 분위기가 조성됨에 따라 김철우 대표의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성수 소재의 사무실을 찾았다.
단독 대표 이후 올해가 5년차, AI 드라이브는 지금부터
김철우 대표의 첫 인상은 근엄한 투자사의 대표라기보다는 카리스마 넘치는 사업 동료의 느낌에 가까웠다. 물론 투자를 주고받는 자리에서 만난다면 최고결정권자로서의 위엄이 있겠지만 기자로서 인터뷰를 하는 내내의 느낌은 경험 많은 사업 선배를 만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김철우 대표에게 가장 먼저 건넨 질문은 더벤처스의 2세대 경영을 시작했을 당시의 목표, 그리고 지금 현재 뒤돌아봤을 때의 평가다.
김철우 대표는 “대표라는 직함을 쓰게 되면서 세운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창업자 친화적인 투자사가 되는 것이었다. 더벤처스 자체가 창업가 출신들이 모여 있기도 하고, 국내 투자 시장 자체가 창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다. 직접 글로벌 소비재 펀드를 만들고, 1차 미팅에 이어 복잡한 행정적인 절차를 다 없앤 것도 창업자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결정이었다. 두 번째는 국내와 해외 스타트업 업계의 가교가 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해외에서도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우리 역시 해외 기업들에 투자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정량적으로 달성했다기보다는 방향성에 가까운데, 한국에서 글로벌 고객을 대상으로 창업하는 분들에게 '어디서 투자받고 싶냐'고 물으면 더벤처스가 그래도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까지는 자리 잡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더벤처스는 올해 영문 미디어 채널 '더벤처스 리서치'를 통해 한국 스타트업을 글로벌 시장에 알리고 있고, 동남아를 비롯한 해외 시장에서 직접 투자에 나서는 등 한국 스타트업 업계와 해외 시장을 잇는 가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더벤처스는 투자사지만 스타트업만큼 의사결정이 빠르며 그 배경에는 지난해 개발한 AI 플랫폼 ‘비키’가 자리 잡고 있다. 김철우 대표는 “우리의 고민은 많은 기업에 투자하고 성과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많이 투자를 하려 하니 여러 차례 투자 심사를 거치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해결이 어려웠고, 전체적인 투자 절차를 기술적으로 효율화하려고 접근하며 AI를 활용하게 됐다”라면서 “지난해 황성현 테크리드가 합류한 후 본격적으로 AI를 도입했고 지금은 최초 미팅 여부를 전적으로 AI가 결정한다. 투자 심사와 계약서·보고서 작성 등 후속 절차에도 AI를 도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의 첫 만남을 AI가 결정한다니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김철우 대표는 “내부 데이터 상 비키와 인간 심사의 판단은 90% 이상 일치한다. 과거에는 1차 심사에만 30일가량 걸렸는데 지금은 5분 이내면 1차 판단은 끝난다. 이후 포트폴리오 확인, 성장 리포트 등도 모두 AI에게 맡긴 상황이다. 미팅이 결정될 때면 이미 해당 기업에 대한 기본적인 판단은 끝난 상태다. 따라서 별도의 피칭은 생략하고 약 20분간 투자에 필요한 질의응답을 거친 뒤 최종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미국에서는 첫 연락부터 투자 결정까지 세 시간 이내로 단축한 투자사도 있을 정도고, 우리도 화요일에 처음 연락 주면 목요일에는 답을 드리는 수준까지 절차를 단축했다”라고 말했다.
제삼자 입장에서는 너무 빠른 의사결정이 아닌가 싶으면서도 창업가 입장에서는 다르다고 말한다. 김철우 대표는 “창업가가 투자자에게 듣고 싶은 말 1위는 투자하겠습니다. 2위는 빠른 반려다. 벤처투자사 입장에서는 투자를 빠르게 결정할 필요가 없는데 반대로 창업가들은 결정까지 계속 신경을 써야 한다. 속도감 있게 처리하는 것이 창업가와 투자자 모두를 위한 방법이고, 더 간단하게 만들려고 계속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
국내 첫 오픈형 투자요청서 도입, 과감함이 만든 성과들은
더벤처스의 투자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더벤처스가 처음 시도한 오픈형 투자요청서(RFS)다. RFS란 투자자가 먼저 투자 관심사를 밝히고 스타트업을 공개 모집하는 방식이다. 그간 국내 VC 업계는 관심 투자 분야를 공개하지 않아 창업가들이 알아서 자신들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 줄 투자사를 찾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했다. RFS 도입의 취지와 배경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김철우 대표는 “RFS 도입 역시 창업자 친화적인 투자사를 만들겠다는 목표와 맞닿아있다. 외부에서는 투자사가 어떤 분야에 투자하고 관심이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다 연락해봐야 하고, 시간을 꽤 많이 허비한다. 반대로 투자사 역시 관심 없는 분야의 기업도 받게 되며 업무량이 늘어난다. 해외에서는 이미 RFS를 널리 활용 중이고 우리 역시 그런 맥락으로 관심사를 공개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직접 운용 중인 글로벌 소비재 펀드의 투자 집행을 늘려야 했던 점도 RFS 도입에 영향을 미쳤다. 관심 분야를 공개한 덕분에 전체 투자에서 글로벌 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10% 이하에서 30%까지 올랐는데, 이는 창업자와 VC의 기대 관리 측면에서도 매우 효율적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더벤처스의 대표적인 투자 회사에 대한 소개도 부탁했다. 김철우 대표는 “우리가 투자했던 기업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가 헤이딜러다. 첫 번째이자 유일한 시드 투자(Seed)였는데 아쉽게도 본격적으로 커지기 전에 우리 손을 떠났다. 오랫동안 함께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공유 모빌리티 기업 지바이크도 투자 기업이다. 사실 창업자가 떠나고 CTO가 대표가 되면서 사업 측면에서 도움을 많이 주지 못했는데 알아서 너무나 잘 성장한 기업이다. 투자자들이 보는 관점과 사업가의 시각이 다르니 겸손할 줄 알아야 함을 보여준 사례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세컨핸드 패션 플랫폼 후르츠패밀리도 좋은 사례다. 더벤처스는 유일한 투자자로 프리시드 단계부터 후르츠패밀리를 지원했고 현재는 매월 300만 명 이상이 이용 중이다. 투자할 때 의외로 창업자들의 스토리에 더 귀 기울이는 편이고 당근과 같은 지표들을 보이며 성장 중이다. 10대-20대 사용자가 많고 커뮤니티로 진화 중이어서 주목할만한 결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더벤처스의 핵심 포트폴리오인 헤이딜러, 후르츠패밀리는 중고거래 플랫폼이다. 김철우 대표가 셀잇, 번개장터를 거친 중고거래 플랫폼 창업가 출신인 것은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더벤처스의 투자 철학은 무엇일까. 김철우 대표는 “꿈은 크지만 작은 것에 집중하는 창업가를 좋아한다. 지금은 작아 보이지만 집중하고 있는 포인트가 얼마나 세부적인지, 본인의 사업 영역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지를 중점적으로 본다. 스타트업의 자원과 시간은 한정적인데 풀어야 할 과제들은 너무나 많다. 하나를 집중해도 될까 말까다. 즉 첨예한 문제의식, 그리고 시장에 대한 집중력을 본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도 잘 모른다’가 우리의 투자 철학이다. ‘해보니까 안 됐어’를 가장 경계한다. 초기 투자의 100건 중 절대다수는 실패하고 극소수만 성공한다. 투자사가 부정적인 사례를 답습한다면 갈수록 보수적이게 되고 창업가들과의 접점은 줄어든다. 즉 초기 투자는 작은 가능성 하나를 보고 손실 가능성을 감수하면서도 과감하게 집행해야 한다. 비키 역시 사업을 검토할 때 사람보다 훨씬 낙관적으로 검토하게 돼 있다”라면서 “대표님이 원하는 대로 상상하는 것처럼 다 풀리면 우리가 얼마나 커져있을까요?를 늘 물어본다. 지금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것이 잘 풀렸을 때 어떤 모습일지가 있는 사람을 찾는 셈”이라고 말했다.
국민 모두에게 창업 정신 심어주는 ‘모두의 창업’, 확산 위해 노력
더벤처스는 올해 3월 시작한 ‘모두의 창업’ 운영 기관으로서 사업에 적극 참여 중이며 현재 2차 모두의 창업 역시 운영 기관으로 참가자를 모집 중이다. 예비 창업 및 초기 스타트업 전문 AC/VC인 만큼 모두의 창업에 관심이 많은 것은 당연지사다. 1차 모두의창업 전체 지원 규모는 6만 3000명이었으며 더벤처스에서는 약 500여 명을 심사해 1라운드에 18팀을 진출시켰다. 2라운드에서는 총 2팀이 선발된 바 있다.
선발된 스타트업은 더벤처스의 심사진들이 1:1로 매칭이 되어 멘토링을 진행했다. 김철우 대표는 “주어진 기간이 끝나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은 시도를 해 시장에 맞는 제품을 만드는 게 중요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더 나은 시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각각의 사업의 성패는 우리도 모르기 때문에 실험을 구성하고 결과를 바탕으로 고도화하는 나름의 방법론이 있다. 아울러 아무것도 모르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하고 싶을 때 하는 게 창업이라 생각한다. 창업 준비를 시작하면 만년 준비만 하게 된다. 정부는 2차 이후에도 꾸준히 같은 맥락의 사업을 펼치고 창업 문화는 누구나 마음먹으면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김철우 대표는 “우리나라는 유독 창업을 거룩한 일이나 가시밭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창업지원 사업들도 아이디어를 넘어서 구체화된 단계에서 지원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민간이 아닌 정부가 나서서 아이디어 단계의 창업을 지원할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이 반갑다. 미국에서도 많은 창업자들이 아이디어나 부업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창업에 대한 새로운 문화와 인식을 만들 수 있는 사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사업에 대한 생각이 있다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는 사업이며, 해보면 자기가 사업에 적성이 있는지 바로 느낄 것이다. 물론 사업에 체질이 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멋져 보여서 하고, 누군가는 친구가 끌어들이고, 부업으로 시작하는 사람도 많다. 아이디어 단계의 창업은 100개 중 90개가 잘 안 되는 게 정상이니 도전 자체에 의의를 두고 지원해 보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5년 뒤, 10년 차의 더벤처스는 어떤 모습일까?
올해로 김철우 대표가 더벤처스를 이끈지가 5년 차다. 5년이 더 지나 10년 차가 되었을 때의 더벤처스는 어떤 모습이면 좋을지 물었다. 이 질문에는 크게 두 가지라고 답했다. 김철우 대표는 “창업자 입장에서 친화적인 투자사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스타트업과 사업하려면 더벤처스와 얘기해야 한다는 얘기가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이미 우리는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투자도 적극적으로 진행 중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더벤처스를 영원히 할 생각은 없고 10년 차쯤 되면 다음 세대의 창업자에게 맡기고 싶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의 사람 중 한 명이 더벤처스의 새로운 대표가 되고, 또 후배 창업가들에게 투자하고 그런 모습을 만들고 싶다. 더 나아가 한국의 창업가들이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싶다. 국내 창업 문화는 누군가 목소리를 내거나 철학을 전수하는 그런 그림이 잘 안 그려진다. 실패했다고 주눅 들 필요 없이 누구나 의견을 내는 문화를 만들고 싶고, 나 역시도 그럴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선배 창업가이자 투자사 대표로서 후배 창업가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김철우 대표는 “창업이 모두에게 다 맞는 건 아니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볼 만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창업을 해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데 살면서 그럴 기회가 많지 않다. 위급한 상황에서 나는 어떤 의사결정을 내렸는지, 내가 생각보다 돈을 밝힌다거나 정신적으로 약하다든지 하는 면을 분명하게 체감할 수 있다. 그런 면으로도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창업에 대해 거룩하게 생각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시도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IT동아 남시현 기자 (sh@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