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9월 8일 경기 화성시 우정읍 오토랜드 화성에서 '기아 PBV 생산 허브 테크 데이'를 열었다. 브랜드관 1층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는 화성 EVO 플랜트 생산 솔루션과 PBV 컨버전 모델 개발 체계, PBV 컨버전 센터 운영 현황이 소개됐다. 이후 EVO 플랜트 East의 차체공장과 조립공장을 둘러보고 제조솔루션본부 워크숍에서 미디어 Q&A와 자율 취재를 진행했다.
이날 기아가 강조한 2가지 내용은 PBV 전용 스마트팩토리의 생산기술과 고객 맞춤형 컨버전 모델을 위한 별도 생산체계다. 그 중심에 PV5가 있다. PV5는 올해 8월까지 국내에서 1만9,216대가 판매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8,791대보다 118.4% 증가한 수치다. 오토랜드 화성은 앞으로 대형 PBV인 PV7과 PV9 생산까지 맡는다.
PV5는 지난해 6월 국내 가격표를 공개하고 사전계약에 들어갔다. 국내 인도는 8월부터 시작됐다. 출시 첫해인 2025년에는 전기차 보조금과 생산·인도 초기 과정의 영향으로 판매량이 크지 않았지만, 8월 161대를 시작으로 9월 672대, 10월 1814대, 11월 962대, 12월 227대를 기록하며 국내에서 3836대가 판매됐다.
올해 들어서는 판매 속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2026년 상반기 국내 판매량은 약 1만5000대로, 지난해 연간 판매량의 약 네 배에 달했다. 특히 올해 1분기에만 국내에서 8086대가 판매되며 EV3에 이어 국내 전기차 판매 2위에 올랐고, 글로벌 기준으로는 국내 8086대와 해외 8319대를 합쳐 1만6405대가 판매됐다. 기아의 전기차 가운데 EV3, 아이오닉5에 이어 현대차·기아 글로벌 전기차 판매 3위에 해당하는 실적이다.
상반기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PV5의 글로벌 판매는 2만9293대까지 늘었다. 국내에서 약 1만5000대, 유럽에서 1만4013대가 팔렸다. 국내에서만 반짝한 것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같은 수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특히 유럽에서의 판매가 국내 판매에 육박하면서 PV5가 기아의 글로벌 PBV 전략에서 단순한 국내 상용차가 아닌 주력 모델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 소형 전기밴 시장에서의 성적도 눈여겨볼 만하다. 올해 상반기 PV5는 유럽 소형 전기밴 시장에서 1만3116대가 팔리며 점유율 37%로 동급 1위를 기록했다. 덴마크(63%), 아일랜드(62%), 영국(54%) 등 12개국에서 판매 1위에 올랐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9월 판매를 시작한 뒤 초도 물량 4000대가 올해 1월 모두 소진됐고, 추가 주문이 이어지면서 연간 생산 목표를 6500대로 높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수상 이력도 이어졌다. PV5는 지난해 11월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상용차 박람회 '솔루트랜스'에서 '2026 세계 올해의 밴(IVOTY)'에 선정됐다. 유럽 상용차 전문 기자 26명의 만장일치였다. 한국 브랜드와 아시아 전기 경상용차로는 처음이다. 카고 모델은 71.2kWh 배터리를 탑재하고 최대 적재중량 665kg을 채운 상태에서 693.38km를 달려 전기 경상용차 부문 최장 주행거리 기네스 세계기록도 세웠다.
출시 초기 국내 판매에만 의존하던 모델이 1년 만에 국내와 유럽에서 각각 1만5000대 안팎의 판매량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특히 상용차는 승용차와 달리 특정 법인이나 사업자의 구매 비중이 높아 시장을 단기간에 확대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PV5가 빠르게 판매 기반을 넓힌 것은 기존 상용차 수요에 전동화와 다양한 용도라는 선택지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기아는 지난 1년간 프라임과 패신저 5·7인승, 카고 컴팩트, 샤시캡 도너모델 등을 추가하며 PV5 라인업을 10종으로 확대했다. 향후 컨버전 모델과 함께 판매 차종이 더 늘어나면 지금의 판매 규모가 어느 수준까지 확대될지도 관심사다.
전기 경상용차 시장은 2025년 270억3000만달러에서 2035년 720억4000만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밴이 시장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도심 라스트마일 배송 수요가 성장을 이끌고 있다. 유럽은 포드와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스텔란티스가 오랫동안 주도해 온 시장이지만 최근에는 BYD와 SAIC 등 중국 업체도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점유율을 넓히고 있다.
기아는 후발주자지만 PV5를 통해 입지를 만들었다. 봉고 트럭의 실용성과 카니발의 공간 활용성 등 기존 상용·RV의 노하우를 전동화 플랫폼에서 재구성한 결과로 볼 수 있다.
PV7은 기아 PBV 전략을 다음 단계로 끌어올릴 모델이다. 전장 5270㎜, 전폭 2065㎜, 축거 3390㎜로 카니발(전장 5155㎜, 축거 3090㎜)보다 크다. 9월 14~20일 독일 하노버에서 열리는 IAA 트랜스포테이션 2026에서 세계 최초 공개되며, 2027년부터 화성 EVO 플랜트 West에서 양산된다. PV5와 PV7이 함께 자리 잡으면 기아는 중형에서 대형까지 PBV 전 구간을 아우르게 된다.
오토랜드 화성은 1989년 12월 콩코드 양산을 시작한 기아의 핵심 생산기지다. 연간 생산능력은 60만대다. 1공장은 쏘렌토와 타스만, 2공장은 니로와 셀토스, 3공장은 K5·K8·EV6를 생산한다. 여기에 PBV 전용 EVO 플랜트가 더해졌다.
EVO는 '진화(Evolution)'를 뜻한다. PV5를 생산하는 East와 PV7·PV9을 맡을 West로 구성된다. 1997년 이후 기아가 국내에 새로 지은 첫 공장으로, 기존 공장처럼 증설과 개조를 반복한 것이 아니라 PBV 생산을 전제로 설계했다.
2023년 4월 기존 공장을 철거하고 2024년 11월 완공했으며, 지난해 8월부터 PV5를 양산하고 있다. 부지 면적은 약 10만㎡, 생산능력은 연 10만대다. 기존 화성 공장보다 자동화율이 9%포인트가량 높다.
EVO 플랜트의 핵심은 다차종 유연생산이다. 패신저와 카고, 샤시캡, WAV 등 다양한 파생 모델을 한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했고, 차체 골격도 기존의 단일 메인벅 방식 대신 인너벅·레일벅·아우터벅·루프벅으로 나누는 '4-벅 순차 조립 공법'을 적용했다.
PBV 컨버전 센터는 별도 생산체계다. 지난해 9월 가동을 시작했으며 조립센터와 출고센터로 구성된다. 조립센터에는 98개 작업셀과 14개 검사셀이 있고 연간 생산능력은 4만대다. EVO 플랜트에서 만든 기본차가 이곳으로 들어오면 오픈베드와 크루밴, 프라임, 냉동탑차 등 목적에 맞는 모델로 컨버전된다.
특징은 컨버전을 차량 개발 이후의 작업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발 초기부터 홀과 브래킷, 와이어링, 제어기를 반영하고 컨버전에 필요 없는 시트와 트림은 처음부터 장착하지 않는다. 별도의 탈거 없이 바로 개조 작업에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기아가 상품 기획과 품질관리, 판매를 맡고 전문 파트너사가 설계·생산·출고를 담당한다. 외부 특장업체를 위한 도너모델과 PBV 컨버전 포털, 테크니컬 핫라인도 운영한다.
EVO 플랜트 East 차체공장에 들어서면 천장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일반적인 차체공장과 달리 물류설비를 지하와 2층에 배치해 천장을 비워둔 구조다. 바디빌드 라인에서는 플로어와 사이드, 루프레일·루프를 하나로 합쳐 차체 골격을 만든다.
PV5의 사양은 차체 기준으로만 180여 개다. 이를 대응하기 위해 4-벅 순차 조립 방식을 적용했다. 부위별로 최적의 용접 조건을 확보하면서 차체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라인에서는 두 대의 로봇이 바디를 들어 옮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사양에 따라 길이와 무게중심이 달라지는 문제를 앞뒤 로봇의 동기화와 위치 자동 조정으로 해결했다. 한 대가 옮길 수 있는 무게는 600kg이다.
바디 리스폿 라인에서는 스폿용접과 레이저 용접, 가스 용접이 함께 사용된다. 2열 도어가 없는 사양에서는 일반 용접건이 들어가지 않아 철도나 지하철 조립에 사용하는 2m 크기의 대형 용접건까지 활용한다.
일반 용접건이 닿지 않는 폐구간에는 L.S.S(Laser Seam Stepper) 공법을 적용했다. 로봇 4대가 한쪽 면에서 레이저 빔을 쏴 접합한다. 부품 운반에는 AGV가 사용된다. 처음에는 무인지게차를 검토했지만 회전반경 문제로 저상형 AGV를 선택했고, 교행이 가능하도록 최대 6m 폭의 격자형 통로를 구성했다.
장착라인에서는 비전 카메라가 차체의 홀 위치를 측정하고 로봇이 그 결과에 따라 부품 위치를 보정한다. 조립 후에는 CMS가 간격과 단차를 다시 측정한다. 무작위로 담긴 부품을 로봇이 인식해 집어내는 빈 피킹 기술도 적용됐다.
후반부에는 최대 250개 팔레트를 보관할 수 있는 자동창고(ASRS)가 자리한다. 최고 11.5m 높이까지, 최대 2톤을 운반한다. 메탈피니시에서 최종 수정과 품질 검사를 마친 차체는 WBS를 거쳐 도장공장으로 넘어간다.
조립공장에서는 프리트림, 트림, 샤시, 파이널, 검차 순으로 공정이 이어진다. 이날은 프리트림과 트림 집중자동화 구간, 검차라인을 살펴봤다.
후드는 복합섬유 소재를 사용해 경량화했고 검정색으로 통일해 별도의 도장이 필요하지 않다. 로봇 3대가 후드를 옮겨 정렬하고 볼트 4개를 체결한다. 현대차·기아 최초 자동 장착 공정이다.
도어 탈거도 자동화됐다. 프론트 도어는 로봇과 비전 카메라가 힌지 볼트 위치를 확인해 분리하고, 리어 도어는 슬라이딩 방식이어서 별도의 볼트 작업 없이 분리한다. 도어는 서브라인으로 이동해 유리와 모터, 트림을 조립한 뒤 다시 차체에 붙는다.
엠블럼 역시 로봇이 부착한다. 이형지 제거부터 위치 확인, 부착, 보호필름 제거까지 자동화했다. 좁은 도어 개구부로 사람이 몸을 웅크리고 작업하던 루프패드 부착도 로봇으로 대체했다.
1층 조립라인에서는 종이 없는 공정관리가 이뤄진다. 차량마다 부착된 스마트 태그가 필요한 부품과 작업 내용을 작업지시 모니터에 띄운다.
무게가 65kg인 크러시패드는 3D 비전 카메라로 차체와 부품 위치를 맞춘 뒤 투입부터 볼트 체결까지 로봇이 담당한다. 헤드라이닝은 프론트와 리어 구간을 자동 장착하고 커넥터와 공조 덕트 작업이 필요한 센터 구간은 사람이 맡는다.
검차라인에서는 외관 간격과 단차를 3D 비전 카메라로 측정한다. 좌우 각 21개 지점을 스캔해 ±0.2mm 수준까지 확인하고, 카메라 18대로 24개 외장 부품을 검사해 사양 오류와 누락 여부를 판단한다. 헤드램프 에이밍도 로봇이 자동으로 처리한다.
PV5 라인의 시간당 생산대수는 18UPH다. 일반 승용차 라인인 186UPH보다 느리지만, 최대 36UPH까지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다양한 사양을 다루는 만큼 속도보다 정교함을 우선한 결과다.
이번 투어에서 확인한 EVO 플랜트의 강점은 다차종 유연생산과 비전 기반 품질관리다. 차체공장은 용접 자동화율 100%, 전체 핸들링 자동화율도 80%대 초반까지 올라와 있다. 조립공장 자동화율은 27~29% 안팎으로 아직 차이가 크지만, 루프패드와 헤드라이닝, 크러시패드 등 현대차·기아 최초 자동화 공정이 적용됐다.
180여 개 사양을 소화하는 4-벅 순차 조립과 BMS·CMS, 스마트 태그의 데이터 관리 체계는 품질 편차를 줄이기 위한 현실적인 해법으로 보인다. 여기에 개발 초기부터 컨버전을 함께 설계하는 방식과 외부 특장업체를 연결하는 생태계 전략이 더해졌다.
물론 과제도 있다. 2026년 8월 PV5 국내 판매량은 1,744대로 7월 2,472대보다 29.4% 감소했다. 생산 측면에서도 조립라인은 아직 설계 생산능력의 절반 수준인 18UPH에 머물러 있다. 컨버전 센터 역시 일부 모델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초기 단계다. 연 4만대의 생산능력을 채우기 위해서는 크루밴과 프라임, 냉동탑차 등 후속 모델의 확대와 함께 실제 수요를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럼에도 올해 1~8월 PV5 국내 판매는 1만9,216대로 전년 누계보다 118.4% 증가했다. 단순히 초기 신차 효과에 기대는 단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파생 모델을 추가하며 판매 기반을 넓혀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변수는 PV7과 PV9이다. West 플랜트는 2027년 6월 준공을 목표로 건설 중이며, East와 West를 합친 EVO 플랜트의 생산능력은 연 20만대로 예고돼 있다. 2027년 PV7이 유럽 시장에 데뷔하고 PV9까지 합류하면 화성은 중형부터 대형까지 PBV 전 구간을 생산하는 거점이 된다.
관건은 지금 East에서 확보한 유연성과 정밀함을 더 크고 무거운 차체, 더 많은 사양에서도 유지할 수 있느냐다. West에 적용될 AMR 물류와 터널형 비전 검사 등 새로운 생산기술이 그 답을 준비하고 있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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