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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취향대로 고른 방콕, 편애의 목록

2026.10.14. 10: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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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에는 이유가 없다.
에디터가 방콕을 오가며 편애하게 된 모든 곳.

태국에서 코끼리는 국가와 왕실, 불교를 상징하는 신성하고 귀중한 존재다  
태국에서 코끼리는 국가와 왕실, 불교를 상징하는 신성하고 귀중한 존재다

■Editor’s Google Maps
에디터의 구글맵에 찍혀 있는 방콕의 레스토랑 & 바

01 Keawloon BKK
간판 없는 집, 그리고 방콕에서 가장 예약하기 까다로운 밥집 중 한 곳. 하루 두 차례, 단 2~3테이블만 예약을 받는 이 아담한 가정집의 메뉴는 오직 ‘‘삼람(สำรับ)’뿐이다. 삼랍은 밥과 여러 반찬을 한 상에 차려내는, ‘태국식 한상차림 정식’쯤 되겠다. 지금부터는 주인장의 가족 이야기다.

레스토랑 이름인 케우룬(Keawloon)은 주인장의 할머니 이름에서 가져왔다. 주인장의 아버지는 태국 북부 수코타이, 어머니는 태국 남부의 나콘시탐마랏(Nakhon Si Thammarat) 출신이다. 서로 다른 두 지역의 음식을 날마다 들어오는 재료로 무엇이든 만들어서 식탁에 올리는 것이 이곳의 콘셉트. 자신의 가족이 무엇을 먹고 자랐는지를 공유하는 밥집. 여행자라고는 절대 마주칠 수 없는 어둑한 골목의 레스토랑은 2층짜리 가정집인데, 실제로 어느 가족이 살던 가정집을 개조한 것이다.

그릇도 재밌다. 음식이 담겨 나오는 그릇은 실제로 주인장의 가족이 사용했던 식기들이다. 2026년 미쉐린 가이드 태국 빕 구르망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는데, 그 어떤 인정도 필요로 하지 않는 듯한 이곳의 태도가 쿨하게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가장 익숙했던 밥상을 공유하는 작은 가정집, 예약은 인스타그램(@keawloonbkk)에서 가능하다.

02 Somtum Der
솜땀은 맵고 짜고 달고 신 음식이다. 이 4가지 맛이 한 치의 타협 없이 부딪혀야 비로소 솜땀이라 부를 수 있다. 솜땀 더는 실롬 지역 살라댕에 본점을 둔 이산(태국 북동부) 레스토랑인데, 방콕 사람들이 오랫동안 길들여 온 ‘달달한 이산 음식’에 반기를 들며 문을 열었다. 이곳의 목표는 명확했다. 태국 동북부, 이산 지방 본연의 맵고 짠 맛으로 입맛을 되돌려 놓는 것. 투박하고 날카롭다. 그저 솜땀이 어떤 맛이어야 하는지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 주는 곳.

03 Phed Mark
펫막은 단일 메뉴, 오로지 팟카오무쌉(Pad Krapow Moo Sap)만을 다룬다. 다진 돼지고기와 홀리 바질을 마늘, 고추와 함께 센 불에 볶아 밥 위에 얹고 기름 가득한 팬에 퐁당 튀긴 달걀프라이로 마무리. ‘방콕에서 제일 맛있는 팟카오무쌉은 어디냐’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팟카오무쌉 전문점. 펫(Phed)은 태국어로 맵다는 뜻이고, 막(Mark)은 창업자의 이름이자 ‘아주 많이’를 뜻하는 언어유희다. 돼지고기, 소고기, 오징어, 와규 등 단백질을 고를 수 있고 맵기 선택은 총 5단계다. 하이라이트는 오리알로 튀겨 낸 달걀프라이. 매장은 거의 항상 대기가 가득하니 호텔에서 그랩으로 배달해 먹는 방법을 추천한다.

04 P.Kitchen
피키친은 방콕의 김밥천국 같은 곳이다. 태국 음식으로 가득 찬 메뉴판이 두껍고, 그 두께만큼 아무거나 시켜도 크게 실패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이 집의 존재 이유다. 1998년부터 이 자리를 지켜 왔다. 개인적으로 방콕 최고의 얌꿍은 피키친이라고 생각한다. 얌꿍은 된장찌개처럼 집집마다 배합이 다 다른 음식이라 취향을 타는데, 적어도 내 입맛에는 이곳이 표준에 가깝다. 방콕에서 뭘 먹어야 할지 정하지 못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존재감.

05 Ocharos Munkong
늦은 밤, 야식을 찾는다면 여기보다 좋은 곳은 없다. 오차롯 만콩은 방콕의 화교식 태국 골목식당이다. 골목 깊숙이 자리잡고 있어서 일부러 찾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곳. 태국식 볶음요리부터 중국식 안주, 국물 요리까지 메뉴가 빼곡하다. 여기서는 꼭 곱창 튀김을 맛봐야 한다. 간장소스로 달큰하게 졸여 낸 돼지 곱창을 기름에 타기 직전까지 바삭하게 튀겨 내온다. 캐슈넛 닭볶음도 맥주의 훌륭한 안주.

06 Kuay Jab Mr. Joe
후추 향 가득한 맑은 국물의 국수가 먹고 싶을 때는 꾸어이짭 미스터 조를 추천한다. 이 집은 국물 위에 바삭하게 튀긴 삼겹살, 무껍(Moo Krob)을 올려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쉐린 빕 구르망에 선정된 집이기도 하다. 쌀국수 국물에 각 테이블마다 놓인 매운 고추 양념을 한껏 풀어 마시면, 먹지 않으면 술도 깨지 않을 것 같은 얼얼한 맛이 올라온다. 국물 한 숟갈 뜨고 무껍 한 점 베어 물면 그제야 방콕의 밤이 조금씩 정리된다.

07 Dry Wave
통로 소이 13, 소달리티(Sodality) 빌딩 2층에 자리한 드라이 웨이브는 2024년 1월 문을 연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아시아 50 베스트 바에서 ‘캄파리 원 투 워치’를 수상했고, 2025년에는 5위와 최고 신인상까지 거머쥐었다. 드라이 웨이브의 포인트는 ‘슈퍼 클래식’. 서로 다른 시대의 클래식 칵테일 두 잔을 하나로 합치는 방식. 원래 이곳에 있던 나무 한 그루를 그대로 살려 감싸안은 야외 테라스와 짓궂은 유머 감각이 매력적인 바.

08 AQUA Bar
아난타라 시암 방콕의 안뜰 정원에 자리한 바. 무려 이곳에서 20년 넘게 자리를 지켜 왔다. 2026년에는 아시아 50 베스트 바 48위로 이름을 올렸다. 아쿠아 바의 로고이자 마스코트인 오리 캐릭터 ‘퀼(Quill)’은 예전부터 이 안뜰 연못에 살았다는 ‘아난(Anan)’과 ‘타라(Tara)’ 오리들에서 따온 것이다. 낮에는 정원의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고, 밤에는 DJ나 가수의 공연을 감상하며 칵테일을 즐길 수 있다.

얌꿍(tom Yum goong)의 맛을 내는 주재료들

09 Eat Me Restaurant
잇미 레스토랑은 방콕 모던 다이닝 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놀랍게도 1998년에 문을 열어 올해 28년째 운영 중이다. 대부분의 레스토랑이 20년을 버티지 못하고 유행에 삼켜지는 이 방콕에서, 이곳이 여전히 신선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한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레스토랑은 1층의 바와 2층의 다이닝 공간으로 나뉜다. 1층 바 공간에서는 태국을 대표하는 요리인 ‘얌꿍, 솜땀’을 칵테일로 재해석한 독창적인 메뉴를 선보인다.

10 SEEN
방콕에는 루프톱 바가 지천에 깔려 있다. 중심으로 가까워질수록 좁고 시끄럽다. 여유롭고 편안한 루프톱 바를 찾는다면 씬만 한 곳이 없다. 차오프라야강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지점, 아바니+ 리버사이드 방콕 26층에 올라서면 방콕의 두 얼굴이 동시에 보인다. 한쪽 통유리창 너머로는 강물이 흐르고, 반대쪽으로는 빽빽한 스카이라인이 펼쳐진다. 2024년 말에는 옥상에 ‘SIN’이라는 별도의 칵테일 바 공간까지 마련했다. 방콕 트렌드세터들의 고정 좌표로 자리잡은 루프톱 바.

■방콕 최고의 루프톱 수영장
137 Pillars Suites Bangkok

수영장이 있는 방콕의 호텔은, 그러니까 더운 태국 같은 소리다. 당연하다는 이야기다. 방콕 천지에 수영장 딸린 호텔이 가득하지만, 하늘이 온전히 트여 있는 수영장이라면 이야기가 또 다르다. 대부분 호텔의 루프톱 수영장은 유리 지붕이나 캐노피로 하늘을 절반쯤 가려둔다. 태국의 태양은 늦은 오후까지 만만치 않고, 예고 없이 쏟아지는 스콜이 그 이유다. 뻥 뚫린 하늘 아래 수영장은 물 관리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서 방콕에서 하늘 아래 몸 담글 수 있는 루프톱 수영장은 의외로 손에 꼽는다. 이것이 내가 매년 휴가마다 137 필라스 스위트 & 레지던스 방콕을 찾는 이유다. 수영장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곳, 온종일.

방콕에서도 흔치 않은 루프톱 수영장, 24시간 운영하는 인피티니 풀이다
방콕에서도 흔치 않은 루프톱 수영장, 24시간 운영하는 인피티니 풀이다

137 필라스 스위트 & 레지던스 방콕은 2017년에 문을 열었다.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수쿰빗 소이 39에 자리하는데, 이 옆쪽으로 엠쿼티어(EmQuartier)나 엠포리움(Emporium) 등 대형 쇼핑몰이 인접해 24시간 여행객으로 붐빈다. 객실은 총 34개의 스위트와 179개의 레지던스로 구성되었고 특히 스위트 객실은 최소 70m2에서 최대 127m2 규모로, 방콕에서 손꼽히는 객실 크기를 자랑한다. 높은 천장과 대리석 욕실, 워크인 드레스룸, 발코니 등이 마련되어 있어, 도심 중앙에 솟은 고급 맨션에 묵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 스위트 객실의 명칭은 ‘수코타이 스위트(Sukhothai Suites), 아유타야 스위트(Ayutthaya Suites), 라타나코신 스위트(Rattanakosin Suites)’ 등 태국의 역사적 도시 이름을 따붙였다.

수코타이 스위트 객실의 내부. 다양한 예술품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수코타이 스위트 객실의 내부. 다양한 예술품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 호텔의 백미는 역시 수영장. 무려 2개다. 27층에는 모든 투숙객이 이용할 수 있는 인피니티 풀과 자쿠지가 있다. 그 위층, 그러니까 호텔 옥상에는 스위트 투숙객에게만 허락된 프라이빗 루프톱 풀을 따로 갖췄다. 360도로 트인 시야에 발을 담그면 그 압도감에 살짝 아찔한 기분이 들 정도다. 루프톱 풀은 가장자리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구조라 몸을 눕히고 있으면 물과 스카이라인의 경계가 흐릿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 수영장의 존재는 밤에 빛난다. 자정을 넘긴 시각, 도시의 소음이 잦아들고 마천루의 옥상을 밝히는 빨간 불빛이 반짝이는 밤. 별 대신 촘촘히 박힌 고층 빌딩의 불빛들이 별자리처럼 펼쳐진다. 문 닫는 시간이 없는 이 수영장이 가진 유일한 규칙은, 그 별자리 속에 조용히 유영하는 것뿐이다.

스위트룸 이상 투숙객 전용으로 운영되는 루프톱 수영장
​니미트리 레스토랑의 야외 공간. 방콕의 스카이라인을 즐기며 식사를 할 수 있다
​니미트리 레스토랑의 야외 공간. 방콕의 스카이라인을 즐기며 식사를 할 수 있다

Nimitr
니미트리는 산스크리트어로 특별한 꿈을 뜻한다. 푸른빛과 금빛으로 짜인 실내 장식을 보고 있으면 이 이름이 허투루 붙은 건 아니구나 싶다. 8m 높이의 통창 너머로 방콕의 스카이라인이 펼쳐진다. 137 필라스 스위트 & 레지던스 27층에 자리한 타이 레스토랑. 오너가 소유한 자체 농장에서 강황, 갈랑갈, 생강 같은 향신료를 직접 재배해 매일 주방으로 들여온다. 메뉴판 첫 장에는 태국 전도가 그려져 있는데, 북부의 고산 채소, 이산 지방의 와규와 찹쌀, 남부의 해산물과 코코넛, 중부의 재스민 라이스까지, 지역별 식재료 지도를 따라가는 구성. 추천은 얌꿍,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은 육각형 얌꿍을 맛볼 수 있다. 심지어 개운하다.


■Jim Thompson House
짐 톰슨의 미스터리

그는 사라졌다. 1967년 3월 26일, 부활절 일요일 오후, 말레이시아 카메론 하이랜드의 언덕을 산책하러 나간 예순 한 살의 짐 톰슨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동남아시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수색 작전이 벌어졌다.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정글을 뒤졌고, 그에게 2만5,000달러라는 거액의 현상금이 걸렸다. 호랑이에게 물려갔다는 설, CIA가 배후에 있다는 설, 절벽에서 미끄러져 익사했다는 설, 과거 정보요원 시절의 원한이 그를 찾아온 것이라는 설까지. 온갖 추측이 세간에 떠돌았고, 수색은 11일 만에 종료됐다. 결과적으로 그는 사라졌다. 1974년, 태국 법원은 그를 공식적으로 사망 처리했고 이것이 ‘짐 톰슨’의 결말이다.

짐 톰슨의 집에는 그가 지금껏 모아 온 동남아시아의 방대한 수집품 컬렉션으로 가득하다
짐 톰슨의 집에는 그가 지금껏 모아 온 동남아시아의 방대한 수집품 컬렉션으로 가득하다
200년 이상 된 태국 전통 티크나무(teak) 주택 6채를 모아 지은 목조 건축물
200년 이상 된 태국 전통 티크나무(teak) 주택 6채를 모아 지은 목조 건축물
짐 톰슨이 수집한 동남아시아의 예술품

그가 사라지기 전까지 쌓아 올린 그의 삶은 실종만큼이나 소설 같다. 미국 델라웨어에서 태어나 프린스턴을 졸업하고 건축을 공부하다 그만둔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훗날 CIA의 전신이 되는 전략사무국(OSS)에서 일하며 태국과 첫 인연을 맺는다. 종전 후 그는 뉴욕으로 돌아가지 않고 방콕에 남았다. 그는 방콕에서 태국의 ‘실크 산업’에 손을 댔다. 1948년, ‘타이 실크 컴퍼니’를 세워 당시 서구 시장에서는 존재조차 몰랐던 이 직물을 전 세계 패션계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당시 태국에서 실크는 농촌의 전통 공예품에 가까웠지만, 짐 톰슨은 이를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재탄생해 선보인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디자이너, 인테리어 업계와 연결하며 태국 실크를 패션과 영화, 호텔의 세계로 밀어 넣었다.

세계적인 실크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짐 톰슨의 제품
세계적인 실크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짐 톰슨의 제품

특히 1956년 영화 <왕과 나>에 그의 실크가 사용되면서 짐 톰슨의 실크는 더욱 이름을 알렸고, 그는 어느새 ‘실크의 왕’이라는 별명까지 얻는다. 하지만 그를 단순히 ‘태국 실크를 팔아 성공한 미국인 사업가’로 정리하는 건 짐 톰슨의 관심을 절반만 본 것이다. 그는 태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매료된 사람이었고, 그 매혹의 첫 대상이 전통 직조 기술과 실크 장인들의 손끝이었을 뿐이다. 그의 관심사는 실크에서 동남아시아의 건축과 미술로도 뻗어 나갔다. 짐 톰슨은 평생에 걸쳐 동남아시아의 고미술품을 사들였고, 그 수집벽은 사업 이상의 무언가, 그러니까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강박에 가까운 애착이었다.

짐 톰슨 하우스 옆쪽으로는 운하가 위치한다. 이 운하를 통해 해체한 전통가옥을 실어날랐다
짐 톰슨 하우스 옆쪽으로는 운하가 위치한다. 이 운하를 통해 해체한 전통가옥을 실어날랐다
짐 톰슨이 살아 생전 직접 수집한 컬렉션의 모습
짐 톰슨이 살아 생전 직접 수집한 컬렉션의 모습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등지에서 수집한 고대 조각과 불상이 가득하다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등지에서 수집한 고대 조각과 불상이 가득하다

그의 수집품이 지금 방콕에 남아 있는 ‘짐 톰슨의 집’이다. 1958년, 그는 아유타야(Ayutthaya)와 방끄루아(Bang Kruai)의 마을에서 낡고 방치된 전통 태국 가옥 여섯 채를 사들여 해체한 뒤, 목재를 뗏목에 실어 방콕으로 옮겨왔다. 당시 못 하나 쓰지 않고 조립되던 태국 전통 가옥의 특성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게 옮긴 집을 방콕에서 재조립하며 태국 전통 건축의 관습에 거스르는 선택을 했다. 집 바깥에 있어야 할 계단을 실내로 들여왔고, 조각이 새겨진 나무 벽판을 뒤집어 무늬가 안쪽에서 보이도록 배치했으며, 벨기에산 크리스털 샹들리에를 태국식 티크 천장 아래 매달았다. 이질적인 방식으로 태국의 문화를 새롭게 전시한 공간, 짐 톰슨의 감각으로 완성한 그 불일치가 이 집의 정체성인 셈이다.

실제 짐 톰슨의 침실 모습. 방 옆에 위치한 작은 밀폐형 발코니가 특징이다
실제 짐 톰슨의 침실 모습. 방 옆에 위치한 작은 밀폐형 발코니가 특징이다

그의 집으로 들어서면 그가 평생 모은 동남아시아 미술의 축소판이 펼쳐진다. 7~8세기 드바라바티(Dvaravati) 시대의 불상부터 13세기 롭부리(Lopburi)의 석조 불상까지. 17세기 태국 사찰에서 가져온 탱화들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명나라풍 청화백자와 오색으로 채색된 벤자롱 도자기도 매력적이다. 이 집의 모습은 그가 사라진 이후로 거의 손대지 않은 채 그대로이다.

태국에서 잉어는 번영, 인내, 성공을 대표하는 행운의 생물이다
태국에서 잉어는 번영, 인내, 성공을 대표하는 행운의 생물이다

짐 톰슨의 집은 개별 관람이 불가하다. 반드시 투어에 참여해야 한다. 투어 시간은 30~40분, 사진 촬영은 가능하나 동영상 촬영은 금지다. 방콕의 소음이 이윽고 잦아드는 이 집에 서 있으면, 홀연히 사라진 그의 결말이 비극이 아니라 어떤 완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Anantara Siam Bangkok Hotel
방콕에서 가장 아름다운 벽화를 품은 호텔

방콕에서 호텔을 선택하는 건 노동에 가깝다. 그 수가 너무 많아 좀처럼 하나를 콕 집어 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장 어제 오픈한 호텔도 이미 한물간 곳으로 취급받는 도시. 이토록 빠른 방콕에서 굳이 40년이 넘은 호텔을 선택할 이유는 그리 많지 않다. 여전하거나, 익숙하거나. 아난타라 시암 방콕에 체크인했다.

이번 리노베이션을 통해 새롭게 선보이는 아난타라 가든 풀 스위트 객실의 전경
이번 리노베이션을 통해 새롭게 선보이는 아난타라 가든 풀 스위트 객실의 전경
수영장 전경. 도심 속에서 보내는 편안한 하루
수영장 전경. 도심 속에서 보내는 편안한 하루

아난타라 시암은 방콕의 중심인 ‘라차담리 로드(Ratchadamri Road)’에 자리한다. 1983년, 건축가 ‘조지 윔벌리(George Wimberley)’가 설계해 문을 연 이곳은 올해 43주년을 맞이하는데, 이 정도 연식을 가진 럭셔리 호텔 건물은 방콕에서도 극히 드물다. 1983년 페닌슐라 호텔로 처음 문을 열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리젠트 호텔로 소유가 바뀌었고, 1990년대에 들어서는 포시즌스가 운영을 맡았다. 2001년, 마이너 호텔 그룹이 건물 소유권을 완전히 인수했고 2015년, 비로소 마이너 호텔의 럭셔리 브랜드, 아난타라의 이름을 걸게 된 것이다. 현재 이곳은 아난타라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호텔로 자리하고 있다. 2026년, 아난타라 시암은 전면 리노베이션을 통해 또 한 번의 변화를 선보인다.

아난타라 시암 방콕 로비에는 짜끄리 왕조 기념일 200주년을 기념하는 벽화가 걸려 있다
아난타라 시암 방콕 로비에는 짜끄리 왕조 기념일 200주년을 기념하는 벽화가 걸려 있다

Transformed. Timeless. Thai

‘변화하되 시대를 초월하고, 결국 태국다움’으로 수렴하겠다는 이 문구는 리노베이션의 방향성을 정확히 요약한다. 아난타라 시암은 총 335개의 객실을 완전히 새로 단장하면서도, 손대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태국 호텔이라는 정체성이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면 계단 위로 보이는 로비 벽화가 그 정체성의 일부다. 태국을 대표하는 벽화로 ‘아잔 파이분 수완나쿳트(Ajarn Paiboon Suwannakudt)’가 짜끄리 왕조 기념일 200주년을 기려 완성한 이 벽화는, 라마 1세의 대관식을 주제로 짜끄리 왕조의 탄생을 자세히 묘사한 작품이다. 코끼리와 말, 전차와 배 등 벽화 곳곳에 태국 왕실의 교역과 번영을 상징하는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리노베이션을 통해 이 벽화는 고스란히 짙어졌다. 오래된 색과 흔적을 세심히 살피고 보존하는 작업을 거쳐, 수십 년 전 이곳에 새긴 태국의 역사를 다시금 선명히 돌려놓은 것이다. 로비 천장에 그려진 태국 전통 사상 속 19개의 패널 그림도 마찬가지다.

아난타라 시암 방콕은 편안한 무드가 매력적이다
아난타라 시암 방콕은 편안한 무드가 매력적이다

반면 객실은 완벽히 달라졌다. 티크 우드와 수공예 디테일, 실크 소재를 활용한 딜럭스룸부터 시암 스위트, 아난타라 스위트, 프레지덴셜 스위트까지. 대리석 욕실과 맞춤형 세면대, 한층 밝아진 조명이 화사한 느낌이다. 이번 리노베이션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새롭게 추가된 두 종류의 스위트 타입이다. ‘아난타라 가든 풀 스위트’는 도심 한복판 울창한 열대 정원을 활용해 만든 풀빌라 타입이다. 짐 톰슨 스위트는 태국 실크 산업의 핵심 인물인 그 이름을 그대로 따 만든 2베드룸 스위트다. 태국의 여름 별장에서 영감을 얻어, 광택 나는 티크 바닥과 그림이 그려진 벽 패널, 짐 톰슨에게 영감을 받은 예술 작품으로 객실 곳곳을 가득 채웠다.

완전히 새로워짐과 동시에, 가치를 지켜 내는 방향. 클래식의 품격은 결국 무엇을 지킬 것인가에 달려 있다.

아난타라 시암 방콕 안뜰 정원에 자리한 아쿠아 바. 이곳에서 20년 넘게 자리를 지켜 왔다
아난타라 시암 방콕 안뜰 정원에 자리한 아쿠아 바. 이곳에서 20년 넘게 자리를 지켜 왔다

Spice Market

아난타라 시암 방콕은 다이닝 규모도 거대하다. 9개의 레스토랑과 바에서 이탈리안부터 일식, 스테이크, 남미 요리까지 선보이는데 그중에서도 스파이스 마켓은 1983년 개관 때부터 함께해 온 타이 레스토랑이다. 이름 그대로 시장을 재현한 인테리어가 특징인데, 벽면을 채운 나무 선반과 항아리, 곡물 자루들이 실제 방콕 재래시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왔다.

글·사진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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