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디 올-뉴 일렉트릭 CLA'와 '디 올-뉴 일렉트릭 GLC'를 국내에 선보였다. 두 차는 벤츠의 차세대 전용 아키텍처를 각각 처음 적용한 모델로, CLA는 모듈형 아키텍처 MMA의 첫 주자이고, GLC는 전기차 전용 아키텍처 MB.EA의 출발점이다. 새로운 플랫폼의 첫 결실이 나란히 한국 시장에 상륙한 셈이다.
그간 벤츠의 전기차가 걸어온 길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다. EQ 브랜드는 매끈한 원 보우 디자인으로 기분 좋게 출발했으나 시장의 평가는 엇갈렸다. 내연기관 플랫폼을 빌려 쓴 일부 모델은 실내 공간과 효율 면에서 한계를 드러냈고, 결국 'EQ'라는 이름은 차명에서 조용히 물러났다. 일렉트릭 CLA와 GLC는 바로 이러한 시행착오를 밑거름 삼아 탄생했다.
CLA는 처음부터 전기차를 기준으로 설계되었다. 다만 같은 뼈대에 48볼트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까지 품을 수 있도록 하나의 플랫폼이 두 가지 파워트레인을 소화하는 구조를 갖췄다.
국내에 출시되는 전기 파워트레인은 두 가지다. CLA 250+ 일렉트릭은 85kWh NCM 배터리를 탑재해 국내 인증 기준 474km를 달린다. 반면 진입 가격을 낮춘 CLA 200 일렉트릭은 58kWh LFP 배터리를 얹어 342km의 주행거리를 인증받았다.
같은 차명 안에서 배터리 화학 방식을 이원화한 점이 인상적이다. 장거리 주행이 필요한 수요에는 에너지 밀도가 높은 NCM을 배치하고,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엔트리 트림에는 LFP를 적용해 원가와 주행거리 사이의 균형점을 소비자가 직접 고를 수 있게 했다.
효율을 높이기 위한 세심한 장치들도 돋보인다. 후륜 구동축에 2단 변속기를 맞물렸고, 0.21대에 불과한 공기저항계수와 히트펌프를 더해 효율을 극대화했다. 800볼트 시스템 덕분에 충전 속도도 빨라져 CLA 250+는 최대 320kW로 충전 시 10%에서 80%까지 약 22분이 소요되며, CLA 200은 최대 200kW로 약 20분이 걸린다.
가격 정책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전기 CLA는 5,290만~6,770만 원으로 책정된 반면, 하이브리드 모델인 CLA 220은 5,990만 원부터 시작한다. 보조금을 고려하기 전에도 전기차 엔트리 트림이 하이브리드보다 700만 원이나 저렴하다. 전기차를 새로운 브랜드의 진입로로 삼겠다는 벤츠의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다.
GLC는 벤츠의 글로벌 베스트셀링 SUV다. '일렉트릭 GLC'는 그 이름을 달고 나온 최초의 순수 전기차로, 익숙한 GLC의 비례를 따르고 있지만 속은 완전히 새롭다. 내연기관 모델과 플랫폼을 공유하지 않는 순수 전기차 전용 뼈대를 지니고 있다.
전용 플랫폼의 가장 큰 수혜는 실내 공간에서 나타난다. 휠베이스는 내연기관 모델보다 84mm 길어졌고, 뒷좌석 레그룸은 47mm 늘어났다. 기본 트렁크 용량은 570L이며 2열을 접으면 1,740L까지 확장된다. 보닛 아래에는 128L짜리 프렁크까지 마련되어 실용성을 더했다.
국내에는 GLC 300 4MATIC 일렉트릭 론치 에디션 2종이 먼저 선을 보였다. 85kWh NCM 배터리를 탑재해 국내 인증 기준으로 448km를 주행하며, 최대 320kW 급속 충전으로 10%에서 80%까지 약 22분이 소요된다.
가격은 AMG 라인이 9,000만 원, AMG 라인+가 9,480만 원이다. 특히 상위 트림인 AMG 라인+에는 에어매틱 에어 서스펜션과 최대 4.5도까지 꺾이는 리어 액슬 스티어링이 기본으로 포함된다. 내년 상반기에는 GLC 400 4MATIC 일렉트릭도 라인업에 합류할 예정이다.
사전계약 결과는 한국 시장의 성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7월부터 계약을 시작한 GLC가 약 2,500건, 9월에 합류한 CLA가 약 1,000건의 계약을 기록했다. 시기 차이가 있음에도 9,000만 원대 전기 SUV가 더 큰 호응을 얻은 것은, 프리미엄 SUV를 향한 국내 소비자의 선호가 전동화 시대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모델의 또 다른 핵심 무기는 자체 개발한 차량 운영체제인 'MB.OS'다. 인포테인먼트부터 주행 보조, 차체 및 편의 기능, 충전 제어까지 유기적으로 통합해 OTA(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차를 끊임없이 진화시킨다.
특히 한국 시장에 맞춘 현지화 노력이 돋보인다. 티맵 오토 내비게이션을 기본 탑재하고, 라이브 TV+, 지니뮤직, 밀리의 서재 같은 친숙한 국내 앱을 지원한다. 정차 중 화상회의를 즐길 수 있는 셀피 및 비디오 카메라까지 더해져 그간 수입차의 약점으로 지적되던 디지털 편의성을 말끔히 메웠다.
첨단 주행 보조 시스템인 'MB.DRIVE 어시스트'도 기본이다. 디스트로닉과 스티어링 어시스트를 결합한 SAE 레벨 2 수준의 주행 보조를 지원하며, 고속도로에서 방향지시등 조작만으로 차선을 변경하는 기능과 막다른 길에서 지나온 경로를 그대로 후진하는 자동 후진 기능까지 알차게 챙겼다.
올해 국내 수입차 시장의 판도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1~9월 수입 승용차 누적 등록 대수는 27만 9,729대로 작년 동기 대비 24.1% 증가했다.
성장을 견인한 일등 공신은 단연 전기차다. 같은 기간 수입 전기차 등록 대수는 13만 2,582대로 무려 99.8% 폭증하며 전체 수입차의 47.4%를 차지했다. 두 대 중 한 대꼴로 전기차가 팔린 셈이다.
이 흐름의 최대 수혜자는 단연 테슬라다. 테슬라는 1~9월 동안 8만 9,148대를 등록해 점유율 31.9%로 누적 1위에 올랐다. BMW는 5만 7,929대로 2위를 지켰지만, 벤츠는 4만 3,249대로 작년보다 판매량이 10.4% 뒷걸음질 치며 3위로 내려앉았다.
여전히 벤츠의 중심은 E클래스와 같은 내연기관 세단이지만, 시장의 중심축은 이미 전기차로 이동했다. 그동안 전기차 라인업이 공백기를 겪었던 점이 뼈아픈 순위 하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CLA와 GLC는 공백을 메울 든든한 구원투수다. CLA는 수입 전기 세단 수요를, GLC는 프리미엄 전기 SUV 수요를 정확히 조준하며 5,000만 원대부터 9,000만 원대까지 촘촘한 가격 라인업을 구축했다.
전략의 방향성도 한결 유연해졌다. CLA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를 함께 내놓았고, GLC는 내연기관과 전기 모델이 같은 이름을 공유하게 했다. 전기차 일변도에서 벗어나 고객에게 진정한 선택권을 쥐여준 것이다.
쉬린 에미라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대표이사는 "전동화 전환 과정에서 고객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과 수요에 부합하는 폭넓은 선택지를 제공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두 차의 본격적인 고객 인도는 11월 중순부터 시작된다. 진정한 평가는 그때부터 시작될 것이다. 매서운 한국의 겨울 날씨 속에서 실제 주행거리가 어떻게 나올지, 그리고 약속한 OTA 업데이트가 얼마나 충실히 이행될지 지켜볼 일이다. 벤츠가 과연 한국 전기차 시장에서 다시금 프리미엄의 기준을 세울 수 있을지는 CLA와 GLC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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