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박귀임 기자] 헬스케어 산업의 지형이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국내외 기업과 서비스를 엄선해 소개합니다. 헬스케어픽은 신기술을 앞세운 스타트업부터 사업 확장에 나선 대기업, 그리고 주목할 만한 서비스까지 국경을 가리지 않고 헬스케어 업계의 소식을 전합니다.
오킨, 독일 제약사와 라이선스 체결 '신약 발굴 프로세스 가속화'
프랑스 파리와 미국 뉴욕에 거점을 둔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오킨(Owkin)이 9월 2일 독일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Boehringer Ingelheim)과 자사 AI 사이언티스트 'K 프로(K Pro)'와 멀티모달 환자 데이터를 함께 제공하는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종양학과 면역학 전반의 여러 적응증에 걸쳐 신약 발굴 프로세스를 가속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번 계약은 2025년 양사가 함께 진행한 초기 파일럿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합니다. 해당 파일럿에서 오킨은 자사 데이터셋 '모자이크(MOSAIC)'을 통해 특정 유전자 타깃의 종양 미세환경(tumor microenvironment)에 대한 심층적인 공간 인사이트를 제공한 바 있습니다.
특히 베링거인겔하임이 오킨과 곧바로 전사적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 약 1년간의 파일럿으로 실제 성과를 검증한 뒤 계약 범위를 확대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로이터와 블룸버그 등의 보도에 따르면 오킨은 앞서 올해 5월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와, 6월 사노피(Sanofi)와도 각각 K 프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바 있습니다. 이 역시 동일하게 파일럿 검증을 거친 사례들입니다. 이로써 베링거인겔하임은 K 프로를 도입한 세 번째 글로벌 빅파마가 됐습니다. 파일럿을 통한 단계적 신뢰 구축이 빅파마들의 외부 AI 플랫폼 도입 표준 절차로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번 계약에 따라 오킨은 종양학 분야의 멀티모달 데이터를 베링거인겔하임에 라이선스하는 동시에, 면역학 분야에서는 새로운 멀티모달 데이터를 생성합니다. 오킨은 자사의 글로벌 환자 데이터 네트워크와 협력해 이 같은 데이터를 라이선스·소싱·생성하고 있다고도 밝혔습니다.
베링거인겔하임의 연구팀은 K 프로를 통해 이 데이터에 접근하고 분석합니다. K 프로는 데이터를 탐구하고 재현 가능한 분석을 수행하는 단일 환경을 제공하며, 그 추론(reasoning) 역량은 사람이 주도하는 분석뿐 아니라 가설 생성·검증·우선순위 지정을 위한 자율 주도형 캠페인까지 지원한다고 오킨 측은 설명했습니다. 즉 오킨이 파는 것은 AI 모델 하나가 아니라 모델과 데이터, 데이터 생성 역량을 하나로 묶은 패키지인 셈입니다.
토마스 클로젤(Thomas Clozel) 오킨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계약은 최첨단 AI가 데이터 기반 제약 연구를 가능하게 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라며 "향후 10년간의 신약 개발은 심층적인 멀티모달 환자 데이터에 대한 접근, 그리고 그 데이터를 추론할 수 있는 K 프로와 같은 AI 사이언티스트의 존재에 의해 정의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파일럿 단계에서는 종양학에 집중했지만, 이번 정식 계약에서는 면역학 분야 데이터 생성이 새롭게 포함됐습니다. 이는 오킨의 플랫폼이 특정 질환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치료 영역으로 확장 가능한 인프라임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베링거인겔하임 입장에서는 종양학과 면역질환 파이프라인 전반에 걸쳐 AI 기반 발굴 역량을 내재화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오킨의 핵심 자산은 AI 모델 자체보다 글로벌 환자 데이터 네트워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AI 모델의 정교함보다 양질의 멀티모달 환자 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가 빅파마와의 협상력을 좌우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루닛, 美 10x 지노믹스와 협력 "대규모 분석 역량 더한다"
국내 의료 AI 기업 루닛(Lunit)이 미국 생명과학기업 10x 지노믹스(10x Genomics)와 협력을 맺었다고 9월 10일 밝혔습니다. 이번 협력에 따라 루닛의 AI 병리분석 플랫폼 '루닛 스코프 IO(Lunit SCOPE IO)'를 10x 지노믹스의 종양학 바이오마커 발굴 워크플로에 결합합니다.
특히 루닛 스코프 IO는 이번 협력으로 10x 지노믹스의 종양학 임상연구에서 생성되는 공간분자 데이터와 함께 헤마톡실린-에오신(H&E) 병리 이미지를 분석하는 데 활용됩니다. 10x 지노믹스는 공간분석 플랫폼 '제니움(Xenium)'과 '아테라(Atera)'를 통해 조직 내 세포 단위 유전자 발현을 지도화하는 기술입니다. 관련 기술이 1만 건 이상의 연구 논문에 인용될 만큼 단일세포·공간생물학 분야에서 입지를 다진 기업인 만큼 더욱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번 협력의 핵심은 서로 다른 두 데이터 레이어를 잇는 데 있습니다. 10x 지노믹스의 공간분석 기술이 만들어내는 분자 수준의 유전자 발현 지도와 루닛 스코프 IO가 딥러닝으로 특성화하는 종양·기질 영역, 면역세포 분포, 3차 림프구조 등 조직 형태 정보를 같은 종양 샘플 위에서 결합하는 방식입니다.
서범석 루닛 대표는 "루닛 스코프 IO는 전체 H&E 영상을 대규모로 분석할 수 있는 역량을 더합니다"라면서 "두 기술을 결합하면 연구자들이 깊이 있는 분자 인사이트와 병리학자들이 매일 인식하는 조직 패턴을 서로 연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로먼 옐렌스키(Roman Yelensky) 10x 지노믹스 임상 응용 담당 부사장도 "공간분석 기술은 종양 미세환경에 대해 근본적으로 더 풍부한 시각을 제공합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이를 병리학자들이 매일 다루는 동일한 H&E 이미지에 대한 루닛의 AI 분석과 결합하면, 치료 전략 수립과 향후 진단법 개발에 기여할 바이오마커 발굴을 가속화할 수 있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는 단일 기술의 우수성만으로는 정밀종양학 연구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업계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영상 기반 AI와 분자 기반 공간생물학처럼 서로 다른 관점의 데이터를 통합하는 것이 신약 개발과 바이오마커 발굴의 새로운 경쟁축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양사에 따르면 이번 협력을 통해 항체약물접합체(ADC)와 면역항암제 치료반응 예측에 초점을 맞춘 임상연구에 우선 적용할 계획입니다. 두 분야는 최근 글로벌 제약업계에서 가장 활발한 개발·투자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만큼 신약 자체 개발 못지않게 어떤 환자가 반응할지를 가려내는 정밀 바이오마커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힙니다.
현재 루닛 스코프 IO는 연구용으로만 사용되며, 진단 절차에는 쓰이지 않습니다. 루닛 측은 "이번 연구가 종양학 분야에서 공간분석 기술의 향후 잠재적 진단 응용 가능성을 탐구하려는 10x 지노믹스의 더 폭넓은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표현은 향후 규제 승인을 받은 동반진단(companion diagnostic) 제품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보입니다.
루닛은 2025년 11월 미국 검사기관 랩콥(Labcorp)과도 유사한 디지털 병리 AI 협력을 맺은 바 있습니다. 검사기관에 이어 생명과학 플랫폼 기업까지 파트너 범위를 넓히면서 루닛 AI가 해외 임상연구 현장에서 표준 도구로 자리잡는 모습입니다.
오라클 헬스, 임상 AI 에이전트 업데이트···의사 이어 간호사로 확대
미국 헬스케어 IT 기업 오라클 헬스(Oracle Health)가 9월 14일 입원 환경에서 간호사의 문서작업 부담을 완화하고 진료 조정을 간소화하는 '오라클 헬스 임상 AI 에이전트(Oracle Health Clinical AI Agent)'의 간호사용 기능을 미국에서 정식 출시합니다.
오라클 헬스에 따르면 오라클 헬스 파운데이션 전자의무기록(EHR)에 직접 내장된 해당 AI 기능은 음성 기반 차트 탐색·검색, 급성기 간호 요약, 음성 기반 개별항목 차팅을 결합해 간호사가 환자 정보를 빠르게 찾고 실시간에 가까운 속도로 진료 내용을 기록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시마 버마(Seema Verma) 오라클 헬스 앤드 라이프 사이언스 총괄 부사장은 "간호사는 환자 진료의 중심이지만 하루 중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반복적인 수작업과 정보 검색, 진료 기록, 진료팀 간 조정 업무에 소모되고 있습니다"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이번 기능은 환자 정보에 더 빠르게 접근하고 진료 현장에서 음성 기반 문서작업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간호사들이 환자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진료팀 전반의 협업을 지원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오라클 헬스에 따르면 임상 AI 에이전트의 임상 노트 기능은 약 2년 전 출시된 이후 미국 내 의료기관들에 걸쳐 의사들의 업무시간을 40만 시간 이상 절감했습니다. 이번 발표는 그 다음 단계로 간호사용 기능을 새롭게 선보인 것으로, 그간 '의사 번아웃' 해소에 집중돼온 의료 AI 업계의 관심이 간호사의 행정 부담이라는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간호사는 환자와 접촉하는 절대시간이 의사보다 많은 직군인 만큼 이들의 문서작업 부담을 줄이는 것이 실제 환자 경험 개선에 미치는 영향은 오히려 더 클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이번에 출시된 세 가지 기능 중 두 가지가 음성 입력을 기반으로 합니다. 자연어 음성 명령으로 환자 기록 전반에서 정보를 신속하게 찾을 수 있는 차트 탐색·검색 기능과 진료 현장에서 실시간에 가까운 속도로 구조화된 문서작업을 완료할 수 있는 음성 기반 개별항목 차팅입니다. 여기에 환자의 병력과 현재 상태에 대한 간결한 개요를 제공해 수작업 차트 검토를 최소화하는 AI 기반 급성기 간호 요약 기능도 더해집니다.
이는 간호사가 근무 중 키보드 앞에 앉을 시간 자체가 부족하다는 임상 현장의 근본적 제약을 겨냥한 설계로 보입니다. AI 기술의 정교함 못지않게 손을 쓰지 않고도 접근할 수 있게 만드는 인터페이스 설계가 임상 채택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이 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린넷 클린턴(Lynnette Clinton) 베이케어 헬스 시스템(BayCare Health System) 최고정보책임자(CIO)는 "우리 조직 전반에 걸쳐 생성형 AI 활용을 확대해나가는 과정에서 오라클 헬스는 간호 기능이 진료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우리의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반영해왔습니다"면서 "간호사들이 실시간으로 문서작업을 완료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근무 종료 후 차팅을 줄이고 행정 부담을 완화하며 환자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줄 잠재력이 있습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번 AI는 임상적 의미를 이해하고, 워크플로 전반에 걸쳐 맥락을 공유하며, 임상진료진이 통제권을 유지한 상태에서 지능형 자동화를 지원하기 위해 실시간에 가까운 속도로 협업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오라클 헬스 측은 설명했습니다.
이번 기능이 별도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오라클 헬스 파운데이션 EHR에 직접 내장된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AI 기능을 기존 EHR 생태계와 분리할 수 없는 형태로 결합함으로써 병원 입장에서는 시스템을 교체하기 어려워지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이는 AI 스타트업들이 별도의 모델·데이터 라이선스로 협상력을 확보하는 방식과는 결이 다른, 대형 인프라 기업 특유의 경쟁 전략으로 볼 수 있습니다.
IT동아 박귀임 기자(luckyim@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