껀터, 어머니 강이 차린 새벽
새벽 5시, 물안개가 아직 강 위에 걸려 있는데 강 한가운데는 벌써 한낮처럼 분주하다. 수백 척의 배가 뱃머리를 맞대고, 그 사이를 작은 배들이 모터 소리를 내며 비집는다. 한 배에서 수박이 날아가면 옆 배에서 받아 낸다. 또 다른 배 위에서는 여자가 커다란 솥 앞에 서서 쌀국수를 만다. 이 사람들은 대체 몇 시에 하루를 시작한 걸까. 상인들은 새벽 세 시부터 물건을 떼어 배에 싣고, 다섯 시면 이미 강 위에 자리를 잡는다. 여행자가 겨우 눈을 비비며 보트에 오르는 그 시간, 이곳의 하루는 벌써 한참을 달린 뒤다.
껀터(Cần Thơ)는 한때 ‘떠이도(Tây Đô)’, ‘서부의 수도’라 불렸다. 메콩강 하류에 드넓게 펼쳐진 삼각주를 베트남 사람들은 ‘미엔떠이(서부)’라 부르는데, 껀터는 그 서부의 중심이다. 프랑스가 인도차이나를 지배하던 시절에는 델타에서 손꼽히는 교역항이었고, 지금도 낀족과 화족, 크메르족이 뒤섞여 산다. 도시의 모든 것을 만든 것은 결국 강이다. 그냥 강이 아니라, 이름부터 ‘어머니’인 강. 메콩은 흐르는 곳마다 이름을 바꾼다. 중국에서는 란창강, 캄보디아에서는 톤레툼. 우리에게 익숙한 ‘메콩’이라는 이름은 태국·라오스에서 부르는 메남콩(Mae Nam Khong)에서 왔다. ‘Mae Nam’에는 큰 강을 ‘어머니의 물’로 부르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강이 마지막으로 닿는 이 땅에서는 끄우롱(Sông Cửu Long), ‘아홉 용의 강’이라 불린다. 메콩이 바다로 들기 전 아홉 갈래로 갈라지는 모습에서 온 이름이다.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해 수천 킬로미터를 흘러온 강은 베트남에 닿아 수많은 물길로 갈라진다. 그렇게 빚어진 메콩델타에서 베트남 쌀의 절반, 과일의 70% 가까이가 난다. 팔 것이 넘치니 시장이 생겼다. 다만 이 땅에서는 길보다 물이 먼저였다. 습지와 수로가 실핏줄처럼 얽혀 육상 교통이 더디게 발달한 탓에, 다른 지역에서 오토바이가 하는 일을 여기서는 배가 한다. 물이 곧 길이고 배가 곧 트럭인 셈이다.
시장이 물 위에 자리잡은 것도 그래서다. 물건을 싣고 온 배가 그대로 가게가 되고, 온 가족이 함께 사는 집이 되었다. 껀터 도심에서 5km 남짓 떨어진 까이랑(Cái Răng)은 그중 가장 크고 유명하다. 하폭이 100m를 훌쩍 넘는 강 위에서 성수기에는 수백 척의 상선과 관광선이 오간다. 관광객을 위해 꾸며 놓은 무대가 아니라, 지금도 실제 도매 거래가 오가는 새벽 시장이다.
이 넓은 강에서 원하는 배는 어떻게 찾을까. 까이랑에는 오래된 답이 있다. ‘꺼이베오(Cây Bẹo)’다. 배 뱃머리에 긴 대나무 장대를 세우고, 그 끝에 자기가 파는 물건을 하나 매달아 둔다. 수박을 파는 배에는 수박이, 파인애플을 파는 배에는 파인애플이 장대 끝에서 흔들린다. 멀리서도 무엇을 파는지 한눈에 읽힌다. 물 위에 세운 간판이다. 재미있는 예외도 있다. 농산물 대신 지붕 이는 니파야자(Nipa) 잎이 장대에 걸려 있다면, ‘이 배를 팝니다’라는 뜻이다. 물 위의 삶을 접고 뭍에 집을 짓겠다는 조용한 선언. 집 지을 재료를 내걸어 배를 판다니, 강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만 떠올릴 법한 방식이다.
멀리 이웃 성에서 온 상인은 물건이 다 팔릴 때까지 며칠씩 배에서 지낸다. 온 가족이 함께 탄 배도 흔하다. 배는 곧 집이다. 뱃전에 TV 안테나가 달려 있고, 빨랫줄이 걸려 있고, 매일 먹을 채소를 키우는 화분이 놓여 있다. 밤이면 도둑을 지키는 개 한 마리도 한 식구로 잠든다. 이 물 위에도 유명인이 있다.
37년째 상인들에게 아침 국수를 말아 온 띠엡 할머니다. 그 국수 한 그릇을 맛보러 미국과 싱가포르의 셰프가 방송 제작진과 함께 찾아올 정도다. 다만 카메라가 꺼진 뒤의 삶은 명성과 사뭇 다르다. 강변 집을 화재로 잃은 뒤, 지금은 배가 임시 거처라 한다. 국수 한 그릇의 유명세도 물 위의 고단한 삶까지 바꿔 주지는 못했다.
까이랑이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 수로 교통을 따라 농산물과 생활물자를 사고파는 배들이 모이면서 시장이 형성됐다. 전쟁을 지나며 한때 강 위에서 시장이 통째로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논밭이 망가져 팔 물건 자체가 사라진 탓이다. 전쟁과 사회 변화 속에서 위축되기도 했지만 이후 상업 활동이 되살아나며 다시 델타의 대표 시장으로 자리잡았다.
2016년에는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가 까이랑을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가난한 농민의 생계 수단이 델타를 대표하는 문화가 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 셈이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지면 시장은 거짓말처럼 잦아든다. 볕이 뜨거워질수록 배들은 하나둘 흩어지고, 방금 전까지 수백 명이 오가던 강이 잠시 숨을 고른다. 그리고 다시 새벽 세 시. 어머니의 강은 어김없이 또 하루치 장사를 시작한다.
고립을 선물하는 섬
‘눈이 막 내리는 날 함께 삿포로에 가자’는 말이 사랑의 표현이라 한다. 함께 고립되고 싶은 상대에게만 할 수 있는 말이라서. 이제 후보지가 하나 더 생겼다. 호치민에서 차로 4시간, 껀터에 닿아서도 다시 배를 타야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섬. 누구도 쉽게 발 들일 수 없는 곳. 사랑하는 이와 고립되고 싶다면, 삿포로 대신 이곳을 말해도 좋겠다.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는 특유의 적막이 흐른다. 누가 메가폰을 잡았든 그렇다. 연출인 줄 알았는데, 와 보니 베트남이 원래 그런 곳이었다. 레거시 메콩은 그 적막을 가장 짙게 응축해 둔 장소다.
허우강 위 꼰아우(Cồn Ấu)섬. 8헥타르 열대 정원으로 둘러싸인 이 섬에는 차가 다니지 않는다. 본토에서 짧은 카누를 타고 들어서는 순간, 일상은 강 건너에 두고 온다. 배에서 내리면 은은한 징 소리가 손님을 맞이한다. 베트남에서 징은 그저 악기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징 하나하나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고, 그 소리를 사람의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잇는 통로로 여겼다.
아이가 태어날 때도, 혼인할 때도, 누군가 세상을 떠날 때도 징이 울렸다. 섬에 든 손님에게 가장 먼저 이 소리를 들려주는 데에는, 그런 오랜 마음이 배어 있다. 60개의 방갈로와 5개의 풀 빌라는 강과 호수, 정원을 끌어안도록 앉혔다. 방갈로 바깥에 놓인 침대에 누워 나뭇잎 부딪는 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곳곳의 오래된 반얀트리가 깊은 그늘을 드리운다. 메콩델타에서 이만한 고요와 프라이버시를 누릴 수 있는 곳은 드물다.
이 섬에는 묘한 문화가 하나 더 있다. 자전거에 제자리가 없다. 어느 건물 앞에든 자유로이 세워 두고, 그걸 다른 사람이 타고 가도 이상하지 않다. 네 것 내 것의 경계가 흐릿한 풍경. 1년에 한 달씩 이곳에 묵으러 오는 유럽 손님이 있다는 이야기도, 이 섬에서는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레거시 메콩의 얼굴은 델타의 자연과 오랜 교역 문화에서 왔다. 건축에는 맹그로브 생태계와 과수원 구조가 녹아 있고, 길 안내 표식은 수상시장 상인들이 물건을 알리던 그 대나무 장대, 꺼이베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며칠 전 까이랑강 위에서 흔들리던 그 장대가, 이 섬에서는 손님을 이끄는 이정표로 다시 서 있다. 강이 만든 시장과 강이 만든 리조트가 같은 언어를 쓰는 셈이다.
미식도 지역에 뿌리를 둔다. ‘더 카페(The Café)’는 전통 조리법의 메콩식 요리를 중심으로 ‘메콩 수타 누들 수프’와 ‘메콩 리버 핫팟’ 같은 시그니처를 낸다. ‘더 그릴(The Grill)’은 현지 허브와 식재료로 서양식을 새로 해석한다. 웰니스의 중심에는 요가와 필라테스 리포머 스튜디오가 있고, 스파와 두 개의 수영장, 키즈 클럽, 야외 피클볼 코트가 곁을 잇는다. 자연을 바짝 끌어들인 열린 공간에서 몸의 속도를 늦추는 것, 그것이 이곳이 권하는 휴식이다. 그 안목은 미쉐린 가이드 2025에서 원 키(One Key)로 인정받았다.
낮과 밤이 교차하는 어스름을 프랑스인들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부른다.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그림자가 내가 기르는 개인지, 나를 해칠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때라서다. 바로 그 무렵, 이 섬에서는 작은 의식이 시작된다. ‘선셋 리추얼 세리머니(Sunset Ritual Ceremony)’다. 은은한 징 소리가 다시 울리고, 강 위로 빛이 서서히 물든다. 거창한 공연도, 특별한 장치도 없다. 그저 석양을 바라보는 시간이 하나의 의식이 된다.
베트남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강에 등불을 띄워 소원을 실어 보냈다. 꽃을 닮은 등, 그 안에 켠 작은 불빛에 조상을 기리고 사랑하는 이의 안녕을 빌었다. 등이 멀어질수록 근심도 함께 떠내려간다고 여겼다. 나뭇잎에 소원을 적어 태우고 강물에 흘려보내는 마음도 아마 다르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이뤄짐이 아니라, 놓아 보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레거시 메콩은 머무는 목적지를 넘어, 여행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곳에 가깝다. 물과 전통, 공동체가 삶의 리듬을 빚어 온 이 델타에서의 며칠은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여행과는 다르다. 한동안 잊고 지낸 느린 속도를 되찾는 시간에 가깝다. 그 속도에 한번 몸을 맡기고 나면, 돌아오는 카누 위에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섬은 멀어지는데, 마음은 아직 그곳에 남아 있는 것처럼.
글·사진 송미주 기자, 에디터 강화송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