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국 캐나다에서 단풍을 못 본 사연.
하필이면 단풍 시기 밖으로만 떠돌았던 나의 실화.
낙엽 사이 가을 한 점
한국인을 믿었어야 했다. 한국인만큼 노는 것에 진심이고, 효율적인 사람들이 또 없다. 그저 캐나다 국기에 박힌 단풍잎만 보며 안일하게 생각했다. “단풍국이 괜히 단풍국이겠어? 단풍이야 뭐 가을이면 언제든지 쉽게 볼 수 있겠지.” 그런 오만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비극의 시작은 4개월간 서빙하며 모은 돈으로 북미 장기 여행을 떠났던 때로 돌아간다. 9월 초 나이아가라 폭포를 시작으로, 미국 뉴욕, 캐나다 서부 밴프·밴쿠버·빅토리아, 아이슬란드까지 한 달이 넘는 긴 여행을 끝내고 토론토로 돌아왔을 땐 이미 10월 셋째 주였다.
그때의 나는 막연히 토론토 단풍 시기도 한국처럼 10~11월이겠거니 생각했다. 온도, 습도 아무튼 그 모든 요소를 포괄하는 토론토의 기후를 무시한 채,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과 캐나다의 시차 개념도 없는 수준의 지구과학적 오판을 하고야 만 것이다. 토론토 밖을 신나게 돌아다녔으니 이제 슬슬 근처에서 단풍 구경을 해볼까 싶어 온타리오주 단풍 명소인 알곤퀸 주립공원(Algonquin Provincial Park)과 무스코카(Muskoka) 여행상품을 찾아봤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한인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상품은 하나같이 지난주를 마지막으로 마감한 상태였다. 차도 없고 운전도 할 줄 모르던 나는 여행사의 도움이 간절했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치열한 구글링 끝에 마침내 현지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알곤퀸 당일 투어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라도 의심했어야 했다. 왜 단풍 여행 상품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는지.
투어 출발 당일, 10명 남짓한 사람들과 함께 승합차에 올랐다. 목적지까지는 약 세 시간. 짧게 오가던 스몰토크도 바닥이 날 무렵, 알곤퀸 주립공원에 도착했다. 그런데 웬걸. 하늘부터 심상치 않았다. 오늘 토론토는 분명히 맑다고 했거늘…. 하지만 이곳은 토론토에서 한참이나 북쪽으로 달려온 곳이었고, 우중충한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구름이 가득 끼어 어둑어둑한 가운데 출발을 알리는 가이드의 목소리만 쾌청했다.
‘단풍이 절정이라면 입구부터 단풍이 좀 보여야 하지 않나?’ 시작부터 발에 낙엽이 채이기 시작했다. 이미 벌거벗어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 사이로 눅눅한 흙길을 따라 걸었다. 하필 어제 비가 와서 단풍이 더 빨리 졌단다. 약 한 시간 정도의 트레킹 끝에 호수를 만났다. 호수를 둘러싼 울긋불긋한 단풍들이 맑은 물에 비쳐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는 바로 그 포토존! 이었어야 했건만…. 몇 그루만 우직하게 남아 노란빛을 지니고 있었다. 낙엽을 사뿐히 즈려밟고 등산한 터라 그마저도 어딘가 싶다. 그중 마음에 드는 한 그루를 메인 모델로 삼아 같은 사진을 수십 장 찍고 다시 산을 올랐다.
마침내 도달한 정상 전망대는 색을 빼앗긴 채 마치 수묵화 같은 풍경을 품고 있었다. 정상에 오른 일행 중 하나가 본인 친구의 SNS를 보여 주며 침통하게 말했다. “내 친구가 저번 주에 왔을 땐 이렇게 아름답다고 했었는데.” 핸드폰 액정 속에는 내가 간절히 바랐던 화려한 풍경이 담겨 있었다. 단풍이 아무리 한철이라지만 일주일 차이가 이렇게 크다니. 하루를 통째로 비워 달려온 등산의 끝엔 허무함이 감돌았다. 단풍이 없다 한들 도심에서 벗어난 우거진 숲의 매력이 있건만, 단풍만 생각했던 내 눈엔 도무지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아쉬움을 가득 안고 터덜터덜 내려왔다. 한두 방울씩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점점 축축해지는 정수리만큼 실망감이, 물을 가득 머금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그때, 옆자리에 앉았던 일행이 눈앞에 무언가를 슥 내밀었다. 빨간 단풍잎이었다. “잘 살펴보면 이따금 빨갛고 노란 단풍잎이 하나씩 눈에 띄어. 이건 선물.” 그날 처음 본 친구의 마음이 담긴 단풍잎을 책갈피처럼 고이 가방에 넣었다. 그 이후로 한 번씩 땅을 보며 걸었다. 보물찾기 하듯 이미 져버린 낙엽 더미에서 가을을 발견하면서. 때늦은 단풍놀이는 가을 한 점 얻었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도심에서 만나는 단풍, 에버그린 브릭 웍스
Evergreen Brick Works
에버그린 브릭 웍스는 토론토 돈 밸리(Don Valley) 지역에 조성된 친환경 복합 공간이다. 과거 벽돌 공장이었던 공간을 재생해 현재는 공원과 정원, 산책로, 마켓 등이 어우러진 도심 속 자연명소로 자리매김했다. 가을이 되면 단풍나무와 참나무 등이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으로 물드는데, 특히 가운데 위치한 연못 주변과 산책로를 따라 이어지는 숲길이 아름답다. 지하철과 버스로 갈 수 있으며, 주말에는 파머스 마켓도 운영해 도심에서 가을 분위기를 느끼기에 좋다.
■토론토의 단풍을 만끽하는 방법 3
1. 토론토 가을 단풍 명소
멀리 떠나지 않아도 단풍을 즐길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에버그린 브릭 웍스가 토론토 동쪽에 있다면, 서쪽에는 하이파크(High Park)가 있다. 봄이면 벚꽃이 만개하는 곳이지만, 가을이면 붉고 노란 단풍으로 물든다. 넓은 토론토대학교 캠퍼스도 고풍스러운 고딕 양식의 건물과 단풍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사실, 대로변에서 조금만 벗어나 하우스가 밀집한 주택가로 가기만 해도 길거리에 아기자기한 단풍이 즐비하다.
조금 더 멀리 나가 볼까. 토론토 다운타운에서 차로 약 1시간 떨어진 해밀턴(Hamilton) 지역의 던다스 피크(Dundas Peak)도 단풍 명소다. 꼭대기에 오르면 협곡과 단풍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다만 가을 단풍 시기(올해는 9월 26일부터 11월 8일까지)에는 온라인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수많은 호수와 혼합림이 어우러지는 무스코카와 알곤퀸, 웅장한 폭포와 단풍이 조화로운 나이아가라까지. 드라마 <도깨비> 속 아름다운 재회 장면에 감동을 받았다면 가을 퀘벡으로 향해도 좋다.
2. 단풍 구경 언제가 좋을까?
눈 뜨고 단풍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단풍 시기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토론토와 근교는 보통 9월 말부터 10월 중순까지가 시즌인데, 해마다 기온과 날씨에 따라 단풍 절정 시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미리 확인해야 한다. 무스코카, 알곤퀸처럼 토론토보다 북쪽에 있는 지역이 기온이 낮아 단풍이 먼저 시작된다. 따라서 토론토에서 단풍 구경을 하고 싶다면 9월 중하순 북쪽부터 시작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구경하는 게 좋다. 온타리오주립공원 공식 홈페이지에서 운영하는 단풍 지도(Fall Colour Report)를 참고하면, 지역별 단풍 진행 상황을 알 수 있다.
3. 부지런히 움직일 것
단풍은 하루 이틀 차이로 색이 달라지고는 한다. 그렇기에 토론토에서 단풍 구경을 하려면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게 제일 좋다. 뚜벅이 여행자의 경우, 여행상품을 이용할 수 있는데 여행사에서는 대부분 주말 상품만 운영하고 있으니 참고. 단풍 절정 시기에는 여행객이 몰리기 때문에 자차 혹은 렌터카로 갈 경우 아침 일찍 출발하고, 여행상품을 이용할 경우 반드시 서둘러 예약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은지 여행작가
살아 보는 것도 여행이다. 여행이 너무 좋아 무작정 떠난 전직 여행기자. 이젠 여행기자에서 ‘기’ 한 글자 빼고 여행자로서의 삶을 만끽하는 중이다.
글·사진 이은지 에디터 강화송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