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과 야시장을 오가는 일정만으로 치앙마이를 다 봤다고 말하기는 아쉽다. 도시 곳곳에 흩어진 손기술과 오래된 생활의 감각을 한자리에서 만나고 싶다면, 올드타운 골목 안에 자리한 예술 문화 복합공간, ‘캄빌리지’로 향해보자.
Kalm Village
치앙마이의 공예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곳, 캄빌리지
치앙마이 올드타운, 왓쩨디루앙과 가까운 골목 안에 자리한 예술·공예·문화 복합 공간이다. 2021년 건축가 ‘아차리야 로차나피롬’이 문을 열었으며, 전통 란나 양식의 목조 가옥 구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여러 채의 건물을 안뜰로 이어 붙인 형태로 지어졌다. 담장에는 태국 북부의 대바구니 세공 문양을 본떠 만든 검은 벽돌을 쌓았고, 건물마다 잉어나 까마귀, 연꽃 같은 길상의 상징을 새겨 각기 다른 기능을 표시했다. 카페와 도서관, 갤러리, 식당, 라이프스타일 숍, 박물관이 한 부지 안에 모여 있어 입장료 없이도 하루를 온전히 보낼 수 있고, 주말 오후에는 옥상에서 무료 요가 클래스가 열리기도 한다. 화려한 사원과 시장을 오가는 일정 사이, 조용히 태국 공예의 결을 들여다보고 싶을 때 들르기 좋은 곳이다.
Kalm Coffee House
동네 사랑방, 캄 커피 하우스
캄빌리지의 첫 번째 가옥에 자리한 카페로 태국의 전통 사랑방 문화인 ‘사파 카페(สภากาแฟ)’에서 이름과 정서를 가져왔다.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이 아침마다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공간을 현대식으로 재현한 곳으로, 방문객들이 서두르지 않고 머무를 수 있도록 여유로운 분위기를 강조한다.
메뉴는 태국 북부 산지에서 재배한 제철 원두와 찻잎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한편에는 ‘캄 마켓’ 코너를 두어 치앙마이를 비롯한 각지의 부엌 소품과 간식거리도 함께 판매한다. 넓은 통유리 너머로 안뜰의 나무와 오가는 사람들이 그대로 들여다보여, 커피 한 잔을 시켜두고 캄빌리지의 하루를 천천히 시작하기에 알맞다.
카페와 이어지는 ‘캄 키친’에서는 캄빌리지를 만든 두 남매의 할머니 조리법을 바탕으로 한 태국 가정식을 낸다. 화려한 파인다이닝보다는 집밥에 가까운 구성으로, 카페 손님이 가볍게 요기를 하러 들르는 경우도 많고 요리 워크숍이 열리는 날에는 위층 공간이 실습장으로 바뀐다. 안뜰 쪽 다목적 공간인 ‘캄 홀’에서 소규모 행사나 세미나가 열릴 때는 커피 하우스가 자연스럽게 대기 공간이자 만남의 장소 역할을 겸하기도 한다. 자리마다 채광이 좋아 한적하니 누워 오전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다.
Kalm Library
치앙마이의 서재, 캄 라이브러리
캄 커피 하우스 위층에 자리한 서재 공간으로,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한다는 점이 이곳만의 독특한 규칙이다. 예술과 공예, 문화, 역사, 문학, 철학을 아우르는 신간과 헌책이 서가를 채우고 있으며, 태피스트리와 러그가 깔린 좌석 사이사이로 큰 창을 통해 올드타운의 풍경이 그대로 들어온다.
커피를 들고 올라가 책을 펼치거나 노트북을 켜고 작업하는 이들이 많아 조용한 공유 서재이자 코워킹 스페이스로도 기능한다. 정기적으로 독립서점과 협업한 팝업 컬렉션이나 소규모 설치 작업이 열려, 찾을 때마다 서가의 구성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서가 한쪽에는 태국 안팎의 아트북과 포토북을 전문으로 다루는 독립서점 바실란도(Vacilando)와의 협업 코너가 마련되어, 캄빌리지 소장 도서와 함께 컨템포러리 아트, 공예 철학, 소수 목소리를 담은 독립출판물, 아시아 각지의 음식 문화와 예술가 이야기를 다룬 책들을 골라 볼 수 있다. 빠른 와이파이가 갖춰져 있어 반나절 가량 눌러앉아 원고를 쓰거나 책을 읽는 여행자도 흔하다.
예술관과 박물관을 둘러보다 잠시 다리를 쉬어가기에도 이만한 자리가 없으며, 서재 창밖으로 최상층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왓쩨디루앙의 불탑과 오래된 나무들의 풍경까지 함께 살펴보면 캄빌리지가 왜 도서관을 이 위치에 두었는지 이해가 간다.
Kalm Style & Kalm Home
라이프스타일 편집샵, 캄 스타일 & 캄 홈
안뜰을 사이에 두고 이어지는 세 채의 가옥에 걸쳐 있는 라이프스타일 편집샵이다. 1층에서는 ‘캄 브랜드’를 단 의류와 홈웨어, 실크 직물, 그릇, 토트백 등을 선보이는데, 자체 디자인 제품뿐 아니라 파야오 지역의 몽족 장인들과 협업해 만든 바틱 염색 의류와 손으로 엮은 대바구니 등 지역 공동체와의 협업 제품, 그리고 해외에서 들여온 소품까지 폭넓게 다룬다.
값이 시내 다른 상점보다는 다소 높은 편이지만, 대량 생산되지 않는 수공예품이라는 점과 공간이 주는 경험을 감안하면 납득할 만하다. 세 채 가운데 마지막 가옥, 리셉션과 맞닿은 건물의 위층은 ‘캄 아카이브’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며 교육적인 자료 공간을 지향한다.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매장 곳곳에 놓인 대바구니와 직조물의 제작 과정을 짧게 소개하는 자료를 함께 살펴볼 수 있어 단순한 쇼핑 이상의 경험을 준다.
시즌에 따라 전통 직조나 천연 염색, 도자기 빚기를 배우는 워크숍이 이 건물들을 중심으로 열리기도 하는데, 짧게는 반나절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어 물건을 사는 대신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이들에게 좋은 선택지가 된다. 세 가옥을 잇는 벽돌 통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매장마다 문양과 조명이 조금씩 달라, 쇼핑 자체가 건축 감상의 연장선처럼 느껴진다.
Museum of Makers
캄빌리지의 이야기, MOM
캄빌리지 정문 왼편에 위치한 전시동으로, 이름 그대로 우리를 둘러싼 모든 만드는 이들과 창작자들에게 헌정된 공간이다. 상설 소장품 없이 공예와 예술, 문화를 주제로 한 기획 전시가 순환하며 열리는데, 최근에는 대나무 코일링 공예로 이름난 치앙마이의 장인 가족과 협업한 전시나, 이를 현대적 가방 디자인으로 풀어낸 브랜드의 컬렉션이 소개된 바 있다.
태국어와 영어로 병기된 설명이 잘 갖춰져 있어, 공예에 익숙하지 않은 방문객도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다. 같은 건물 안에는 ‘캄 아카이브’라는 이름의 상설 컬렉션도 함께 있는데, 30년 넘게 모아온 태국과 동남아시아 각지의 직물과 장신구, 은세공품을 소장하고 있어 이 지역 소수민족 공예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북부 산악지대 여러 부족의 직조 기법과 문양이 나란히 걸려 있어 전시실 하나를 도는 것만으로도 지역별 색감과 소재의 차이를 비교해 볼 수 있고, 금속공예와 장신구가 놓인 별도의 방도 마련되어 있어 섬유 외의 공예도 함께 조명한다.
캄빌리지 측은 장인들의 고령화와 세대 단절이라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아카이브와 전시를 운영한다고 밝히고 있으며, 향후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함께 준비 중이어서 방문할 때마다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밀도가 높아, 캄빌리지 관람의 마지막 코스로 추천한다.
글·사진 강화송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