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는 말이 있다. 작은 것들이 쌓여오다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는데 바로 그 시점을 뜻하는 말이다. 단순한 전환점보다는 훨씬 급격하고 과격하며 결정적으로 비가역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어쩌면 뷰익 엘렉트라 E7이 바로 티핑 포인트가 될 지도 모르겠다. 물론 한국지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겠지만 말이다.
뷰익 엘렉트라 E7이 티핑 포인트가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의 티핑 포인트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중국산 자동차 생태계의 전방위적 진입이 완성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뷰익 엘렉트라 E7은 상하이 GM이 생산한 중국산 완성차다. 그것도 국내에 개발 조직과 생산 공장을 가진 자동차 제작사인 한국GM이 가져왔다는 것이. 중국산 자동차가 우리 시장에 들어오는 결정적인 경로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그 차가 공략하는 지점은 우리가 스스로 죽였다가 뒤늦게 후회한 모델, 즉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PHEV 시장이다.
중국산 자동차는 이미 우리 주변에 있어왔다. 글로벌 브랜드의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수입차도 있고, BYD처럼 자기 이름을 걸고 들어온 중국 브랜드도 있다. 국내 제작사가 중국 기업의 기술을 활용하여 한국에서 만드는 자동차도 있다. 르노코리아와 지리의 협력, KGM과 BYD 및 체리와의 협력이 그런 경우다. 여기에 국내 제작사인 한국GM이 중국산 완제품을 국내 판매•서비스망을 통하여 공급하는 방식까지 더해졌다. 중국 자동차 생태계가 수입차와 국산차의 경계를 가로질러 들어오는 셈이다.
엘렉트라 E7을 티핑 포인트로 생각하는 이유는 조합의 완성체이기 때문이다. 뷰익은 미국 브랜드지이만, E7의 개발과 생산을 주도한 곳은 중국의 SAIC-GM과 현지 개발 조직이다. 그리고 이 제품이 미국 산하의 한국내 제작사인 한국지엠을 통해 국내에 판매되는 것이다. 즉, 100% 미국 브랜드에 100% 중국 기술에 100% 국내 자동차 제작사만 제공할 수 있는 편리한 판매 및 서비스 네트워크가 결합된 완전체다.
그리고 제품 자체도 뼈아프다. 바로 PHEV. 우리가 비웠던 시장이고 중국이 가장 강점을 가진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장에서 PHEV는 거의 지워진 존재였다. 전기차로 가는 길목의 과도기 기술이라는 인식과 순수 전기차로의 전환을 가속하겠다는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2021년에는 대당 500만원이던 구매보조금이 없어졌고, 그해 1분기 국산 PHEV 판매는 한 대도 없었다. 그 뒤에도 가격대가 높은 수입 PHEV는 계속 판매되었다는 점과 국내 브랜드도 해외 시장에는 PHEV를 지금도 수출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국내 메인스트림 시장에서 PHEV가 퇴출되었다’라고 보는 편이 옳다. 그리고 그 지점을 정확하게 중국이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내연기관 시대에는 후발주자였다. 그러나 추격하는 대신 새로운 패러다임인 전동화 솔루션에 집중했고 이제는 세계 전동화 자동차의 강자가 되었다. 판매량이나 공급망 뿐만 아니라 전동화 솔루션의 다양성에서 특히 강점을 갖는다.
뷰익 엘렉트라 E7은 국내 기준으로도 순수 전기 주행 거리가 126km이며, 급속충전도 지원한다. 가장 전기차에 가까운 PHEV라는 뜻. 게다가 가격은 국산 중형 SUV 하이브리드 모델에도 견줄 수 있는 5천만원 전후다. 제품 자체의 완성도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편의 장비 수준은 국내 경쟁자들을 능가한다. 국내 승용차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중형 SUV 시장의 소비자들이 비교 대상에 올려놓을 이유는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한국GM에 바라는 점이 있다. E7으로 국내 판매에 활력을 더하고 고객의 선택을 넓히는 것은 좋다. 한국GM은 국내 소형 SUV 생산•수출을 이어가고 있으며 생산시설과 제품 경쟁력을 위한 투자 계획도 발표했다. 그래서 더욱, 이번 도입이 한국 사업의 미래를 수입 판매로만 채우는 방향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 팔 자동차를 확보하는 일과 한국에서 다음 세대 자동차를 개발하고 생산할 일감을 확보하는 일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한국GM이 국내에서 쌓아 온 신뢰에는 엔지니어와 생산 현장, 협력업체가 함께 만든 시간이 담겨 있다. 그 신뢰를 중국산 신차의 판매 경쟁력으로 활용한다면, 국내 개발•생산의 미래에도 책임 있게 답해 주었으면 한다. 제작사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엘렉트라 E7은 소비자에게는 반가운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현대차도 뒤늦게나마 PHEV와 EREV의 개발을 재개했다. 아쉽게도 국내 시장이 핵심은 아니다. 게다가 BYD 씨라이온 7 DM-i나 뷰익 엘렉트라 E7이 공략하는 메인스트림 시장과는 거리가 다소 있다.
쉬운 시합은 없다. 쉽게 생각하면 당하는 것 뿐이다.
글 / 나윤석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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