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박귀임 기자] 휴대전화 전파가 닿지 않는 바다나 산, 이동통신망 체계가 다른 해외 오지에서 사고를 당하면 구조 요청부터 쉽지 않다. 이런 곳에서는 지상 기지국 대신 인공위성을 거쳐 신호를 주고받는 '위성통신'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기지국이 없는 곳에서도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연결 다음이다. 사람이 크게 다쳐 말하기 어렵다면 정확한 위치와 주변 상황을 전하지 못하고, 구조대는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 채 출동해야 한다. 신호를 받아 상황을 파악하고 구조기관에 전달하는 관제 체계, 곧 24시간 가동되는 상황실이 함께 있어야 하는 이유다. 스타트업 퓨잇(Fuit)은 위성통신에 인공지능(AI)과 국산 AI 반도체, 관제 인력을 더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AI가 다친 사람의 불분명한 말을 문맥으로 바로잡아 현장 상황을 파악하도록 하고, 반도체로 이 AI를 작은 기기 안에서 적은 전력으로 작동시키며, 관제 인력이 전 과정을 운영한다는 구상이다.
퓨잇이 이 구상을 펼칠 도시로 광주를 꼽았다. 광주에는 국가 AI데이터센터와 AI 집적단지가 있고, 연구기관과 AI 반도체 기업도 모여 있다. 퓨잇은 광주에 '글로벌 AI 안전관제센터'를 세워 해외 건설현장 근로자와 해외 운행 차량의 SOS 신호를 한곳에서 받는 것을 첫 목표로 삼았다. 퓨잇이 지역 기관과 어떤 솔루션을 만들고 어디에 쓰려는지 짚어본다.
현장에서 분석하고, 광주 관제센터가 받는다
퓨잇의 솔루션은 사고가 난 현장에서 작동한다. 차량이나 SOS 기기가 사고를 감지하면 기기 안의 AI가 먼저 상황을 분석한다. 차량이라면 내부 카메라 영상과 차량 센서 데이터를 함께 보고 탑승자가 의식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식이다. 영상 원본은 차량 밖으로 보내지 않고 분석 결과를 담은 글이나 상태 코드만 전송하는 것이 설계 원칙이다. 개인정보 노출을 줄이려는 취지다.
위성통신은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데이터가 적어 음성을 그대로 보내기 어렵다. 이에 퓨잇은 음성을 글자로 바꾸고, 전송 용량이 부족하면 구조에 꼭 필요한 단어부터 먼저 보내도록 설계하고 있다. 사고 충격으로 발음이 불분명해져도 AI가 앞뒤 문맥을 보고 말을 바로잡는다. 예를 들어 '여기 터널 아네요'처럼 뭉개진 말을 '여기 터널 안이에요'로 바로잡아 전달하는 식이다. 신고자가 말할 수 없는 상태라면 AI가 센서와 영상을 종합해 상황을 정리한 뒤 구조기관과 자동으로 소통하는 기능도 개발하고 있다.
이렇게 보낸 신호를 받는 곳은 퓨잇이 광주에 세울 글로벌 AI 안전관제센터다. 세계 곳곳에서 들어오는 개인 SOS 신호와 차량 긴급호출 신호를 관제센터 한 곳에서 받아, 신고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구조기관에 연결하는 구조다. 55인치 디스플레이와 여러 화면을 한꺼번에 띄우는 장치, 정전에 대비한 무정전전원장치(UPS) 등을 갖추고 119 같은 구조기관과 연결하는 방안도 계획에 포함됐다. 구조가 끝난 뒤 사고 시간과 위치, 충격 세기 같은 이력은 플랫폼에 쌓아 보험사와 차량 제조사에 공유하고 AI 모델을 개선하는 데 쓴다는 설계다.
이를테면 중동 사막의 공사 현장에서 한국인 근로자가 쓰러졌다고 가정하자. 설계대로라면 현장에 기지국이 없어도 근로자의 SOS 기기가 위성을 거쳐 위치와 상황을 보내고, AI 안전관제센터가 이를 구조기관에 알린다. 다만 해외 현지 구조기관에 어떤 방식으로 연결할지는 앞으로 구체화할 부분이다.
광주 연구기관·AI 반도체 기업이 퍼즐을 맞춘다
퓨잇이 광주를 거점으로 선택한 이유는 대규모 AI 처리와 24시간 관제에 필요한 인프라와 협력 생태계다. 퓨잇은 광주 지역 기관들과 역할을 나눠 솔루션을 만들고 있다.
우선 음성 분야에서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호남권연구본부로부터 2025년 11월 기기 안에서 작동하는 음성 인식 기술을 이전받아 위성통신 환경에 맞게 고도화하고 있다. 생성형 AI 분야에서는 광주과학기술원(GIST)과 2024년부터 2027년까지 공동 연구를 진행한다. 이 연구 내용은 AI 모델 고도화와 안전 분야에 특화된 거대언어모델 개발, 성능 검증 등이다. 퓨잇은 연구 성과를 사업화하기 위해 공동 실증과 기술이전 협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광주 소재 AI 반도체 기업 모빌린트의 국산 AI 연산 전용 반도체(NPU) '레굴루스(REGULUS)'로 기기 안에서 동작하는 소형 AI 모델을 개발하고, 운전자 상태를 살피는 AI를 최적화할 계획이다. 학습과 실증에는 국가 AI데이터센터 설비를 쓴다는 구상이다.
개발 중인 AI 모델은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 시험에서 4784개 데이터 기준 복합 분석 정확도 96%를 기록했다고 퓨잇은 밝혔다. 다만 작은 기기 안에서 영상과 센서 데이터를 함께 분석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예비 연구 단계의 결과이며, 평균 분석 시간은 약 9.7초다.
장비 한 번 파는 대신, 관제를 구독으로
기존 차량 긴급호출 서비스는 LTE·5G 이동통신망에 의존해 산악·터널·해외 오지에서 한계가 있다는 것이 퓨잇의 문제의식이다. 퓨잇은 이를 위성통신으로 보완하고 사고 후 자동 대응까지 묶은 서비스라고 설명한다.
사업 구조에서는 장비 판매에 그치지 않고 관제와 위험 분석, 사고 이력 관리를 구독형 서비스(SaaS)로 제공하려 한다. 주요 고객은 공공기관, 완성차 제조사와 1차 협력사, 보험사, 재난안전기관이다. 고객이 직접 관제 체계를 구축·운영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점이 퓨잇이 내세우는 가치다.
사업 모델은 네 가지로 나뉜다. 완성차 1차 협력사에 솔루션을 공급하는 신차 시장, 블랙박스 업체와 손잡는 애프터마켓, 아웃도어·산악 근무자용 개인 위성 SOS 기기 판매, 지자체·공공기관 대상 재해·재난 모니터링이다. 초기에는 협력사에 일정 기간 로열티와 개발비를 받지 않고 서비스를 제공하며 신뢰를 쌓고, 이후 월 요금제 등 유료 모델로 넘어간다는 계획이다. 이미 구축한 재해 분석 플랫폼에는 무료와 월 단위 유료 요금제가 설계돼 있다.
퓨잇은 2023년 국내 대기업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위성 기반 긴급호출 솔루션을 공동 개발해 왔다. CES 2024에서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를 대상으로 시연했고, 공동 연구개발과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해외 완성차 업체와는 서비스 고도화를 협의하는 단계다.
광주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공공시장을 두드린다
퓨잇은 현재 5명인 인력을 광주 이전 후 3년 안에 24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AI 연구개발, 소프트웨어 개발, 반도체 최적화, 클라우드 운영, 관제 운영, 기술지원, 사업개발 등이 대상이며 조선대학교, GIST 출신 AI 박사는 이미 채용했다. 소프트웨어 개발·데이터 구축·화면 설계·클라우드 운영 기업도 광주 업체를 우선 협력사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공공시장 진출을 위해 퓨잇은 공공기관이 쓸 수 있는 수준의 클라우드 보안 인증(CSAP)에 맞춘 AI 클라우드를 만들고, 2027년 3월까지 인증 대응 체계를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유럽연합(EU) 개인정보보호규정에 맞춘 데이터 보호 설계도 병행한다. 2026년 말부터는 국내외 지자체·공공기관과 시범사업을 시작해 홍수·산불 분석에서 도로 파손 감지로 넓힌다는 로드맵이다.
퓨잇 관계자는 "광주의 연구기관과 AI 반도체 기업, 데이터센터와 함께 솔루션을 만들고 해외 건설현장과 재난 대응 같은 분야로 차례로 넓혀 가겠다"고 전했다.
IT동아 박귀임 기자(luckyim@it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