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김영우 기자] 세계적인 AI 열풍으로 컴퓨터 부품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자사 데이터센터를 강화하기 위해 고성능 부품을 '싹쓸이'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용 컴퓨터 부품의 수급도 불안정해졌다. 특히 게이머나 콘텐츠 제작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고성능 그래픽카드의 경우, 2~3년 전보다 4~5배 이상 오른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한때 30만~50만 원 정도에 살 수 있던 제품이 지금은 100만~200만 원 정도에 팔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와중, 지난 주 토요일 필자의 친구가 이상한 정보를 전했다. 일반적으로 200만~300만 원 사이에 거래되던 인기 그래픽카드인 '지포스 RTX 5080'을 100만 원대 초반에 팔고 있는 온라인 쇼핑몰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친구가 공유해준 URL을 확인해보니 실제로 '○○마켓(가칭)'이라는 판매자가 온라인 오픈마켓 11번가를 통해 '에이수스 PRIME 지포스 RTX 5080' 제품을 136만 23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참고로 다른 온라인 오픈마켓(G마켓, 쿠팡, 옥션 등)에서는 290만~300만 원 선에 팔리는 제품이었다.
아무리 과감한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하더라도 이건 정상적인 가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좀 더 자세히 살펴봤다. 그러자 더 이상한 점이 속속 드러났다. 11번가에서 이 제품을 판매하는 '○○마트'라는 판매자는 지포스 RTX 5080 외에도 다양한 그래픽카드(지포스 RTX 5070, 라데온 RX 9070 XT 등) 20여 종 이상을 다른 온라인 상점 대비 절반 이하의 가격에 팔고 있었다.
더욱 이상한 건 11번가에 등록된 '○○마켓'의 판매자 정보였다. 영업소재지는 경기도 수원시에 위치한 일반 아파트였다. 사업자등록번호는 있었지만 통신판매업 신고와 11번가 입점 인증을 받은 지 불과 사흘밖에 되지 않았다. 사업자 정보 자체가 존재한다는 점과 별개로, 판매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규 계정이라는 점은 쉽게 넘기기 어려운 정황이었다. 게다가 이날은 주말이라 11번가 본사 고객센터에 바로 상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런 판매자의 물건은 사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친구에게 전했지만, 친구는 유명 쇼핑몰인 11번가에서 판매하는 제품이니 그래도 괜찮지 않겠냐, 혹시 판매자가 가격 표기를 실수한 것일 수도 있으니 운 좋으면 저 가격으로 물건을 보내줄 수도 있지 않겠냐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이미 카드 결제까지 마친 뒤였다.
며칠 후 이후 소식을 물어보니, 친구는 11번가 본사로부터 아래와 같은 문자를 받았다고 전했다.
[11번가] 안녕하세요, 회원님. 11번가 안전거래센터입니다. 회원님이 주문하신 상품의 판매자에게 직거래 사기가 의심되는 정황이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회원님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문자 발송 드립니다. 취소 및 환불 완료 내역은 나의11번가> 취소/반품/교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판매자가 11번가를 통하지 않은 현금 입금이나 외부 사이트 결제를 요청하는 경우에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으니 절대 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입금 피해가 있으신 경우 수사기관으로 신고 부탁드립니다.
판매는 취소되었고, 11번가에 있던 판매몰 자체도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히 제품 배송 전에 판매가 취소되어 신용카드 결제 역시 취소되면서 필자의 친구는 금전적 손해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자칫 잘못했다간 큰 손해를 보거나 복잡한 문제에 휘말릴 수도 있었던 상황이다.
시세보다 지나치게 싼 매물, 왜 의심해야 하나
이런 유형의 미끼상품은 품귀 현상이 심할수록 기승을 부리는 경향이 있다. 평소라면 '싼 게 비지떡'이라는 경계심이 작동하지만, 부품 가격이 급등한 시기에는 '혹시 재고 처분이나 미표기 할인일 수도 있다'는 기대가 소비자의 판단력을 흐리기 쉽다.
오픈마켓은 다수의 판매자가 입점해 상품을 등록하는 구조인 만큼, 신규 입점 심사와 사후 모니터링 사이에 시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사기 계정은 이 틈을 노려 짧은 기간 안에 다수의 인기 품목을 초저가로 올려놓고, 최대한 많은 주문을 받은 뒤 결제만 챙기고 사라지는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주말이나 공휴일처럼 고객센터 대응이 늦어지는 시간대에 활동이 집중되는 것도 이런 이유로 볼 수 있다.
대기업 오픈마켓이라고 방심은 금물
여기서 짚어야 할 오해가 하나 있다. 필자의 친구가 결제를 강행했던 이유이기도 한데, '11번가처럼 이름 있는 대기업 오픈마켓이니 괜찮겠지'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11번가, 쿠팡, G마켓 같은 오픈마켓에 올라오는 상품 상당수는 해당 대기업이 직접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사업자가 입점해 자체적으로 등록하고 판매하는 제품이다. 오픈마켓 운영사는 일종의 '장터'를 제공하고 결제·정산 시스템을 관리하는 역할에 가깝고, 실제 상품 구성이나 가격 책정, 배송은 개별 입점 판매자의 책임 아래 이뤄진다.
물론 대기업 오픈마켓은 입점 심사나 사후 모니터링, 안전거래센터 같은 소비자 보호 장치를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어 군소 쇼핑몰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이다. 하지만 '오픈마켓 브랜드가 크다'는 사실 자체가 '입점 판매자 개개인이 믿을 만하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이번 사례에서도 문제의 판매자는 11번가라는 이름값과 무관하게 사흘 전 급조된 계정이었다.
의심 판매자, 이렇게 확인하자
같은 제품을 유독 저렴하게 판매하는 판매자를 발견했다면, 결제 전에 다음 사항을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먼저 동일 제품의 타 쇼핑몰 시세와 비교해보자. 여러 오픈마켓에서 같은 모델명으로 검색해 가격대를 비교했을 때, 유독 한 곳만 절반 이하로 저렴하다면 일단 의심해야 한다.
판매자 정보와 판매 이력도 살펴봐야 한다. 오픈마켓 상품 페이지에는 통상 판매자의 사업자 정보, 통신판매업 신고번호, 입점일, 판매 건수 및 리뷰 등이 표시된다. 그리고 영업소재지가 주거지로 등록돼 있는 경우도 있는데, 1인 사업자나 소규모 판매자가 자택을 사업장으로 등록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계정 생성일과 신고일이 최근 며칠 사이로 몰려 있는 등 다른 이상 징후와 함께 나타난다면, 해당 판매자 정보를 한 번 더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통신판매업 신고 정보는 별도로 조회해볼 수 있다. 사업자등록번호나 통신판매업 신고번호는 정부24나 공정거래위원회의 통신판매사업자 정보조회 서비스 등을 통해 실제 등록 여부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판매자가 오픈마켓 결제 시스템을 벗어난 거래를 유도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계좌이체나 현금 입금, 외부 사이트 결제를 요구하는 경우는 오픈마켓의 구매안전서비스(에스크로, 거래대금을 제3자가 예치했다가 물건 수령 확인 후 판매자에게 지급하는 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없어 훨씬 위험하다.
혹시 모를 피해에 대비하는 법
시세보다 지나치게 싼 매물임을 알면서도 구매를 결정했거나, 이미 결제 후 뒤늦게 의심스러운 정황을 발견했다면 아래와 같은 대응이 필요하다.
가급적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것이 좋다. 신용카드는 여신전문금융업법상 할부 결제 시 항변권을 행사할 수 있고, 사기 거래로 확인되면 카드사를 통한 결제 취소가 비교적 수월하다. 반면 계좌이체나 무통장입금은 환불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이상 징후를 발견하면 즉시 오픈마켓 고객센터나 안전거래센터에 문의해야 한다. 주말이라 상담이 어렵다면 온라인 채팅 상담이나 신고 접수 기능을 우선 활용하고, 결제 취소 요청을 함께 남겨두는 것이 좋다.
만약 실제로 상품이 배송됐다면, 박스 개봉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영상으로 남겨두는 것을 권한다. 송장 부착 상태와 박스 훼손 여부를 먼저 촬영한 뒤, 테이프를 뜯는 순간부터 내용물을 꺼내는 과정까지 끊김 없이 촬영해두는 것이 좋다. 저가 미끼상품 사기 중에는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제품값을 결제하게 한 뒤 무게만 맞춘 벽돌이나 전혀 다른 물건을 박스에 넣어 보내는 사례도 있다. 이런 경우 박스를 이미 개봉한 뒤에는 '처음부터 빈 박스였다', '내용물이 바뀐 적 없다'는 판매자 측 주장에 맞서 입증하기가 매우 까다로워지는데, 개봉 전 과정이 담긴 영상이 있으면 결제 취소나 경찰 신고 시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피해가 확정되면 경찰청 사이버수사국(112 또는 사이버범죄 신고시스템 ECRM)에 신고해야 한다. 캡처해둔 상품 페이지, 판매자 정보, 결제 내역, 개봉 영상, 문자 안내 등은 증빙 자료로 남겨두는 것이 좋다.
AI발 수요 폭증으로 그래픽카드 같은 고성능 부품의 몸값이 치솟는 흐름은 당분간 쉽게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기일수록 '너무 좋아 보이는 가격'은 그 자체로 경고 신호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IT동아 김영우 기자 (pengo@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