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 체크아웃할 때 카드키를 챙겨 나오면 ‘절도’일까? 최근 온라인에서는 호텔 카드키를 가져왔다는 이유만으로 인성이나 도덕성까지 거론하는 댓글도 심심찮게 보인다. 하지만 모든 호텔 카드키를 같은 기준으로 바라보기는 어렵다. 일회용 또는 재발급이 가능한 플라스틱, 목재 카드키 등을 투숙객에게 기념품처럼 건네는 호텔이 있고, 처음부터 객실에 카드키를 선물로 준비해두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기자도 처음부터 카드키를 모았던 건 아니다. 여행 초창기에는 여느 여행자처럼 그 나라와 도시를 떠올릴 수 있는 소품이나 자석을 사고, 현지 마트와 상점에서 간식을 잔뜩 챙겼다. 그러다 좋은 호텔을 하나둘 경험하면서 기념품을 카드키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투숙객이 머문 시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 카드키 하나에도 디자인과 이야기를 담아내는 호텔들을 만났으니 말이다.
마음에 드는 카드키를 만날 때면 조심스럽게 “기념으로 가져가도 될까요?”라고 물었고, 돌아오는 답은 “물론이죠”라는 흔쾌한 답이기도 했고, 어떤 호텔에서는 애초에 투숙객을 위한 기념품으로 제작한 카드라는 설명을 듣기도 했다. 그렇게 모으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카드키 컬렉션이 됐다. 참, 카드키를 마음대로 가져가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호텔과 국가, 운영 방식, 방문 시기에 따라 카드키 정책은 다를 수 있고, 반납을 요청하는 곳이라면 당연히 돌려줘야 한다.
열쇠이자 기념품, 럭셔리의 작은 디테일
래플스 싱가포르 Raffles Singapore
싱가포르를 상징하는 호텔을 하나 꼽으라면 래플스 싱가포르부터 떠오른다. 1887년 문을 열어 130년 넘게 도시의 역사를 함께했고, 1987년에는 싱가포르 국가기념물로 지정됐다. 하얀 콜로니얼 양식의 건물과 싱가포르 슬링,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명사까지, 단순한 숙박시설보다 싱가포르의 한 시대를 상징하는 공간에 가깝다.
투숙의 시작도 남다르다. 버틀러와 함께 객실로 들어서면 테이블 위에 카드키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객실 문을 여는 열쇠이면서 동시에 투숙객을 위해 준비한 기념품이다. 따로 “가져가도 될까요?”라고 물을 필요조차 없다. 여행이 끝난 뒤에도 래플스에서의 시간을 기억해 달라는 작은 선물인 셈이다. 거창한 시설과 서비스만으로 럭셔리가 완성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투숙객이 호텔을 떠난 이후의 기억까지 고민하는 것. 이런 사소한 디테일까지 챙기는 게 진짜 고급 호텔의 기준 아닐까.
카드키 한 장에 더해진 허니문의 기억
세인트 레지스 로마 The St. Regis Rome
1894년 ‘그랑 호텔(Le Grand Hotel)’로 문을 연 세인트 레지스 로마는 130년 넘게 로마의 한자리를 지켜온 호텔이다. 개관 당시 전기 조명과 프라이빗 배스, 엘리베이터 같은 혁신적인 시설을 도입하며 로마의 새로운 호텔 문화를 이끌었고, 지금은 과거의 우아함과 현대적인 감각을 함께 보여주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이곳에서 유독 마음에 든 건 카드키였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체크아웃할 때 기념으로 가져가도 되는지 물었더니, 직원은 흔쾌히 허락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허니문에 더 잘 어울리는 카드가 하나 있다”라며 다른 디자인의 카드키를 하나 더 챙겨줬다. 예상하지 못했던 작은 선물이었다.
오랜 시간 한 도시를 지켜온 호텔들에는 묘하게 닮은 점이 있다. 화려한 시설이나 유명세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앞서는 건 투숙객이 무엇에 감동할지를 고민한다는 것이다. 카드키 한 장을 더 건넨 작은 배려도 그렇게 여행의 기억이 됐다. 이런 추억의 조각들이 하나둘 쌓이면 호텔뿐 아니라 그 도시를 바라보는 인상까지 조금 더 짙어진다.
에펠탑 하나면 충분했던 선택
풀만 파리 타워 에펠 Pullman Paris Tour Eiffel
예약할 때부터 투숙하는 날까지 고민했던 호텔이다. 이유는 가격, 그리고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에펠탑. 호텔은 에펠탑 바로 옆에 자리한 4성급 호텔로, 일부 객실에서는 창문이나 발코니 너머로 파리의 상징을 정면에서 마주할 수 있다. 직장인의 소박한 주머니를 털어야 했지만 그 풍경만큼은 확실했다.
2024년 투숙 당시 객실은 가격을 생각하면 다소 아쉬웠다. 그래도 창밖의 에펠탑을 바라보며 즐긴 인룸 다이닝과 객실에서 남긴 사진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여기에 예상하지 못한 기념품도 하나 생겼다. 에펠탑이 큼직하게 새겨진 카드키다. 파리를 이보다 직관적으로 기억하게 해주는 호텔 카드키가 또 있을까. 덕분에 아쉬움보다는 괜찮은 추억으로 남았다. 호텔은 이제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객실과 로비, 레스토랑 등을 대대적으로 손보고 2027년 말까지 5성급 호텔로 도약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교토를 새겨 넣은 하늘빛 카드
리츠칼튼 교토 The Ritz-Carlton Kyoto
가모가와강을 마주한 리츠칼튼 교토는 교토의 절제된 미와 리츠칼튼 특유의 품격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호텔이다. 공간 곳곳에 일본적인 미감과 세심함을 담았는데, 특별한 경험은 체크인부터 시작된다. 더 바의 테이블에 앉아 느긋하게 음료를 마시고 있으면 준비를 마친 직원이 찾아와 객실과 호텔을 설명해주는 식이다. 그때 건네받은 하늘색 카드키가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리츠칼튼 아래 ‘KYOTO’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갖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리츠칼튼은 여러 도시에서 브랜드 특유의 하늘색, 이른바 ‘메모러블 블루(Memorable Blue)’ 계열의 카드에 해당 도시 이름을 새긴 디자인을 사용한다. 그래서 하나를 손에 넣고 나면 다음 도시의 리츠칼튼 카드도 궁금해진다. OSAKA, BALI, XIAN 등 호텔 카드키가 여행지를 하나씩 수집하는 작은 컬렉션이 되는데, 어서 SEOUL 카드도 탄생했으면 한다.
홍콩의 클래식을 손에 쥐다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 Mandarin Oriental, Hong Kong
홍콩의 클래식을 경험하고 싶은 여행자에게 잘 어울리는 호텔이다. 1963년 ‘더 만다린’으로 문을 연 그룹의 첫 호텔이자 60년 넘게 센트럴 한복판을 지켜온 홍콩의 상징적인 호텔이다.
투숙 당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널찍한 객실과 오래된 호텔에서만 만날 수 있는 세심한 장치였다. 대표적인 것이 ‘발렛 박스(Valet Box)’다. 투숙객과 직원이 직접 마주치지 않고도 세탁물이나 신문, 구두 등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객실에 마련한 수납함이다. 먹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아침에는 홍콩식과 인터내셔널 메뉴를 아우르는 풍성한 조식을 즐기고, 점심과 저녁에는 미쉐린 스타를 받은 광둥요리 레스토랑 만와(Man Wah), 빅토리아 하버를 내려다보는 이자카야 겸 바 더 오브리(The Aubrey) 등 다양한 선택지가 기다린다.
그리고 손에 남은 건 만다린 오리엔탈을 상징하는 부채가 새겨진 카드키였다. 센트럴의 풍경과 클래식한 객실, 호화로운 식사까지. 홍콩의 인상적인 장면들을 떠올리게 하는 작은 물건이니, 여행의 기념품으로 챙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성균 기자 sage@traveltime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