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화물운송이 단순 실증 단계를 넘어 상용화의 문턱에 다가서고 있다. 지난 21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심포지엄의 화두 역시 ‘자율주행 화물운송 상용화의 조건’이었다. 정부와 완성차업체, 그리고 혁신 스타트업 두 곳이 모인 이 자리에서 나온 메시지는 명확했다. 기술은 이미 도로 위를 달리고 있으며, 남은 변수는 제도가 얼마나 속도를 맞춰주느냐라는 점이다.
화물 자율주행이 급물살을 타는 진짜 이유는 현장의 극심한 구인난이라는 현실 때문이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대형 화물차 운전자의 평균 연령은 58.7세, 소형급은 65.5세에 달한다. 라이드플럭스는 올해 21.4% 수준인 운전자 부족률이 2035년에는 32.9%까지 솟구칠 것으로 전망했다. 도로 위 트럭 세 대 중 한 대는 운전대를 잡을 사람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해외 사정도 다르지 않다. 국제도로운송연맹(IRU)은 2023년 기준 부족한 트럭 운전자를 300만 명으로 집계했으며, 2028년에는 700만 명까지 불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 5톤 이상 중대형 화물차 시장에 진입하려면 최대 1억 4,225만 원이라는 거금이 필요하다 보니 청년층 유입은 사실상 막혀 있다. 마스오토의 지적처럼 "자율주행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기도 전에, 일자리가 먼저 비어버린" 상황이다.
2024년은 국내 화물 자율주행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라이드플럭스는 지난 4~5월 국내 최초로 2개 노선에서 화물 유상운송 허가를 받아 7월부터 실제 고객 물량을 나르고 있다. 롯데글로벌로지스의 동남권물류단지~진천 구간, 그리고 한진의 군산항~전주~대전 다거점 노선이 대표적이다. 특히 서울 동남권물류단지에서 진천까지 왕복 224km 구간을 사람의 개입 없이 완주한 기록도 공개했다.
라이드플럭스의 핵심 무기는 물류센터 상차부터 하차까지 전 구간을 자율주행으로 처리하는 ‘도크 투 도크(Dock-to-Dock)’ 기술이다. 고속도로만 자율주행을 하고 도심 구간을 사람이 맡는다면 운전 인력 절감 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반면 마스오토는 고가의 라이다나 정밀지도 대신 7개의 카메라와 1개의 레이더로 구성된 '카메라 기반 End-to-End(E2E)' 방식을 선택했다. 대당 장착 비용이 1,000만 원 수준으로, 기존 라이다 기반 시스템(약 3.5억 원)의 35분의 1에 불과하다. 기존 트럭에 개조 장착할 수 있어 진입 장벽도 낮다. 이미 협력사 트럭 265대로 2,000만km에 달하는 주행 데이터를 확보했으며, 미국 텍사스에서는 40톤 트럭으로 유상운송을 실질적으로 운영 중이다.
완성차 제조사인 현대자동차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2023년 미국 플러스AI와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 실증을 진행한 데 이어, 2025년에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에 오류가 생겨도 차량이 스스로 안전을 확보하는 '리던던시(이중화) 시스템' 개발을 마쳤다. 최근에는 라이드플럭스, 마스오토와 손잡고 국내 화물트럭 레벨4 실증을 위한 3자 협약을 맺으며 완성차와 기술 스타트업의 연대를 강화했다.
자율주행이 가져올 경제적 이점에 대해. 현대차는 장거리 운송을 무인화할 경우 총소유비용(TCO)이 30~40% 절감될 것으로 분석했다. 라이드플럭스 역시 25톤 트럭 기준 운송원가가 17% 줄어들며, 차량 가동시간을 늘리면 절감 폭이 최대 38%까지 확대된다고 추정한다. 국내 미들마일(중간물류) 운송 시장 규모는 연 31조 원에 달하지만, 절반 가까운 40%가 인건비로 나가 물류사의 평균 마진율은 2~4%에 불과한 실정이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미국이나 호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운전자 임금 수준이 낮다 보니, 자율주행 도입에 따른 인건비 절감 효과가 생각만큼 극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업계가 결국 북미 시장을 최종 목적지로 점찍는 이유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한국을 테스트베드(홈마켓)로 삼아 노하우를 쌓은 뒤 북미로 진출하는 전략을 세웠다. 마스오토가 제시한 ‘팀 코리아’ 구상도 일맥상통한다. 현대모비스 아산 공장에서 만든 부품을 자율주행 트럭으로 부산항까지 옮기고, 미국 서부에 도착한 화물은 다시 자율주행 트럭으로 조지아 메타플랜트까지 수송하는 방식이다. 수출 물류의 시작과 끝을 모두 한국의 자율주행 기술로 연결하겠다는 포부다.
하지만 현실적인 장벽은 여전히 높다. 첫째는 복잡하고 경직된 허가 구조다. 전국 고속도로는 일괄적으로 시범운행지구로 지정되었지만, 물류센터 주변 도심 도로는 노선마다 매번 별도 지정을 받아야 한다. 사전 주행부터 유상운송 허가를 받기까지 보통 5~6개월이 소요된다. 업계는 동일한 사양의 차량이라면 추가 시험 없이 전국 운행을 허용하는 '차량 단위 성능인증제'나 실증특례 실적을 정식 허가로 연계하는 표준 표준 프로세스 도입을 호소하고 있다.
둘째는 보험 문제다. 현장 패널 토론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였다. 라이드플럭스는 현재 임시운행허가 상태로 운행 중이라 적재물배상책임보험 의무 가입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정작 거래하는 물류사들은 계약 조건으로 이 보험을 요구하기에, 어쩔 수 없이 보험사와 특약 형태의 변종 상품을 만들어 비싼 보험료를 내며 가입하고 있다.
마스오토는 다른 물류사의 트럭에 자율주행 시스템을 장착하려다 차량 자체의 과거 사고 이력 때문에 보험 가입이 거절당하는 황당한 벽에 부딪히기도 했다. 국토교통부가 승용 자율주행차 전용 보험을 먼저 추진하고는 있지만, 화물 물류 전용 보험 체계 논의는 아직 첫걸음도 떼지 못한 상태다.
셋째는 무인 운행을 뒷받침할 인프라다. 국토가 좁은 한국은 당일 왕복 노선이 많아 주유 문제가 크지 않아 보이지만, 완전 무인화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차량 내에 사람이 없으니 기름을 넣거나 차량 점검을 해줄 주체도 사라진다. 고속도로 주요 거점에 자율주행 트럭 전용 주유·정비 허브를 구축해야 하지만, 트럭 터미널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한국에서는 별도의 대규모 투자가 시급한 과제다.
그동안 정부의 규제 개선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올해 스쿨존 내 자율주행 허용 및 영상 원본 활용 조치가 이루어졌고, 무인차 안전운행 요건도 정립되었다. 시·도지사의 시범운행지구 지정 권한 부여 및 실증도시 확대 계획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정책의 무게중심은 '여객'에 쏠려 있다. 정부의 실증도시 사업이나 교통취약지역 무인 버스(DRT) 등 대다수 정책이 사람을 태우는 서비스 위주다. 국토부 관계자 역시 정책이 여객 중심으로 흘러왔음을 인정하며 화물 분야는 이제야 신규 사업을 발굴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현장에서는 이미 유상운송으로 화물을 나르고 있는데, 정작 정책은 한 발 늦게 따라오는 셈이다.
글로벌 시장과의 격차도 아쉽다. 국내 자율주행차 전체 운행 대수는 235대, 누적 운행거리는 1,600만km 수준에 불과하지만 미국 웨이모는 4,000대 이상, 중국 바이두는 3,200대 이상을 운행 중이다. 데이터와 연산 능력이 핵심인 AI 자율주행 싸움에서, 정부의 단발성 지원에 불안해하는 국내 스타트업의 현실은 뼈아픈 대목이다.
다행히 자율주행 업계의 접근 방식은 지혜롭다. 기존 화물 기사들을 무작정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기피하는 빈자리부터 메우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라이드플럭스는 모두가 꺼리는 야간 노선에 자율주행 트럭을 우선 투입하고 있으며, 마스오토는 기존 운전기사들을 '원격 관제사'로 전환할 수 있는 자격증 및 재교육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기술 도입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한 현실적인 상생안이다.
라이드플럭스의 계획대로라면 2028년부터 무인 전환이 시작되고, 2029년 이후에는 원격 관제 기반의 본격적인 상용 운행이 가능해진다. 현대차 역시 2030년 전후를 양산형 자율주행 트럭의 상업 운행 시점으로 잡고 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겨우 3~4년 남짓이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성능인증 제도 정비, 화물 전용 보험 체계 구축, 거점 인프라 조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마스오토의 한 관계자는 "국내 자율주행의 모든 '최초' 기록은 제도의 문이 한 칸 열린 다음 해에 나왔다"고 말했다. 기술은 이미 준비를 마쳐가고 있다. 이제 다음 문을 열어줄 차례는 바로 정책과 제도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편집장)
사진 /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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