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울산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심장이다. 자동차 공장에서는 수만 개의 부품이 조립되고, 조선소에서는 거대한 선박과 해양구조물이 만들어지며, 석유화학단지에서는 수많은 원료가 정교한 공정을 거쳐 새로운 소재로 탄생한다. 이 거대한 산업생태계의 밑바탕에는 부품을 생산하고 용접·도장·정비·검사를 담당하는 수많은 중소기업이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 전환, 즉 AX의 관점에서 보면 울산 산업생태계에는 우려스러운 간극이 나타나고 있다. 대기업은 자체 데이터센터와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AI 품질검사, 예지보전, 자율공정 등을 추진하지만, 중소기업은 여전히 엑셀과 수기 작업일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는 AI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고, 현장 직원은 새로운 시스템이 업무만 늘릴까 걱정한다.
울산 제조 AX의 성패는 대기업 몇 곳이 얼마나 첨단화되는가에 달려 있지 않다. 자동차·조선·화학 공급망에 참여하는 수천 개 중소기업이 현장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불량과 고장, 안전사고와 납기 지연을 줄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공급망의 가장 약한 고리가 디지털화되지 않으면 울산 전체의 제조 경쟁력도 완성될 수 없다.
AI가 아니라 ‘돈이 새는 공정’부터 찾아야 한다
중소기업이 AX에 실패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해결할 문제를 정하지 않은 채 기술부터 구입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AI를 도입하자”는 지시는 나오지만 AI로 무엇을 개선할지는 분명하지 않다. 결국 비싼 장비를 설치하고도 직원들이 사용하지 않거나, 시범사업이 끝나는 순간 시스템도 멈춘다.
출발점은 기술이 아니라 손실이다. 우리 공장에서 가장 많은 돈이 새는 곳이 어디인지 찾아야 한다. 불량과 재작업인지, 설비 고장인지, 에너지 낭비인지, 숙련인력 부족인지, 납기 지연인지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첫 과제는 6개월 안에 효과를 확인할 수 있고 현장 직원이 체감할 수 있는 문제여야 한다.
다음 사례들은 울산 중소제조기업이 적용할 수 있도록 구성한 가상의 사례다.
자동차 부품기업 A사: 불량품 사진에서 금형 이상을 찾다
울산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 A사는 프레스 가공과 용접을 통해 차체 부품을 생산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회사는 특정 부품의 미세한 균열과 변형 때문에 매달 상당한 재작업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품질 담당자는 불량이 발생할 때마다 사진을 찍었지만 사진은 개인 휴대전화나 보고서에 흩어져 있었다. 설비의 압력과 진동, 금형 사용 횟수도 각각 다른 시스템에 저장돼 서로 연결되지 않았다.
A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AI 솔루션 구매가 아니다. 30일 동안 정상 제품과 불량품 사진을 같은 위치, 같은 조명, 같은 각도에서 촬영하고 불량 유형을 다섯 가지 이내로 분류하는 것이다. 사진마다 생산시간, 프레스 압력, 금형 번호, 금형 사용 횟수, 작업조, 원자재 공급업체를 연결한다.
100일 동안에는 불량률이 가장 높은 부품 한 종류만 대상으로 실험한다. 기존 검사자가 판정한 결과와 AI의 이미지 분석 결과를 비교하고, 불량 발생 직전의 설비 진동과 압력 변화를 함께 분석한다. AI가 최종 판정을 내리도록 맡기기보다 검사자가 놓칠 수 있는 의심 제품을 먼저 표시하도록 설계한다.
1년 뒤의 목표는 ‘완전 자동검사’가 아니라 불량 원인 확인시간 단축, 재작업 감소, 금형 교체 시점의 사전 예측이다. A사의 성과가 확인되면 같은 협력망의 프레스 업체들이 불량 명칭과 사진 촬영 기준을 맞춰 공동 데이터셋을 만들 수 있다. 한 기업의 작은 실험이 자동차 부품 공급망 전체의 품질표준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조선 협력기업 B사: 숙련 용접사의 감각을 데이터로 남기다
조선업은 대표적인 다품종·소량생산 산업이다. 선박마다 구조와 작업환경이 다르고, 좁고 복잡한 공간에서 수많은 작업자가 동시에 움직인다. 자동차처럼 모든 공정을 동일하게 자동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숙련공의 경험과 작업기록이 더욱 중요하다.
가상의 조선 협력기업 B사는 배관과 블록 용접을 담당하지만 숙련공의 고령화와 신규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용접 결함이 발견되면 재작업뿐 아니라 후속 공정까지 지연된다. 문제는 어떤 조건에서 결함이 발생했는지 체계적으로 추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B사는 우선 30일 동안 용접작업의 최소 기록항목을 정한다. 모재 종류와 두께, 용접봉, 전류와 전압, 작업시간, 작업 위치, 온도와 습도, 검사 결과를 하나의 작업번호로 연결한다. 숙련 용접사가 작업 전 확인하는 사항과 이상 징후를 휴대전화 음성으로 말하면 AI가 이를 문자로 바꿔 작업일지에 저장하도록 할 수 있다.
100일 동안에는 재작업이 가장 잦은 용접 유형 하나를 선정한다. 용접 전후 사진과 검사 결과를 모으고, 결함이 많이 발생하는 작업조건을 분석한다. AI는 “이 작업조건에서는 기공 발생 가능성이 높으니 전류와 모재 상태를 다시 확인하라”는 식으로 작업 전 점검사항을 제시한다. 최종 품질판정은 반드시 자격을 갖춘 검사자가 담당해야 한다.
1년 동안 축적된 자료는 신규 인력의 교육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다. 숙련공의 작업 영상과 음성 설명, 실제 결함 사례를 결합하면 교과서보다 생생한 현장교육이 가능하다. 조선 AX의 핵심은 로봇이 용접사를 곧바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숙련공 한 사람의 경험을 수십 명이 공유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화학설비기업 C사: 펌프의 작은 진동으로 사고를 예방하다
화학산업에서 AX는 생산성 이전에 안전의 문제다. 온산과 울산·미포 산업단지에는 배관, 밸브, 펌프, 압축기와 같은 설비를 제작·정비하는 중소기업이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사소한 이상을 놓치면 생산중단을 넘어 화재, 누출,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가상의 화학설비 유지보수업체 C사는 여러 공장의 펌프와 배관을 점검하지만, 정비 이력이 종이문서와 담당자의 경험에 흩어져 있다고 가정해보자. 같은 설비가 반복해서 고장 나도 이전의 진동 수치와 누출 흔적, 부품 교체 시기를 한눈에 비교하기 어렵다.
C사는 30일 동안 고장 빈도가 높은 펌프 10대를 선정해 설비별 디지털 이력서를 만든다. 진동, 온도, 압력, 소음, 윤활유 상태, 부품 교체일과 고장 원인을 같은 형식으로 기록한다. 현장 작업자가 발견한 부식과 누출 흔적은 사진으로 남기고, 촬영 위치와 시간을 자동으로 연결한다.
100일 동안에는 정상 상태와 이상 상태의 변화를 비교한다. AI가 “3일 안에 고장이 난다”고 단정하게 하기보다 평소와 다른 진동이나 온도 상승을 조기에 알려 점검 우선순위를 정하도록 한다. 위험 공정에서는 AI가 설비를 직접 제어하게 해서는 안 된다. 경고를 받은 정비책임자가 현장을 확인하고 조치하도록 ‘인간 승인’ 절차를 반드시 둬야 한다.
1년 뒤에는 설비별 고장주기와 정비비용을 분석해 일률적인 정기점검을 위험도 기반 점검으로 전환할 수 있다. 축적된 이상 징후와 조치 결과는 기업의 안전자산이 된다. 화학산업 AX는 생산속도를 높이는 기술이기 전에 사고 가능성을 한 단계 앞서 발견하는 안전망이어야 한다.
울산형 제조 AX는 ‘30일-100일-1년’로 추진하자
세 사례를 울산 전체의 실행전략으로 발전시키려면 단계가 명확해야 한다.
첫 30일은 진단기간이다. 기업마다 대표, 현장반장, 품질·안전 담당자, 외부 데이터 전문가가 참여하는 5명 안팎의 AX 실행팀을 구성한다. 최근 1년간 발생한 불량, 고장, 재작업, 에너지 손실, 안전사고를 비용으로 환산하고 가장 큰 문제 하나를 선정한다. 이어 어떤 데이터가 이미 있으며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를 조사한다.
다음 100일은 현장실증 기간이다. 한 공정, 한 설비, 한 제품만 대상으로 데이터를 모으고 AI 적용 전후의 결과를 비교한다. 핵심 성과지표는 기술 정확도보다 불량률, 재작업시간, 설비 정지시간, 검사시간, 에너지 사용량처럼 경영자가 이해할 수 있는 지표로 정한다. 100일 안에 효과가 확인되지 않으면 과감히 중단하거나 과제를 바꿔야 한다.
1년 단계에서는 검증된 모델을 다른 제품과 공정으로 확장한다. 이때 기업 혼자 움직여서는 안 된다. 자동차 부품, 조선 기자재, 화학설비 등 업종별로 최소 3개 기업이 모여 데이터 명칭과 수집 기준을 맞춰야 한다. 같은 현상을 ‘찍힘’, ‘눌림’, ‘표면 손상’처럼 제각각 기록하면 공동 AI를 만들 수 없다. 울산형 제조 AX의 첫 번째 공공과제는 거대한 플랫폼 구축이 아니라 업종별 데이터 사전을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중소기업 혼자 감당하게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울산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학, 연구기관, 테크노파크와 지원기관이 모여 있다. 이 장점을 실제 협력구조로 바꿔야 한다. 가칭 ‘울산 제조 AX 공동실험실’을 만들어 중소기업이 고가의 장비와 AI 인력을 공동으로 활용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은 협력업체에 데이터를 요구하기 전에 공정별 표준과 성공사례를 공유해야 한다. 대학은 논문 중심의 연구를 넘어 학생과 교수, 기업 실무자가 100일 동안 한 공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현장형 프로젝트를 운영해야 한다. 지원기관은 장비 구매비보다 데이터 수집과 정제, 현장 전문가의 암묵지 기록, 보안체계 구축에 예산을 우선 배분해야 한다.
기업 간 데이터 공유를 위한 신뢰장치도 필요하다. 원본 데이터를 중앙에 모두 모으기보다 기업 내부에 보관하면서 필요한 학습 결과만 공유하는 방식도 활용할 수 있다. 데이터의 소유권, 사용 목적, 수익배분 원칙을 계약으로 명확히 해 중소기업의 제조 노하우가 외부 플랫폼에 일방적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현장 작업자다. AX가 인력감축 사업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작업자는 데이터를 숨기고 변화를 거부한다. AI 도입으로 절감된 비용 일부를 작업환경 개선과 성과보상, 재교육에 사용한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AI가 나를 감시한다”는 불안을 “AI가 위험하고 반복적인 일을 줄여준다”는 경험으로 바꿔야 한다.
공장 하나의 성공을 산업생태계의 변화로 연결하자
울산 제조 AX에 필요한 것은 수백억 원짜리 구호가 아니다. 자동차 부품공장의 불량 사진, 조선소 협력업체의 용접기록, 화학설비 정비기업의 진동 데이터처럼 현장에서 매일 생성되는 작은 기록을 모으는 일이다.
첫 목표는 자율공장이나 휴머노이드 로봇이 아니다. 불량 한 건을 줄이고, 고장 한 시간을 예방하며, 위험한 작업 한 건을 사전에 발견하는 것이다. 이 작은 성공이 현장의 신뢰를 만들고, 신뢰가 다음 공정으로의 확산을 가능하게 한다.
울산은 자동차와 조선, 화학이라는 세계적 제조 기반을 이미 갖고 있다. 여기에 현장 데이터와 숙련공의 경험, 중소기업 간 협력구조를 더한다면 울산은 단순히 AI를 소비하는 도시가 아니라 피지컬 AI를 가장 잘 학습시키는 산업도시가 될 수 있다.
울산 산업 AX의 성패를 가를 시간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이다. 오늘 한 기업이 문제 공정 하나를 선택하고, 내일 데이터 항목을 정하며, 100일 동안 작은 성공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성공을 자동차·조선·화학 공급망 전체로 연결해야 한다. 공장마다 시작된 작은 데이터의 흐름이 하나의 거대한 플라이휠이 될 때, 울산 제조업은 AI 시대에도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으로 힘차게 뛰게 될 것이다.
이미지 출처: AI 생성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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