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가 8세대 올 뉴 ES를 공개했다. 가장 큰 특징은 ES 최초로 배터리 전기차(BEV)와 하이브리드(HEV)를 함께 선보였다는 점이다. 하이브리드로 국내 시장에서 신뢰를 쌓은 ES가 전기차까지 영역을 넓혔다.
전기차가 된 ES는 여전히 ES다울 수 있을까. 렉서스는 정숙성과 승차감, 쾌적함이라는 기존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전동화 시대에 대응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다만 제품의 철학과 시장 경쟁력은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ES는 1989년 렉서스 브랜드 출범과 함께 등장했다. 한국에는 2001년 진출과 함께 들어왔다. 2012년 출시된 ES 300h는 국내 프리미엄 하이브리드 시장의 성장에 기여했다. ES는 2024년 국내 누적 판매 10만대를 넘어섰으며, 지난해 렉서스코리아 전체 판매 1만4891대 가운데 약 46%를 차지했다.
렉서스코리아는 올 뉴 ES를 새로운 전환점으로 규정했다. 기존 고객이 신뢰해 온 가치를 전기차로 확장하겠다는 의미다. 렉서스의 국내 첫 전기차는 2023년 출시된 RZ 450e였지만, 첫해 판매는 75대에 그쳤다. 기존 하이브리드 고객층과 접점이 넓은 ES의 성적은 렉서스코리아 전동화 전략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올 뉴 ES는 새로 개발한 GA-K 플랫폼을 바탕으로 한다. 국내에는 BEV 5개와 HEV 4개 등 총 9개 그레이드가 출시된다.
BEV인 ES 350e는 74.69kWh 배터리를 탑재해 복합 주행거리 478km와 복합 전비 6.0km/kWh를 확보했다. 최대 150kW 급속 충전을 지원하며, 상온 25도 기준 배터리 잔량 10%에서 80%까지 약 28분이 걸린다.
ES 500e는 전후륜에 각각 이액슬(eAxle)을 배치하고 다이렉트4(DIRECT4) 사륜구동 시스템을 적용했다. 합산 최고출력은 347마력이며, 프리미엄 그레이드 기준 복합 주행거리는 435km, 복합 전비는 5.3km/kWh다.
하이브리드 ES 350h에는 소형·경량화한 6세대 2.5리터 시스템이 들어간다. 복합 연비는 19.4km/L다. 전자식 사륜구동 E-Four 모델도 추가됐으며, AWD 복합 연비는 18.3km/L다.
가격은 ES 350e 프리미엄 7160만원, 럭셔리 8020만원, VIP 8390만원이다. ES 500e는 프리미엄 7700만원, 럭셔리 8490만원이다. ES 350h는 프리미엄 7290만원, 럭셔리 7780만원이며, AWD 모델은 각각 7590만원과 8080만원이다. 부가가치세 포함, 개별소비세 5% 적용 기준이다.
주목할 부분은 ES 350e 프리미엄이 ES 350h 프리미엄보다 130만원 저렴하다는 점이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를 같은 모델 안에서 비교하도록 가격 차이를 최소화했다.
올 뉴 ES는 전장 5140mm, 전폭 1920mm, 휠베이스 2950mm로 이전 세대보다 각각 165mm, 55mm, 80mm 커졌다.
전면에서는 기존 스핀들 그릴을 없애고 차체 전체로 디자인 정체성을 확장한 '스핀들 보디'를 적용했다. 기역자 형태의 전면 윤곽과 트윈 L 시그니처 램프로 렉서스의 디자인 언어를 이어간다. 후면에는 좌우를 연결한 LED 램프를 배치했다.
실내에서는 손을 가까이 대면 기능 아이콘이 나타나는 '리스폰시브 히든 스위치'가 눈길을 끈다. 운전석에는 12.3인치 디스플레이, 중앙에는 14인치 터치스크린을 배치했다. 넓어진 뒷좌석 공간도 특징이다. ES 350e VIP에는 오토만과 리클라이닝, 통풍·마사지 시트, 3존 에어컨을 포함한 리어 컴포트 패키지가 적용된다.
개발진은 ES의 핵심 가치를 오래 타도 피로가 적은 쾌적함으로 정의했다.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가운데 하나를 정답으로 제시하지 않고, 고객의 생활 방식에 따라 선택하도록 하는 멀티 패스웨이 전략도 강조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은 충전 시스템이다. 올 뉴 ES는 400V 기반으로, 국내 시장에서 확대되고 있는 800V 시스템과 비교하면 충전 속도 측면에서 불리할 수 있다.
개발진은 주행거리와 충전 속도만을 목표로 삼았다면 더 큰 배터리와 높은 전압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배터리 용량과 무게, 주행거리, 충전 시간을 함께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배터리는 토요타 자체 생산 역량뿐 아니라 한국 제조사를 포함한 글로벌 공급처를 대상으로 최적의 조건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개발 철학만으로 충전 경쟁력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는 어렵다. 충전 시간과 주행거리는 전기차 구매자가 가장 먼저 비교하는 항목이다. 수치상의 차이를 상쇄하려면 실제 주행에서 정숙성과 승차감이 얼마나 뛰어난지 증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 렉서스는 차체 전방과 바닥, 후방의 강성을 높이고 ES 최초로 후륜 5링크 멀티링크 서스펜션을 적용했다. BEV 럭셔리 이상에는 전자제어 서스펜션 AVS를 탑재한다. BEV의 1·2열에는 어쿠스틱 글라스를 적용하고 글라스 런 구조를 개선해 정숙성도 강화했다.
차체가 과거 LS에 가까운 크기로 커진 점에 대해서는 차급을 크기와 가격보다 모델이 제공하는 경험으로 구분한다는 설명이 나왔다. ES의 역할은 쾌적함이며, 차체 확대도 이를 강화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올 뉴 ES에는 LG유플러스와 함께 개발한 렉서스 커넥트가 적용된다. 안전 긴급 통보와 원격 제어 기능을 강화했으며, 네이버 클로바 기반 음성인식으로 내비게이션 목적지 설정과 공조 제어를 지원한다. 렉서스 TV 등 엔터테인먼트 기능도 한국 고객의 사용 환경에 맞췄다.
최신 기능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사용 편의성이다. 차량과 스마트폰, 음성인식 서비스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운전자의 조작 부담을 줄일 수 있어야 한다. 렉서스가 강조하는 쾌적함은 디지털 환경에서도 구현돼야 한다.
렉서스코리아는 차량 가격뿐 아니라 구매 이후의 가치와 유지 부담을 강조했다. 잔존가치 보장형 할부 프로그램 '어메이징 스위치'를 BEV까지 확대했다.
ES 350e 프리미엄은 3년 뒤 기본 잔존가치 50%인 3580만원을 보장한다. 유예금액을 포함하면 최대 60%까지 설정할 수 있다. 선수금 30%, 보증금 20%, 금리 5.8% 기준으로 36개월 월 납입금은 42만원대다.
고전압 배터리는 10년 또는 20만km까지 보증한다. 배터리 진단을 포함한 BEV 전용 무상 정기점검(FMS)을 제공하며, '렉서스 케어 BEV 플러스'를 통해 매년 정기점검을 받는 고객에게 구동·충전·주요 전기 시스템 부품을 최대 10년 또는 20만km까지 보증한다.
렉서스코리아는 사전계약 대수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약 3~4개월분의 출고 물량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다만 잔존가치와 월 납입금은 계약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세부 조건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경쟁 환경은 만만치 않다. ES 500e는 제네시스 일렉트리파이드 G80, 볼보 ES90 등과 가격대가 겹칠 가능성이 있다. 브랜드 신뢰와 승차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주행거리와 충전 성능까지 포함한 종합적인 경쟁력이 필요하다.
올 뉴 ES는 렉서스의 멀티 패스웨이 전략을 구체화한 모델이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를 함께 제공하고, 가격과 잔존가치 보장, 장기 배터리 보증을 통해 전기차 구매 부담을 낮추려 한다. 대용량 배터리와 800V 충전 경쟁에서 앞서기보다 기존 고객이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전기차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이브리드로 쌓은 신뢰를 전기차로 확장한다는 방향에는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시장은 여전히 수치로 제품을 비교한다. 충전 시간과 주행거리에서 불리한 인상을 준다면, 렉서스가 내세우는 정숙성과 승차감이 그 차이를 상쇄해야 한다.
브랜드의 신뢰는 새로운 제품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전기차에서도 ES다운 경험이 이어질지는 실제 주행으로 증명해야 한다. 올 뉴 ES가 정숙성과 승차감을 유지하면서 전기차 특유의 주행 질감까지 완성도 높게 구현할 수 있을지, 주행 평가를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글, 영상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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