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가와 리본 유닛

레오 그라이너(Leo Greiner), 쿠르트 쇼이히(Kurt Scheuch)가 1986년 스위스 취리히에 설립한 피에가(Piega)는 리본 유닛으로 유명하다. 1987년에 등장한 첫 스피커 아라벨라(Arabella) 때부터 리본 트위터를 썼으니 벌써 36년째다. 1991년에는 리본 미드레인지, 2000년에는 리본 트위터와 리본 미드레인지를 동축으로 결합한 리본 동축 유닛(C1)까지 개발했다.
피에가의 리본 유닛 진동판은 0.007mm의 초박막 초경량 유필렉스(Upilex) 폴리이미드 필름과 알루미늄 포일로 만들어진다. 보이스 코일은 독자적인 스프레이 에칭(spray-etching) 프로세스를 통해 납작한 형태로 진동판 뒷면에 이식된다. 이 진동판 겸 보이스 코일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강력한 네오디뮴 마그넷. 공개된 리본 동축 유닛 사진을 보면, 진동판 뒤에 막대 바 형태의 네오디뮴 마그넷이 도열했다.
마스터 라인(Master Line) 및 코액스(Coax) 라인 같은 피에가 상위 모델에는 리본 동축 유닛이 투입되는데, 이 유닛의 사운드적 이득은 명확하다. 크로스오버 주파수에서도 고역대와 중역대 사운드가 모든 방향으로, 그것도 단 한순간의 시간적 어긋남도 없이 정확하게 한 지점에서 방사되기 때문에 정위감이 뛰어나다. 유닛이 떨어졌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음의 꺼짐, 즉 딥(dip) 현상도 없다.
리본 진동판이라면 이 동축, 즉 점음원 효과는 더욱 커진다. 진동판 자체가 극도로 얇고 음파를 밀어내는 면적까지 넓기 때문이다. 게다가 리본 진동판은 세로로 긴 특성상 음파의 직진성(directivity)이 높아 시청실 룸 환경에 영향을 덜 받는 이점도 있다. 대형 콘서트홀 천장에 매달린 스피커들이 하나같이 세로로 긴 형태를 취한 것을 연상하시면 된다.
새 동축 2세대 811, 611, 411 스피커의 탄생
피에가의 리본 동축 유닛 스피커는 2000년 이후 쉬지 않고 진화했다. 2008~2016년 생산된 Coax 120.2, Coax 70.2, Coax 30.2, Coax 10.2까지가 1세대였고, 2017년에 출시된 Coax 711, Coax 511, Coax 311부터가 2세대였다. 노르웨이 시어스(SEAS) 특주 UHQD(Ultra High Quality Driver) 우퍼와 내부 보강재를 나무에서 스틸로 바꾼 TIM(Tension Improve Module)을 채택한 것이 동축 2세대가 되면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였다.


2022년에는 새 동축 2세대 스피커 라인인 Coax 811, Coax 611, Coax 411, Coax Center 211이 추가됐다. 이와 함께 기존 동축 2세대 스피커 라인의 한정판으로 Coax 711 LTD, Coax 511 LTD, Coax 311 LTD가 나왔다. 새 동축 2세대 스피커와 기존 동축 2세대 스피커는 리본 동축 유닛 자체가 다른데, 예를 들어 이번 시청기인 Coax 611은 C112+, Coax 511 LTD는 C112 리본 동축 유닛을 채택했다. TIM 역시 Coax 611에는 새 버전 TIM 2가 투입됐다.
2017 Coax Gen 2
- Coax 711 : C211, TIM
- Coax 511 : C111, TIM
- Coax 311 : C111, TIM
2022 Coax Gen 2 LTD
- Coax 711 LTD : C212, TIM
- Coax 511 LTD : C112, TIM
- Coax 311 LTD : C112, TIM
2022 New Coax Gen 2
- Coax 811 : C212+, TIM 2
- Coax 611 : C112+, TIM 2
- Coax 411 : C112+, TIM 2
Coax 611 팩트 체크 및 좌표
이번 시청기인 Coax 611은 피에가 리본 동축 유닛과 피에가의 또 다른 시그니처인 압출 알루미늄 인클로저의 모든 장점을 고스란히 갖춘 3웨이 플로어스탠딩 스피커다. 맨 위에 리본 동축 유닛 C112+가 있고, 그 아래에 6.3인치(160mm) UHQD 우퍼 2개, 6.3인치 UHQD 패시브 라디에이터 3개가 장착됐다. 이 같은 유닛 조합을 통해 32Hz~50kHz 대역을 커버한다.
흥미로운 것은 리본 동축 유닛이 커버하는 대역인데 피에가에 따르면 핵심 중역대인 450Hz부터 초고역대인 50kHz까지 풀로 커버한다. 리본 트위터와 리본 미드레인지의 크로스오버 주파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예전에 리뷰했던 Coax 311이 3kHz였던 것을 감안하면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칭 임피던스는 4옴, 감도는 90dB.
피에가는 1997년부터 인클로저 진동 및 공진 저감을 위해 기존 MDF 대신 압출 알루미늄을 인클로저 재질로 써왔는데, 이번 Coax 611은 내부 정재파를 없애기 위해 측면과 후면을 C 타입의 매끄러운 곡선으로 처리했다. 디자인은 스위스의 유명 설치미술가인 슈테판 휠레만(Stephan Hurlemann)이 맡았다. 스피커케이블 연결을 위한 바인딩 포스트는 바이 와이어링 타입으로 인클로저 후면 아래에 마련됐다. 높이는 117cm, 가로폭은 21cm, 안길이는 31cm, 무게는 45kg.
Coax 611을 상위 Coax 811, 아래 스탠드마운트 Coax 411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 Coax 811 : C212+, 2 x 220mm UHQD 우퍼, 2 x 220mm UHQD 패시브 라디에이터
- Coax 611 : C112+, 2 x 160mm UHQD 우퍼, 3 x 160mm UHQD 패시브 라디에이터
- Coax 411 : C112+, 1 x 160mm UHQD 우퍼
플로어스탠딩 Coax 811과 Coax 611은 저음 튜닝 방식으로 패시브 라디에이터, 스탠드마운트 Coax 411은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 방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Coax 811과 Coax 611은 우퍼와 패시브 라디에이터 사이즈에서 차이를 보인다.
Coax 611을 비슷한 체급의 Coax 511 LTD와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유닛
- Coax 611 : C112+, 2 x 160mm UHQD 우퍼, 3 x 160mm UHQD 패시브 라디에이터
- Coax 511 LTD : C112, 2 x 160mm UHQD 우퍼, 2 x 160mm UHQD 패리브 라디에이터
스펙
- Coax 611 : 4옴, 90dB, 32Hz~50kHz
- Coax 511 LTD : 4옴, 90dB, 32Hz~50kHz
크기와 무게
- Coax 611 : 높이 117cm, 가로폭 21cm, 안길이 31cm, 무게 45kg
- Coax 511 LTD : 높이 115cm, 가로폭 22cm, 안길이 25cm, 무게 32kg
Coax 611의 경우 리본 동축 유닛이 C112에서 C112+로 바뀌었고, 패시브 라디에이터가 1개 더 늘어났으며, 인클로저 덩치와 무게가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전면 배플을 보톡스를 맞은 것처럼 둥글게 곡면 처리, 배플로 인한 회절 피해를 줄인 점이 돋보인다. 내부 보강재인 TIM 역시 TIM 2로 바뀌었다. 그러나 공칭 임피던스와 감도, 주파수응답특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편 새 C112+ 유닛은 리본 트위터 위에 네오디뮴 마그넷을 추가해 효율을 높였다. 또 리본 미드레인지 진동판에 새 코팅 처리를 해 더욱 리니어한 주파수응답특성을 보이도록 했다. 알루미늄 포일의 레이아웃과 마그넷 구조도 바꿨다. 이 같은 변화로 소리가 훨씬 다이내믹해지고 섬세해졌으며 이미지도 3D로 잘 맺히게 됐다는 것이 피에가의 설명이다.
시청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 이뤄진 Coax 611 시청에는 소스기기로 MBL N31, 인티앰프로 MBL N51을 동원했고, 음원은 룬으로 주로 코부즈와 타이달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스피커케이블은 텔루륨 Q의 Silver Diamond, 점퍼 케이블은 텔루륨 Q의 Statement를 썼다.
아티스트 Yo-Yo Ma
곡 Gabriel's Oboe from The Mission (Excerpt)
앨범 Appassionato [International Version]
먼저 몸풀기로 요요마가 연주한 ‘Gabriel’s Oboe’를 들어보면, 음이 깨끗하고 편안한 것이 450Hz 이상을 풀로 커버하는 리본 동축 유닛의 존재감이 확연하다.
매끄럽고 쾌적한 이 모든 감촉이 피에가 리본 동축 유닛의 시그니처다. 여기에 알루미늄 인클로저와 TIM 2 보강 설계가 음의 잡내를 사라지게 만든 것 같다. 음악이 언제 끝났는지도 모르게 사라졌다.
아티스트 Anne Akiko Meyers, Los Angeles Master Chorale
곡 Jesu, bleibet meine Freude (from Cantata BWV 147 Herz und Mund und Tat und Leben)
앨범 Mysterium
바이올린은 살아있고 합창단은 성스럽다. 그들의 발음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포착되는데, 마치 건강하고 상쾌한 아침을 맞는 것 같다. 정위감과 해상력이라는, 리본 동축 유닛의 매력, 포인트 소스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러면서도 잔향음을 기막하게 잡아내는 것을 보면 이 스피커에 베풀어진 여러 공진 관리라든가, 정재파 저감 설계 등이 빛을 발한 것 같다. 또한 저음의 뒤끝이 훨씬 개운하고 음 자체가 단단한데 이는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 대신 패시브 라디에이터를 선택한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슬림 배플 덕분에 탁 트인 무대 역시 이 스피커의 매력 중 하나다.
아티스트 Hilary Hahn
오케스트라 Los Angeles Chamber Orchestra
곡 Concerto for violin, strings & continuo No.2
앨범 Bach Concertos
바이올린의 식감이 이렇게나 아삭아삭할 수가 있을까 싶다. 마치 싱싱한 음들을 로켓배송한 것 같다. 또 하나 대단하다고 감탄한 것은 매끄럽고 소프트한 음들이 저 단단한 알루미늄 인클로저에서 술술 빠져나온다는 것. 그만큼 인클로저 진동 관리가 잘 돼 있다는 증거다.
혹시나 해서 Coax 611 옆에 있던 Coax 511 LTD로 바꿔 들어봤다. Coax 611을 안 들어봤으면 모를까, 음의 선도에서 Coax 511 LTD가 밀린다. 약간 덥고 습한 바람이 나오는다는 인상도 있다. 피에가 Coax 2세대 스피커의 기본 톤은 비슷하지만 생각보다 차이가 큰데, 이는 바뀐 리본 동축 유닛과 TIM 설계, 늘어난 내부 용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아티스트 Brian Bromberg
곡 The Saga of Harrison Crabfeathers
앨범 Wood
우드 베이스의 이미지가 무대 가운데에 또렷하게 맺힌다. 특히 우물처럼 깊게 내려가는 우드 베이스의 저음이 무척 단단하다. 스피커가 전체적으로 굼뜨지 않은 점도 매력적. 이 밖에 베이스 뒤에 드럼이 놓인 위치와 공간감도 잘 포착되며, 뒤늦게 가세한 피아노의 고음은 맑고 힘이 가득하다.
이어 Coax 511 LTD로 바꿔 들어보면, 패시브 라디에이터와 내부 용적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난다. 상대적으로 저음의 힘이 빠지고 의기소침해진다. 브라이언 브롬버그가 연주하는 우드 베이스가 갑자기 스몰 사이즈로 바뀐 것 같다. 확실히 Coax 611을 상급으로 봐야 한다.
아티스트 박지윤
곡 봄, 여름 그 사이
앨범 꽃, 다시 첫 번째
보컬의 목소리는 탱글탱글해서 눅눅함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보컬과 기타, 첼로의 이미지 또한 명확해서 스피커가 정말 잘도 사라진다. 볼륨을 꽤 높여도 보컬이 앞으로 들이대지 않고 정확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점도 마음에 든다. 그러고 보니 음에 온기감도 있다. 곡이 끝나니 머리가 맑아진 것 같다.
이어 들은 Coax 511 LTD는 상대적으로 수더분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들려주는데, 이를 더 좋아할 애호가도 있을 것이다. 음들을 보다 자유롭게 풀어놓는다는 인상도 있다.
아티스트 Sting
곡 If I Ever Lose My Faith In You
앨범 Live in Berlin
입천장에 붙은 엿처럼 음이 필자의 온몸에 찰싹찰싹 달라붙는다. 그만큼 시청실 곳곳에서 날아드는 음의 압력과 찰기가 장난이 아니다. 확실히 큰 소리를 낼 줄 아는 스피커이며, 슬림하고 시크해 보이는 외모와는 반대로 의외로 박력이 넘쳐나는 스피커다. 잔향과 에코도 기막히게 잡아낸다.
이에 비해 Coax 511 LTD는 음의 순간 가속도가 많이 줄어든 느낌. 콘트라스트나 엣지감도 줄었다. 전체적으로 Coax 611의 순한 맛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총평
피에가 스피커는 들으면 들을수록 양파 같은 매력을 보여준다. 스탠드마운트 Coax 411은 동축 리본 트위터와 6.3인치 우퍼의 대역 밸런스가 좋았고, 리본 트위터와 더블 우퍼 조합의 Premium 701은 2.5웨이 슬림 스피커가 전해주는 저역의 쾌감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Coax 611은 우퍼 2발과 패시브 라디에이터 3발의 물량 투입 덕분에 낮은 중역대~저역대 질감 표현이 좋았다. 하지만 힐러리 한이 연주한 바이올린의 싱싱한 감촉을 떠올리면 이 스피커의 시그니처는 역시나 동축 리본 유닛과 알루미늄 인클로저일 수밖에 없다. 언제나 청자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드는 피에가의 매력이 듬뿍 담긴 스피커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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