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잡이를 나섰던 옛사람들의 눈에 맹금류의 실루엣이 비쳤다. 그들은 이곳을 '소리섬'이라 불렀고, 그 이름은 조선 태조 5년(1396년) 공식 지명에 반영된다. 솔개 연(鳶) 자를 딴 '연도' 이야기다.
버스를 타고 연도마을로
연도는 여수 앞바다에서 시작된 금오열도의 남쪽 끝 섬으로 망망대해 큰 바다가 시작되는 경계선에 있다. 여수를 떠난 여객선은 큰 마을이 있는 연도항이 아닌 북쪽의 '역포항'에 기항한다. 해상 여건과 지리적 실리 때문이다.
남쪽 끝자락에 자리한 연도항까지는 섬을 반 바퀴 이상 돌아야 하는데, 이때 외해의 높은 파도와 거센 조류를 견뎌 내야 한다. 반면 역포항은 금오도와 안도를 거치는 최단 항로상에 있어 접근성이 좋고 비교적 해상 날씨의 영향을 덜 받는다. 이 때문에 여행객 대부분은 하선 후,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연도마을로 이동한다. 굴곡진 도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짙은 상록수림, 마을버스로 시작되는 여행이지만, 설렘을 담금질하기엔 꽤 낭만적이다.
연도마을은 리 사무소와 보건지소, 우체국, 민박집 등 생활 편의시설이 모여 있는 섬의 중심지다. 마을의 정취는 고즈넉하다. 깊게 만입된 지형적 이점도 모자라 해상 방파제까지 설치해 안전함을 더했다. 포구 앞에 다다른 바다는 늘 잔잔하다. 어선들의 피항장으로 쓰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낡은 그물과 꾸덕꾸덕 건조되는 생선 솟대, 어촌의 일상은 눈이 닿는 곳마다 꾸밈없이 드러난다. 바다를 곁에 두고 묵묵히 생업을 이어 가는 마을 풍경은 여행자에게 담백하고 묵직한 잔상을 남긴다.
국립공원 명품마을, 덕포
연도마을에서 남쪽으로 고개 하나를 넘으면 파란 지붕의 덕포를 만나게 된다. ‘2017년 국립공원 지정 17번째 명품마을'로 넉넉한 인심, 자연에 녹아든 예스러움에 아늑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비탈을 따라 계단식으로 놓인 가옥들은 또 다른 명품마을, 안도의 동고지마을을 연상케 한다. 마을은 인위적인 대규모 개발을 배제하고 기존의 생활 인프라를 정비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택했다. 환경을 위해 태양광 발전 패널을 설치하는가 하면 폐가를 정비해 방문자센터와 마을 펜션을 건립했다. 오래된 우물을 쉼터로 조성하고, 방치되었던 습지 주변으로 나무 관찰로도 구축했다. 그 결과 섬다움을 지켜 내며 방문객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생태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연도해안은 대부분 암석 지형으로 이뤄져 있다. 덕포마을 앞에는 섬의 유일한 몽돌해변이 자리하고 있다. 오랜 시간 파도에 마모된 갯돌들은 크기도 제각각이다. 한때는 백패커들의 야영지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텐트 설치가 금지되면서 사색하고 쉬어 가는 스폿으로 남게 됐다.
비경 속에 담긴 전설
섬의 남단은 여행자들이 연도를 찾는 가장 큰 목적이자 억겁의 지질학적 시간이 누적된 판도라다. 바다를 향해 용틀임하듯 뻗어 나간 절벽을 사람들은 대룡단과 소룡단으로 부른다. 두 개의 곶은 소리도의 지형적 특징을 가장 잘 요약해 보여 준다. 바다에서 융기한 대룡단이 용의 머리라면 그 뒤로 길게 이어진 소룡단은 영락없는 꼬리의 형상이다.
대룡단의 정상에는 소리도등대가 솟아 있다. 1910년 점등한 이 원형 구조물은 한반도에서 21번째로 건립된 등대다. 여수항과 광양항으로 진입하거나 서해안을 거쳐 부산 방향으로 항해하는 대형 선박들의 기준점이 돼 왔다. 해양수산부와 국립등대박물관은 소리도등대의 항로표지로서의 가치를 인정해 '역사가 있는 등대' 15곳 중 하나로 지정했다.
등대를 받치고 있는 절벽 아래, 바다와 맞닿은 곳에는 두 개의 동굴이 있다. 주민들이 '쌍굴' 혹은 '코굴'이라 부르는 큼지막한 해식동굴이다. 게다가 양 입구 중앙에는 오랜 침식을 견뎌 온 바위가 길게 뻗어 있다. 일명 코끼리 바위로, 동굴과 더불어 절묘한 풍광을 이루는 연도의 랜드마크다. 트래커들은 대룡단에서 소룡단을 거쳐 곳부리반도까지의 걸음으로 여행을 완성한다. 코스 도중 쌍굴과 코끼리바위를 관찰할 수 있는 장소로는 소룡단 능선 길에 있는 전망대가 꼽힌다. 이곳은 소리도등대까지 더불어 담을 수 있는 최고의 전망 포인트다.
한편, 동굴에는 외형적 독특함만큼이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순천 지역의 호족 박영규는 후백제 견훤의 사위였고 훗날 고려의 개국공신이 된다. 그는 남해와 서해를 잇는 해상 무역의 거점마다 강력한 세력권을 형성했는데, 그러다 소리도의 쌍굴을 발견하고 막대한 물자를 은닉했다는 내용이다. 1600년대에는 네덜란드 상선이 해적을 피해 이곳에 보물을 숨겼다는 전설까지 두루 얽혀 있다.
해상에서 다시 만난 연도
최근 국립공원공단 해양생태보전원이 기획한 '블루 아일랜드' 시범 투어에 참가했다. '블루 아일랜드'는 그간 접근이 어려웠던 해양보호구역을 일부 개방해 국민 생태관광 자원으로 환원하는 프로젝트다. 투어는 해양생태보전원이 보유한 390톤급의 선박, 연구 1호를 타고 한려해상에서 다도해로 항로를 옮겨가며, 명품 섬들을 직간접 탐방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사실 참가를 결정했던 큰 이유 중에는 연도 쌍굴 탐방이라는 강력한 유혹도 있었다.
연구 1호는 여러 섬을 거쳐, 연도 남단 해상에 당도했다. 수심 변화와 수중 암초 문제로 대형 선박의 접근이 제한되는 대룡단 절벽 하단부는 소형 보트와 카약으로 갈아탄 뒤 조심스럽게 진입하기로 했다. 해수면 높이에서 바라본 쌍굴은 절벽 위 소룡단 전망대에서 굽어보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입구를 통과하자 수 미터 높이의 거칠고 날카로운 암벽 단면이 양옆으로 수직으로 솟아 있었다. 동굴 안쪽의 바닷물은 오히려 투명했고 파도가 빚어내는 파열음은 낮고 묵직하게 다가왔다. 부근의 천장굴도 신비로움을 더했다. 동굴의 윗부분이 침식돼 뚫린 지름 7~8m의 천공은 수면과 하늘이 수직으로 연결해 기묘한 풍경을 연출해 냈다.
탐방팀은 동굴의 구조와 암벽의 형태를 실측하듯 살펴본 뒤, 절벽 지대를 빠져나왔다. 다행히도 일정은 연구 1호로 복귀하지 않고 연도항으로 상륙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해안을 돌아 섬으로 이동하는 동안, 보트의 궤적을 따라 하루해가 저물고 있었다. 붉은 노을은 물길 위로 길게 반영됐고 사람들은 모두 환상적인 순간에 집중했다.
섬은 여전한 듯했다. 운행을 멈춘 마을버스도, 물양장의 정자도 그대로였다. 저녁 식사가 차려진 해녀민텔로 향하다 여남초등학교 연도분교장에 잠시 들렀다. 인기척 없는 교정이 유난히 허전했다. 그때 지나가던 노인이 한마디를 툭 던졌다. "폐교됐어요."
여객선 여수 → 역포(연도)
출항: 06:20/14:00 (1일 2회)
소요시간: 약 1시간 40분
*김민수 작가의 섬여행기는 대한민국 100개 섬을 여행하는 여정입니다. 그의 여행기는 육지와 섬 사이에 그 어떤 다리보다 튼튼하고 자유로운 길을 놓아 줍니다.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