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경기 성남시 포티투닷 본사에서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미디어데이가 열렸다. 여러모로 이례적인 자리였다. 엔비디아와의 협업 구조와 데이터 플라이휠의 작동 원리가 세세히 공개되었고, 서울 도심을 달리는 아트리아 AI 테스트베드 차량의 실주행 영상도 함께 베일을 벗었다. 회사가 자율주행 개발의 속내를 이토록 구체적으로 밝힌 자리는 흔치 않았다. 현대차그룹이 설정한 방향성은 이미 앞서 달리는 글로벌 경쟁자들의 지향점과 얼마나 겹칠까. 그리고 격차는 얼마나 벌어져 있을까.
박민우 현대차·기아 AVP본부장(사장) 겸 포티투닷 대표가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강조했다. 테슬라에서 오토파일럿 초기 개발에 참여하고, 엔비디아에서는 자율주행 인지 조직을 이끌었던 그의 이력 때문인지, 진단은 흔한 기술 홍보성 발언과는 결이 달랐다. 엔진 마력과 연비, 제조 품질로 가려지던 경쟁력의 축이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제는 데이터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얼마나 빠르게 학습시켜 제품에 반영하느냐가 승패의 관건이라는 뜻이다. 그는 자율주행이 빠진 완성차를 두고, 조만간 바퀴 없는 자동차만큼이나 상상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러한 진단 자체는 새롭지 않다. 웨이모와 테슬라, 그리고 중국의 로보택시 3사가 이미 수년째 입증해 온 명제이기도 하다. 다만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연간 700만 대를 판매하는 거대 완성차 기업이 이 프레임을 공식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이다. 나아가 조직 개편과 데이터 파이프라인 구축이라는 구체적 실행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올해 초 합류한 박민우 사장이 가장 먼저 한 일도 스페셜 이벤트 리코더(SER) 요구사항을 직접 작성해 조직에 배포한 것이었다. 데이터를 미리 모아두지 않고 나중에 찾으려 하면 이미 늦는다는 판단에서다.
현대차그룹 투트랙 전략의 한 축은 엔비디아 드라이브 하이페리온10 기반의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는 속도전이다. 2028년 상반기 레벨2+, 하반기 레벨2++ 양산을 목표로 한다. 다른 한 축은 포티투닷과 AVP본부가 공동 개발하는 자체 엔드투엔드 AI, ‘아트리아 AI’다. 2029년 하반기 레벨2++ 양산을 시작으로 레벨4까지 단계적으로 범위를 넓혀가는 기술 내재화 경로다. 두 트랙 모두 센서 표준화가 수반된다. 카메라 10개, 전방 레이더 1개, 초음파 센서 12개로 구성된 하이페리온10 규격에 맞추는 방식이다.
다만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하이페리온 플랫폼은 이미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공용 인프라에 가깝다. BYD, 지리, 닛산, 메르세데스-벤츠, 볼보, 재규어랜드로버 등 수많은 완성차 업체가 이미 올라타 있다. 따라서 엔비디아 트랙만으로는 남들과 같은 출발선에 서는 것 이상의 차별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결국 현대차그룹의 진짜 승부처는 아트리아 AI이며, 그 위에서 작동하는 데이터 플라이휠이 핵심이다. 문제는 이 승부의 결과가 2029년 하반기에야 판가름 난다는 점이다. 지금부터 꼬박 3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같은 시각 미국과 중국의 로보택시 시장은 완전히 다른 속도로 굴러가고 있다. 웨이모는 미국 10여 개 도시에서 로보택시 3,000여 대를 운행 중이다. 주당 유상 운행 50만 건을 돌파했고, 연내 주당 100만 건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최근에는 160억 달러(약 22조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1,260억 달러(약 176조 원)를 인정받았다. 런던과 도쿄를 포함해 20여 개 도시로 서비스를 확장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흥미로운 대목은 또 있다. 국내 매체들에 따르면 현대차는 최대 5만 대 규모의 아이오닉 5를 웨이모에 공급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로보택시 하드웨어 물량 공급이다. 하지만 정작 이날 질의응답에서 박민우 사장은 선을 그었다. 웨이모의 센서 구성이 자사와 달라 데이터를 직접 활용하는 시너지는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부품은 공급하되 기술은 섞지 않는,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관계라는 뜻이다.
테슬라는 2026년 9월 초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운전대와 페달, 백미러를 완전히 없앤 자율주행 전용 로보택시 ‘사이버캡(Cybercab)’의 일반인 대상 유료 상용 서비스를 개시하며 전격 승부수를 던졌다. 수십 대 규모의 시범 운행과 초반 45대 안팎의 실차 투입, 연방 자동차 안전기준(FMVSS) 규제 우회 논란이라는 변수가 여전히 뒤따르지만, 전 세계 148만 명에 달하는 FSD 구독자가 매일 쏟아내는 주행 데이터에 양산형 목적 기반(Purpose-Built) 로보택시의 실전 데이터를 직접 결합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기존 로보택시 진영과 다른 차원의 자산을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 눈여겨봐야 할 곳은 중국이다. 바이두 아폴로고는 27개 도시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며 누적 주행거리 3억 3,000만 km, 누적 탑승 1억 건을 넘어섰다. 지난 5월에는 글로벌 로보택시 순위에서 웨이모를 앞질렀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포니에이아이와 위라이드 역시 미국 증시 상장 후 중동과 동남아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여기에 변수가 하나 더 있다. 현대차그룹이 지분을 보유한 중국 자율주행 기업 모멘타다. 모멘타는 중국 3자 도심 내비게이션 자율주행(NOA) 공급 시장의 65%를 점유하고 있다. 도심 NOA 보급률은 2025년 11%에서 2030년 62%까지 급증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경쟁자이자 주주라는 다소 모순된 지위에서 이 흐름을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수치들을 보면 현대차그룹의 셈법은 복잡해진다. 이날 공개된 현대차그룹의 데이터 수집 차량은 40여 대에 불과하며, 자율주행 전용 SDV 테스트베드는 10~20대 수준에 그친다. 소박한 규모다. 포티투닷 정성균 아트리아 그룹 GL은 양산이 본격화되면 5년 안에 경쟁사들이 쌓아온 데이터를 추월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질의응답에서 동일한 질문에 구체적인 수치를 요구하자 답변은 달라졌다. 지금은 정확히 밝히기 어렵다는 답이 돌아온 것이다. 아직은 계획과 의지 이상의 명확한 근거를 내놓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대차그룹의 로보택시 사업은 세 갈래로 뻗어 있다. 앱티브와 손잡은 합작사 모셔널이 첫 번째 축이다. 지난 3월부터 라스베이거스에서 우버와 함께 아이오닉 5 로보택시 시범 서비스를 운영 중이며, 연말 완전 무인 상용화를 목표로 한다. 자체 아트리아 AI 기반의 레벨4 개발은 두 번째 축으로, 2029년 하반기 이후를 바라본다. 여기에 웨이모용 하드웨어 공급까지 더해지면서 세 번째 축을 이룬다. 현대차그룹은 로보택시 사업자이자 부품 공급자라는 두 가지 얼굴을 동시에 갖게 된 셈이다.
권정현 부사장은 이 구조에 대해 지정학적 변수 탓에 한 국가에서 개발한 모델이 다른 국가로 진출하지 못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러 모델을 동시에 운용하는 편이 오히려 리스크 관리에 유리하다는 취지다. 이는 유연한 분산 투자로 읽힐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느 한쪽에도 확신을 갖지 못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도 있다.
같은 기간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올해 초 S클래스 페이스리프트 모델에서 레벨3 드라이브파일럿을 제외하고, 레벨2++ 수준의 MB.드라이브 어시스트 프로로 전환했다. BMW 역시 4월 7시리즈 페이스리프트에서 퍼스널 파일럿 L3 옵션을 철회했다. 두 회사 모두 복잡하고 비용 부담이 큰 레벨3 대신, 현실적이고 실효성 높은 레벨2++에 집중하기로 선회한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현대차그룹의 선택에 뜻밖의 명분을 제공한다.
권정현 부사장의 우려 역시 같은 맥락이다. 지금 서둘러 양산에 나서면 어정쩡한 레벨2++ 단계에 머물게 되고, 이는 결국 목표로 하는 완전한 자율주행과 거리가 멀어진다는 지적이다. 독일차들의 후퇴는 이러한 우려에 힘을 실어준다. 그러나 이에 따른 대가도 분명하다. 현대차그룹은 향후 3년 동안 시장에 내세울 뚜렷한 레벨3 카드 없이 버텨내야 한다.
기술 로드맵 못지않게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치명적 변수는 제도다. 국토교통부는 국제기준인 유엔 규정 제171호에 맞춰 제도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운전자제어보조장치, 이른바 디카스(DCAS) 안전관리 체계 도입이 핵심이다. 국회에도 관련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으며, 지난 4월에는 법조·공학·보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자율주행차 사고책임 태스크포스(TF)도 출범했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레벨3 이상 사고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규정한 제도가 정착하지 못했다.
이날 국토부의 디카스 대응 방안을 묻자 권정현 부사장은 정부와 소통하며 준비 중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에 그쳤다. 고속도로 진입 구간의 속도 제한에 관한 언급은 그나마 구체적이었다. 동일한 하이웨이드라이빙어시스트(HDA)라 하더라도 국가별 규정에 따라 한국과 미국에서 체감하는 성능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정작 핵심 변수인 사고책임과 인증 기준의 불확실성에 대해서는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전략에서 높이 평가할 대목은 분명히 있다. 전 세계 190여 개국에서 연간 700만 대를 판매하는 거대한 양산 규모는 그 어떤 로보택시 스타트업도 갖지 못한 잠재적 무기다. 테슬라와 엔비디아 출신의 핵심 리더십을 영입해 실리콘밸리식 개발 문화를 이식하려는 시도 역시 눈에 띈다. 맑은 날의 평범한 주행 정보는 버리고 AI가 인지하기 힘든 예외 상황 데이터를 집중 발췌하는 '하드 이그잼플 마이닝', 그리고 이렇게 모인 난제 데이터를 바탕으로 AI 모델을 끊임없이 재학습시키는 '컨티뉴어스 트레이닝' 등 실리콘밸리식 고도화된 데이터 엔지니어링 체계를 갖춘 점도 긍정적이다. 나아가 엔비디아, 모셔널, 모멘타, 웨이모를 아우르는 다변화된 포트폴리오는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나름의 합리적인 셈법이다.
그럼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있다.
첫째, 2029년 하반기까지 이어지는 긴 로드맵이다. 현대차그룹이 준비하는 동안 경쟁자들이 멈춰 서서 기다려줄 리 없다. 웨이모와 바이두는 이미 수백만에서 수억 km 단위의 실주행 데이터를 축적했으며, 그 격차는 매주 더 벌어지고 있다.
둘째, 그룹 내부의 데이터 파편화 문제다. 엔비디아, 아트리아 AI, 모셔널, 모멘타, 웨이모 공급까지 트랙이 과도하게 분산되어 있고, 심지어 그룹 내부 차량조차 서로 다른 센서를 채택하고 있다. 데이터 유니언 구상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다.
셋째, 안전 이중화의 공백이다. 라이다(LiDAR) 탑재 여부조차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비전-언어-행동(VLA) 기술은 실차 검증 이전 단계에 머물러 있다.
넷째, 제도적 리스크다. 국내외 인증 제도와 사고책임 법안이 정비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실제로 도로 위에 올려놓는 시점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결국 지난 11일 미디어데이가 보여준 모습은 완결판이라기보다 출발선에 가까웠다. 조급해하지 않고 데이터의 질과 안전성을 동시에 끌어올리겠다는 현대차그룹의 결단은 나름의 합리성을 갖추고 있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레벨3 후퇴 역시 이러한 판단에 명분을 더해준다. 하지만 그 합리성이 성공이라는 결과로 증명되기까지는 2029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사이 웨이모와 바이두, 테슬라는 수천만 명의 승객을 실어 나르며 실전 데이터를 계속해서 쌓아 올릴 것이다. 현대차그룹에 남겨진 진짜 숙제는 다음 미디어데이에서 '40여 대'라는 데이터 수집 차량 숫자를 몇 배로 확대한 실질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일이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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