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쇼 무용론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상용차 모터쇼는 더욱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뮌헨에서 열리는 승용차 모터쇼와 번갈아 열리는 하노버 상용차 모터쇼(IAA TRANSPORTATION)이 그 대표적 예다. 비록 직접 관람하지는 못했지만 행사 기간에도 관련 미팅이 연달아 있었을 정도로 컨설턴트인 내 직업에도 상용차의 비중이 점점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하노버 상용차 모터쇼에서 우리 나라에게 적신호가 켜졌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이번 모터쇼에서 두드러졌던 것이 배터리 전기트럭의 약진이었다. 이제는 얼마나 멀리 달릴 수 있는가를 넘어 어떤 운송 업무에 투입하고 어떻게 충전하며 얼마나 경제적으로 운영할 것인가를 제시하고 있었다.
내가 우리 나라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생각한 이유를 지금부터 설명해 보겠다.
현대차는 수소 트럭을 앞세워 유럽 상용차 시장에 일찍 도전했다. 차량만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수소의 생산과 공급, 충전과 운송까지 연결하는 생태계를 제시했다. 기존 업체의 기반이 견고한 유럽 대형 상용차 시장에서 새로운 기술로 기회를 만들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선행 경험이 충분한 시장 선점으로 효과를 거두었는지는 의심스럽다. 물론 러우전쟁 등의 영향을 받았지만 생각보다도 운송비용이 높다는 점, 즉 상용차에게는 가장 중요한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피드백을 받았기 때문이다. 수소 트럭의 보급 대수도 결과적으로 목표를 하회하였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상용차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새로운 자동차 기술을 이야기하면서 주로 승용차를 떠올린다. 자율주행으로 출퇴근이 편해지고, 전기차로 연료비를 아끼며, 새로운 소프트웨어로 다양한 기능을 사용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기술이 가능해지는 것과 소비자가 그 기술에 돈을 지불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이 아주 편리한 기술이라는 데에는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얼마를 더 내겠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달라진다. 매일 장거리를 이동하는 사람과 주말에만 잠깐 운전하는 사람의 가치 판단은 다를 수밖에 없다. 운전 자체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전기차도 마찬가지다. 충전 환경과 주행거리, 생활 형태에 따라 같은 차의 경제성과 편의성이 전혀 다르게 평가된다.
즉, 승용차에서 새로운 기술은 소비자에 따라 ‘있으면 좋은 것’, 이른바 ‘nice to have’에 머물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신기술의 가치가 작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술이 만들어 내는 혜택과 그 혜택을 원하는 고객을 정확하게 연결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소비자는 가격과 성능만으로 차를 선택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기술적으로 우수한 제품의 시장성을 예측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런데 상용차는 전혀 다르다. 상용차는 돈을 버는 도구다. 같은 화물을 더 적은 비용으로 운송하거나 같은 시간에 한 번 더 운행할 수 있다면 그 차이는 수익으로 나타난다. 차량 가격이 높아도 운행하면서 충분히 회수할 수 있고 고장이나 정비로 멈추는 위험까지 감당할 수 있다면 선택할 이유가 생긴다. 경쟁사가 그 기술로 운송비를 낮추기 시작하면 도입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불리해질 수도 있다. 이때 새로운 기술은 ‘갖춰야 하는 것’, 즉 ‘must have’가 된다.
물론 이익이 예상된다고 모든 운송사가 즉시 새 차를 살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초기 투자비를 마련해야 하고 실제 운용의 신뢰성도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금융과 정비, 가동률 보장이 중요하다. 하지만 승용차와 비교하면 고객이 무엇을 위해 돈을 지불하는가는 훨씬 또렷하다. 고객이 느끼는 효능감을 운송비와 매출, 그리고 이익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용 형태를 파악하기도 쉽다. 어느 물류센터에서 출발해 어디까지 가는지, 하루에 몇 번 운행하는지, 화물의 무게와 부피는 얼마인지, 상하차하는 동안 얼마나 서 있는지 등을 알 수 있다. 물론 모든 운송 업무가 일정하지는 않지만 반복되는 노선에서는 상당 부분을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업무에 필요한 배터리 용량과 충전 계획, 차량의 구성을 맞춰 제안하면 된다. 막연히 모든 경우에 대비하기보다 최소의 비용으로 필요한 효과를 얻도록 설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자율주행도 이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모든 도로에서 모든 운전자를 대신하는 자동차를 완성하는 일은 어렵다. 반면 정해진 물류 거점 사이에서 운행 조건을 한정하면 해결해야 할 과제의 범위를 좁힐 수 있다. 특히 보조 운전자를 반드시 동행해야 하는 장거리 운송 트럭의 경우 자율 주행이 보조 운전자를 대체할 수 있다면 인건비 절감으로 직결될 수 있다. 요컨대 상용차에서는 어떤 조건을 갖췄을 때 얼마의 비용을 줄일 수 있는지 비교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상용차 시장이 보수적이라는 말은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검증되지 않은 위험을 꺼리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검증된 이익까지 꺼리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기술 자체를 좋아하는 얼리어답터만큼, 때로는 그보다도 적극적으로 기술을 선택할 수 있는 시장이 상용차 시장이라는 뜻이다. 이익을 확실하게 만들 수 있다면 도입할 동기도 확실하다.
그리고 이 시장에서 쌓인 데이터와 내구성, 유지보수 경험은 기술의 완성도를 높인다. 생산 규모가 커지면 부품 가격을 낮추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이런 성과가 대중 승용차로 확산되면 신기술이 더 많은 소비자에게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물론 모든 기술이 상용차에서 먼저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승용 전기차의 배터리와 전력전자 기술이 상용차로 옮겨 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순서보다도 기술의 사업성을 구체적으로 검증하고 성숙시키는 시장을 확보하는 것이다.
자, 다시 이번 IAA로 돌아오자.
장거리 대형트럭은 수소에 유리한 시장으로 자주 거론되었다. 최소한 현대차는 그렇게 제시했었다. 이유는 명확하다. 장거리 배터리 전기트럭은 그만큼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해야 하는데 이 배터리의 중량만큼 화물의 허용 적재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늘 허용중량까지 화물을 적재한다’는 것이다. 적재함이 가득 찼다고 반드시 허용중량까지 채운 것은 아니다. 무게보다 부피가 먼저 적재 공간을 채우는 화물도 있다. 그런 업무에서는 배터리 때문에 차량이 무거워져도 실제로 실을 수 있는 물량이 줄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배터리 전기트럭의 높은 에너지 효율과 수소 트럭 대비 우수한 가격 경쟁력이 두드러진다. 수소 트럭의 적재 여력이 실제 매출 증가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여유만으로 비싼 에너지 비용을 상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운행거리도 마찬가지다. 하루에 먼 거리를 달린다고 그 에너지를 전부 출발할 때 싣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하차나 휴식 시간에 충전할 수 있다면 배터리를 줄이는 선택도 가능하다. 물론 충전소가 실제 노선에 있어야 하고 대기 시간과 전력 비용까지 계산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장거리니까 수소’라는 분류보다 해당 고객의 운행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는 일이라는 뜻이다.
경쟁사들은 이미 이런 방식으로 상품을 만들고 있다. MAN은 eTGX와 eTGS의 용도와 사양에 따라 배터리 팩 수를 선택하도록 한다. 이것을 운행할 때마다 팩을 떼고 붙이는 방식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주문 단계에서 필요한 운송거리와 적재량에 맞는 구성을 선택하는 것이다. 표준화된 부품을 조합하지만 고객에게는 맞춤형 해법이 된다. 기성화와 맞춤화가 함께 이루어지는 셈이다.
충전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BYD는 지난해 승용차용으로 1MW급 충전 기술을 발표했고, 이번 IAA에서는 대형 전기트랙터 ETT 44와 함께 1.5MW 충전 솔루션을 제시했다. 승용차 충전 기술과 대형트럭의 충전 규격을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지만, 고출력 충전을 운송 업무의 가동률과 연결하려는 방향은 분명하다. 에너지와 충전 설비, 서비스와 금융까지 묶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물론 새로 공개한 트럭을 이미 유럽에 대량 보급한 것처럼 평가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유럽 업체의 배터리 전기트럭은 상용화 단계에 들어갔다. 메르세데스벤츠 eActros 600은 2024년 11월 양산을 시작했다. 고객의 현장에서 운행하고 데이터를 쌓으며 다음 주문을 받을 기반을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 업체들까지 가세하면서 한국이 진입해야 할 시장의 경쟁 조건은 더 까다로워지고 있다.
한편 수소 트럭의 입지는 위축되고 있다. 배터리 메가와트급 충전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힘든 지역이나 비정기 노선 등 배터리 전기트럭이 커버하기 힘든 영역을 메우는 보조적 역할로 위치가 조정되는 듯한 분위기다.
지난 6월 기아가 그랜버드의 생산을 1~2년 뒤 중단하겠다는 계획을 노조에 통보했다는 보도도 이런 관점에서는 걱정스럽다. 물론 하나의 버스 사업 결정으로 현대차그룹 전체의 대형 상용차 투자 의지나 내부 분위기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새로운 모빌리티의 시장성을 검증할 중요한 사업 기반을 앞으로 어떻게 이어 갈 것인지는 묻게 된다. PBV에 대한 적극적인 설명만큼 대형 상용차의 미래도 또렷하게 보여 줄 필요가 현대차그룹에게 있는 것이다.
상용차 고객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사업이 더 잘되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그 목표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정확하게 보여 주면 된다. 그리고 그 성과를 가장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장 가운데 하나가 상용차 시장이다. 한국 자동차 산업이 이 시장을 통해 기술의 가능성과 고객의 효능감을 함께 증명하기를 바란다. 먼저 출발했던 경험이 다음 시장의 기회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상용차 시장에 고삐를 바짝 쥐어야 할 시점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글 / 나윤석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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