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선택이라면 좋습니다.”
내가 사전에 디 올 뉴 투싼을 만났을 때 현대차 관계자에게 전달했던 의견이다.
디 올 뉴 투싼은 이전 세대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터프한 디자인, 확실히 커지고 눈에는 더 크게 보이는 차체, 우리 나라에 최초로 정식 데뷔하는 XRT 트림 등이 대표적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첫 세대부터 지켜왔던 도시형 크로스오버에서 오프로더의 향기가 짙은 올라운더 유틸리티의 이미지로 포지션을 바꾼 것이다.
그런데 투싼의 변신은 모델 차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것은 현대차 SUV 전략 변경의 완성이다. 사실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부분적인 움직임들은 꾸준히 늘어왔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새로운 SUV 전략은 ‘북미 SUV 전략의 확대 적용’이다.
현대차 브랜드는 내수 시장에서의 SUV 판매 저조 현상을 고민해 왔다. 어떻게 보면 원래 SUV와 MPV 등 라이프스타일 장르 중심이었던 기아 브랜드가 크로스오버 SUV 전성 시대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즉 현대차가 특별하게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기는 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현대차는 이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돌파구가 있을 듯 했다. 바로 북미 시장이다. 현대차는 가장 큰 시장 가운데 하나인 미국 시장에서 기아 브랜드를 이기고 있기 때문이다. 2025년 현대차 브랜드는 미국에서 약 65만7천대의 SUV를 팔았고, 기아는 거의 56만7천대를 팔았다. 심지어 미국 기아는 텔룰라이드라는 국내에는 없는 걸출한 성공작까지 있는데 말이다. 특히 투싼과 싼타페가 각각 스포티지와 쏘렌토를 큰 차이로 앞질렀다.
미국 시장과 국내 시장에서의 성적을 가른 차이가 무엇일까? 미국내 현대차의 판매망이 더 조밀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국내 시장에서도 마찬가지, 아니 차이가 더 커진다. 그렇다면 판매 실적에 그 다음으로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원인은 제품이다. 그리고 현대차 SUV 제품 라인업이 에서 찾을 수 있는 기아 SUV 라인업의 강점은 무엇일까?
그 답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바로 기아 텔룰라이드다. 미국에서 기아 SUV 라인업의 다른 모델들은 모두 동급 현대차 모델에게 열세인 것에 비하여 텔룰라이드는 유독 팰리세이드보다 우위에 있었다. 주된 이유는 바로 터프한 디자인. 다른 기아 SUV들은 현대차 SUV들과 큰 차이 없이 도시형 SUV의 분위기 위주의 디자인을 선택한 것과 비교하여 텔룰라이드는 강인한 정통 SUV의 분위기로 시작했다. 같은 플랫폼을 사용했던 팰리세이드(LX2)가 도시적 프리미엄 이미지를 추구했던 것과 차이가 분명했다.
텔룰라이드는 미국 SUV 시장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특히 형제 브랜드인 현대차에게는 더욱 그랬다. 텔룰라이드 이후 미국의 현대차 딜러들은 현대차 본사에게 ‘rugged!’라는 말을 반복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터프한, 강인한’이라는 뜻의 rugged는 현대차 SUV들의 디자인이 도시적 세련미보다 강인한 오프로더의 분위기를 강조하기를 바란다는 뜻이었다. 이와 같은 북미 시장의 요구가 반영되어 ‘아트 오브 스틸’의 디자인 언어로 디 올 뉴 투싼에서 구현된 것으로 보여진다.
사실 나는 아직 아트 오브 스틸 디자인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아트 오브 스틸 디자인을 처음으로 선보였던 신형 넥쏘와 그 이후의 디 올 뉴 아반떼나 디 올 뉴 투싼의 디자인 언어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두 모델의 철판을 직선적으로 접어서 만든 조형을 아트 오브 스틸의 주 테마라고 할 경우 솔직히 엔트리 세단인 아반떼에게는 과한 편향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터프한 디자인을 추구하기로 결정했다면 크로스오버 SUV인 투싼에게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수 있
정통 SUV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요소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오프로드 특화 트림이다. 이번에 디 올 뉴 투싼을 통하여 국내에 첫선을 보이는 XRT 트림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에서 비록 출발은 현대차의 XRT 트림이 기아의 X-pro 트림보다 빨랐다. 하지만 기아는 X-pro 트림을 단순한 오프로드 룩 디자인 트림이 아니라 올터레인 타이어와 높은 지상고, 터레인 주행 모드 등 실제로 오프로드 주파 성능을 강화하는 등 주로 디자인 패키지에 그쳤던 현대 XRT 트림보다 본격적이었다.
기아 SUV의 북미 시장 성공을 이끈 또 하나의 이유가 오프로드 특화 트림이라고 판단한 현대차는 XRT을 더욱 본격화한다. 싼타페의 XRT 트림은 기아 X-pro처럼 서스펜션 높이와 타이어 등 기능적으로도 오프로드 대응 능력을 키웠고, 가장 최근에 출시된 팰리세이드는 트림의 이름을 XRT PRO로 바꿀 만큼 오프로더의 이미지와 기능을 더욱 강화했다. 그 결과 신형 팰리세이드는 텔룰라이드와 판매 실적에서 막상막하를 보일 정도로 경쟁력이 높아졌다. 그래서 디 올 뉴 투싼은 국내 최초로 XRT 트림을 선보이는 것이다. 물론 디자인 패키지 수준으로 제한적이지만 XRT 브랜드와 오프로드 디자인을 선보인다는 것 만으로도 의미는 있다.
러기드한 디자인과 XRT 트림이 만든 강인한 이미지가 디 올 뉴 투싼이 현대차 북미 SUV에서 가져 온 첫번째 전략이라면, 두번째 전략은 더 커진 차체다. 일단 우리는 60mm 길어진 차체 길이에 집중할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변화는 무려 40mm나 넓어진 차체 폭이다. 싼타페나 쏘렌토보다도 5mm 넓다. 길이는 12~13cm 짧지만 폭이 같으니 차체의 가로 세로 비율이 더 넓고 다부지게 보인다. 게다가 디 올 뉴 투싼은 3열 시트가 없는 모델. 따라서 1열과 2열의 공간감은 폭이 좌우한다. 즉, 5인 승차시 디 올 뉴 투싼은 글자 그대로 세그먼트의 벽을 파괴한 것이 된다.
자, 지금까지는 왜 현대차가 북미 현대차 SUV의 성공 전략을 디 올 뉴 투싼과 국내 시장에 도입했는가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전략이 이처럼 또렷한 색깔을 갖는다는 뜻은 반대로 포기하거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린 고객층 또는 시장이 있다는 뜻이다. 특히 현대차를 대표하는 글로벌 모델인 투싼이라면 세계 모든 시장과 고객들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만족시키는 무난한 선택이 논리적이다. 그런데 디 올 뉴 투싼의 선택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디 올 뉴 투싼은 유럽 시장에는 너무 큰 차가 되었다. 기존 투싼 NX4도 북미 및 국내 시장용과 유럽형 모델의 길이가 달랐다. 북미와 국내용 모델은 유럽형에 비해 휠베이스가 75mm, 차체 길이가 130mm 긴 LWB 모델이었던 것. 그런데 이번 디 올 뉴 투싼 NX5는 여기에서 60mm가 더 길어진 것. 하지만 진짜 문제는 폭이다. 유럽은 길이 좁은 구시가지가 많다. 따라서 차체의 폭이 넓어진다는 뜻은 도시의 일상을 위한 모델에서 주말의 교외를 위한 모델로 모델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즉, 주력 시장에서 살짝 빗겨나가는 것이다.
게다가 디자인도 유럽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오래 전 내가 폭스바겐에 근무할 때의 경험담이다. 당시 현대차가 YF 쏘나타를 출시했는데 북미 시장에서는 새로운 디자인 시도 하나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결국은 현대차의 이미지와 판매량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었다. 그런데 함께 근무하던 독일 폭스바겐의 동료들은 ‘왜지? 기존 NF 쏘나타의 디자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말야.’ 이것이 유럽인들이 자동차를 보는 보편적 관점이다.
물론 이제는 현대는 코나가, 기아는 셀토스가 세계를 휩쓰는 B SUV 강세에 힘입어 글로벌 모델로 새롭게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이미 자리잡은 핵심적 글로벌 모델인 투싼이 크로스오버 SUV의 핵심 이미지인 도시에 어울리는 세련미를 벗어던지고 더 큰 몸집을 선택한 결과는 브랜드 전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러기드한 모델을 원하던 북미 시장은 물론 국내 시장에서 디 올 뉴 투싼은 성공할 것이다. 국내 시장에서 디 올 뉴 투싼을 구입하는 주 고객층의 특성 때문이다. 충분히 젊고 충분히 안정적인 삶을 바탕으로 취향과 실용성에 적절한 밸런스를 추구할 수 있는 능동적 메인스트림 고객층이 그들이다.
글 첫머리에 말했듯이 이것은 ‘전략적 선택’일 것이다. 선택의 긍정적 효과가 클 것인지, 아니면 의외의 부작용을 만날 것인지 지켜 볼 일이다. 그리고 글로벌 모델 투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글 / 나윤석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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