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11일 경기도 성남시 포티투닷 본사에서 자율주행 AI '아트리아 AI(Atria AI)'의 실제 도로 주행 모습을 공개했다(현대차그룹)
[오토헤럴드 김훈기 기자=성남] 서울 도심을 달리는 차량 앞에 갓길 주정차 차량이 나타나자 차는 속도를 조절하고 주변을 살핀 뒤 자연스럽게 피해간다. 좁은 이면도로에서 맞은편 차량과 마주치거나 갑자기 다른 자동차가 끼어드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그룹이 11일 경기도 성남시 포티투닷 본사에서 처음 공개한 자체 자율주행 AI '아트리아 AI(Atria AI)'의 실제 도로 주행 모습을 공개했다. 현대차그룹은 이날 '자율주행 미디어 데이'를 열고 Atria AI의 서울 도심 주행 영상과 함께 향후 자율주행 양산 로드맵을 선보였다.
현재 Atria AI는 센서 입력에서 차량 제어 명령까지 AI 모델이 직접 연결하는 E2E(End-to-End) 방식을 기반으로 개발되고 있으며, 현대차그룹은 이날 공개한 기술 수준을 레벨2++로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전략은 외부 솔루션을 활용해 양산 시점을 앞당기는 동시에 자체 기술을 고도화하는 투 트랙 방식이다. 먼저 엔비디아 솔루션을 적용해 2028년부터 양산 경험을 쌓고, 현대차·기아 AVP본부와 포티투닷은 자체 Atria AI를 별도로 고도화해 2029년 하반기 자체 기술 기반 레벨2++ 양산을 추진한다.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전략은 외부 솔루션을 활용해 양산 시점을 앞당기는 동시에 자체 기술을 고도화하는 투 트랙 방식이다(오토헤럴드 김훈기 기자)
그런데 이날 공개된 주행 영상을 보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복잡한 도심에서 이미 상당한 수준의 주행을 보여준 기술을 왜 2029년 하반기까지 기다려야 할까. 현장 질의응답에서도 같은 질문이 나오자 박민우 현대차·기아 AVP본부장 겸 포티투닷 대표는 "사실 총력을 다하면 더 빨리 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전략적으로 일정을 늦춰 잡았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가 제시한 이유는 '노스 스타(North Star)'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다. 당장 양산을 서두르면 현대차그룹이 지향하는 기술 수준과 거리가 있는 중간 단계의 레벨2++를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다.
그는 테슬라와 엔비디아에서 근무하며 경험한 가장 큰 실패 가운데 하나로 눈앞의 기술을 빨리 구현하려다 개발 인력이 소진되는 상황을 꼽았다. 엔비디아 기술을 활용해 2028년부터 양산을 먼저 시작하는 것도 자체 기술 개발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Atria AI라는 장기 목표에 내부 자원을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자동차 개발 주기가 길다는 점도 2029년이라는 시점을 결정한 배경이다. 센서와 컴퓨팅, 전장 아키텍처는 차량 개발 초기부터 설계에 반영돼야 하는데 박 대표가 부임한 시점에서 하이페리온 기반 센서와 컴퓨팅 구조를 반영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차량이 2028년 이후 양산 차종이었다.
권정현 현대차·기아 AVP본부 자율주행개발센터장 부사장은 2027년까지 주행·주차·능동안전 등 필요한 기능을 제품 차원에서 완성도 높게 구현하고, 2028년에는 다양한 엣지 케이스 데이터를 집중적으로 모아 안전성을 검증한다고 설명했다. 또 2029년에는 국내뿐 아니라 북미와 유럽 등 주요 시장의 안전 인증 획득을 준비한다.
현대차그룹은 이날 질의응답에서 2028년 이후 양산차에 적용할 자율주행 센서 구성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현대차그룹)
#차량 한 대의 '눈'도 2028년부터 표준화
현대차그룹은 이날 질의응답에서 2028년 이후 양산차에 적용할 자율주행 센서 구성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엔비디아 드라이브 하이페리온 10을 기준으로 하되 모든 센서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차량에 필요한 구성을 선택하며 기본적으로 카메라 10개, 전방 레이더 1개, 초음파 센서 12개를 적용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이 센서와 컴퓨팅 환경을 표준화하려는 이유는 단순 생산 효율보다 차량의 소프트웨어 수명을 길게 가져가기 위해서다. 고객이 차량을 구매한 뒤 7~8년이 지나도 새로운 AI 모델과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일정 수준 이상의 하드웨어 성능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자동차가 출고되는 순간 기능이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소프트웨어를 통해 진화하는 SDV 개념을 자율주행 하드웨어 단계에서부터 반영하겠다는 의미다.
라이다 적용 가능성도 열어뒀다. 현재 구체적인 적용 시점은 밝히지 않았지만 박 대표는 향후 레벨3 자율주행 기술을 고려할 경우 안전을 위한 센서 리던던시 차원에서 라이다 적용을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현대차그룹에서 자율주행 전용으로 운용하는 SDV 테스트베드는 대략 10~20대 수준으로, 이날 영상 속 차량 역시 아이오닉 6 차체를 기반으로 한 테스트 차량이다(현대차그룹)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이'보다 '무엇을 모으나'
현재 현대차그룹에서 자율주행 전용으로 운용하는 SDV 테스트베드는 대략 10~20대 수준으로, 이날 영상 속 차량 역시 아이오닉 6 차체를 기반으로 한 테스트 차량이다. 정성균 포티투닷 Atria Group GL은 차량 내부 시스템과 장치의 절반 이상에 새롭게 적용한 독자 기술이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차세대 SDV 페이스카도 이미 완성돼 광주 자율주행 실증사업 등에 투입될 예정이다. 이후 서울과 판교에서도 개발자들이 실제 출퇴근 과정에 차량을 활용하면서 도로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엣지 케이스를 발굴할 계획이다.
현재 시험차 규모만 놓고 보면 대규모 양산 차량에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는 글로벌 업체들과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장에서도 테슬라 등 경쟁사와 데이터 규모 격차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지만 현대차그룹은 누적 실도로 데이터 규모를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단순히 데이터를 많이 모으는 것과 실제 AI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이 데이터 격차를 줄이기 위해 강조한 방법은 '타깃팅 데이터 컬렉션'이다(오토헤럴드 김훈기 기자)
#100만 개보다 중요한 '한 개'…타깃팅 데이터 컬렉션
현대차그룹이 데이터 격차를 줄이기 위해 강조한 방법은 '타깃팅 데이터 컬렉션'이다. 수십 년간 차량을 개발하고 시험하면서 축적한 시험·검증 경험을 활용해 차량이 어려움을 겪는 코너 케이스와 엣지 케이스를 먼저 정의하고, 해당 상황을 집중적으로 수집한다는 것.
일반적인 주행 데이터를 대규모로 모은 뒤 필요한 장면을 골라내는 것보다 처음부터 학습 가치가 높은 데이터를 찾아 확보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이다.
박 대표는 이를 유니폼 샘플링과 임포턴스 샘플링의 차이로 설명했다. 같은 100만 개의 샘플이 있더라도 전체 성능을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하나의 샘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갓길 주정차 차량 회피가 대표적인 사례다.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 도심에서는 빈번하게 발생하고 주변 차량과 차선, 반대편 교통 흐름까지 함께 판단해야 해 자율주행 시스템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박 대표는 현대차그룹 합류 이후 이처럼 빈번하면서도 어려운 상황의 대응 수준을 높이는 것이 전체 자율주행 품질을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부임 초기와 비교해 현재 갓길 차량 회피와 소멸 차로 대응 능력이 많이 향상됐다는 평가다.
다만 현대차그룹 역시 궁극적으로 자율주행을 고도화하려면 데이터의 절대적인 양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박 대표는 가치 있는 데이터를 선별하는 동시에 대규모 데이터를 최대한 빠르게 확보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밝혔다.
주행→데이터 수집→학습→검증→다시 주행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현대차그룹이 이날 반복해서 강조한 '데이터 플라이휠(Data Flywheel)'이다(현대차그룹)
#"주행 끝나고 찾지 말고, 바로 기록하라"
고부가가치 데이터를 빠르게 확보하기 위해 박 대표가 부임 후 가장 먼저 요구사항을 직접 작성한 기술이 SER(Special Event Recorder)이다. 모든 주행 데이터를 저장한 뒤 개발자가 필요한 장면을 일일이 찾는 대신, 실제 도로에서 의미 있는 상황이 발생하는 순간 해당 데이터를 찾아 기록하는 역할을 한다.
박 대표는 "다 모아 놓고 나중에 찾기는 매우 어렵다"며 주행하는 순간 가치 있는 데이터를 핀포인트로 잡아내는 기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확보한 데이터는 다시 AI 학습과 검증으로 이어진다. 주행→데이터 수집→학습→검증→다시 주행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현대차그룹이 이날 반복해서 강조한 '데이터 플라이휠(Data Flywheel)'이다.
결국 도로에서 발생한 새로운 상황이 다시 AI를 학습시키고, 개선된 AI가 또 다른 주행 데이터를 만드는 순환 속도를 얼마나 높이느냐가 자율주행 개발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현대차그룹은 자체 자율주행 AI에서도 하나의 기술에만 무게를 싣지 않고 E2E와 VLA(Vision-Language-Action)를 동시에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오토헤럴드 김훈기 기자)
#E2E와 VLA, 두 가지 선택지 모두 확보
현대차그룹은 자체 자율주행 AI에서도 하나의 기술에만 무게를 싣지 않고 E2E와 VLA(Vision-Language-Action)를 동시에 개발하고 있다. 현재 Atria AI는 센서 입력에서 차량 제어 명령을 직접 생성하는 E2E 방식을 기반으로 하며, 양산 역시 완성도가 높은 E2E가 우선이다.
VLA는 시각 정보를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언어 기반 추론과 차량 행동까지 하나의 모델에서 연결하는 방식이다. 포티투닷은 빠르게 변화하는 AI 기술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VLA를 병행 개발하고 있다.
이희석 포티투닷 Trion Group GL은 비전-액션 방식이 속도와 계산 효율 측면에서 장점이 있지만 최신 AI 컴퓨팅 하드웨어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VLA 역시 실시간 추론이 가능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이 더 복잡한가가 아니라 실제 주행에서 어느 기술이 더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판단을 제공하느냐다. 포티투닷은 E2E 개발 과정에서 구축한 데이터와 기술 인프라, 차량 자원을 VLA에도 활용하면서 두 기술을 상황에 따라 선택하거나 조합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부족한 데이터를 얼마나 빨리 확보하고, 가치 있는 데이터를 얼마나 정확하게 골라내며, 다시 AI에 학습시킬 수 있는지를 경쟁력으로 보고 있다(현대차그룹)
#결국 경쟁은 '얼마나 빨리 학습하느냐'
이날 발표와 질의응답을 모두 종합하면 현대차그룹이 자율주행 경쟁에서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는 비교적 분명하다. 지금 당장 특정 경쟁사보다 높은 성능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보다 부족한 데이터를 얼마나 빨리 확보하고, 가치 있는 데이터를 얼마나 정확하게 골라내며, 다시 AI에 학습시킬 수 있는지를 경쟁력으로 보고 있다.
시험차는 현재 10~20대 수준이지만 SDV 페이스카가 추가 투입되고 2028년부터 엔비디아 기반 양산차가 도로에 나오기 시작하면 데이터 수집 범위도 달라진다. 여기에 양산 과정에서 얻는 경험과 데이터는 다시 2029년 하반기를 목표로 하는 자체 Atria AI 개발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날 공개된 서울 도심 주행 영상보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이후 질의응답에서 드러난 개발 전략이었다. 현대차그룹이 현재 Atria AI의 순간적인 성능보다 앞으로 3년 동안 이 AI를 얼마나 빠르게 학습시키고 진화시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느냐에 더 큰 승부를 걸고 있다는 점이다.
도로에서 마주친 하나의 새로운 상황을 다음 차량의 더 나은 판단으로 얼마나 빨리 연결할 수 있느냐. 현대차그룹이 말한 '자율주행 경쟁은 결국 학습 속도의 경쟁'이라는 표현도 결국 여기에 닿아 있다.
김훈기 기자/hoon149@gmail.com
ⓒ 오토헤럴드(http://www.autoherald.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