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이 중국 전기차 업체 샤오펑(Xpeng)과 공동 개발한 전기 SUV의 판매 부진으로 현지 사업 재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오토헤럴드 DB)
[오토헤럴드 김훈기 기자] 폭스바겐이 중국 전기차 업체 샤오펑(Xpeng)과 공동 개발한 전기 SUV의 판매 부진으로 현지 사업 재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업체의 소프트웨어와 전기차 기술을 활용해 신차 개발기간을 단축했지만 실제 판매량은 당초 내부 목표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기술 협력만으로는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20일(현지시간) 일부 외신에 따르면 폭스바겐 내부 사업계획 문서와 중국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싱커카(ThinkerCar) 자료를 살펴보면 폭스바겐과 샤오펑이 공동 개발한 전기 SUV 'ID. 유닉스 08(ID. UNYX 08)'은 지난 4월 출시 이후 8월까지 월평균 267대가 판매됐다. 이는 폭스바겐이 당초 올해 목표로 설정했던 월평균 3622대의 약 7.4%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5개월간 누적 판매량도 1300여 대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기간 중국에서 판매된 주요 경쟁 전기 SUV와 비교하면 ID. 유닉스 08의 판매 부진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샤오미의 전기 SUV 'YU7'은 약 5만 7000대, 지커의 '7X'는 2만 1000대 이상 판매됐다. 반면 ID. 유닉스 08은 비슷한 가격대의 중국 브랜드 전기차와 경쟁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했다.
ID. 유닉스 08은 폭스바겐이 중국시장 경쟁력 회복을 위해 샤오펑과 공동 개발한 첫 번째 전기차로 양사는 2023년 전략적 협력을 시작했다. 폭스바겐은 당시 약 7억달러(약 9283억 원)를 투자해 샤오펑 지분 4.99%를 확보했다.
ID. 유닉스 08은 폭스바겐이 중국시장 경쟁력 회복을 위해 샤오펑과 공동 개발한 첫 번째 전기차다(폭스바겐)
양사가 추진한 기술 협력의 핵심은 중국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전자·전기 아키텍처와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인포테인먼트 기술을 신차에 신속하게 적용하는 데 있었다. 폭스바겐은 샤오펑의 기술을 활용해 중국 현지 전기차 개발기간을 단축하고 제품 경쟁력을 높인다는 계획이었다.
실제로 폭스바겐은 샤오펑과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전자·전기 아키텍처를 18개월 만에 개발하는 등 신차 개발 과정에서 성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ID. 유닉스 08에는 샤오펑의 스마트 콕핏과 지능형 주행 기술, 튜링 AI 칩 등이 적용됐다.
그러나 양사의 기술 협력으로 신차 개발 속도가 개선됐음에도 실제 중국시장 판매에서는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ID. 유닉스 08은 출시 당시 약 3만 4260달러(약 4543만 원)의 가격으로 판매를 시작했지만 비슷한 가격대의 중국 경쟁 모델들이 첨단 센서와 고속충전 등에서 높은 상품성을 제공하면서 경쟁에 어려움을 겪었다.
중국 현지에서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판매망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도 ID. 유닉스 08의 판매 부진을 설명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폭스바겐은 중국에서 FAW와 SAIC 등 기존 합작사를 통해 3000개 이상의 판매거점을 운영하고 있지만 ID. 유닉스 08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폭스바겐 안후이의 별도 판매망을 중심으로 공급됐다.
신차 출시 이후 기대에 못 미치는 판매실적이 이어지면서 폭스바겐은 ID. 유닉스 08의 가격을 낮추는 방식으로 시장 대응에 나서고 있다(폭스바겐)
폭스바겐 안후이의 판매거점은 현재 166개까지 확대됐지만 기존 합작사가 운영하는 판매망과 비교하면 여전히 고객 접근성이 제한적인 수준이다. 폭스바겐은 일부 FAW-폭스바겐 판매점과 협력해 고객 접근성을 높이고 있으며, 안후이 사업부의 ID. 유닉스 제품군 판매도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차 출시 이후 기대에 못 미치는 판매실적이 이어지면서 폭스바겐은 ID. 유닉스 08의 가격을 낮추는 방식으로 시장 대응에 나서고 있다. 폭스바겐은 최근 ID. 유닉스 08의 판매가격을 출시 당시보다 약 17% 할인해 제시하고 있다. 이는 출시 이후 불과 수개월 만에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한 대응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초기 판매 부진이 확인되면서 폭스바겐이 내부적으로 설정했던 ID. 유닉스 08의 중장기 판매 전망 역시 하향 조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폭스바겐은 2024년 수립한 사업계획에서 올해 말까지 ID. 유닉스 08을 3만 2600대 판매하고 내년에는 7만 400대를 판매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올해 초 2026년 판매 전망을 1만 2300대로 60% 이상 낮췄으며, 2027년 목표 역시 6만 4000대로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바겐의 주력 시장 중 하나였던 중국에서는 현지 자동차 업체들의 성장과 전동화 전환이 맞물리면서 브랜드의 시장 지위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2019년에는 중국에서 판매되는 승용차 5대 중 1대가 폭스바겐 브랜드 차량이었지만 올해 1~8월 그룹의 시장점유율은 약 10%까지 낮아졌다. 과거 그룹 전체 이익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던 중국 사업의 이익 기여도 역시 약 10% 수준으로 축소됐다.
폭스바겐의 주력 시장 중 하나였던 중국에서는 현지 자동차 업체들의 성장과 전동화 전환이 맞물리면서 브랜드의 시장 지위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오토헤럴드 DB)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폭스바겐의 판매 경쟁력이 약화된 배경에는 현지 업체들의 기술 발전과 빠른 신차 개발, 가격 경쟁 심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BYD와 지리, 샤오미 등 현지 업체들은 소프트웨어와 첨단 운전자 보조 기능을 강화하면서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신차를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제품 개발주기가 짧아지면서 기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대응 부담도 커지는 상황이다.
한편 폭스바겐은 ID. 유닉스 08의 판매 부진에도 샤오펑과의 기술 협력을 지속하면서 후속 전기 세단 'ID. 유닉스 09'를 이달 중국시장에 투입할 예정이다. 폭스바겐이 후속 모델을 통해 판매실적을 개선하고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가 향후 현지 사업 재편의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김훈기 기자/hoon14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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