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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에서 잠드는 하룻밤, 호치민

2026.10.12. 10: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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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으 호텔,  랜드마크 81 /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구름 위으 호텔, 랜드마크 81 /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호치민, 어떤 밤은 내려가지 않아야 비로소 완성된다

어린 마음에 유독 꽂혔던 영화 속 장면이 있다. 낯선 도시로 출장을 떠난 한 남자, 도시의 야경 위로 오버랩 되는 흐트러진 서류 더미,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위스키 한 잔. 도시를 내려다보던 그의 눈에 서려 있던, 왠지 모를 슬픔. 어른의 장면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 역시 그 높이에 서 보고서야 알았다. 그건 슬픔이 아니라 고요였다는 걸.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올라서면 마음이 참 잔잔해진다. 가라앉는 건 또 아니다. 고요 속에서 안으로 상기되는, 묘한 흥분 같은 것. 자연의 고요함이 날 이완시킨다면, 도시의 고요함은 날 긴장시킨다.

차가운 이성 쪽으로 기운 고요랄까. 바삐 돌아가는 도시를 한발 물러서 바라보면 괜히 드는 생각들이 있고, 그 생각의 속도와 밀도가 좋다. 그래서 낮의 도시보다 밤의 도시가 좋다.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돌아가는 도시. 호텔 창에 비친 모습을 보고서야 그 도시를 사랑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런 밤을, 나는 호치민에서 만났다. ‘빈펄 랜드마크 81(Vinpearl Landmark 81)’은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곳에 머물며, 누구의 방해도 없이 도시의 고요를 오롯이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저녁이면 칵테일과 호치민의 야경을 즐길 수 있다 /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저녁이면 칵테일과 호치민의 야경을 즐길 수 있다 /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Good night above the clouds(구름 위에서 보내는 밤)”

어떤 호텔이 감히 이 문구를 쓸 수 있겠는가. 사이공강 서편,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서 있다. 지상 81층, 첨탑 끝까지 461m. 2018년 완공된 랜드마크 81은 호치민 어디서든 눈에 들어오고, 흐린 날이면 꼭대기가 구름에 잠긴다. 대나무 한 다발을 쥐고 전장에 나가 나라를 구했다는 전설 속 영웅 ‘타인종(Thanh Gióng)’이 이 건물의 모티브다. 대나무처럼 곧게 솟은 형상은, 말하자면 베트남의 자긍심을 하늘에 꽂아 둔 셈이다. 호텔은 이 건물의 47층부터 71층까지 들어섰다. 2025년 오토그래프 컬렉션으로 새롭게 출범한 베트남 최초의 오토그래프 컬렉션 호텔이다.

소란스러운 도시를 여행하는 가장 조용한 방법

빈펄 랜드마크 81의 객실은 49층에서 시작한다. 223개의 객실과 스위트는 천장부터 바닥까지 이어지는 통창으로 열려 있어 사이공강과 호치민의 스카이라인이 방 안으로 통째로 들어온다. 낮의 도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이 방이 진짜 얼굴을 보여 주는 것은 해가 진 뒤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유리에 얼굴이 희미하게 떠오르고, 그 너머로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켜진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윤곽이 새로 그려진다. 오래전 그 영화의 한 장면이 그제야 겹쳐진다. 남자가 마시던 것이 위스키였는지 진이었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그가 바라본 것도 아마 이런 풍경이었을 테니까. 전망대에서는 늘 서둘러 바라보고 내려와야 했다. 여기서는 아무도 나가라 하지 않는다. 도시가 가장 밝은 시간부터 불빛이 하나씩 꺼지는 새벽까지, 고요를 방 안에 그대로 두어도 좋다. 어느 밤엔 창밖으로 비행기가 지나갔다. 착륙을 앞둔 여객기가 고도를 낮추며 천천히 시야를 가로질렀다. 땅에 닿기 직전의 비행기와 거의 같은 높이에 침대가 놓여 있었다. 구름 바로 아래에서 잠든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빈펄 랜드마크 81의 객실. 통창 너머로 호치민의 스카이라인이 펼쳐진다
빈펄 랜드마크 81의 객실. 통창 너머로 호치민의 스카이라인이 펼쳐진다
객실에 마련된 ‘good night, above the Clouds’ 메시지

도심 상공의 올데이 다이닝 ‘오리엔탈 펄(The Oriental Pearl)’에서 사이공강의 파노라마를 배경으로 저녁을 먹었다. 와규를 곁들인 쌀국수부터 세계 각국의 요리까지 메뉴는 넉넉하지만, 오래 남는 것은 접시 너머의 풍경이다. 이름부터 구름을 두른 ‘더 클라우드 라운지(The Cloud Lounge)’는 낮과 밤의 표정이 다르다. 낮에는 베트남 커피와 수제 초콜릿, 해가 지면 칵테일과 야경을 내놓는다. 높이를 가장 영리하게 쓰는 곳은 웰니스다. 47층 ‘호라이즌 스파 & 웰니스’는 트리트먼트 룸마다 사이공 스카이라인을 걸어 두었고, 120m2 야외 인피니티 풀에 몸을 담그면 도시 위에 떠 있는 감각이 그대로 전해진다. 68층에는 488m2 규모의 프레지덴셜 스위트가, 가장 높은 71층에는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클럽 라운지가 있다.

더 클라우드 라운지(the Cloud lounge)에서 즐기는 저녁 식사
더 클라우드 라운지(the Cloud lounge)에서 즐기는 저녁 식사

오토그래프 컬렉션 호텔에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은 ‘오토그래프 모먼트’가 있다. 이곳의 순간은 ‘갤러리 인 더 스카이(Gallery in the Sky)’. 호텔 곳곳의 전망을 하나의 갤러리처럼 큐레이팅하고 건축가와 포토저널리스트 같은 현지 전문가를 ‘갤러리스트’로 두었다. 안내판의 QR코드를 찍으면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얽힌 이야기가 열린다. 그저 높기만 한 전망이 아니라, 읽히는 전망이다. 결국 이 호텔이 파는 것은 높이가 아니라, 높이가 만들어 내는 시간이다. 전망대에서 늘 아쉬움만 남긴 채 내려와야 했던 그 고요를, 하룻밤 통째로 붙잡아 두는 일. 461m 위에서 맞는 밤은 이 소란스러운 도시를 여행하는, 가장 조용한 방법이었다.



글·사진 송미주 기자, 에디터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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