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파리 모터쇼의 풍경은 2년 전과 크게 달라졌다. 올해 참가한 중국 브랜드는 20개로, 2024년의 10개에서 두 배로 늘었다. 전체 참가 완성차 업체 약 60곳 가운데 3분의 1이 중국 브랜드다. 개막 사흘 전인 9일에는 EU와 중국이 중국산 하이브리드차의 유럽 수출 물량을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유럽집행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상한은 연간 35만 대다. 중국차의 공세가 거세지는 가운데 유럽이 대응책을 꺼내 든 것이다.
이번 합의가 유럽 자동차 시장의 흐름을 단번에 바꾸기는 어려워 보인다. 수입 물량을 줄이는 동안 유럽 업체가 경쟁력을 얼마나 회복할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하다. 중국 업체들 역시 수출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유럽 현지 생산을 늘릴 방법을 찾고 있다.
중국 브랜드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데이터포스(Dataforce)에 따르면 EU·EFTA·영국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의 점유율은 2021년 0.5%에서 올해 상반기 9.5%로 상승했다. 8월에는 월간 기준 11.7%를 기록했고, 등록 대수도 9만7,639대로 전년 동기보다 111% 늘었다.
중국 업체들은 유럽 신차 시장의 성장도 주도했다. 자동차경영센터(CAM)에 따르면 올해 1~8월 유럽 신차 등록 대수는 5.8% 증가했지만, 증가분 약 50만 대 가운데 41만9,000대가 중국 업체에서 나왔다. BYD는 23만4,099대, 체리와 산하 브랜드 오모다·재코는 20만7,871대를 등록해 각각 테슬라의 전기차 등록 대수인 19만1,787대를 넘어섰다.
성장의 중심은 하이브리드차다. EU가 2024년 10월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35.3%의 상계관세를 부과하자 중국 업체들은 하이브리드차 판매를 확대했다. 중국산 하이브리드의 월간 수입량은 2024년 10월 3,800대에서 올해 7월 5만 대로 늘었다. 올해 상반기 중국 브랜드의 유럽 하이브리드 점유율은 14%,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는 25%로, 2024년 각각 2%에 그쳤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EU와 중국은 중국산 하이브리드 수출 상한을 연간 35만 대로 설정하는 데 합의했다. 올해 수출 전망치인 80만 대 안팎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규모다.
유럽이 대응에 나선 배경에는 무역 불균형과 자국 업체의 경쟁력 약화가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대중 상품 무역적자가 3,606억 유로에 달했고, 올해 상반기에도 9% 증가했다고 밝혔다. 데이터포스에 따르면 스텔란티스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2021년 21.7%에서 올해 15%대 초반으로 낮아졌고, 푸조 역시 6.6%에서 4.8%로 하락했다.
중국 업체들에도 유럽 진출은 선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중국승용차협회(CPC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 승용차 소매 판매는 전년 동기보다 20.2% 감소한 870만 대에 그쳤다. BYD의 상반기 해외 판매는 71% 증가한 79만2,256대였고, 체리도 해외에서 94만3,817대를 판매해 전체 판매량의 70%에 가까운 비중을 기록했다. 내수 경쟁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유럽은 중국 업체들이 해외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 확보해야 할 핵심 시장으로 부상했다.
파리 모터쇼에서 유럽 업체들은 위축된 모습 대신 적극적인 신차 전략을 내세웠다. 스텔란티스는 신차 6종과 콘셉트카 9종을 선보였다. 최근 유럽 모터쇼에서 비교적 조용한 행보를 보였던 것과 대조적이다.
안토니오 필로사 CEO는 개막 전날 밤 시트로엥 2CV의 전기차 콘셉트를 공개했다. 유럽의 대표적인 소형차를 전기차 시대에 맞게 되살리겠다는 구상이다. 2CV는 지난 5월 투자자 설명회에서 공개한 저가형 소형 전기차 프로젝트 'E-Car'의 일부로, 1만5,000유로 안팎의 가격이 거론된다. DS N°7과 피아트 그리즐리, 란치아 감마, 오펠 코르사 GSE 등도 이번 모터쇼에서 국제 무대에 처음 등장했다.
문제는 출시 시점이다. 2CV 전기차는 아직 콘셉트 단계이며, 양산은 2028년께로 알려졌다. 지금 유럽 시장에서 판매를 늘리는 중국산 하이브리드와 직접 경쟁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유럽 업체들이 신차 개발과 출시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스텔란티스는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 중국 업체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있다. 네드 큐릭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중국식으로 단축된 개발 주기를 도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리프모터와 공동 개발하는 플랫폼을 활용해 이탈리아에서 소형 전기차를 생산하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리프모터의 올해 상반기 유럽 등록 대수는 전년 동기보다 568% 증가했다.
이제 중국 업체와의 협력은 유럽 자동차 산업에서 낯선 선택이 아니다. 이탈리아 일간 일 솔레 24 오레는 이번 모터쇼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중국 그룹과의 협력이 더는 위협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을 꼽았다. 유럽 업체들은 경쟁 상대의 시장 진입을 막는 데 그치지 않고, 개발과 생산에서 필요한 기술과 속도를 확보하는 방안도 찾고 있다.
르노는 생산 기반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프랑수아 프로보 CEO는 중국산 하이브리드의 유입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면서도 이번 합의에 대해 "무역전쟁보다는 낫다"고 평가했다. 파브리스 캉볼리브 르노 브랜드 CEO는 향후 12개월 안에 프랑스 내 전기차 생산량을 최소 50% 늘릴 수 있다고 밝혔다. 확정된 생산 목표라기보다 생산 확대 가능성을 제시한 발언이다. 르노 그룹은 이번 모터쇼에 차량 50대를 전시하고 신작 6종을 공개했다.
유럽 업체들의 반응에는 기대와 우려가 함께 담겨 있다. 필로사 스텔란티스 CEO는 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이탈리아 정부에 높은 에너지 비용을 낮출 지원책을 요구했다. EU의 탄소 배출 규제와 관련해서도 브뤼셀이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입 물량을 제한하더라도 생산비용과 가격 경쟁력의 격차가 해소되지 않으면 유럽 업체가 시장을 되찾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EU가 준비 중인 '메이드 인 유럽' 규정과 관련해 프랑스와 독일의 합의가 임박했다고 밝혔다. 이 규정은 전기차가 시장 접근과 관련한 혜택을 받으려면 일정 비율 이상을 유럽에서 생산하도록 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수입 규제와 함께 현지 생산을 유도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중국 업체들은 수입 상한을 유럽 시장에서 철수해야 할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현지 생산을 확대할 계기로 보는 분위기다.
장안자동차의 자오페이 사장은 이번 합의를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메이드 인 유럽 규정에 앞선 조치로 보고 있으며, 유럽에 생산 거점을 마련하면 대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BYD도 단기적인 부담은 있겠지만 유럽 시장에 대한 전략은 바뀌지 않는다고 밝혔다. 스텔라 리 BYD 수석부사장은 프랑스 공장 건설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방송 인터뷰에서 말했다.
리프모터 인터내셔널은 상한제의 구체적인 운영 방식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면서도 관세와는 다른 접근법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대안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업체들의 관심은 수입 물량을 어떻게 배분받을지보다 유럽에서 직접 생산하는 것이 얼마나 유리할지에 쏠리고 있다.
현지 생산 계획은 이미 구체화되고 있다. 지리는 7월 포드의 스페인 발렌시아 공장에서 전기 SUV를 생산하기로 했다. 알렉스 난 지리 CEO는 파리 모터쇼에서 르노와의 협력 확대도 강조했다. 체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합작 공장에 더해 기존 공장을 활용할 수 있는 추가 협력처를 찾고 있다.
BYD 역시 2025년 IAA 모빌리티에서 2028년까지 유럽에서 판매하는 차량을 현지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유럽의 대응책이 수입 규제와 현지 생산 비율 강화로 이어진다면 중국 업체들의 유럽 현지화는 더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공장 건설과 생산 확대는 계획대로 진행되기 어렵다. BYD의 헝가리 세게드 공장은 당초 일정에서 약 1년 늦어진 올해 4분기 가동을 앞두고 있다. 첫 생산 모델은 소형 전기차 돌핀 서프다. 체리의 바르셀로나 공장도 여러 차례 일정이 미뤄졌다. 현지 생산은 수입 제한을 피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지만, 막대한 투자와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다.
유럽 진출을 준비하는 후발 업체들은 더 큰 부담을 안게 될 수 있다. 로이터 브레이킹뷰스는 리오토나 샤오미처럼 중국 내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유럽 진출을 모색하는 업체들이 이번 합의로 진입 장벽에 부딪힐 가능성을 짚었다. 기존 생산시설과 판매망을 갖춘 업체에 비해 현지화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이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아이토(AITO)는 파리 모터쇼에서 유럽 시장을 겨냥한 프리미엄 전기 SUV 4종을 공개했다. 해외 판매 비중을 현재 1% 미만에서 3년 안에 20%로 높이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유럽 시장을 향한 중국 업체들의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수입 상한이 도입되더라도 진출 자체를 멈추기보다는 생산과 판매 방식을 바꾸는 쪽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합의는 유럽 업체들에 시간을 벌어주는 조치다. 하지만 그 시간이 경쟁력 회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합의에는 4년의 시한이 붙어 있으며, 수입 상한은 둘째 해부터 매년 6%씩 늘어난다. 제한이 영구적인 장벽으로 작동하기는 어렵다.
그 사이 중국 업체들은 유럽 현지 공장을 세우고 기존 업체와 협력 관계를 넓힐 것이다. 반면 유럽 업체들이 내놓은 전기차 가운데는 콘셉트 단계에 머물러 있거나 양산까지 시간이 필요한 모델이 적지 않다. 신차를 공개하는 속도보다 실제로 생산해 소비자에게 인도하는 속도가 중요해졌다.
소비자에게 미칠 영향도 살펴봐야 한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산 하이브리드의 유럽 수입이 급증하는 동안 평균 판매가격은 하락했다. 올해 유럽 신차 시장의 증가분 가운데 84%를 중국 업체들이 차지했다는 CAM의 분석을 고려하면, 수입 물량 제한은 소비자의 선택지를 줄이고 가격 하락 압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유럽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기는 어렵다. 중국 업체들의 성장 속도는 이미 유럽 자동차 산업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슈미트 오토모티브 리서치(Schmidt Automotive Research)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중국 브랜드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10.7%로, 1년 전 5.7%에서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이는 1970년대 유럽에 진출한 일본 브랜드의 당시 점유율도 웃도는 수준이다.
유럽 업체들에 필요한 것은 규제를 통한 시간 확보와 그 시간을 활용한 경쟁력 회복을 함께 추진하는 일이다. 시트로엥 2CV 같은 상징적인 모델을 공개하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소비자가 실제로 구매할 수 있는 가격에 양산차를 내놓고, 개발 기간을 줄여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중국 업체와의 협력도 필요하다. 다만 협력 과정에서 유럽 업체가 핵심 기술과 생산 역량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중국 업체들은 수입 상한을 유럽 현지화의 계기로 삼고 있다. 유럽이 규제를 통해 시간을 버는 동안 중국 업체들은 그곳에 공장을 세우고 있다. 앞으로의 경쟁은 국경에서 얼마나 많은 차량이 들어오느냐보다 유럽에서 누가 더 경쟁력 있는 차를 만들고,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하느냐에 달릴 가능성이 크다.
사진제공 / 파리모터쇼 공동취재단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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