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과 동남아시아를 넘어 한국과 일본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두 시장은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이 강하고 자국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충성도도 높다. 중국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역시 적지 않다. 그러나 실제 시장 성적표는 상당히 다르다. 한국에서는 BYD가 빠르게 판매 기반을 넓히는 반면 일본에서는 아직 존재감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
이 차이를 중국차에 대한 소비자 인식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 단계와 가격 경쟁력, 현지 소비자의 구매 조건, 기존 자동차 산업의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2026년 1~9월 BYD의 한국 판매량은 2만 대를 넘어섰다. 시장조사업체 카이즈유 집계 기준으로 도요타와 렉서스의 합산 판매량도 웃도는 수준이다. 한국 시장 진출 초기 중국차에 대한 거부감이 적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변화다.
소비자들이 중국차를 선택하는 배경에는 가격과 상품성이 있다. BYD의 소형 전기차 돌핀은 1만8000달러대의 가격을 앞세워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에게 접근했다. 충분한 편의 장비와 비교적 짧은 출고 대기 기간도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3만 달러 미만의 전기차 선택지는 제한적이었다. 전기차를 구매하고 싶지만 가격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에게 BYD가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한국의 전기차 시장 환경도 중국 업체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2026년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기차가 소비자에게 낯선 선택지가 아닌 만큼 브랜드 국적보다 가격과 주행거리, 충전 성능, 편의 장비를 비교하는 구매 행태가 확산하고 있다. 안정되곤 있지만, 그간 유가 상승도 전기차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중국 업체들의 접근 방식도 달라졌다. BYD는 판매망을 확대하고 있으며, 지커는 한국에서 7X 주문을 시작하고 쇼룸 구축에 나섰다. 샤오펑은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판매망 구축을 위한 인력을 모집하고 있다. 체리자동차도 한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완성차를 수출하는 수준을 넘어 현지 판매와 서비스 체계를 구축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중국 업체들이 한국 시장을 단기적인 수출처가 아닌 지속적인 사업 기반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한국 자동차 업계도 이러한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중국 업체의 가격 경쟁력이 시장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며 국내 생산 전기차에 대한 지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저가형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 일본 시장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BYD는 2023년 일본에서 승용차 판매를 시작한 뒤 75개 이상의 판매점을 확보했지만, 2026년 1~9월 판매량은 4000대 미만에 머물렀다. 시장 점유율도 약 0.1% 수준이다. 한국에서 빠르게 판매량을 늘린 것과 비교하면 성장 속도가 상당히 느리다.
일본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하이브리드차 중심의 소비 구조다.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업체들은 오랜 기간 하이브리드 기술과 판매망을 구축해 왔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충전 인프라와 주행거리, 배터리 수명 등에 대한 우려를 감수하면서 전기차로 전환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2026년 일본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 비중이 약 3%에 그친다는 점도 이런 시장 구조를 보여준다.
수입차에 대한 시장의 장벽도 높다. 일본 승용차 시장에서 외국 브랜드의 판매 비중은 약 6%에 불과하다. 자국 브랜드의 상품 경쟁력과 촘촘한 판매·서비스 네트워크가 강력한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중국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 문제도 남아 있다. 품질과 내구성뿐 아니라 개인정보 수집과 차량의 원격 제어 가능성 등 보안에 관한 우려도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중국과 일본 사이의 외교적 긴장 역시 시장 진입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변수다.
BYD는 일본 시장에 맞춘 대응을 시작했다. 2026년 7월에는 일본의 경자동차 규격에 맞춰 개발한 전기차를 투입했다. 일본 특유의 경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이다. 판매량은 9월까지 약 650대에 그쳤지만, 일본 시장에 맞춘 제품을 투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커 역시 고급 밴을 택시회사와 운전자가 포함된 서비스 시장에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인 소비자 중심의 판매 전략에서 벗어나 법인과 모빌리티 서비스 시장을 통해 초기 고객 기반을 확보하려는 접근이다.
이러한 전략은 중국 업체들이 시장마다 다른 제품과 판매 방식을 적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격 경쟁력만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시장에서는 현지 소비자의 취향과 이용 환경에 맞춘 제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수요처를 발굴해야 한다.
중국 업체들이 모든 시장에서 동일한 속도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전기차 수요가 충분하고 가격 경쟁력이 구매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시장에서는 빠르게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반면 기존 하이브리드차의 경쟁력이 강하고 자국 브랜드의 시장 지배력이 높은 곳에서는 훨씬 긴 시간과 현지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시장에서 브랜드와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저가형 전기차의 폭은 여전히 좁다. 전기차 대중화의 핵심은 고성능·고급 모델의 확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가격 부담을 낮춘 소형 전기차와 다양한 차급의 상품 구성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중국 업체들의 경쟁력은 가격에만 있지 않다. 배터리와 전기차 플랫폼, 전장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확보하고 개발과 생산을 빠르게 연결하는 능력이 뒷받침하고 있다. 여기에 현지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차종과 판매 전략을 조정하는 유연성까지 더해지고 있다.
한국에서의 성과가 일본에서도 재현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반대로 일본에서의 부진을 근거로 중국 전기차의 경쟁력을 낮게 평가하기도 어렵다. 시장마다 전기차 수요와 소비자 선택 기준, 기존 산업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 전기차의 한국과 일본 시장 성적표는 같은 제품과 가격 전략도 시장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은 중국 전기차의 경쟁력이 본격적으로 시험받는 시장이 되고 있고, 일본은 현지화와 브랜드 신뢰를 쌓는 데 필요한 시간이 얼마나 긴지를 보여주는 시장이 되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계가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차의 판매량 자체보다 그 판매량을 만들어 내는 조건이다. 가격과 상품성, 공급 속도, 현지 대응력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시장은 빠르게 바뀔 수 있다. 중국 전기차가 국내 시장에서 안착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 자동차 산업에 위협인 동시에, 전기차 대중화를 위한 상품 전략을 다시 점검해야 하는 숙제를 남기고 있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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